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75화 (75/148)

#75

그래미 어워드(5)

미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 라운지에 도착한 김세준이 푹신한 가죽 의자에 기대며 이번 일정을 되돌아보면서 흡족해했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은 그에게 많은 수확을 남겼다.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흐뭇한 표정이 절로 지어진다.

182위. 김세준 ? 연꽃.

먼저 자신의 데뷔곡이 오랜만에 차트에 올랐다. 그것도 무려 빌보드 차트에.

메인이라 볼 수 있는 HOT 100이 아닌 빌보드 200 차트에 오르긴 했지만, 자신의 솔로곡으론 처음 이뤄보는 성과.

어제 있었던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펼친 공연은 현장에 있던 관객들뿐만 아니라 무대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에게도 감명 깊게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SNS에서 김세준에 관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그의 노래를 찾는 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연꽃이 제일 취향에 맞나 보네.’

자신이 발매한 많은 곡 중에서도 연꽃이 차트에 오른 건, 데뷔곡인 이유도 있겠지만 미국인들의 취향에 가장 알맞다는 뜻.

‘일단 기억해 두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가 빌보드 차트를 뒤로하곤, 자신의 미튜브에 접속했다.

‘이것도 매우 만족스럽지.’

자신의 구독자 수가 80만에 달했다.

하루 만에 늘어난 숫자가 무려 20만 명.

‘좀만 더하면 골드 버튼도 가능하겠는데?’

골드 버튼은 구독자 100만을 달성 시 미튜브에서 보내주는 일종의 트로피로 국내에서도 몇십 명밖에 받지 못한 상장이다.

“미튜브는 앞으로 더 커질 거고.”

국내 한정으로는 그 한계가 정해져 있지만, 세계에 발자취를 남긴 김세준의 채널은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했다.

“만약에, 진짜 나중엔 다이아몬드 버튼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구독자가 무려 1000만 명에 달했을 때 받는 다이아몬드 버튼.

일반 미튜브 크리에이터에겐 도저히 당도할 수 없는 꿈이지만, 김세준은 과감하게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주였지.”

빌보드 차트 돌입과 미튜브 구독자의 증가.

김세준이 생각했던 이번 공연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김세준의 공연이 미국 전역에 퍼트린 파급은 컸고, 오늘 아침이 되자 예상하지 못했던 기사가 나왔다.

자신의 회사인 아레스 뮤직에서 내보낸 기사도 아니고, 한국에서 나온 기사도 아닌,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에서 내보낸 기사.

[한국의 가수, 동양의 소리를 그래미 어워드에 선보이다.]

화려한 제목 밑으로 김세준에 대한 소개와 김세준이 선보인 공연, 그리고 그가 그래미 어워드에 초대된 의미 등을 나열한 기사였다.

그리고 또 다른 유력 일간지인 뉴욕 타임스는 김세준과 가야금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

일간지에까지 나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무대.

‘여기까진 예상 못 했지.’

일간지에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 줄 몰랐기에 처음 기사를 접하곤 제법 놀랐다.

그것도 무대가 있고 난 지 12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간에 나온 일간지들의 기사였으니까.

마지막으로 김세준이 한 앱에 접속했다.

해외에서 자주 사용하는 메시지 앱.

그리고 거기에 추가된 수십 개의 연락처.

다들 이름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와 함께 그래미 어워드에 초대된 가수들이었으니까.

공연 시작 전까진 자신에게 무관심에 가깝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관심을 표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과 협업을 원했고, 이미 한 번 그가 거절한 제인과 저스틴까지도 쭈뼛쭈뼛 다가와 한 번 더 고려해 달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아! 맞다. 이것도 있었지.”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그가, 자신의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지갑 속에 들어 있는 10장 남짓한 명함들.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이번 공연을 보며 그에게 강한 호감을 표했다.

에드 케인의 소속사인 아메리카 레코드는 물론,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공룡들의 러브콜.

이미 아레스 뮤직과 재계약을 체결한 그지만, 해외 활동에 한해선 그들과의 계약이 반쯤 필수였다.

자신이 알기론 아레스 뮤직이 해외 관련 사업은 없었으니까.

‘이건 뭐 사장님이랑 이야기해봐야지.’

단 하루 만에 달라진 자신의 위상.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기에.

이번 그래미 어워드 무대. 자신이 생각했을 땐 최고의 성과를 이룬 공연이었다.

***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김세준은 이해진, 하동준과 함께 저녁 만찬을 즐겼다.

미국에서의 성공적으로 돌아온 김세준 축하 자리 및 연말 송년회를 겸해서.

고풍스러운 느낌의 한식당에 모인 그들이었고, 5일 만의 먹어보는 한식은 김세준의 입을 만족스럽게 사로잡았다.

“고생 많았다. 세준아.”

“감사합니다.”

전통 소주를 곁들인 식사. 살짝 벌겋게 올라온 얼굴로 이해진이 김세준의 술잔을 채웠다.

“이번 공연. 한국에서도 반응 엄청 좋은 거 알지? 국위선양이라고 난리더라.”

하동준이 작은 미소와 함께 내뱉은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맞이한 수많은 취재진만 봐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전통 악기인 가야금을 세계에 울린 김세준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영웅을 보는 듯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한층 살려준 그의 이번 공연. 게다가 미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같은 동아시아 국가이자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를 가진 중국과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대서특필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세계에서 이목을 받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한 수준.

“아, 맞다. 사장님. 부사장님. 이거 이번 미국에서 산 물건인데 선물입니다.”

김세준이 그들을 향해 작은 쇼핑백 2개를 내밀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산 그들의 선물.

