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72화 (72/148)

#72

그래미 어워드(2)

이번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정확한 장소는 NBA 농구팀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

당연히 김세준이 탄 비행기도 LA행이었고, 그는 이 기나긴 비행이 제법 어색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의 매니저인 이주성이 이제 단순한 매니저가 아니었으니까.

무려 자신의 여자친구의 친오빠다.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친구의 오빠 또한 제법 어렵게 다가오는 존재.

게다가 이주성에게 이예은의 존재는 다른 오빠들보다 남다르지 않나.

부모님을 여읜 그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

게다가 동생의 꿈을 도와주기 위해서 직업도 매니저를 택한 그였다.

극성을 넘어서, 지극한 동생 사랑을 보여주는 그의 행보.

오빠를 넘어서 아빠의 감정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김세준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이주성을 힐끔 쳐다봤다.

‘예은이가 주성이에게 사귀는 사실을 알렸다고 했고, 되게 좋아했다고 하지만...’

연애 사실을 밝히고 단둘이 있는 것은 처음이다. 신경이 안 쓰인다는 건 거짓말일 터.

기분 탓일까? 오늘따라 그의 덩치가 더욱 거대해 보였고, 그의 얼굴이 유독 험상궂게 보였다.

평소엔 그렇게 진국처럼 느껴지던 매니저가 오늘은 이렇게 어색하고 어려울 수가 없었다.

‘비즈니스석이 아니라 가시방석인데...’

찜찜한 마음과 함께 김세준이 안전띠를 찰 때, 이주성이 그를 불렀다.

“형님.”

“응?”

형님이란 호칭이 뭔가 어색했다. 이제 그 호칭은 자신이 불러야 할 거 같은 기분.

사뭇 진지한 그의 목소리에 김세준이 흠칫했다.

“예은이랑 만나신다고요.”

“어. 그게 참... 너한테 뭐라고 말하기가 그렇다.”

무표정인 그의 얼굴을 보며 김세준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예은이 말한 것과 달리 김세준이 느낀 이주성의 감정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제가 형님이랑 같이 일한 지가 1년 반 정도 됩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 빠르네.”

“긴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한 사람의 모든 걸 알기엔 짧은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무겁게 깔린 그의 목소리.

그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동생을 얼마나 특별히 여기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동의해. 그럴 수 있지.”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말 그대로 한 몸처럼 움직였던 사이. 그런 관계를 맺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긍정적인 어투가 아니었으니까.

그의 말엔 아직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형님이 예은이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죠.”

“응?”

묵묵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예상과 다른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이 저를 불편해하시는 거 같아, 잠깐 장난 좀 쳤습니다.”

“얼씨구?”

“제가 형님이랑 예은이가 잘 되길 얼마나 오래전부터 원했는데요. 저희 남매의 은인 아닙니까.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고마운 건 나지. 너하고 예은이가 나한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그래도 제법 괜찮은가 보네. 난 네가 많이 아쉬워하고, 솔직히 나를 조금 미워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밉긴요. 그리고 아쉬울 게 뭐가 있습니까. 당장 시집가는 것도 아닌데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는 이주성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푹신한 좌석에 몸을 편히 기댔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이번 비행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듯했으니까.

***

길고 긴 비행이 끝나고,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인 LAX에 도착한 김세준은 에드 케인이 잡아준 리츠 칼튼 호텔로 향했다.

세계 유명 호텔 체인이자, LA 번화가 중심에 있는 5성급 호텔.

거기에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이 열리는 스테이플스 센터와도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거기에 에드 케인이 예약해준 방은 이그제큐티브 스위트룸으로 상당히 호화스러운 방이었다.

“와... 전 이런 방 처음 와봅니다...”

이주성이 방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고, 김세준은 작년에 갔던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떠올렸다.

자신의 방이 아닌 B.ONE이 묶던 방.

그 방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는 자신의 이번 숙소였다.

“아, 형님. 4시간 뒤엔 에드 케인과 약속이 있습니다.”

이주성이 짐을 풀면서 오늘의 스케줄을 알렸다.

“아아, 알고 있어.”

“그럼 짐 풀고, 7시 전까지는 여기서 머무시는 겁니까?”

그의 말에 김세준이 시간을 확인했다.

미국시각으로 오후 3시.

약 4시간 정도 남은 시간이었고, 뭘 하기엔 모호한 시간이었다.

“아니. 잠깐 나갔다 오려고.”

“예? 어디 가시는 겁니까?”

김세준의 답에 이주성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무려 11시간 동안의 비행.

아무리 비즈니스석을 타고 왔다 하더라도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는 장거리 비행이었다.

“잠깐 바람도 쐬고. 선물도 사려고. 주성이 넌 피곤하면 호텔에서 쉬고 있어도 돼.”

“아닙니다. 형님이 나가시는데 어떻게 제가 쉽니까. 짐 풀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김세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4시간 남짓한 시간.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뜻깊은 시간이 될 계획이었다.

***

김세준이 숙박하는 리츠 칼튼 호텔은 LA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즉, 호텔을 나오자마자 번잡하다는 뜻.

그런 복잡한 공간 속에서 김세준은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길거리를 거닐었다.

대한민국에선 밖을 돌아다니려면 중무장이 필수.

모자와 마스크.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해야,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삶.

자신이 원하고 결정한 삶이기에 불평은 없지만, 가끔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편하네.”

