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78화 (78/148)

#78

대상(2)

대부분에 시상이 끝나고 이제 남은 건 아시안 뮤직 어워드 대상.

그리고 그 상 수상에 앞서 김세준의 무대가 준비되고 있었다.

“후우...”

무대 뒤편, 떨리진 않지만 숨을 크게 들이쉬고 이내 내뱉었다.

습관처럼 굳어진 하나의 루틴.

그 루틴과 함께 김세준이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옆에서 기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연아와 함께.

이번 무대, 자신의 첫 앨범 타이틀 곡이자 솔로곡인 ‘봄바람’을 편곡해서 그녀와 듀엣으로 준비했다.

“오빠랑 같이 무대에 서다니. 진짜 영광이에요.”

그의 옆에 같이 대기하고 있던, 브라이니의 맴버 연아가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지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영광은 무슨. 너무 치켜세우지 마.”

애매한 미소와 함께 김세준이 시선을 무대 앞, 관객석으로 보냈다.

사실, 연아가 아닌 이예은과 함께하고 싶었던 무대.

하지만 방송국 측에서 직접 그녀와의 듀엣을 원했다.

그가 출연한 ‘명곡의 대결’이 큰 인기를 끌었고, 당시 연아의 무대도 훌륭했으니까, 제법 괜찮은 그림이 나올 거 같다는 말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거절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이 강하게 주장한다면 연아가 아닌 이예은과의 듀엣도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먼저, 연아한테도 큰 실례였고, 예은이와 비밀 연애 중인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의심의 여지를 남길 수가 있었다.

다만 이해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예은이의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오빠.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뭔데?”

이예은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그의 어깨를 연아가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연아가 발끝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는 왜 연애 안 해요?”

꼼지락거리는 손과 그녀의 얼굴에 얼핏 피어오른 홍조.

화장기로도 감출 수 없이 불그스름해진 그녀의 얼굴.

“아... 그게, 당장은 연애 생각이 없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얼버무렸다.

비밀로 삼은 자신의 연애.

이해진과 하동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겐 밝히지 않았다.

연아하고 친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을 내뱉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런 김세준의 답변에 연아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 알겠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짝사랑엔 자신이 있던 그녀.

자타공인 짝사랑 고수이자, 연애 고자인 그녀에게 김세준의 말은 일말의 희망을 심어줬다.

당장은 이란 말은 미래엔 연애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거 아닌가.

김세준이 자신들을 향해 동아줄을 내려줬을 때부터 그녀의 마음엔 조금씩 그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김세준과 녹음.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그 뒤로는 별다른 접점은 없었지만, 활발히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남몰래 마음을 키워갔던 그녀였다.

오늘 그와 합동 무대를 꾸민다는 말에 마음이 설레어 어제 잠들지도 못했다.

“지금 들어갈게요!”

스텝의 말에 두 남녀가 무대로 향했다.

‘흐음.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먼저 걸어가며 김세준이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연아의 반응.

흔한 오빠 동생 사이의 반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비밀 연애라 밝힐 수도 없고. 난감하네.’

그저 자신의 착각이길 바라면서, 김세준이 머리를 살짝 흔들며 잡생각을 떨쳤다.

지금은 무대에 집중할 때였다.

***

무대에 오르는 김세준을 바라보는 이예은의 눈빛엔 사랑이 넘쳐흘렀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남자친구의 등장.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이 그녀의 눈엔 세상 누구보다 멋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 한 여성.

‘아쉽긴 하지만...’

그녀가 아닌 자신이 올라갈 수도 있던 무대.

불발된 기회가 아쉽기도 하지만, 그녀는 이해했다.

방송국의 사정이야 김세준도 어쩔 수 없었을 테고, 오늘이 아닌 아레스 뮤직 콘서트에서 그와 듀엣하면 되니까.

그리고 이내 시작된 둘의 무대.

김세준의 첫 앨범의 타이틀곡인 ‘봄바람’을 감미롭게 부르는 두 사람의 듀엣은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는 향긋한 무대였다.

‘잘 어울리네.’

이예은 또한 작은 질투심을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무대를 감상했다.

제법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조화.

그리고 두 남녀가 서로 바라보며 눈웃음을 짓는 그때.

이예은은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서늘한 감각.

여자의 촉은 예사롭지 않았고, 이예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눈빛이... 저게 연기 맞아?’

김세준을 바라보는 연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같은 여자니까 알 수 있다. 저 눈빛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고.

저 눈빛이 거짓이라면 가수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배우를 해야지.

‘하, 진짜.’

이예은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뱉었다.

능력 좋고,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친구를 둔 여자의 숙명.

김세준은 그럴 리 없다면 부정했지만, 여자들끼리 있으면 들리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여가수들끼리 모여 얘기를 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김세준이란 이름.

‘초조했지.’

다른 여자들의 관심에 솔직한 심정으론 우쭐한 마음도 생겼지만, 불안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이내 이예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김세준을 바라봤다.

슬쩍 마주친 눈빛.

자신을 향해 사랑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그를 보며 이예은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는 그녀였다.

***

김세준의 무대가 끝나고 이어진 아시안 뮤직 어워드 시상은 어느덧 본상만 남겨두고 있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이자, 올 한해 가장 뛰어난 가수를 뽑는 순간.

