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86화 (86/148)

#86

별무리(4)

“뭐? 미튜브로?”

하동준이 말을 내뱉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유명 가수의 단독콘서트 중계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매우 놀랄 말은 아니다.

안 그래도 김세준의 단독콘서트를 중계하고 싶다는 몇몇 방송국과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서 제의가 왔으니까.

“미튜브라...”

이해진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고, 하동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튜브 측에서 먼저 제의가 온 거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

김세준의 답변에 깊게 파인 하동준의 미간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렇다면 김세준의 개인 미튜브 채널에 올리겠다는 뜻.

즉, 금액적인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전무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반대. 세준이 너한테 아직 말은 안 했지만, 단독콘서트 중계하고 싶다는 곳이 줄을 섰어. 굳이 거기를 거절하고 미튜브에서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굳이 돈을 주겠다는 다른 방송국과 플랫폼을 거절하고 미튜브에서 생중계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김세준도 생각이 있어 내뱉은 말이겠지만, 회사의 금전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할 하동준이기에 단호히 거절했고 옆에 있던 이해진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왜 미튜븐데? 일단 생각이라도 들어보자.”

“해외 팬들 때문입니다. 다른 방송국이나 다른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중계하면 국내 팬들은 만족할지 모르나 해외 팬들에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흐음...”

김세준의 말에 이해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하동준도 그의 뜻을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했다는 말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도 난 반대야.”

“...!”

끝까지 반대를 내비치는 하동준을 보며 김세준이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가 단호한 말투로 뱉었다.

“세준이 너한테 이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회사로선 너의 해외 팬들을 고려하는 것보다, 금액적인 사항을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어.”

마지막 말엔 사뭇 미안한 기색이 보이긴 했으나 그는 냉정하게 저울질을 하며 말을 뱉었다.

아레스 뮤직이 아무리 아티스트의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아티스트들에게 좌지우지 휘둘려선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아...”

그런 하동준의 단호한 말에 김세준이 이내 작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봤고, 그의 말이 허툰 말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자신의 해외 팬들.

아레스 뮤직의 책임자인 하동준으로선 크게 신경 쓸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해외 활동은 아레스 뮤직이 아닌 다른 엔터테인먼트에서 책임질 사항.

굳이 아레스 뮤직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챙겨야 할 의무는 없었다.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지.”

하동준도 자신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렇게 내뱉는 건 아니리라.

실제로 말은 단호하게 내뱉긴 했지만, 얼굴엔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해진은 하동준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스 뮤직의 사장이 자신이긴 하지만, 하동준이 반대한 사항을 자신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쉽네. 개인적으론 나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하다. 우리가.”

“아닙니다...”

항상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던 그들이기에 거절 받을 줄은 몰랐기에 제법 실망스럽다.

‘흐음...’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계획.

‘설득해야 한다...’

저들에게 금전적인 이득보다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통할진 모르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던 김세준이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불렀다.

“저, 사장님. 그리고 부사장님.”

“응. 말해봐.”

“만약 미튜브 생중계를 제 채널이 아닌 아레스 뮤직 공식 채널로 중계한다면 어떻습니까?”

“으음?”

“우리 회사 채널로?”

김세준의 말에 두 사람이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반응에 힘입어 김세준이 재차 말을 이었다.

“예. 회사 공식 채널에서 중계한다면 회사 차원에서도 나름 메리트 있는 건 아닙니까? 적어도 수십만의 사람에게 아레스 뮤직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거니까요.”

“음. 그렇긴 하지.”

하동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자신들의 채널로 생중계하게 된다면 적어도 김세준의 팬들에겐 아레스 뮤직이란 이름을 각인하게 할 계기는 될 터.

국내에선 인지도가 있지만, 해외에선 무명의 가까운 그들에게 비록 몇십만일지라도 이름이 알려진다는 건 제법 큰 메리트였다.

