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그래미 어워드(1)
첫날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한 대한민국 예술단은, 다음 날 있던 공연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김정은도 오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첫날 공연의 뛰어난 퀄리티와 김정은 부재.
두 시너지가 합쳐져 관객들도 어제보다 훨씬 나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 관객들을 보며 어제 긴장감에 휩싸이던 가수들도 부담감에서 한결 벗어난 무대를 선보였다.
그렇게 북한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김세준은 하루 쉬고, 다음 날 이예은을 만났다.
자신이 북한에 간다는 걸 들었을 때부터 걱정 가득했던 그녀다.
물론 그녀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의 걱정이 한 아름이긴 했지만.
“오빠. 북한에선 별일 없었죠?”
아레스 뮤직 사옥 근처 카페에서 단둘이 만난, 이예은의 물음.
김세준이 고개를 저으며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응. 이렇게 멀쩡히 잘 돌아왔잖아.”
“진짜 걱정 많이 했어요. 막 감금당하는 건 아닐까...”
그녀의 귀여운 걱정에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아니에요. 미안해하실 게 뭐 있어요.”
이예은이 김세준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자신을 애 취급하는 듯한 스킨쉽이지만, 따뜻한 그의 손이 닿자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김세준이 첫날 공연을 마치고 만난 소년과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녀를 포함한 다른 사람 아무한테도 말해도 믿지 못할 이야기.
훗날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사람과 만남. 그리고 그런 사람한테서 민족의 한과 얼을 세계에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이야기.
‘뭉클했지.’
북한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이 없는 그조차도, 가슴 한구석이 북받쳐 올랐다.
‘세계라...’
굳이 그 소년의 말이 아니었어도, 진출할 무대.
‘내년에는 가능하겠지?’
내년 초에 앨범을 내고, 그 앨범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내년 하반기에는 세계로 나갈 생각을 하는 그였다.
어떻게 진출해야 할지 아직 감은 안 오지만, 준비는 조금씩 진행되고 있으니까.
당장 다음 달만 해도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고, 그의 미튜브도 꾸준히 성장 중이며 외국 팬들의 유입을 끌어드리고 있었다.
“오빠? 무슨 생각 해요?”
“응? 아니야.”
잠깐 딴생각에 빠진 그에게 이예은이 화사한 미소와 함께 물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인 그녀의 미소.
반달처럼 휘어지는 그녀의 눈웃음에 많은 남성이 속앓이하는 중이다.
그런 미소를 가진 이예은이 자신의 연인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지금은 현실에 집중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서로 공인 인만큼, 사적인 자리에서 단둘이 만나기도 쉽지 않은 사이다.
이런 미소를 눈앞에 두고 딴생각에 빠져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사치. 김세준이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연인에게 시선을 보냈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이지만, 김세준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
북한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고, 김세준은 포털사이트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안착한 자신의 이름.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재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예술단 평양 공연’이 드디어 오늘 방영했고, 수많은 무대 속에서도 가야금과 남북한이 공유하는 역사를 노래한 김세준의 공연은 유독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텔레비전으로도 전해지는 가수들의 긴장 가득한 무대.
그런 무대가 이어지다가 나온 김세준의 완벽한 무대는 본의 아니게 더욱 눈에 띄었다.
“뭐, 그리고 이것뿐만은 아니지.”
김세준이 핸드폰으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자 수두룩하게 나오는 기사들.
북한 공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보다 더 큰 파급력을 만든 기사.
자신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
김세준의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무대에 오른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들이었다.
[김세준!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에 서다!]
[김세준이 올라서는 그래미 어워드는?]
[가야금이 울려 퍼지는 세계 최고의 시상식!]
많이 본 TV 연예 뉴스 상위권을 차지한 제목들.
하동준이 약속한 대로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보도자료를 아낌없이 뿌렸고, 김세준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던 언론사들은 이 대형 떡밥을 감사히 받아먹었다.
그리고 기사의 달린 댓글들.
대체로 김세준에 관해 우호적이고 칭찬이 가득한 댓글이 다수였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말도 많았다.
[김세준 노래는 좋지만, 이제 너무 좀 뻔하지 않나요?]
[저도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이제 조금 식상한 느낌도 있어요.]
[처음엔 가야금이 신선했는데. 서정적인 노래하고 역사 관련 노래만 부르다 보니 조금 질리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죠.]
[다음 앨범이 예상되는 가수 중 한 명이긴 하죠.]
“흐음...”
악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웃으며 볼 수 없는 댓글들을 보며 김세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연예인이란 자리. 안티팬의 존재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미지는 독보적인 좋은 연예인도 안티팬은 있지 않나.
“뭐, 그래도 예상했던 반응이잖아?”
제법 거슬리긴 하지만, 김세준이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실제로 언젠간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고, 그렇기에 다음 앨범은 그들의 예상과는 다른 곡들로 준비했으니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곡들과는 전혀 다른 곡.
국악이 가진 중후하고 클래식한 선율과 현대 음악의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사운드.
그 두 개의 장점을 합친 앨범이었고, 김세준은 자신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저 사람들.
내년, 자신의 앨범이 나온다면 저 사람들의 반응이 180도 달라질 거라고.
***
시간이 흘러 12월 초가 되자, 김세준은 아레스 뮤직 녹음실을 다시 찾았다.
앨범 녹음, 그것도 오늘은 자신의 첫 정규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틀 곡 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자주 오지 말라 했는데,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에요?”
