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77화 (77/148)

#77

대상

12월 30일. 김세준은 올해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잠실 실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젠 가야금과 함께 자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복을 입은 채 이주성이 운전하는 차량에 탑승한 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몇 개나 받을 수 있을까.’

아시안 뮤직 어워드는 세부적으로 수상 분야가 나뉜다.

먼저 대상은 올해의 가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이렇게 총 3개의 분야로 나뉜다.

그리고 다음은 가수 별로 나뉘어 남녀 신인상, 남녀 솔로, 남녀 그룹상이 있으며 또 하나는 장르별로 나뉜다.

댄스, 보컬, 밴드, 힙합 네 가지 장르에 대해 상을 주고, 나머지 기타 분야로 자잘한 상을 또 수여했다.

그 중, 올해 김세준이 노미네이트 된 상은 무려 일곱 개.

올해의 가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남자 가수, 베스트 보컬 솔로 그리고 베스트 OST, 마지막으로 베스트 뮤직비디오.

본상이라고 볼 수 있는 올해의 가수와 올해의 노래, 그리고 올해의 앨범 세 곳에 모두 다 노미네이트가 됐으며, 기타 상에도 남자 솔로 가수가 들어갈 수 있는 곳엔 전부 노미네이트됐다.

가히 올해는 그의 해라고 말해도 무방한 수준의 대단한 업적.

그리고 그런 업적을 쌓으며 후보에 오르니 그 모든 상을 싹쓸이하고 싶은 욕심이 슬그머니 생겼다.

‘하지만 앨범은 아무래도 힘들겠지.’

정규 앨범이 아닌 미니 앨범이다.

여태껏 미니 앨범에 올해의 앨범을 준 기록이 없는 아시안 뮤직 어워드였기에, 앨범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문제는 베스트 OST인데...’

베스트 OST. 김세준이 생각하기에 수상 가능성이 가장 적은 상이었다.

일단 자신과 함께 후보에 오른 곡이 수호의 ‘하여가’.

‘단심가’와 컨셉이 겹치는 그 곡이 동시에 노미네이트가 됐기에 표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다른 후보 하나도 ‘태조 이성계’에 비할만한 만만치 않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OST로 삽입된 곡.

언제 또 드라마 OST를 참여할지 모르기에, 어쩌면 올해가 아니면 받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상이었다.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그에게 이주성이 입을 열었다.

“형님. 5분 뒤에 도착 예정입니다.”

“응. 알겠어. 아, 맞다. 주성아.”

“예. 형님.”

김세준이 이주성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너, 다음 달 초부터 말까지는 약속 잡아두지 마.”

“예? 그때 무슨 스케줄 있습니까?”

그의 말에 김세준이 미국에서 호텔을 들어갔을 때 이주성이 뱉은 감탄을 떠올렸다.

이런 방은 처음 와본다며 놀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던 그.

놀란 눈엔 호기심과 작은 열망이 가득했다. 자신도 이런 곳에서 한 번 휴가를 즐기고 싶다는 욕심이.

“그때 너 휴가야. 어디 여행이라도 한 곳 갔다 오라고.”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차피, 나 일주일 뒤에 있을 우리 콘서트 빼면 스케쥴 없잖아. 그동안 혼자 다닐 테니까 넌 해외로 휴가 다녀와. 최소 2주 이상으로.”

“아닙니다, 형님.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이주성이 곧바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거절을 내비쳤다.

탐나는 제안이긴 했으나 넙죽 받기엔 양심이 너무 없지 않나.

하지만 이내 이어진 김세준의 말에 이주성이 신음을 삼켰다.

“혼자 가란 소리 아니야. 예은이하고 같이 오붓하게 다녀와. 남매끼리. 내년이면 예은이 얼굴 더 보고 힘들어질 거 아니야. 예은이도 바쁘겠지만, 우리 해외로 나갈 수도 있어. 그전에 동생이랑 추억 쌓고 오라고. 때마침 예은이도 휴식이잖아. 이런 기회 앞으론 없을걸?”

“...”

그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그를 위한 선물.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그에게 동생과의 여행을 선물하는 김세준이었다.

그 시기에 이예은의 얼굴을 못 본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둘의 관계도 배려해야 하는 법.