“게다가 이번 콘서트가 제 단독콘서트이긴 하나 회사 식구들도 여럿 나오지 않습니까.”

이번 콘서트를 도와주기로 한, 회사 식구들만 해도 여럿이다.

앞에 있는 이해진과 자신의 여자친구인 이예은을 비롯해 장준과 이진아. 거기에 더해 얼마 전 같이 술자리에 있었던 다른 동료들.

“미튜브로 통해 중계한다면 그 회사 동료들도 해외 팬들에게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지 않습니까.”

“흐음...”

이것도 맞는 말이다. 김세준을 보러 왔다가 자신들의 다른 가수에게 반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예은의 경우엔 그 기대감이 훨씬 더 크다.

단순히 뮤직비디오에 참가했던 것만으로도 제법 큰 관심을 받지 않았나.

“아레스 뮤직이란 브랜드의 가치를 올릴 좋은 기회다?”

하동준이 김세준이 그동안 내뱉은 말을 짧게 요약한 말을 중얼거렸다.

김세준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해외 팬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며 기량을 뽐낼 좋은 기회.

아이돌 음악이 대세인 K-POP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찬스이긴 했다.

나아가 그런 아티스트들을 거느린 회사도 주목을 받게 될 거고.

하동준의 중얼거림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하동준이 고민에 빠졌다.

“나는 좋은 거 같은데?”

그리고 그런 하동준의 옆에서 이해진이 슬며시 김세준에게 힘을 실었다.

“우리 얘들 중에 해외로 진출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진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에게 얼굴을 미리 익혀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몇억 포기하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니야?”

확실히 장점이 있는 김세준의 제안.

몇억을 포기할 가치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레스 뮤직이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는 점.

만약 아레스 뮤직이 해외까지 진작에 진출했다면 단숨에 오케이 할 사항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동준의 아쉬움을 눈치챘는지 이해진이 말을 덧붙였다.

“형. 이번에 한 번 테스트해보자.”

“뭘?”

하동준의 물음에 이해진이 정말 드물게 사업가다운 눈빛을 드러냈다.

“이번에 우리 얘들 평가 좋으면... 우리도 해외로 진출해보자.”

***

이해진의 말은 고민에 빠져있던 하동준에게 쐐기의 한 방이 됐고 둘은 그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제법 만족스럽게 끝난 미팅이었고, 김세준이 흡족한 미소와 함께 이해진 사무실 바깥을 빠져나왔다.

“어? 준아? 네가 왜 여깄어?”

그리고 사무실에 빠져나오자마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장준이 그를 반겼다.

“세준아...”

자신을 보며 감회에 젖은 표정이 된 그였고, 김세준이 의아해했다.

“뭐야? 나 기다렸어?”

그의 말에 장준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이내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

“야...야 뭐야? 너 왜 이래? 무슨 일 있냐?”

갑작스럽게 자신을 안은 장준을 보며 김세준이 두 눈이 몸서리를 쳤다.

예상하지 못한 그의 포옹에 당황한 채 말을 내뱉었고, 장준의 몸이 들썩이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축축해지는 자신의 어깨.

장준이 자신을 끌어안으며 울고 있었다.

“고맙다... 진짜 고마워...”

‘아...’

어깨너머로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 액정이 보였다.

동시에 다 큰 사내가 왜 눈물을 터트렸는지, 그 감정이 여실히 전해졌다.

8위. 김세준(Feat. 장준) - 나보다 빛날 너.

자신에겐 이젠 더없이 익숙하고 무덤덤한 순위.

하지만 그에겐 달랐다.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업적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생전 처음 달성해보는 순위.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던 그지만, 단 한 번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실시간 차트엔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는 그.

그런 그가 비록 피쳐링이지만 10위 권 안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신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복받쳐 올랐으리라.

“다 큰 놈이 뭘 질질 짜냐.”