“뭘 이런 걸 다 사 왔어.”

“그러게. 미국에서 준비하기도 바빴을 텐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하동준이 헤벌쭉한 미소와 함께 선물을 받았고, 이내 숨을 크게 들이켰다.

“...! 야 세준아... 이거 너무...”

쇼핑백에 영어로 적힌 브랜드.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

하이엔드 시계로 이름 높은 브랜드였다.

금액의 단위가 최소 몇천은 되는 고가의 상품이었다.

하동준과 마찬가지로 선물을 받은 이해진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두 분이 해주신 거에 비하면 약소합니다.”

김세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고, 이해진이 금세 놀란 감정을 추스르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잘 쓸게.”

이해진이 비교적 덤덤하게 반응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미 한국에선 굴지의 인지도를 쌓아 올린 김세준.

이 고가의 시계도 그의 재력에 비하면 큰 지출이 아닐 터.

하지만 그렇다고 천만 단위의 돈이 가벼운 금액은 아니지 않았고, 더욱 고마운 건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자신들의 선물을 고른 그의 마음이 갸륵했다.

“시계 이쁘네.”

시계를 착용한 이해진이 가볍게 감탄을 터트렸다.

“이거 최소 천만 원짜리인데, 안 이쁠 수가 있나.”

하동준도 이어서 시계를 착용했고,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둘을 보며 김세준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사준 선물이 고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레스 뮤직이란 중견 매니지먼트의 사장과 부사장.

마음만 먹으면 못 살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만 선물해준 자신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진하게 표현하는 둘이었다.

‘언젠간 보답하려고 했지.’

이해진과 하동준. 자신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1등 공신들.

언젠간 한 번 제대로 보답을 하고 싶었고, 이번 미국 여행에서 그 기회를 잡았다.

“저, 사장님. 그리고 이번에 미국에서 몇 가지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제의?”

술잔을 부딪친 후, 가볍게 술을 넘기고 김세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미국 여러 매니지먼트에서 접촉해 왔습니다.”

“음...”

진중한 목소리로 내뱉는 그의 말에 이해진이 순간 신음을 삼켰다.

요 몇 년간, 특히 김세준이 합류한 이후로 아레스 뮤직은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 흔히 말하는 삼대 소속사 바로 밑의 쪽에 위치할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국내에 한정된 이야기.

해외와 관련된 능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홍보와 유통 같은 매니지먼트의 기본적인 업무를 자신들은 해외에서 펼칠 수 없었고, 당연히 김세준이 세계를 무대로 삼아 활동하려면 자신들의 능력만으론 역부족이었다.

막상 그 상황이 눈앞에 닥치자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해진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 활동은 그쪽이랑 계약하는 게 맞지. 그러면... 미팅 계획도 잡아야겠네.”

묵묵히 듣고 있던 하동준이 이해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김세준에게 물었다.

“한 군데는 아닌 거 같고. 어디서 제의했는지 알려주면 미팅 날짜 잡을게.”

“음... 일단 아메리카 레코드랑 리틀보이 레코드. 그리고 인터스코 레코드 이 세 개가 제일 큰 곳이긴 합니다. 저도 이 세군 대 말고는 다른 곳이랑은 계약할 마음이 없고요.”

“허...”

김세준의 말에 하동준이 탄식을 뱉었다.

그가 말한 세 곳의 회사. 미국에서 삼대 기획사라 불리는 대기업 엔터테인먼트다.

한국의 삼대 기획사하곤 비교가 안 되는 규모를 가진 곳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회사들.

그런 회사에서 김세준을 두고 경쟁한다니.

그것도 고작 단 한 번, 5분짜리 짧은 무대를 보고.

그 찰나의 순간에 김세준이 그들에게 보여준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뜻.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대견하고 뿌듯한 기분도 동시에 들었다.

그런 가수를 발굴한 아레스 뮤직의 한 일원으로서.

“알겠어. 미팅 잡고, 날짜 나오면 알려줄게. 근데 알지? 일단 남은 활동은 마무리 잘 해야 한다는 거.”

“네. 알고 있죠. 일단 이번 앨범부터 끝내고 고민에 빠지려고요.”

“음. 그럼 미팅 날짜도 앨범 작업 끝나고 잡을게.”

“예. 감사합니다.”

김세준의 대답과 함께 다시 잔에 술을 채운 그들이었고, 제법 독한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졌다.

“올해도 감사했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고맙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

“세준이 넌 쉴 틈이 없겠네.”

“그렇죠. 내년 초까진 앨범 작업도 마무리해야 하고.”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하동준이 꺾어 마셔 반쯤 남은 술을 다시 입에 털어 넘겼다.

“앨범 작업 전에도 할 게 있잖아.”

“아... 맞네요. 콘서트. 아레스 뮤직 콘서트도 있구나.”

원래 연말에 열리던 아레스 뮤직 콘서트.

하지만 올해엔 김세준의 그래미 어워드 참여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내년 초로 밀렸다.

“얼씨구. 끝까지 모르는 척하네?”

그런 김세준을 보며 하동준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고, 김세준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사람이다.

애써 자신은 티 내지 않고 있었는데.

올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이벤트.

‘아시안 뮤직 어워드.’

작년 신인상을 차지했던 그 시상식.

그리고 올해 다른 가수들 보다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던 김세준.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보여준 공연.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하동준이 그에게 입을 열었다.

“이번엔 상 받으러 가야지.”

그의 옆에서 이해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의 여지가 없이, 올해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대상. 그 수상자는 김세준이 될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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