김주성이 룸미러 너머로 애틋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형님...”

“아, 됐어. 그렇게 보지 말고. 예은이랑 상의해서 어디로 갈지 잘 계획 짜봐. 비용 걱정 없이.”

거절하기엔 너무 좋은 기회였고 구구절절 옳은 김세준의 말이었다.

앞으로 점점 줄어들 동생과의 시간.

게다가 단 한 번도 남매끼리 여행을 간 적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주성이 신호에 걸린 틈을 타, 김세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김세준을 향한 이주성의 충성심이 다시 한번 극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

잠실 실내 체육관 입구에서부터 김세준은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을 향해 비명을 내지르는 팬들과, 열띤 관심을 보이는 취재진.

그래미 어워드하곤 차원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절로 생기는 흡족한 미소.

뜨문뜨문 보이던 그때와 달리,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가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금세 눈에 띄었다.

“오늘 무려 7개 상의 후보에 오르셨는데요!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릴게요!”

포토존에 오른 김세준을 향해 한 연예방송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물었다.

“일단 올 한 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너무 감사하고,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리포터는 그의 겸손함을 칭찬하며 장단을 맞췄고 김세준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내부로 향했다.

이미 연예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체육관. 그리고 김세준이 내부로 들어오자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혼자서 유일하게 한복을 입은 그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에 진정한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며 다른 가수들과 눈인사를 한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1년 전에 참여했던 아시안 뮤직 어워드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때에도 자신을 보며 놀란 감정을 보이던 다른 가수들이지만, 이번엔 놀람을 넘어선 경외가 서린 감정이 보였다.

가수들에겐 꿈의 무대.

그래미 어워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을 선보인 그.

올해 데뷔한 신인들은 그를 존경의 눈빛을 담아 바라봤으며 연차가 쌓인 선배들은 그를 경악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친분이 없는 가수들의 쭈뼛거리며 그와 친분을 쌓길 원하는 몸짓이 보였고, 자신의 뒷이야기를 한 다른 가수의 질투와 시샘이 섞인 눈빛도 느껴졌다.

“어, 형! 왔어요?”

그리고 그때, 다른 아이돌과 이야기를 나누던 B.ONE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와 친분이 있는 세현과 수호가 밝은 얼굴로 그에게 축하를 건넸다.

“형! 축하해요.”

수호의 말에 김세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무슨 축하야.”

쑥스러운 표정으로 답하는 그를 보며 수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형, 형 후보 오른 거랑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한 거 축하하는 건데요? 형. 김칫국 너무 한 사발 드링크 하시는 거 아니에요?”

“크흠...”

그의 말에 김세준이 민망한 헛기침을 내뱉었고, 수호가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확실히 올해는 형의 해였으니까요. 김칫국 마셔도 인정합니다.”

“고맙다. 너희는 내년에 더 잘 될 거야.”

작년에 대상을 받은 그들.

아쉽게도 올해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앨범을 내긴 했지만, 대중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진 않았다.

“그래도 형 덕분에, 두 곡이 후보에 오르면서 체면치레는 했으니 다행이죠.”

“에이. 너희가 잘 한 거지.”

세현의 ‘하여가’와 수호의 ‘걱정하지 마.’

베스트 OST와 베스트 힙합 부분의 노미네이트 된 곡들.

특히 수호의 ‘걱정하지 마’는 수상이 유력한 곡이었다.

“형을 보면 저희가 잘한 게 아니에요. 형 지금 망한 곡 하나도 없지 않아요?”

수호가 김세준을 귀신 보듯이 보며 어이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모인 수많은 가수 중에서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유일한 가수.

발매한 모든 곡의 평이 명곡이라 칭송받는 천재.

“나도, 나중엔 실패할 수도 있겠지.”

“딱히, 머릿속에 그런 그림이 그려지진 않네요.”

수호의 칭찬에 김세준이 피식 웃곤, 사람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몰리는 걸 느꼈다.

자신이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

하지만 약간은 다르다.

남자들의 시선엔 감탄이, 여자들의 시선엔 질투가 어린다.

이번 시상식에서 신인상 유력 후보인 이예은.

자신의 여자친구이자, 요새 떠오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온 그녀의 모습에 김세준은 물론 같이 있던 B.ONE이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와... 예은씨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진짜.”

