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66화 (66/148)

#66

같은 마음

“그...그래미 어워드?”

김세준이 에드 케인의 말에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

전 세계에서 가장 위상 높고, 권위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시상식.

더 나아가 EGOT라고 불리는 미국 대중문화계의 그랜드 슬램 클럽에 포함된 어워드다.

애미(Emmy), 그래미(Grammy), 오스카(Oscar), 토니(Tony),

그래미는 이 중에서 음악 관련 분야에 주어지는 상으로, 대중음악에 종사하는 인물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 중 하나.

김세준이 신인상을 받았던, 아시안 뮤직 어워드하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나 위상이 남다른 시상식이었다.

김세준의 떨리는 목소리에 에드 케인이 놀리듯 말을 뱉었다.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놀라는데? 물론 시상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야. 단순히 내 무대에 피쳐링으로 올라서는 거지. 그 정도로 놀랄 필요는 없어.”

‘그건 너 같은 미국인들한테나 해당하는 말이겠지.’

미국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에드 케인에게 그래미 어워드는 어쩌면 매년 열리는 평범한 시상식일 수도 있으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김세준에겐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미 이야기는 끝난 건가?”

김세준이 떨리는 감정을 재빨리 추스르며 물었다.

“음.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걱정하지 마. 이미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하고 이야기 끝났어. 오히려 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아카데미 쪽이야. 알잖아. 요새 그래미가 이쪽 관련 문제로 말 많다는 거.”

‘오호. 이번 년 도는 좀 신경 쓰겠다는 건가?’

에드 케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미 어워드가 오랫동안 받은 비난을 떠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상식인 만큼 많은 비판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인 인종차별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백인 가수에 비해 흑인 가수를 향한 유독 강하게 작용하는 잣대.

비단 인종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흑인 음악이라고 봐도 무방한 힙합 장르도 유독 힘을 못 쓰며, 이해할 수 없는 수상이 벌어지는 게 그래미 어워드였다.

물론 흑인 가수의 전설 마이클 잭슨은 그딴 거 없다를 외치며, 온갖 상을 휩쓸긴 했지만.

하지만 그 정도가 오죽했으면, 몇 년 전엔 백인 가수들까지 그래미 어워드를 비판하고, 보이콧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인종차별 문제가 끊이지 않던 그래미 어워드에서 먼저 자신을 섭외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낸 건, 자신을 이용하여 인종차별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수상은 아니더라도, 아시안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 그럴듯한 해답이 되지 않겠나.

자신을 정치적인 의도로 사용한다는 게 썩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긴 했다.

“그래서 대답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김세준의 말에 에드 케인이 씩 웃곤, 의자에 기대며 화제를 돌렸다.

“맞다. 그리고 제인이랑 저스틴의 제안도 거절했다며?”

“아, 에드 너한텐 미안하게 됐어.”

에드 케인이 다리를 놔준 건 확실했고, 분명 나쁜 의도를 가지고 소개해준 건 아닐 터. 괜히 그의 얼굴이 붉어지게 만든 거 같아 김세준이 사과를 했지만, 에드 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난 그저 너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줬을 뿐이야. 근데 거절한 이유가 뭐야?”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터. 김세준은 적당히 둘러댔다.

“글쎄. 너보다 부족한 가수들이라서? 너랑 하고 나니까, 웬만한 가수는 성에 안 차더라고.”

김세준의 농담에 핸드폰 너머로 에드 케인의 호탕한 웃음이 들렸다.

대충 농담 삼아 던진 말이지만, 에드 케인이 그 둘보다 나은 것도 사실.

도박 중독자이긴 했지만, 적어도 범죄자는 아니었으니까.

“크크. 잘했어. 제인이랑 저스틴이 나보다 부족하긴 하지. 네가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갖 저열한 말을 내뱉었으니까. 품격이 부족한 놈들이야.”

저열한 말이 어떤 말인지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기에 김세준은 그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러면 12월에 보자고. 정확한 일정은 나오면 다시 연락하지.”

“그래. 12월에.”

김세준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고, 김세준이 바람직한 미소를 지었다.

평양과 그래미 어워드에서의 공연.

얼마 남지 않은 올해지만, 제법 굵직한 이벤트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

“허어...”

“그래미 어워드라...”

에드 케인과 전화 이후, 김세준은 다음 날 곧바로 아레스 뮤직을 찾았고, 이해진과 하동준에게 그래미 어워드에 초대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해진과 하동준 둘 다 김세준의 말을 전해 듣곤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살다살다... 우리 회사 가수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볼 줄이야...”

하동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진심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비록 시상자로서 참석하는 건 아니지만, 공연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서울 스타일’도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하지 못했다.

비록 피쳐링이라도 한국인이 그 무대에 오른다는 건 두고두고 회자 될 큰 업적이나 다름없었다.

“대단해. 축하한다. 세준아.”

이해진은 비교적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김세준을 향해 은은한 미소와 함께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가수로서 그런 큰 시상식 무대에 오른다는 건,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

김세준이 그런 축복을 받았다는 게 자기 일처럼 기쁜 그였다.

“감사합니다. 다 사장님과 부사장님 덕분입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게, 둘의 힘이 적지 않다는 걸 알기에 김세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빈말은. 이번엔 보도자료도 크게 뿌려줄게. 저번엔 너무 급해서 아무것도 못 해줬으니까.”

하동준이 김세준의 인사를 손으로 휘저으며 받곤, 생각에 잠겼다.

