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별무리(3)
이주성의 말을 들은 김세준은 한동안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삶에서 처음 겪어보는 단독콘서트,
남들은 누구나 다 매진될 거라고 호언장담했고 김세준도 적당히 동의했지만, 속으론 불안과 걱정을 품고 지냈다.
세상에 100%의 확률은 없었고, 처음 벌여보는 단독콘서트.
게다가 첫 단독콘서트치곤 유례없는 거대한 규모였고, 그런 규모에 자리가 비어 콘서트가 취소되진 않을까 근심이 생기기도 했다.
남들이 들었으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한소리 할 수 있을 허무맹랑한 걱정이지만, 당사자인 김세준에겐 제법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런 걱정 때문에 콘서트 준비를 하면서도 오늘이 예매날짜라는 걸 잊고 있던 그였다.
그리고 자신의 우려가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드는 이주성의 전언.
“후아...”
한참을 기뻐하던 그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고, 이내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려 힘이 빠졌고, 이주성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기사는 뭐라고 나왔어?”
“뭐 흔한 기사입니다. 유례없는 대박이라며 형님 칭찬이 가득합니다.”
그도 뿌듯한지 핸드폰을 보는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 그리고 제법 재밌게 분석한 기사도 있습니다. 형님이 팬분들 연령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그치.”
확실히 다른 가수들에 비해 팬층의 나잇대가 골고루 분포된 그.
맨 처음엔 중년층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끌던 그지만, 근래에 들어선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는 중이었다.
“그 다양한 나잇대가 이번 티켓 대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네요. 아무래도 티켓팅 구매에 영향이 적은 노년 분들이나 중년 분들에게도 형님이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콘서트의 주 고객인 청소년과 청년층에게도 인기가 많은데, 거기에 중년과 노년까지 추가됐으니. 이런 사단이 난 게 이상하진 않다는 기삽니다.”
“제법 그럴듯하네? 내용도 재밌고.”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형님.”
이주성이 고개를 작게 숙이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비단 이번 일뿐만 아니라, 작년 중순 이후로부터 가수 계에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자신의 가수.
그런 남자 옆에서 동행하며 그를 보필한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찬 일인지.
김세준이 작은 웃음을 지었고, 동시에 그의 대기실 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방송국 스텝.
다음 무대를 준비하라는 그의 말에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야금을 챙겼다.
“형님! 파이팅입니다.”
등 뒤에서 들리는 이주성의 응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
“후우...”
하나의 루틴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은 한숨.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 깊은 한숨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는 김세준.
자리를 빼곡히 수 놓은 관객들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 이내 무대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그가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천장이 무너질 거 같은 환호성이 들려오고, 김세준이 그들을 향해 슬며시 미소지었다.
‘별무리’ 발매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
그런 무대에 찾아온 이들 인만큼 저들은 자신의 보통 팬들이 아니리라.
자신만큼 앨범 발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팬들.
그리고 오늘 방송이 있다고 하자, 귀한 시간을 내주며 찾아와준 사람들.
비록 그동안 해왔던 무대에 비해 작은 무대이지만 저들의 마음만큼은 다른 관객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무대 중앙에 서서, 가야금을 놓자 잠시 후 무대에 흘러나오는 그의 타이틀곡 ‘별이라면’의 MR.
전자음의 파워풀한 리듬이 흘러나오고, 동시에 김세준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이번 가야금도 그동안 썼던 개량 가야금이 아닌, 좀 더 찡하게 울리는 전자 가야금.
묵직하게 울리는 전자음과 가야금의 날카로운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고, 관객들이 환호성을 뱉었다.
그가 여태껏 보여줬던 음악이랑은 크게 다른 소리.
부드럽고, 귀를 포근히 감싸주는 노래가 아닌, 듣는 순간 고개를 까닥거리게 하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게 만드는 노래.
일렉트로닉 팝이지만, 마치 밴드가 부르는 락처럼 강렬하게 귀에 꽂히는 반주.
잔뜩 웃음 지으며 자신을 향해 환호성을 내뱉는 관객들을 힐끔 보며 김세준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동안 자신이 노래 부를 동안 관객들의 반응은 일면적이었다.
눈을 감으며 노래를 감상하고 음미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자신을 향해 박수하고 환호하는 게 대부분.
그런 관객들의 반응이 싫고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무대가 끝나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 김세준은 그때와 다른 쾌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신이 나며 흥에 겨워하는 사람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팬들의 반응이었고, 그가 이번 앨범을 발매하면서 보고 싶던 그들의 모습이었다.
하늘을 봐. 눈부시게 빛나는 저 별빛들을.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찬란하잖아.
저 별이라면, 내가 저 별이라면.
나도 저렇게 빛이 날 수 있겠지.
그리고 김세준이 입을 열었고,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리자 관객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뱉었다.
그의 탁하고 거친 목소리가 전자음과 합쳐져 이뤄내는 소리.
그동안 그의 음악에 익숙했던 팬들에겐 신선한 조화지만 어색하고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무대를 감상하는 몇몇 팬들은 그의 색다른 면모가 지금까지의 노래보다 더 어울린다고 느낄 정도였다.
‘오길 잘했어.’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온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
상대적으로 가까운 수도권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머나먼 지방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오늘 이 자리에 온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무대를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공들였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희비.
다음 달에 있을 김세준의 콘서트.
그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한 사람들은 이 노래를 스타디움에서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으며, 실패한 사람들은 깊이 좌절했다.
이 노래가 스타디움에서 울려 퍼진다면 그 흥겨움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테니까.
***
“다음 스케줄은 인터뷰지?”
“예. 미디어티스의 강수지 기사하고 단독 인터뷰입니다.”