제일 먼저 발표되는 상은 올해의 앨범.

아쉽지만 김세준의 예상대로 올해의 앨범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내심 아쉬운 기분.

하지만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의식하여 웃는 낯을 지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다음은, 올해의 노래 부분 수상입니다. 먼저, 시상자론 SY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가수인 정수연 씨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사회를 맡은 남자의 말과 함께 정수연이 무대로 등장했다.

가슴팍이 살짝 파인 빨간색의 드레스를 입으며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 채 등장한 그녀.

“사장님. 오랜만에 티비 출연하신다고 빡세게 관리하셨어요.”

김세준 옆에 같이 있던 수호가 작게 속삭였고, 김세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런 자리에 설 수 있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그럼 먼저, 후보분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등장하는 세 명의 후보.

김세준과 SY엔터테인먼트의 여 아이돌인 ‘레드이나.’, 그리고 2세대 아이돌로 오랜만에 복귀해 전성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었던 남자 아이돌인 ‘타이탄’.

김세준을 제외한 두 그룹도 오늘 시상대에 많이 올랐다.

각자 그룹으로 받을 수 있는 상은 휩쓸었던 사람들.

‘설마, 못 받으려나?’

막상 마지막에 오니, 기분이 쫄린다.

기껏 설레발과 김칫국은 엄청 마셨는데 지금 와서 떨어지면 얼마나 창피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1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

그녀의 입을 주시하며 김세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상.

자신이 올 한 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가수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트로피.

정수연의 손에 들린 황금빛 트로피가 조명과 부딪치며 영롱한 빛을 반짝였다.

“네. 올해의 노래... 수상은... 축하합니다! 김세준의 봄바람!”

“...!”

“형! 축하해요!”

“축하해요!”

정수연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은 김세준을 향해 수호와 세현이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오고, 김세준이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실제 그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생각보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코끝이 찡해졌다.

‘진짜 대상이야?’

앞에서 받았던 상들도 감격스러웠지만.

대상이 주는 감동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축하해요.”

정수연이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트로피를 내밀었고, 김세준이 떨리는 손으로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

오늘 받았던 다른 상들과 똑같은 감촉이지만 그 무게가 달랐다.

‘하아...’

올 한해 고생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좋았고 너무나 꿈꿨던 일이기에 즐겁게 보낸 일 년이지만.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이 없던 건 아니었다.

곡의 나오지 않아 머리를 쥐어짜며 보낸 시간.

완벽하게 노래를 대중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던 곳에서 연습에 매진하던 나날들.

그리고 간간이 보이던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들.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흔들리던 멘탈.

올 한해 받았던 모든 고통이 산화되는 순간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연 김세준의 목소리가 한없이 떨렸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감정이 지금 한없이 진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먼저 올 한 해. 부족한 저를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회사 식구들. 저를 도와줬던 동료 가수분들. 그리고 저희 부모님. 모두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사람들.

김세준이 과거로 회귀해서 가장 크게 얻은 건, 바로 주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내년엔 더욱 많은 활동을 펼쳐서 이 상을 주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세준이 허리를 크게 숙이며 인사를 한 후, 발걸음을 무대 아래로 옮겼다.

‘진짜... 진짜로 기분 좋다.’

자신의 손에 들린 트로피를 만지며 김세준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와. 형. 대박. 축하드려요!”

그의 옆에 있던 수호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진심 어린 말을 내뱉었다.

“아, 고마워. 대상이 진짜 감동이 다르구나.”

“그쵸? 저희도 그랬어요. 뽕 차오르는 감정이 다르다니깐요. 올 한해는 내가 먹었구나. 이런 생각 들지 않아요?”

이미 대상 수상을 경험해본 수호의 발언에 김세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부정할 수 없는 그의 말.

“진짜 대상은 그 뽕이 진짜 미쳐버린다니깐요?”

수호의 말에 김세준이 다시 시선을 무대로 돌렸다.

곧 있을 이번 어워드의 마지막 시상식.

올해의 가수.

대상 중에서도 진정한 대상인 그 상.

똑같은 대상이지만, 사람들은 올해의 가수를 최고로 꼽는다.

“자, 어느덧 저희 이번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마지막 시상만 남았는데요. 저희 마지막 시상도 정수연 SY엔터테인먼트 대표께서 도와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정수연이 큐카드를 들고 다시 마이크 앞으로 나섰다.

‘진짜 탐난단 말이야.’

큐카드와 트로피를 들고 능숙하게 시선 처리를 하면서도 그녀의 관심은 한 남자에게 꽂혀 있었다.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고운 한복을 입은 남자.

저번 만남에선 반쯤 농담 같은 말로 그를 꼬드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커지는 욕심.

‘가져야지. 갖고 싶은 건.’

살면서 모든 걸 이뤄왔던 그녀의 욕심이 마음을 넘어 눈빛으로 번져 나온다.

탐욕으로 일렁거리는 매혹적인 그녀의 눈빛이 재빠르게 김세준을 훑었고, 이내 큐카드의 적힌 이름을 마이크에 호명했다.

다들 예상하던 그 이름.

김세준이 올 한해 대한민국을 점령했다는 걸 확실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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