그런 한국에서의 복장과 달리, 지금은 맘 편히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그였고, 사람들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카페에 들려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며 지인들에게 건네줄 선물을 구매한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주성은 그런 김세준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 비행의 피로를 축적한 채 쇼핑에 나서는 그. 굳이 지금이 아니라, 시상식이 끝난 다음에 해도 무리가 없는 일정이다.

‘굳이 지금 쇼핑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

알 수 없는 그의 마음이지만, 이주성은 피곤을 애써 참으려 그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그리고 그런 이주성의 의아함을 모른 채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직 미국에선 인지도가 부족하네.’

그가 굳이 오늘 쇼핑에 나선 이유.

시상식에서 얼굴을 드러내기 전, 미국에서 자신의 인지도를 한 번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에드 케인의 노래를 피쳐링한 효과와 점점 늘어가는 미튜브 외국인 구독자.

거기에 나날이 상승해가는 K-POP의 위상을 힘입어, 자신의 얼굴을 눈치채는 팬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약간 기대를 했지만, 지금까진 한국과는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길거리에서 그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던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김세준은 순순히 인정했다.

4억에 달하는 미국 인구수에 비하면 자신의 미튜브 구독자는 발톱의 때만도 못한 숫자.

거기에 에드 케인의 노래를 피쳐링하긴 했지만, 얼굴을 드러낸 적은 없다.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지 않았고, 같이 무대에 서는 것도 이번 ‘그래미 어워드’가 처음.

사람들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래도 이번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면...’

생각에 잠기며 구경하던 그의 의식을 깨운 건 자신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한 손길이었다.

“저...저기요?”

“예?”

“혹시. 김세준 아닌가요?”

“...!”

그의 어깨를 친 건, 금발을 가진 젊은 외국인 여성이었다.

긴가민가한듯한 그녀의 모습에 김세준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저 아세요?”

“맞구나! 당연히 아니까 물었죠! 저 미튜브 구독자고, 팬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같이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사인도 해드릴까요?”

핸드폰을 내미는 그녀에게 김세준이 한술 더 뜨며 말했고, 그녀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정말 잘 듣고 있어요. 가야금도!”

“정말 감사합니다. 설마 저 알아보실 줄은 몰랐어요.”

사진 촬영을 끝내고, 사인하며 김세준이 넌지시 말하자, 여성 외국인이 손가락을 휙휙 저었다.

“요즘, 미국 케이팝 팬들에게 세준 씨 인기 진짜 많아요. 웬만한 아이돌 뺨칠 만큼. 노래도 잘하고, 가야금이란 악기가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아, 그리고 에드 케인 피쳐링 한 노래로 세준 씨에게 빠져든 사람도 많아요!”

“오호...”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낮은 감탄을 뱉었고, 동시에 사인이 끝났다.

“꺄악! 고마워요. 진짜로. 그러면 내일모레 있을 공연 잘 하세요!”

“와... 어떻게 알았어요?”

“말했잖아요. 팬이라고.”

“고마워요. 진심으로.”

김세준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고, 여성 팬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김세준을 발견하고 확신에 차기 전까지, 30분 동안 그의 뒤를 따라 밟았던 그녀였었다.

그런 멀어져가는 여성 팬의 뒷모습을 보며 김세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세계를 상대로 벌이던 자신의 행보.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법 괜찮은 효과가 나오는 중이었다.

***

에드 케인을 만나러 김세준이 향한 곳은, LA에서 맛집으로 유명하고, 영화에 한 장소로도 나왔던 한 레스토랑이었다.

식당을 찾아가자 먼저 도착해 있던 에드 케인이었고, 그를 발견한 김세준이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에드.”

처음 봤을 때의 회색 머리가 아닌, 이제 연보라색으로 염색한 그였다,

“그러게. 모습을 보아하니, 잘 지낸 거 같군.”

작은 미소와 함께 에드 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건넸고, 김세준도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불러줘서 고마워.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김세준의 감사에 에드 케인이 두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말했잖아. 아카데미에서 나한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고. 그나저나 영어가 많이 늘었는데?”

“그 뒤로 죽자 살자 연습했거든.”

김세준의 천연덕스러운 대답과 동시에 음식이 나왔고, 둘은 식사를 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세준의 다음 앨범 곡에 관한 이야기와 당장 내일모레 있을 무대에 관한 대화.

그리고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안부 따위를.

“아, 그리고 내일 있을 리허설, 조금 지저분할지도 몰라.”

“응?”

와인으로 입을 적시던 김세준이 에드 케인의 말에 귀를 쫑긋했다.

“유명하잖아. 그래미 어워드 꼰대들의 사고방식.”

“아...”

에드 케인의 말이 어떤 건지 단숨에 이해했다.

인종차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기로 유명한 그래미 어워드.

“솔직히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널 초청할 걸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도 적지 않을 거야. 쓸데없는 걱정일 수도 있지만, 조금 지저분하게 나올 수도 있고. 내가 웬만하면 커버하겠지만, 나라고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에드 케인의 친절한 말에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보수적인 단체. 거기에 심지어 자신은 미국인도 아니다.

몇몇 이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리라는 건 한국에서부터 훤히 예상되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향한 인종차별에 대응할 방법은 하나뿐.

자신을 무시하는 그들을 향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노래를 들려주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저들이 그 자존심을 굽히고 자신의 노래를 인정하는 것.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무대가 끝난 후, 결코 자신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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