저번 에드 케인의 피쳐링은 급하게 진행되어 아무것도 못 해준 게 사실.

내심 마음이 쓰였던 그때의 일을 보답하기 위해, 하동준은 이번 일은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충, 기사 제목으론 가야금이 그래미 어워드에 울리다... 뭐 이런 식이 좋겠네.”

스스로 말해놓고도 뭔가 뭉클한지, 하동준의 얼굴이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변했다.

한국인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하는 것도 기념할만한 일이지만 김세준의 경우엔 좀 더 특별했다.

가야금이란 한국의 악기가 세계 중심에 무대에서 연주되는 것이니까.

지난 몇 년간 그래미 어워드의 평균 시청자가 대략 이천만 명.

대한민국 인구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김세준의 가야금 연주를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뜻이다.

이미 에드 케인의 노래로 가야금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

그런 와중에 이번 그래미 어워드 무대는 가야금의 매력을 한 번 더 알릴 큰 기회이기도 했다.

비록 4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중 10%만 가야금의 매력에 빠진다 하더라도 이백만 명이란 숫자였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진다.’

김세준이 자신의 꿈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꿈.

가야금이 전 세계에 사랑받는 악기가 되었으면 하는 오래된 바램.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쁜 그였다.

미소 지으며 기뻐하던 김세준의 시선이 우연히 이해진의 책상 위로 향했다.

정확히는 이해진의 책상 위 놓인 캘린더에.

스케줄로 빼곡히 적인 그 달력에 김세준의 눈길을 끄는 일정이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 예은이 마지막 녹화였어?’

첫 음반 이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이예은은 음악 방송에 고정 MC로 출연하는 중이었다.

“예은이 음악캠프 다음 주가 마지막 녹화에요?”

넌지시 묻는 김세준을 향해 하동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제작진들 평가도 괜찮고, 팬들도 좋아하는데 예은이가 조금 쉬고 싶나 봐. 몇 개월 안 해서 조금 아깝긴 한데, 그래도 다음 활동을 위해서 휴식기를 가지는 것도 괜찮으니까. 예은이 정도면 휴식기 가져도 팬들 이탈이 크지도 않을 거고.”

‘음...’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이 저번 만남을 떠올렸다.

그 이후로 아직도 곡을 전해주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찾아가 볼까?’

마지막 방송을 축하해줄 겸 그리고 곡도 들려줄 겸 방송국 들릴 생각하는 김세준이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괜찮은 핑곗거리였다.

***

다음 주 화요일이 되자, 김세준은 이주성과 함께 CBS 방송국을 찾았다.

오랜만에 이주성의 편안한 운전을 만끽하며 김세준이 이주성에게 넌지시 물었다.

“요새, 예은이는 좀 어때?”

“예? 예은이요? 아! 제가 봤을 땐 평소와 별다른 건 없어 보였습니다.”

이주성이 그의 질문에 의아해하다가 제법 심각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 근데 요즘 한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있긴 합니다.”

“골치 아픈 일?”

그의 물음에 이주성이 신음을 삼키며 머뭇거렸다.

아무리 김세준이라지만, 예은이와 관련된 사적인 문제까지 이야기해도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면 됐고.”

“아, 아닙니다. 사실 별 건 아니긴 한데... 요즘 예은이가 인기가 많아서 조금 곤란한 거 같습니다.”

“응? 인기가 많으면 좋은 거지, 그게 왜 곤란해?”

다른 가수들이 들으면 욕을 한 바가지로 먹을 만한 말에 김세준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고, 이주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게 팬들이 아니라... 남자 연예인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문제입니다...”

“...!”

“관심 가지고 들이대는 동료들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를 조금 받는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계속 얼굴 보며 지낼 사람들인데, 얼굴 붉히는 일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이주성의 말에 김세준이 눈동자가 커졌고,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예은이 정도면 많을 만하지...’

웬만한 아이돌들은 그냥 압살하는 수준의 외모. 그리고 20대 초반의 나이. 게다가 소속사 자체가 연예에 대해서도 관대한 아레스 뮤직.

남자 연예인이 그녀를 보며 흑심을 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고, 김세준은 그럴 수 있다며 자신을 이해시켰다.

하지만 이주성의 말을 듣고 난 후, 괜히 마음 한구석이 언짢아지는 것도 사실.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CBS 방송국 스튜디오에 도착했고, 김세준은 이주성이 주차하는 사이 먼저 이예은의 대기실로 향했다.

‘괜찮겠지?’

그 날 이후로 실제로 보는 건 처음.

괜히 어색할까 걱정이 들긴 했지만, 이내 그 걱정을 떨쳐버렸다.

이런 마음은 괜히 신경 쓰면 쓸수록 더욱 커지는 법.

어색한 티 따위 내지 않고, 평범하게 대하면 괜찮으리라.

그런 생각과 함께 어느덧 도착한 이예은의 대기실 앞.

김세준이 심호흡을 깊게 하고, 대기실 문을 두들긴 후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마자 보인 풍경. 그 풍경에 김세준이 놀란 나머지 순간 움찔했다.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예은과 4명의 남자.

아까 이주성에게 들어서일까.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녀에게 흑심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마지막 방송을 축하해주러 온 거겠지.

‘아아...’

그리고 순간 김세준은 며칠 전 찾아온 이예은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브라이니’와 함께 작업하기로 했던 날, 자신을 찾아온 이예은의 심정을.

그녀도 아마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마치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가슴 아픈 통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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