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90화 (90/148)

#90

단독 콘서트(3)

김세준의 콘서트에 모인 2만 명의 관객들은 숨죽이며 무대를 바라봤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를 얼마나 기대했던가.

100000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투자했고, 머나먼 제주도에서 온 사람은 항공권 비용과 숙박 비용까지 합산하면 200000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지불했다.

그런 거금을 오늘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으며,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가치가 있는 공연이니까.’

김세준의 첫 단독콘서트 관객석.

그의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사치스러운 자리.

팬들에겐 역사로 기록될 날이고,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많은 이들이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린 곳이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암표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공연장 입구에서 마지막 희망을 품고 표를 구하는 풍경을 지나쳐 오지 않았던가.

당장 내일 있을 2차 공연도 표를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엔 수두룩했다.

그 정도에 가치가 있는 공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김세준이 선보인 공연과 노래는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들 정도로 빼어나지 않았나.

잔뜩 부푼 가슴으로 기다린 지 오래.

드디어 2만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라 하던 사람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꺄아아아악!

그가 등장하자마자 2만 명이 동시에 지르는 환호성.

고척 스카이돔이 떠나갈 듯 가득 울리는 소리에 김세준이 흠칫 놀라며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동안 자신을 보며 열광하던 관객들은 많았지만.

이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는 좀 더 농밀하고 진득했다.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진짜 저들이 그런 다른 열기를 내뿜는 건지 몰라도, 평소와 다른 흥분감에 김세준이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내뱉은 후, 마이크에 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가수 김세준입니다. 오늘 제 콘서트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말 한마디 때기가 무섭게 다시 울리는 환호성과 그를 연신 찍어대는 핸드폰 카메라 세례.

“첫 단독콘서트치고는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무섭기도 해요.”

진솔한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털어놓으며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그.

“제가 여러분들의 기대와 관심에 못 미치는 무대를 할까 봐 조금 걱정되고, 떨리는데 그래도 많은 준비 했으니까 오늘 공연 행복하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한 감정을 털어내서인지, 마음의 무거움이 한 층 가신 느낌이다.

김세준이 잠깐 말을 멈추고, 관객석을 천천히 훑어본다.

1층과 2층을 가리지 않고 빼곡히 자리를 채운 사람들.

고맙다는 말로 표현을 다 못 할 그 사람들을 향해 김세준이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말을 내뱉었다.

그럼, 제 첫 단독콘서트인 풍악.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동시에 울려 터지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고척 스카이돔에 가득 울려 퍼지는 멜로디.

익숙한 선율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대중들에게 김세준이란 가수를 처음으로 인식시킨 곡.

희대의 명곡을 리메이크해 또다시 탄생한 희대의 명곡.

발매한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있는 질리지 않는 노래.

그의 데뷔곡인 ‘연꽃’이 그의 단독콘서트인 ‘풍악’ 첫 무대에 울리기 시작했다.

‘첫 무대는 이 노래로 하고 싶었어.’

첫 데뷔곡이자, 자신을 이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만들어준 디딤돌이 되어준 노래.

그런 만큼 첫 단독콘서트의 첫 노래는 ‘연꽃’으로 부르고 싶었다.

자신이 직접 짜낸 인트로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가 이내 박자에 맞춰 입을 열었다.

연꽃이 피어날 때, 그대를 처음 봤죠.

연꽃보다 그대만 눈에 담고 왔죠.

그의 목소리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고척 스카이돔 전체를 휘감았다.

평소 음향 장비로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많이 남기던 고척 스카이돔.

그런 사실을 잘 알던 김세준이 유독 신경 쓴 게 음향기기였고, 특별히 준비한 딜레이 스피커.

무대에서 거리가 먼 관객석까지도 비교적 깔끔하게 울려 퍼지는 김세준의 목소리.

그리고 김세준의 노래가 시작되자 무대 위로 올라오는 몇몇 인원들.

수십 명의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사람들이 감탄을 뱉었다.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얼굴.

김세준과 같은 소속사 식구인 이진아와 김세준이 재작년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같이 무대를 꾸몄던 한국 무용단 단원들의 등장이었다.

김세준과 마찬가지로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

무대로 올라오면서 김세준의 노래에 화답하기 시작했다.

연꽃이 피어날 때, 그대를 처음 봤죠.

연꽃을 보러 갔지만, 왜 내 눈동자엔 그대만 담길까요.

꺄아아아아악!!

이진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노래에 답하듯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

김세준과 이진아가 각각 불렀던 ‘연꽃’.

‘풍악’에선 그들이 불렀던 ‘연꽃’을 한 노래에 담았다.

서로를 마주 보며 애절하게 노래 부르는 둘.

감정에 몰입한 듯 애정 가득한 눈빛이 카메라 담겼고, 거대한 스크린에 두 사람의 모습이 잡히고, 이내 무대 전체를 크게 보여준다.

김세준과 이예은의 주위로 유려한 춤 선을 그리며 부채춤을 추는 한국 무용단 단원들.

연꽃을 표현하는 것처럼 모여서 피었다가 흩어지며 지는 그녀들의 춤사위가 카메라에 잡히고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혼을 빼놓았다.

노랫말과 어울리는 그녀들의 춤.

그리고 김세준과 이예은이 새롭게 선보이는 ‘연꽃.’

이제 시작인 ‘풍악’이지만 첫 무대부터 사람들의 입가에 진한 미소를 남겨놓는 무대였다.

이진아가 등장할 때, 비명을 질러댔던 관객들은 그녀와 김세준이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자 다들 무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무대에 빠져드는 그들.

익숙한 노래에 다들 따라부를 만도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완벽하고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의 노래에 감히 자신들이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들의 완벽한 하모니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고, 끼어들어 서도 안됐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노래.

