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단독 콘서트(2)
“세준아. 요새 해진이는 잘 지내?”
“아 맞다. 세준 씨 해진이 소속사 가수죠?”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 잡담을 계속 나누던 세 사람이었고, 요환의 물음에 서지수가 손뼉을 마주쳤다.
자신에겐 사장이지만, 저 둘에겐 이해진도 후배.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한 세 사람이자, 좋은 선후배 관계다. 솔직한 평가론 이해진보다 가수로서 쌓은 업적은 더 뛰어난 두 사람.
이미 대한민국 가수 계에서 전설이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사람들이었다.
“네. 요즘 바쁘시긴 하지만 그래도 잘 지내십니다.”
“해진이가 사람이 좋긴 해. 이 바닥에 그런 사장 별로 없어.”
자신도 극히 공감하는 말. 요환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서지수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난 한 사람 더 알고 있는데?”
묘한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순간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짧은 탄식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서지수가 지금 몸을 담고 있는 곳.
정수연이 설립한 SY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한땐 걸 그룹 라이벌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이, 이젠 소속 가수와 사장으로 같이 일하고 있는 사이다.
그리고 방금 서지수가 넌지시 뱉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해외 활동 계약을 노리는 정수연이었고, 서지수 또한 그 사실을 들은 모양.
넌지시 자신의 속마음을 떠보는 그녀에게 김세준이 작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맞습니다. 정수연 사장님도 훌륭하신 분이죠.”
실제로 이해진과 하동준의 평가와 자신에게 큰 금액을 투자했던 그녀의 씀씀이도 그렇고, 한때 라이벌로 여기던 서지수가 군말 없이 밑으로 들어간 것만 보더라도 보통 인물은 아니다.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서지수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었다.
“역시 세준 씨 정도 되니까 안목부터 남다르네요.”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직 확실히 마음을 정한 건 아니기에, 이 이상 말은 삼가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
이예은과 로이.
두 사람의 등장이었다.
“오. 로이, 오랜만이네.”
“예. 형. 잘 지내셨어요? 누나도 잘 지냈죠?””
로이는 이미 요환과 서지수하고 안면이 있는지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눴고, 이예은이 김세준에게 다가와 미소지었다.
“오빠 잘 지냈어요?”
“그럼. 예은이 너도 잘 지냈지?”
불과 한 시간 전에 통화한 사이지만, 오랜만에 본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대하는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로이가 선배들하고의 간단한 안부를 나눈 뒤 다가왔다.
“세준 씨죠? 반가워요.”
“아, 반갑습니다. 선배님.”
손을 내미는 그였고, 김세준도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로이. 김세준과 함께 대한민국 남성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미래라고 불리는 사람.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미성으로 많은 여성 팬을 거느린 가수로 20대와 30대에게 큰 인기를 구사 중인 가수다.
“선배님은 무슨. 편하게 불러요. 차이도 별로 안 나지 않나?”
“네. 제가 2년 정도 늦게 데뷔했습니다.”
“아, 그러면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나도 편하게 부를 테니까. 괜찮지?”
“네. 형.”
“아까 복도에서 마주쳐서 예은이랑 잠깐 이야기하긴 했는데,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다. 요환이 형이랑 지수 누나랑 도민이형은 셋이서 친하니까 내가 끼어들기 뭔가 어색했거든. 난 너희랑 놀면 되겠어.”
“제니 선배도 있잖아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제니를 언급한 이예은이었고, 순간 로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제니도 있지.”
안색이 어두워진 그였고, 이내 고민에 빠지더니 둘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제니하고 나하고 조금 껄끄러운 관계거든. 뭐 사이가 아예 나쁜 건 아니라 방송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건데 그래도 같이 방송하면서 알아둬야 할 거 같아서.”
“?”
로이의 조심스러운 말에 이예은과 김세준의 얼굴엔 의아함이 피었고, 이해하지 못한 둘의 모습에 로이가 한숨과 함께 고백했다.
“사실 제니하고 사귀고 있다가 얼마 전에 헤어졌어.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닌데, 그냥 앞으로 조금만 조심해달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
로이의 고백에 이예은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남 일 같지 않은 소식.
비밀연애를 하는 당사자로서 로이의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오빠? 진짜 제이 선배님이랑 사귀었어요?”
“응. 꽤 오래됐어. 사귄 지. 그동안 비밀이었는데 헤어지기도 했고, 방송하면서 괜히 불편한 분위기 연출하면 안 되니까 미리 말해놓은 거야.”
“아... 네...”
이예은이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김세준을 힐끔 봤다.
방송 생활을 하면서 남몰래 사귀는 커플들의 모습은 많이 들었고, 많이 봤다.
대한민국에서 외모로 가장 잘난 사람들이 모인 업계가 이쪽인데, 당연히 그런 경우야 수두룩했다.
하지만, 비밀스럽게 연애를 하던 사람들이 헤어지고 같은 방송에 나오는 경우는 짧은 방송 경력에서 처음.
훗날 자신과 김세준도 로이와 제니같은 사이가 되진 않을까 걱정되고 슬픈 마음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빠는 어떤 생각일까.’
얼굴을 봤어도 알 수 없는 그의 생각.
이예은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김세준은 어이없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바빴다.
김세준이 로이의 말을 듣고, 든 한 가지 생각.
‘이래서 사랑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구나.’
로이와 제니.