녹음실에 들어가자, 송대준이 그를 보며 농담 섞인 투정과 함께 그를 반겼다.
“일해야죠. 일. 그리고 요새 저 덕분에 송대준 피디님도 어깨 펴고 다니신다면서요?”
자신의 농을 받아치는 김세준의 말에 송대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건 부정할 수 없죠.”
곡을 만드는 데 있어서 프로듀서의 중요성은 가수와 필적한다.
전체적인 세션들의 하모니. 그리고 그 세션과 보컬의 조화를 어루만지며 곡의 전체적인 중심을 잡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
그리고 송대준은 김세준의 곡 대부분을 프로듀싱한 책임자였고, 모든 곡이 성공한 만큼 그의 이름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었다.
거절하긴 했지만 얼마 전엔 타 엔터테인먼트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아 맞다. 그리고 북한 공연 진짜 멋졌어요. 솔직히 정치적인 걸 떠나서 보면서 조금 뭉클해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도 연주하면서 조금 감동했어요. 아무래도 특별한 장소고, 앞으론 못할 수도 있는 공연이니까.”
“모르죠. 언젠가 또 그런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송대준의 말에 김세준이 속으로 제법 놀랬다. 빈말로 던진 말이겠지만, 실제로 십몇 년 후엔 북한에서의 공연이 다시 열리게 되니까.
놀라움을 접어두고 김세준이 오늘 온 목적을 꺼냈다.
“곡은 어떤 거 같아요?”
김세준의 질문에 송대준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당연하죠.”
“솔직히 세준 씨 처음 앨범 컨셉 듣곤 많이 걱정했어요. 프로듀서로 이건 반대해야 하나 싶었고. 왜 저희 첫 만남도 지금과 비슷했잖아요.”
그의 말에 김세준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아와 송대준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이진아가 ‘연꽃’을 댄스곡으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
그리고 그걸 결사반대하던 송대준의 모습.
“근데, 솔직히 저번 브라이니의 곡도 그렇지만, 이번 곡은 듣고 완전히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곡을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버린다? 천벌 받을걸요?”
극찬에 달하는 그의 말에 김세준이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갔다.
원곡의 주인은 이예은이지만, 그도 제법 많은 편곡을 했고 공을 들인 만큼 인정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아, 그리고 이거 예은이가 작곡한 거라면서요?”
“네. 처음이랑 많이 달리 지긴 했는데, 원곡은 예은이가 만들었어요.”
“이야. 대충 예상하긴 했는데, 예은이 작곡 센스 있네.”
자신뿐만 아닌 연인인 이예은까지 칭찬하는 송대준의 중얼거림에 김세준의 미소가 한층 더 깊어졌다.
예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이 사람도 참 진국이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김세준을 향해 송대준이 녹음실을 가리켰다.
“그럼 녹음 시작할까요?”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 그럼 첫 번째 벌스부터 갈게요!”
송대준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나오는 멜로디.
그 멜로디를 들으며 송대준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항상 느끼지만, 인트로부터 기가 막힌단 말이야.’
김세준 곡의 가장 큰 특징은 가야금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가야금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은 시작부터 귀를 사로잡는 마성의 멜로디.
한 번 듣게 되면 곡이 끝날 때까지 계속 듣게 되는 중독성 있는 소리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
그가 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전자음만 울려 퍼지던 가운데 가야금의 찡한 소리가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가야금과 전자음의 조화. 하지만 평소 청아하게 울리던 가야금의 소리가 아닌 전자음처럼 날카롭다.
평소 김세준이 사용하던 25현 개량 가야금이 아닌, 전자 가야금으로 만들어낸 소리였다.
‘개인적으론 전자 기타보다 마음에 들어.’
전자 기타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소리였고, 동시에 김세준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오늘은 네게 끝을 말하려고 해]
[이젠 너의 우는 얼굴을 봐도 슬프지가 않고, 지겹기만 해.]
‘이거지!’
평소 김세준과는 다른 목소리.
일렉트로 팝인 만큼 김세준의 목소리에 들어간 효과.
오토튠.
본래에는 보컬 교정용으로 사용되던 프로그램이지만, 요즘엔 음성 왜곡 효과를 위해 더 많이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흔히 말하는 보컬의 기계음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 노래다.
과도하게 사용되면 오히려 반감을 사기도 하지만, 지금 김세준의 목소리와 오토튠은 찰떡궁합이었다.
본래 허스키하고 거칠던 김세준의 목소리가 오토튠의 힘을 입어 좀 더 차갑고, 냉소적이게 들렸다.
이번 곡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소리.
그 소리에 송대준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본 댓글들을 떠올렸다.
김세준에게 달린 비판의 댓글들.
이 곡이 발매된다면, 그런 말은 단숨에 들어갈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
12월 20일.
김세준은 인천 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 날짜로 12월 22일에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하기 위해서.
“잘 다녀와.”
“가서 떨지 말고 잘 하고.”
자신을 마중 나온 이해진과 하동준의 인사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사장님.”
김세준의 짐을 들고 있는 이주성의 듬직한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김세준이 허리 숙여 인사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대라...’
자신이 그동안 펼쳤던 무대 중 가장 큰 무대인 아시안 뮤직 어워드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커다란 무대.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 물씬 들면서도, 김세준은 속으로 야심찬 다짐 하나를 뱉었다.
이번 무대, 자신은 비록 주인공이 아니지만.
무대가 끝나고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이번 시상식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받자는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