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68화 (68/148)

#68

북한 공연(1)

11월 22일.

김세준은 김포 국제공항으로 향했고, 그곳은 이미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소엔 인천 국제공항보다 한산한 공항이지만, 오늘만큼은 인천 국제공항보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드디어 대한민국 예술단이 평양공연을 위해 북한으로 출국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예술단과 함께 북한으로 떠나는 기자들. 그리고 북한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취재진 및 방송국과 북한이라는 우려 가득한 나라로 향해 가는 가수를 걱정하는 팬들로 이루어진 인파.

공항에 도착한 김세준이 그런 수많은 사람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형님. 이쪽으로.”

이주성과 경호원들이 사람들을 해치며 그를 안내했고, 그들의 뒤를 따라가자 먼저 도착한 가수들이 제법 있었다.

마땅한 대기실도 없이, 김포 공항에서 촬영을 위해 준비한 간이 무대에 앉아, 기자들과 팬들의 시선을 받으며 어색하게 기다리고 있는 가수들.

이미 공연 연습을 위해 수차례 모였던 사람들이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라인업이 미친 수준이긴 했다.

자신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펼치는 세현.

그리고 수호가 우승했던 ‘쇼미’의 시즌 5 우승자이자 실력과 대중성을 모두 사로잡은 래퍼 콰인.

발라드의 황태자와 국민 남동생이란 칭호를 받았던 성민.

가왕이란 이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가수, 이주관.

그리고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걸 그룹인 블루라인.

여자 트로트 가수로 트로트의 여왕이라 칭해지는 박지희.

도착해 있는 인물들만 이 정도였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수들까지 떠올리면 이름 하나하나가 가요계에서 미치는 영향이 커다란 사람들뿐.

이번 일을 정부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이번 공연이 많은 영향을 끼쳤지...’

회귀하기 전엔, 이번 공연이 북한과의 외교 관계 진척에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많을 정도였다.

실제로 오래전에 중지됐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이번 공연과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재개됐으니까.

생각을 멈추고, 김세준이 트레이드마크인 금테안경을 쓰며 중앙에 앉아 있는 이주관을 향해 다가갔다.

이번 공연단에서 가장 연장자이자, 대표를 맡은 그에게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마땅한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이게 누구야. 우리 세준이. 잘 지냈지?”

뭔가 무미건조해 보였던 이주관이 김세준이 등장하자 살가운 모습으로 반겼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고, 주변인들을 잘 챙기는 모습이 제법 귀여운 친구.

그리고 그 실력도 나이에 맞지 않게 능숙하여 눈길이 많이 가는 후배다.

게다가 무엇보다 대한민국 아버지 중에서 김세준을 싫어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이번 공연, 선배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어이구. 어린 친구가 벌써 늙은이 어깨를 무겁게 만들어?”

속이 훤히 보이는 김세준의 말이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이주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가왕이라 불리는 자신에게 아부성 멘트를 내뱉는 자들은 많지만, 김세준의 경우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자신의 환심을 사 이득을 보려는 자들과 달리, 마치 진짜 할아버지와 손자가 농담하듯 던지는 듯한 느낌.

그 뒤로도 대화를 좀 더 나누고, 김세준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형.”

그의 옆자리인 세현이 김세준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평소 감정 표현이 적은 그지만, 지금은 긴장한 여력이 가득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 봐도 그랬다.

평소와 다른 세현의 긴장한 모습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피식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제 몇 시간 후면 자신들은 북한이라는 특수한 관계인 나라로 향하니까.

“긴장했어?”

“네. 조금...”

아무리 국가공식 행사로 방문이라 해도,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곳.

그런 곳이 북한이었다.

“형은 괜찮아요?”

자신과 달리 제법 담담한 김세준을 보며 세현이 물었고, 김세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응. 예전에 한 번 북한을 갔다 온 적이 있어서 그런가?”

“네? 형 북한 가본 적 있어요?”

“어렸을 때. 금강산 관광.”

“아...”

‘뭐 실제로 그것 때문은 아니지.’

실제로 북한을 갔다 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긴장이 안 된다기보다는 이번 공연이 무탈하게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가 더 컸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냥 다른 공연이랑 똑같다고 생각해.”

“그게 되나요...?”

김세준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둘의 대화가 끝나자 모든 가수가 도착했는지, 대한민국 예술단 평양공연의 대국민 인사가 시작됐다.

지상파 방송인 SBC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방송.

이번 공연단 대표인 이주성을 시작으로, 국민에게 한 마디씩 남기는 행사였다.

나이순으로 진행되는 순서였고, 김세준은 거의 마지막이나 다름없었다.

이 공연단에서 김세준보다 어린 가수는 자신의 옆에 있는 세현, 그리고 걸 그룹인 블루라인.

“네. 다음은 김세준 씨인데요. 국민 여러분들에게 소감 및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의 말에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가수들.

국민의 사랑을 한눈에 받는 가수 천지이지만, 이번 공연에서 유독 국민의 이목을 한눈에 받는 사람은 단연코 김세준이었다.

그가 지금껏 발표했던 노래들.

모든 노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노래들이 많다.

전국의 아버지들을 울렸던 심청가는 물론, 올해의 OST 상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여겨지는 단심가와 그가 작곡한 하여가까지.

역사를 공유하는 북한에서 그의 노래가 과연 어떤 반응을 받을지에 대한 궁금증.

게다가 그가 연주하는 악기도 가야금이 아닌가. 한민족 전통 악기인 가야금. 즉, 북한에서도 전통 악기라는 뜻이다.