두 사람의 연애를 들은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이 연애한다곤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헤어진 건 몰랐지만, 두 사람이 썩 안타깝게 여겨지진 않는다.
훗날 두 사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유명해지니까.
지금 이별은 찰나의 권태기 정도뿐이리라.
‘어쩌면, 이번 방송으로 두 사람이 다시 돈독 해질 수도 있겠는데?’
여러모로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문이 열렸고, 오늘의 주인공이 모두 등장했다.
대한민국 밴드 음악의 자존심인 현도민.
그리고 들어오는 순간 로이를 보고 순간 흠칫한 제니.
마지막으로 이번 방송의 담당을 맡은 메인 PD 정동혁.
세 사람이 동시에 등장했고, 잠시 후 ‘포기너 버스킹’의 사전 미팅이 시작됐다.
***
“형님. 미팅은 괜찮으셨습니까?”
미팅을 끝내고 차량으로 돌아온 김세준을 향해 이주성이 물었고, 김세준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번 방송 재밌을 거 같아.”
여러모로 이번 방송엔 재밌는 거리가 가득하다.
이예은과의 여행.
제니와 로이의 숨 막히는 눈치싸움과 서로가 간 보는 듯한 신경전.
현도민과 요환과 서지수 세 사람의 캐미도 좋았고, 방송 PD인 정동혁도 의욕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서 버스킹을 하는 가슴 설레는 플롯까지.
방송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흥미진진해 보였고, 김세준은 첫 방송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질 정도였다.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홍성원 한국문화 진흥원 대표님에게 연락 왔습니다.”
“오? 그래? 뭐라고 왔어?”
“말씀하신 사람들 다 섭외 완료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좋네.”
김세준이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순조롭다.
그의 첫 정규 1집인 ‘별무리’.
지금까지 앨범 판매량만 500000장을 넘겼고, 비록 아직 연초이지만, 남자 솔로 가수로썬 올해 그의 기록을 깬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음원 스트리밍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50만 장이란 숫자는 거물급 아이돌이 아니고서야 달성할 수 없는 숫자라 여겨진 지 오래.
그런 사람들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록을 써 내려간 앨범.
게다가 앨범 판매는 아직도 진행형.
얼마큼 더 큰 판매량을 올릴진 아직도 미지수다.
‘이 정도면 올해 대상 수상도 가능하겠어.’
고작 연초에 생각하기엔 너무 먼 미래이긴 했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판매량을 보인 앨범이다.
그동안 자신과는 연이 없던 올해의 앨범상도 올해만큼은 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포기너 버스킹의 녹화까지 끝낸 다음, 본격적으로 시작이지.’
지금 잡혀 있는 국내 일정들.
이 모든 국내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하면, 그가 평생을 꿈꿨던 일.
가야금의 소리가 세계에 울려 퍼지는 그의 소원을 이루러 발걸음을 옮길 차례였다.
***
2월 23일.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흘렀고, 최소 2만 명이란 사람이 학수고대하던 날이 다가왔다.
고척 스카이돔 근처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며 그들의 얼굴엔 흥분감이 흘러넘쳤다.
김세준에 관한 굿즈로 온몸을 도배한 사람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 젊어 보이는 커플. 금실 좋아 보이는 중년 부부부터 그런 중년 부부의 손을 꼭 잡고 같이 들어오는 노년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스카이돔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의 행진이었고, 아직 입장을 시작하지 않은 고척 스카이돔 안에도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와우...”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김세준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자신의 콘서트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만 백 명에 가깝다.
미튜브 생중계를 위한 촬영팀과 음향 및 무대 관리팀.
관객들의 안전을 위한 경호팀과 오늘 자신과 함께 무대를 꾸밀 게스트들과 댄서들.
그 수많은 사람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형님! 입장 시작했답니다!”
김세준과 마찬가지로 흥분되고 긴장되는지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이주성이 다가와 말했고, 그의 말과 동시에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물밀 듯 들어오는 인파.
“형님. 이제 안쪽으로 들어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음. 들어가자.”
스테이지에 서서 관중들을 감회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를 이주성이 안쪽으로 안내했다.
아직 오늘의 주인공이 무대에 등장하기엔 이른 시간.
멍하니 관객들을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루만지는 그를 이주성이 대기실로 안내했다.
“하아... 엄청 떨리네.”
대기실로 들어온 김세준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동안 많은 공연과 무대를 선보였지만, 지금만큼 떨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이름이 내걸린 첫 콘서트였고,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도, 지금 긴장을 안 하는 건 사람이 아닐 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기실에 놓인 껌을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껌을 씹으며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갈무리하는 그.
첫 단독 콘서트란 왕관의 무게가 제법 무겁지만, 성공적으로만 마무리한다면 제법 달콤한 왕관.
이미 앨범으로는 증명했고, 이젠 콘서트로 증명할 차례.
이번 콘서트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남자 솔로 가수 중에선 최고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터.
이미 몇몇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설왕설래를 한 지 오래.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김세준의 이번 콘서트가 성황리에 끝난다면 남자 솔로 가수로선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게 된다는 게 공통적인 평가였다.
“최고라...”
언제 말해도 달콤한 단어.
그 단어를 중얼거리며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로 나가려면 적어도 한국에선 최고가 되야하는 법.
그렇게 스스로 멘탈을 부여잡았고, 2시간 후.
김세준의 첫 단독 콘서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