#91
단독 콘서트(4)
“와... 나 아직도 여운이 안 가셔.”
고척 스카이돔을 찾아온 한 관객인 유진호가 팔을 쓸어 만지며 낮게 말했고, 그의 동행한 젊은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인 2월이긴 했지만, 팔에 돋은 소름은 찬바람이 불러일으킨 게 아니었다.
방금 끝난 김세준의 콘서트 첫 무대.
이진아와 함께 부른 ‘연꽃’이 불러일으킨 진한 감동.
한 곡으로 서로 답하며 부르는 노래. 이진아와 김세준의 수준 높은 가창력이 그들의 귓가를 사로잡았고, 거기에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부채춤의 춤사위는 그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착각인지 몰라도 유독 더욱 풍부하고 깊은 소리를 내뱉는 국악기들.
음원으로 들을 때보다 더욱 입체적으로 들리는 선율.
“오길 잘했네.”
“응. 고생한 보람이 있어.”
동행자의 말에 유진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켓을 판매하는 시간이 되자마자 재빠르게 접속해 구매한 지난 기억.
한 시간 전부터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때의 자신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와... 야. 이것 봐.”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친구가 그에게 화면이 보이게 내밀었고, 유진호도 순간 숨을 들이켰다.
“허. 실화냐?”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악한 김세준의 콘서트.
그리고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특히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실시간 미튜브 방송 시청자 수를 알려준 한 기사였다.
현재 무려 200만 명이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는 기사.
“이게 말이 돼?”
“몰라...”
말문이 막히는 숫자에 어안이 벙벙했다.
재빨리 미튜브를 켜 아레스 뮤직 오피셜 채널로 들어가 방송에 접속했다.
그러자 화면에 나오는 고척 스카이돔. 그리고 그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채팅들.
한글과 영어로 적힌 채팅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읽을 수가 없을 정도.
하지만 재빠르게 캐치한 댓글들을 봤을 땐 대부분 김세준의 방금 무대를 칭찬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자신들처럼 코앞에서 보진 못했지만, 그들 또한 진한 감동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유진호도 느꼈다.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다는 건, 큰 축복을 받은 일이라는 걸.
유진호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이, 다른 이들이 다시 한번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김세준이 아까와 다른 한복을 입고, 가야금을 든 채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김세준과 똑같은 한복을 입고 따라 올라왔다.
김세준의 아버지 김창용, 가야금 명인의 소리가 고척 스카이돔에 울려 퍼질 차례였다.
***
“오래 기다리셨나요?”
김세준의 물음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아니라고 답한다. 실제로 5분에서 1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
그 시간 동안 잠깐 자리를 비운 그.
그리고 그가 웬 남자 한 명과 동행하여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대를 지켜보는 몇몇 이들이 그 남자를 보며 술렁거렸다.
김세준이 늙은 모습을 간직한 듯한 얼굴.
그리고 김세준의 팬들에겐 이미 유명인사인 남자.
김세준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준 장본인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야금 명인이라 칭호를 받은 인물. 김창용의 등장이었다.
“저분, 아버님이지?”
“그런 거 같은데?”
김창용의 존재를 눈치채고, 술렁거리는 관객석을 향해 김세준이 작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먼저, 간단한 소개 할게요. 가야금 명인이자, 제 아버지인 김창용입니다.”
김세준의 소개에 김창용이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열화와 같은 성화로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
“오늘 제 첫 단독콘서트가 정말 뜻깊은 자리인 만큼, 아버지에게 부탁드렸어요. 혹시 같이 무대를 꾸며주실 수 있냐는 부탁에 아버지가 흔쾌히 허락해주시더라고요. 저희 아버지, 가야금 진짜 잘 뜯으시거든요.”
김세준의 말에 김창용이 부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명인이랑 칭호를 받으며 수십 수백 번에 무대를 꾸며봤던 그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해보는 건 처음.
그리고 지금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무려 이백만 명이란 사실을 들은 직후.
아무리 명인이고 많은 경험이 있는 그라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이런 설렘과 긴장을 느낄 줄이야.
게다가 지금 무대가 보통 무대인가.
아들의 첫 단독콘서트.
자신이 못한다면 욕을 먹는 건 자신의 금쪽같은 아들일 터.
그런 의미에선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무대보다 더욱 살 떨리고, 부담감이 큰 무대였다.
“저하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이렇게 합동 공연을 선보이는데요. 재밌고 좋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세준이 말을 내뱉은 후, 가야금 앞에 앉았고, 김창용도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가야금 앞으로 가 자리 잡았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관객석을 바라보며 무대 중앙 쪽에 앉은 두 사람.
그리고 이내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두 사람의 손이 현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모든 관객이 그의 아버지가 등장했을 때부터 지레짐작했던 노래.
김세준이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사로잡았던 곡.
‘심청가’의 전주가 고척 스카이돔을 가득 채웠다.
까아아아아악!
부자의 합동 연주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김세준과 김창용의 가야금 소리와 산조대금과 태평소의 음색이 합쳐진다.