쟁쟁한 이번 가수들 사이에서도 유독 집중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네. 가수 김세준입니다.”

김세준 또한 그런 국민의 관심을 모르지 않았다.

그 또한 북한에서 자신의 노래가 통할지 그 궁금증 때문에 이번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닌가.

그리고 김세준의 이런 행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팬들도 많지만, 그가 공연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정치적인 성향을 강한 팬들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먼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여 이번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점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전설이라 불리는 선배님들과의 합동 공연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에 이바지되는 공연을 펼치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국민 인사를 마치고 김세준이 자리에 앉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지만, 이 정도면 크게 모나지 않은 답변이었다.

정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답변을 보며 자기들만의 해석을 남길 터. 그리고 그게 김세준이 원하는 바였다.

아티스트로서 굳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필요가 없었으니까.

***

대국민 인사가 끝나고 공연단은 북한으로 출발했다.

국적기인 코리아나 항공이 보유한 최신 기종인 보잉 737-9GP.

예술단과 국가 관료들이 탑승한 일등석에서 김세준의 시선이 향한 건 동료 가수들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장태석이었다.

‘저 사람이 장준 아버지...’

지금은 아직 장관이지만.... 먼 미래엔 국무총리까지 올라가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 사람, 가수를 딴따라고 생각하는 늙은 꼰대 중 한 명이거든.

그런 사람이 이런 공연 프로젝트에서 총 책임자로 발탁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

기자들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이야기를 마치고, 김세준에게 다가왔다.

“컨디션은 괜찮습니까?”

“네. 다행히 뭐...”

그의 접근을 예상 못 했던 김세준이 떨떠름하게 답했고, 장태석이 피식 웃곤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공연에서 김세준 씨의 무대를 제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 무대를요?”

가볍게 묵례하며 인사를 그의 빈말에 답했다.

가수를 딴따라라 생각하는 그가 자신을 좋게 봐줄 리 없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이어진 예상외의 답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아니라, 북한에서요.”

“...”

북한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가리키는 사람은 한 명이리라.

달리 생각해보면 그 남자가 북한 그 자체이니,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뭐, 모쪼록 좋은 무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공연으로 북한과의 외교 관계에 큰 발전이 있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그의 말에 김세준은 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지었다.

***

평양으로의 비행은 단숨에 끝났고, 북한 도착을 알리는 기장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했다.

그동안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침묵이 맴돌았다.

비행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래퍼 콰인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의 눈동자에도 긴장한 여력이 가득했다.

그리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비행기에서 나오고, 들어선 북한의 공항.

관계자를 따라 평양순안국제공항의 내부를 걷는 모든 이들의 고개가 좌우로 쉼 없이 움직였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선 풍경.

그리고 아마 자신이 살면서 두 번 다시는 못 볼 공항의 모습이었기에 다들 조심스럽게, 공항을 구경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항 활주로의 모습은 한국하고 큰 차이가 없지만.

공항 너머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민둥산과 자신들을 보며 기쁨과 설레는 눈빛이 아닌 묘한 눈빛을 보이는 공항 직원들이 여기가 북한이란 사실을 여실히 알렸다.

***

북한에 도착한 이후로, 시종일관 긴장감 가득했던 공연단 사람들은 호텔에 당도하자 그나마 긴장이 풀렸는지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김세준을 비롯하여 비슷한 나이의 남자 가수들이 그의 방에 모여 잠들기 전 담소를 나눴다.

관계자를 통해 구한 북한이 자랑하는 대동강 맥주를 곁들이면서.

“어우... 이제야 긴장 좀 풀리네.”

“그래? 난 아직도 그대론데. 아까 저녁 괜히 먹었나 봐. 조금 얹힌 거 같은데.”

래퍼인 콰인과 발라드 가수인 성민의 말.

그 둘과 세현과 김세준. 총 네 명의 남자가 방에 모여 남자들끼리의 우정을 다지는 중이었다.

“어우. 나도 솔직히 밥이 잘 넘어가진 않더라.”

“솔직한 심정으론 빨리 다시 한국으로 가고 싶다. 앞으로 이틀은 더 있어야 하는데. 긴장해서 있을 수가 있나.”

이번 공연은 총 이틀간 이루어졌다.

당장 내일은 남한만의 공연으로 이루어지고, 내일모레는 남북한 합동 공연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국으로 귀국.

“세준이 너는 좀 괜찮아 보인다?”

성민이 맥주를 홀짝이던 김세준에게 물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떨려요. 솔직히 여기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이곳 아닙니까.”

김세준의 경우야 이번 공연이 무탈하게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나마 나았지, 아마 그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심정이었으리라.

“그래도 내일 공연은 좀 더 낫죠. 내일 모래보단...”

묵묵히 듣고 있던 세현의 말.

그의 말에 콰인과 성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내일모레다.

남북한 합동 공연이라는 상징도 있지만,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그 남자가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그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었으니까.

항상 텔레비전을 통해 보던 독재자의 모습.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공연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질 게 분명했다.

“내일은 그래도 내일모레보단 분위기가 가볍겠지?”

“그렇지 않을까?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도 김정은 빼면 다 그냥 평범한 북한 사람들인데. 그냥 관객이다, 생각하고 공연하면 긴장도 덜 되겠지.”

콰인과 성민의 말. 그리고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세현까지.

그런 세 남자를 보며 김세준이 자신이 아는 미래를 내뱉을까 고민에 잠겼다.

그들이 유일하게 얼굴은 아는 북한 남자.

그 남자가 계획과 달리 내일 자신들의 공연을 보러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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