그의 감정을 여실히 느끼면서도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고, 장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도 않은 채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4년. 그가 음악을 하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

언젠간 빛을 볼 거라며, 주위에 책망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걸어왔던 길.

자신이 좋아 달려들었고, 빠져든 음악 인생이지만 힘들고 굽히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도와주던 자신의 친구.

게다가 그 친구의 도움으로 난생처음으로 8위라는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후... 고맙다. 진짜로.”

이내 한참을 파묻혀 있던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가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고, 김세준이 능청맞게 웃었다.

“흑역사 각?”

“흑역사는 무슨. 진짜 아...”

김세준의 농담에도 장준은 감정을 쉽게 추스르기 힘든지 다시 두 눈가에 눈물이 흘러나왔고, 김세준이 그를 가볍게 포옹하며 등을 두들겼다.

“고생했어. 앞으론 더 잘 될 거야.”

위로임과 동시에 진실인 그 말을 들으며 장준이 속으로 김세준에게 다시 한번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

허름한 숙소 안.

다섯 명의 여자들의 비명 같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꺄악! 순위 또 올랐어!”

“어떻게! 지금 벌써 5위 아니야?”

“이러다 우리 1등까지 하는 것도 아닐까? 어떻게? 파티해? 술 사 올까?”

‘브라이니’ 맴버들의 호들갑.

그녀들 또한 한동안 무명의 늪에 빠져 살았고 이번 김세준의 앨범 피쳐링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지막 희망은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남겼다.

처음 앨범이 발매한 날엔 12위라는 성적을 기록한 곡이, 벌써 5위까지 단숨에 치솟았다.

연아가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노래가 최고 50등까지 올라간 걸 제외하곤 처음으로 들어보는 음원 차트.

게다가 무려 5위라는 기념할 만한 성적을 기록했고, 아직 진행형이었다.

“오빠! 회사에선 뭐래?”

“뭐라긴! 반응 미쳤지! 사장님도 너희 칭찬 많이 하셨어!”

“꺄악! 그럼 우리 해체하는 거 아니지?”

“사장님이 미치지 않으시고서야 너희를 해체하겠어?”

매니저인 김경호의 호언장담에 다들 눈물을 글썽이며 환희를 뱉었다.

김세준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낄 연아조차 지금 이 순간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 그리고 아마 너희 다음 주에 예능 하나 나갈 거야.”

“진짜로요?”

‘브라이니’의 맴버인 세나가 기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능을 나가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날 지경.

회사에서 자신들을 다시 한번 믿어준다는 생각에 맴버들의 눈빛에 진한 감동이 서렸다.

“어. 아마 게스트가 너희랑 세준 씨랑 그리고 아레스 뮤직의 이예은.”

“아...”

김경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순간 다들 짧게 탄식을 뱉었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긴 하지만...

맴버들이 하나 같이 연아를 쳐다봤고, 그녀들의 시선을 느낀 연아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오빠! 진짜 열심히 할게요!”

“그래. 나 회사에 가서 마저 일 처리하고 올 테니까, 다들 푹 쉬고 있어.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다만 너무 늦게까지 먹지 말고. 다음 주 방송 생각하면서 먹어야 한다?”

“먹으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지수가 웃으며 말을 던졌고, 그 말에 김경호가 웃으며 숙소를 빠져나갔고, 그가 나가자마자 숙소엔 작은 침묵이 돌았다.

분명 기쁘고 행복하지만...

슬쩍 쳐다본 연아의 표정.

미묘하고 복잡해 보였기에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에이. 다들 왜 그래? 난 괜찮아. 빨리 음식 시키자. 오늘 파티해야지!”

그런 숙소의 분위기를 감지한 연아가 밝게 외쳤고, 다른 맴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히 움직였다.

오랜만에 근심 걱정 없이 즐길 파티.

비록 배달음식으로 치르는 조촐한 파티지만 그녀들에게 있어선 진수성찬을 먹는 것보다 기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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