김세준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에 이름을 올리게 만든 노래가 시작됐다.
‘연꽃’에 이어 발매한 심청가.
비록 그의 노래가 아닌 강유나의 노래였지만, 이 노래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김세준이었다.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를 목소리와 노래로 애절하게 표현한 그였고, 순식간에 아버님들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됐다.
그리고 지금.
김세준이 이번만큼은 익숙했던 심봉사가 아닌, 심청이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당신이 떠오르죠.
당신은 눈을 감아도 저를 떠올리지 못하시겠죠.
더듬거리며 제 얼굴을 어루만지던 당신의 손길이
너무 따뜻하여 하염없이 눈물 흘렸죠.
강유나의 청아하고 깨끗한 음색이 아닌, 김세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
심청이라고 보기엔 너무 텁텁한 느낌이지만, 애절한 감정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김세준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울려 퍼지는 김창용의 목소리.
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보았고.
알 수 없어도 느낄 수 있었는데.
빛이 없어도 난 너를 알아봤는데.
빛이 있어도 넌 나를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빛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
김창용의 목소리가 울리자 궁금해하던 관객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
김세준처럼 창을 부르던 사람인지라 목소리가 텁텁하고 거칠다.
그리고 그 거친 목소리에 확실하게 담겨 있는 진한 감정.
저 감정전달력은 유전인지, 김세준 못지않게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당신의 아들이라 행복했어요.
네가 내 아들인 게 행복이었다.
못난 아비라 항상 미안했었다.
당신의 사랑은 항상 충분했죠.
이제 제가 당신의 빛이 될게요.
너는 이미 나만의 빛이었단다.
서로를 마주 본 채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울리는 하모니.
무대를 바라보던 다른 부자들이 먹먹한 심정이 되었다.
장성한 아들에게 부축받으며 온 노인이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을 줬고.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부여잡은 아버지가 손에 느껴지는 조그마한 온기를 좀 더 강하게 움켜잡았다.
김창용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김세준.
그런 아들을 보며 김창용은 자신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세상만사 부러운 게 없구나.’
다짐할 수 있다.
지금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아버지는 없을 거라고.
평생 속 썩인 적 없던 자신의 착한 아들.
그 아들이 어느새 이렇게 장성해 자신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무려 2만 명의 관객 앞에서.
나이에 맞지 않게 눈물이 흘러나올 거 같은 기분이었다.
김세준 또한 김창용을 보며 감정을 추스르는데 바빴다.
자신의 위인이자 영웅.
자신의 노래 중 유독 심청가를 가장 좋아하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함께 심청가를 불러보고 싶은 건, 그가 심청가를 발매하고 난 뒤로 간직해왔던 하나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의 첫 단독콘서트.
그의 꿈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왔고, 바로 아버지한테 부탁드렸다.
처음엔 헌시코 거절하던 아버지. 하지만 결국 아들의 계속된 부탁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지. 잘했어.’
그때를 떠올리며 김세준이 속으로 자신을 칭찬했다.
아버지 앞에서, 부르는 심청가.
감정이 남다르고 더욱 복받쳐 올랐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목소리가 떨릴까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아버지.
주름지고, 검버섯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얼굴.
어느새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졌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팔자주름과 눈가의 주름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김세준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김창용 또한 환한 웃음과 함께 김세준을 강하게 끌어안았고,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포옹을 느끼며 김세준이 눈을 감았다.
어렸을 때 느꼈던 것처럼, 넓게 느껴지진 않지만, 여전히 듬직한 그의 품.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우레처럼 쏟아지는 박수.
몇몇 이들은 눈물을 훔치며 박수하고, 몇몇 이들은 이제 볼 수 없는 이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아빠? 울어요?”
“아니야. 아빠가 왜 울어.”
아버지를 따라 콘서트를 온 아이가 눈물을 훔치는 아빠에게 물었고,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오길 간절히 바랬는데...
자신도 아빠지만, 오늘따라 더욱 그립고 간절하게 보고 싶은 넓은 등을 가진 한 사람.
아이의 손을 움켜쥔 남자가 그 손을 더욱 따스하게 부여잡았고, 아직 노래를 이해 못 하는 어린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웃음 지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들과 격한 포옹을 끝낸 김창용이 무대에서 내려갔고, 홀로 남은 김세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김세준을 보며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 특정 사람들.
관객석을 울음바다로 만든 그 무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작은 기대감이 서렸다.
아버지를 위해 부른 노래가 있듯이, 어머니들을 위해 부른 노래가 있지 않나.
자연스럽게 그 노래가 나오길 기대하는 어머니들.
많은 중년 여성들을 눈물짓게 만들고, 깊은 위로를 심어줬던 그 곡.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무대 위로, 한 사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단아하고 고운 외모가 스크린을 통해 비치고, 긴장된 여력이 가득했다.
그리고 김세준의 얼굴에서 그녀의 얼굴이 보였고, 사람들은 다음 무대를 확실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아버지들을 울린 김세준의 ‘풍악’. 이젠 어머니들을 울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