성공적으로 녹화 방송을 끝내고 김세준은 차를 타고 아레스 뮤직 사옥으로 향했다.
활동을 시작했으니 일정이 빼곡했다.
오늘만 해도 녹화 방송과 인터뷰, 저녁엔 라디오까지.
빽빽한 스케줄이 그를 기다렸다.
비단 오늘만이 아니라, 이번 주와 다음 주까지 휴일 없이 꽉꽉 찬 일정이었다.
사옥에 도착하고, 접견실에 들어서자 강수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기자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내가 진짜 세준 씨 덕분에 회사에서 기를 피고 산다니까.”
“다, 기자님의 실력인 거죠.”
강수지가 고혹적인 미소로 그의 말에 답했다.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지.’
그가 신인 시절, 화제성을 알아보고 먼저 접근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거물이 될 줄은 몰랐다.
덕분에 요즘 회사에서 사람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는 그녀다.
김세준의 단독 인터뷰는 미디어티스 정도의 언론사에선 쉽게 따낼 수 없는 취재.
하지만 임태현 사건을 도와준 이후로 꾸준히 친분을 유지했고, 덕분에 이렇게 단독 인터뷰도 수월하게 따내지 않았나.
자신의 선견지명에 뿌듯함을 느끼며 강수지가 핸드폰으로 녹화를 시작했다.
“그럼 인터뷰 시작할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김세준이 답했고, 이내 시작된 인터뷰는 수월했다.
휴식기엔 뭐하고 지냈나로 시작된 인터뷰와 지난 그래미 어워드와 평양 공연에 대한 소감.
그런 지난 화제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시작된 이번 앨범에 관한 인터뷰.
“자, 그럼 이번 앨범에 관해서 이야기도 해봐야겠죠? 먼저 첫 정규 앨범을 성공적으로 발매하신 점 축하드립니다. 이번 앨범을 낸 소감 한마디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그냥 이제 진짜 가수가 됐구나. 그런 생각이 큽니다. 많이 고생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고요.”
김세준의 답변에 강수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이내 이번 인터뷰에서 핵심으로 생각한 질문을 던졌다.
“첫 정규 앨범인 별무리. 그동안의 세준 씨의 음악하곤 방향성이 매우 다르다는 평이 지배적인데요. 그에 대해 세준 씨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이번 그의 첫 정규 앨범.
솔직히 처음 듣고선 적잖이 놀랐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고 있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앨범.
가야금의 부드러운 선율을 고대하던 기대심리를 명백히 위반하는 노래였다.
다행히 그 앨범의 퀄리티가 뛰어났기에 호평 일색이지만, 조금만 삐끗했다간 악평만 받으며 처참히 망할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모험성 가득했던 그의 첫 정규 앨범.
그런 모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음악성을 선보인 이유.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질문이었다.
“음. 먼저 제 개인적인 음악 스펙트럼을 한정 짓고 싶지 않았어요. 다양한 노래를 소화하고, 뱉을 수 있는 가수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면서도 강수지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전 가야금의 다양한 매력을 알잖아요. 근데 그동안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드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몇몇 분들이 저뿐만 아니라 가야금에 대해 편견을 가지시더라고요.”
“음...”
그의 말에 강수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를 향해 뻔한 음악을 한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 것도 사실.
그의 음악이 뻔하다는 건 가야금의 소리가 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말.
그의 노래에서 가야금은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악기였으니까.
“그런 분들한테 가야금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잔잔하고 부드러운 노래뿐만 아니라, 신나고 흥겨운 노래. 그런 노래도 가야금으로 가능하다는 걸. 게다가 요즘 대세가 일렉트로닉 장르잖아요. 최신 트렌드에도 잘 어울리는 악기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오호...’
김세준의 답변에 강수지가 작은 감탄을 뱉었다.
확실히 이번 앨범은 그가 방금 내뱉은 말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가야금이란 악기의 색다른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 앨범.
생각해보면 그녀도 가야금이란 악기의 한계를 자신 마음대로 단정 짓고 있었다.
한국 고유의 악기이지만 그동안 들려왔던 소리는 비슷비슷했으니까.
탁하고 거친 전통 가야금의 소리 혹은 잔잔하고 부드럽게 울리는 개량 가야금의 소리.
그 두 가지 소리만 들어왔던 사람들에게 이번 앨범은 김세준뿐만 아니라 가야금의 색다른 면모를 알게 해준 앨범이었다.
***
강수지하고의 인터뷰도 순조롭게 끝나고 다음 라디오 방송까지 시간이 남은 그는 이해진을 찾아갔다.
“사장님.”
“세준아? 무슨 일이야?”
“그냥 시간이 남아서 잠깐 뵈러 왔습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해진이 환한 미소와 함께 반겼다.
“아, 그래. 들어와. 그리고 축하한다.”
오늘 있었던 그의 첫 단독콘서트 예매. 엄청난 성황을 거뒀고 회사에 문의 전화가 빗발치듯 쏟아져 오는 중이었다.
“아주 난리였어. 콘서트 날짜 늘릴 생각은 없냐, 다음 콘서트는 언제냐고 묻는 전화가 온종일 오더라.”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때 내기했었어야 했는데.”
이해진과 함께 있던 하동준이 아쉬움을 토로했고, 김세준이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이번 콘서트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음?”
아침에 이주성에게 전해 들은 이후,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
티켓팅에 실패한 국내 팬들과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해외 팬들의 마음을 위로할 찬스.
특히 해외 팬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어 빌보드 차트에서도 큰 성과를 거둘지 모르는 그의 계획.
“이번 제 단독콘서트. 미튜브로 생중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