눈을 감고 음미하기에도 바쁘고,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시작되자, 김세준과 이예은의 목소리가 감정의 끝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추억. 평생 간직할게요.

그날의 기억. 이제 잊고 싶은 그때.

번갈아 가며 서로의 노랫말을 내뱉는 둘.

같은 날을 공유했지만, 느끼고 내뱉는 감정은 다르다.

연인에게 정이 떨어진 김세준과 끝끝내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진아.

꿀이 떨어지던 김세준의 표정과 목소리가, 차갑고 날카롭게 바뀌었고, 이예은의 감정도 애절하고 구슬프게 변모했다.

연꽃이 지는 날에 그대가 떠나네요.

연꽃이 지는 날에 난 그대를 떠날게요.

그리고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절절하게 울리는 가야금과 해금의 소리.

음원보다 더욱 생동감 있게 들리는 악기의 소리에 사람들이 팔뚝을 쓸어 만졌다.

순간 온몸에 돋는 소름.

한복을 입은 고운 두 남녀와 부드럽고 절절한 한국의 소리.

옛 조상들의 사랑을 엿보는 듯한 무대.

아련하고, 진한 여운이 남는 공연.

그런 분위기를 한 층 더 고조시키는 무용단 단원들의 화려하면서도 구슬픈 춤사위.

“어라... 벌써 끝났어?”

한 관객의 허탈한 중얼거림.

고척 스카이돔을 가득 채웠던 멜로디가 멈췄고 김세준과 이진아의 거친 숨소리만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와... 노래가 이렇게 짧게 느껴진 건 처음이야.”

“나도... 노래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

아쉬움 가득 남는 관객들의 대화.

비단 이 젊은 커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무대를 지켜본 2만 명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짧았던가.

4분이 아니라, 1분도 채 안 되는 것 같은 시간.

완벽하게 무대에 몰입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었고, 이내 그들은 자신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대를 향해 떠나갈듯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보다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와. 감사합니다. 여러분. 인사드릴게요. 가수 이진아입니다.”

그런 관객들을 향해 이진아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김세준이 그런 이진아를 보며 고마움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데뷔 이후로 항상 고마웠던 사람.

병아리 같던 신인 땐 옆에서 황금 같은 조언을 해주던 사람이자, 자신이 성공 가도에 오르자 진심으로 축복하며 응원해주던 누나다.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편은 아니지만, 종종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웃음으로 자신을 반기던 그녀.

이번 콘서트에서도 첫 무대를 함께 꾸미는 게 제법 부담되기도 했을 텐데, 군말 없이 흔쾌히 받아줬다.

‘누나. 부탁할게요!’

김세준이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속으로 표현하고 무대를 빠르게 내려갔다.

이진아가 무대 위에서 멘트를 내뱉는 동안 그는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

“형님! 완전 감동적이었습니다!”

무대 뒤편으로 들어서자 그를 박수로 맞이하는 사람들.

매니저인 이주성을 필두로 이해진과 하동준, 그리고 이미 진작에 무대에 내려온 한국 무용단 단원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그를 축하했다.

“고생했다. 지금 의상 준비해오고 있으니까, 조금만 쉬어.”

“네. 감사합니다.”

하동준이 그에게 다가와 물을 건네며 말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자 온몸에 활력이 들었다.

방금 첫 무대.

자신은 완벽하게 노래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이보다 더 완벽하게 연꽃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무대 어땠습니까?”

“말해 뭐해. 미쳤다. 진짜 미쳤어. 첫 노래부터 그냥 끝났어. 완전히 잘했어.”

하동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탄을 뱉었다.

첫 단독콘서트의 첫 무대.

그렇기에 작은 걱정을 했던 자신이 무색하게도 김세준은 이보다 완벽하게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무대 뒤편에서 전전긍긍하며 지켜보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홀려서 들었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오늘 무대를 보러 온 관객들은 첫 노래만으로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으리라.

아니 과장이 아닌, 하동준 그의 생각으론 정말 방금 노래는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무대였다.

“하아... 하아...”

하동준의 칭찬에 김세준이 미소를 지으면서도 거친 숨을 뱉었다.

그도 무대에 내려오자마자 긴장감이 탁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고작 한 무대를 했음에도 온몸에 기운이 빠진다.

마치 무대 위에 자신의 모든 기운을 쏟아내고 온 느낌.

“우와... 콘서트 쉽지 않네요.”

이해진을 보며 김세준이 혀를 내둘렀고, 이해진이 싱긋 웃었다.

그도 익히 느껴본 감정이 아닌가.

“아. 맞다. 미튜브는요?”

김세준이 자신이 잊고 있던 걸 떠올리며 급히 물었다.

오늘 생중계되는 미튜브 라이브 방송.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을지, 절로 생기는 기대감.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김세준이 이해진을 바라봤고, 이해진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 수준이야. 네 의견을 따르길 잘했어.”

“예상보다 많습니까?”

김세준의 물음에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예상했던 시청자 수는 100만 명.

김세준의 미튜브 구독자 수와 국내에서의 관심을 생각했을 때 어림짐작했던 숫자.

그리고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많은 사람이 지금 김세준의 무대를 미튜브를 통해 바라보는 중이었다.

“삼백만 명이야. 지금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

순간 헛숨을 들이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에 김세준이 말문을 잃었다.

말이 삼백만이지 그게 가당키나 한 숫자인가?

“난리도 아니었다. 시작도 전부터 서버 터지고, 미튜브 측에 급히 문의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는 이해진이었고, 김세준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삼백만 명.

지금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숫자지만.

자신의 콘서트는 이제 시작이다.

즉, 삼백만은 최대가 아닌 최소라는 뜻이었다.

이해진이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는 김세준을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쩌면 오늘 자신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무대를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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