“그러니까. 가수 중에선 제일 이쁘신 거 같아.”

B.ONE의 다른 맴버들의 순수한 감탄에 김세준의 어깨가 한없이 올라갔다.

그녀가 자신을 발견하더니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김세준도 손을 가볍게 들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단순한 인사. 이내 그녀는 자신이 아닌, 이진아를 비롯한 친한 여가수들에게로 향했다.

“아, 맞다. 형 예은 씨랑 친했죠?”

“예은 씨 실제 성격은 어때요?”

“엄청 착하고, 배려심도 많고. 좋은 사람이야.”

“하긴... 다른 분들도 되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던데...”

에둘러 말하는 그를 향해, 주변에 있던 맴버들이 짧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김세준은 입이 간질거렸다.

세상 가득 소리치며 자랑하고 싶었다.

저 여자가, 내 여자친구라고.

***

“능숙해졌네.”

김세준이 무대 위 공연을 펼치는 이예은을 보며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는 이예은의 라이브 무대.

연주와 노래하는 태가 많이 늘었다. 표정도 자연스러워졌으며 무엇보다 그녀가 이제 긴장하는 것보단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수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양옆을 바라봤다.

그의 옆에 앉은 두 사람. 김세준과 세현.

이예은의 무대가 끝나고 시상이 있을 베스트 OST의 후보에 오른 두 사람이었다.

‘최악은 둘 다 못 받는 거고... 최선은... 그래도 세현이가 받는 거겠지?’

김세준과 친하고, 아까 전 진행된 올해의 힙합 상을 그 덕분에 받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맴버인 세현이가 받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트로피를 보면 또 생각이 바뀐다.

‘아, 그래도 진짜 형 덕분에 이 상도 받고, 우승도 한 건데...’

홀로 내적갈등을 벌이는 그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나 받아라. 최악만 면하고.’

어느새 끝난 이예은의 무대. 수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무대로 나온 배우를 바라봤다.

이번 베스트 OST의 시상을 맡은 남자 배우.

베스트 OST의 또 다른 후보자인 백아린이 부른 드라마의 주연인 서지준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며 후보자를 호명했고, 백스크린에 김세준과 세현, 또 다른 후보자인 백아린의 모습이 드러났다.

긴장 가득한 모습의 세 사람.

세현 또한 김세준을 매우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수상하길 원했다.

‘아마, 이번 아니면 평생 세준이 형 이길 기회는 없을 거야.’

자신만의 경쟁심리를 불태우는 그였고, 김세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지준의 입을 바라봤다.

이미 앞서 진행된 시상에서 2관왕을 이룬 그.

그리고 유력하게 여겨지는 두 개의 대상.

“올해의 베스트 OST는, 태조 이성계 단심가를 부른 김세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

김세준의 이름이 불리자, 세현이 아쉬운 감정을 뒤로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김세준에게 축하를 건넸고, 수호 또한 그를 가볍게 안으며 축복했다.

“단심가는 드라마 태조 이성계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원곡에 깊은 몰입감을 더해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단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김세준와 그를 찍으며 따라오는 카메라.

이미 2번이나 올라왔던 단상이지만 매번 올라올 때마다 그 발걸음이 떨렸다.

지금 이 짧은 순간은 올 한해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 손에 땀이 흐른다.

자신의 노래가 올 한해, 최고의 곡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증명받는 순간이었다.

이내 서지준에게 트로피를 건네받은 김세준이 떨리는 눈동자로 관중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선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떨리는 그의 목소리.

“네. 안녕하세요. 김세준입니다. 이미 2번이나 인사드렸는데, 다시 한번 인사드리게 돼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해 좋은 OST 곡들이 많았는데, 제가 좋은 작품하고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떨리지만 논리정연한 그의 수상소감에 관객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그에게 축하를 건넸다.

그 함성에 작은 미소로 화답한 김세준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묵직하네.’

팔뚝만 한 트로피가 제법 무겁게 느껴진다.

남들이라면 이 무게에 만족하고 흡족해하겠지만 김세준은 고개를 저었다.

‘에피타이저만 먹고 배부를 순 없지.’

그가 눈빛을 반짝이며 빨리 다음 시상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아직 메인 디쉬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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