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65화 (65/148)

#65

섭외

'명곡의 대결'이 방송에 나온 다음 날.

김세준은 오랜만에 SY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자신의 앨범을 피쳐링할 또 한 명의 인물, 세현에게 곡을 들려주기 위해서.

“형. 잘 지내셨죠?”

“잘 지냈지. 너는?”

오랜만에 만난 세현을 향해 김세준이 웃으며 묻자,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뭐. 근데, 곡은 그냥 파일로 보내드려도 되는데, 굳이 힘들게 오셨어요,”

“그냥. 겸사겸사. 오랜만에 네 얼굴 보는 것도 좋잖아.”

그의 말에 세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통성명하기 전엔 그의 음악을 듣고 좋아했다면, 지금은 그의 이런 점이 좋다.

사소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배려가 몸의 베인 그의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

‘신기해.’

고작 몇 살 차이 안 나는 형이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볼 땐 자신보다 열 살은 더 먹은 듯한 연륜이 느껴졌다.

“일단 카페 가서 이야기할까?”

김세준의 말에 세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SY 엔터테인먼트 내부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음료를 시킨 후 김세준이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려놨다.

“곡 들어보고 어떤지 알려줘. 별로면 곡 새로 수정할 테니까.”

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수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긴 하지만, 솔직히 안 들어봐도 크게 상관없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꼭 고기를 먹어봐야 그 맛을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미 그와 함께 작업도 해봤고, 그가 발표한 곡들을 수십 번 들어본 사람으로서 이번 곡도 분명 클라스가 남다를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세현의 모습을 본 김세준이 노래를 틀었고, 이내 연결된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새로운 멜로디.

묵묵히 듣던 세현이 노래를 듣기 전, 떠올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번 곡도 같이 작업했던 ‘하여가’처럼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곡이었다.

“너무 좋은데요?”

이어폰을 빼며 세현이 작은 웃음과 함께 감탄을 뱉었다.

어떻게 그가 만든 곡은 실패가 없는 걸까.

“그럼 도와줄 거지?”

“당연히 해야죠. 아 맞다 형. 형한테도 왔어요?”

세현이 불현듯 떠오른 한 생각에 급히 화제를 바꿨다.

“응? 뭐가 와?”

뜬금없는 세현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세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목을 앞으로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알렸다.

“그... 북한이요...”

“아... 세현이 너도?”

김세준이 탄식과 함께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세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한테도 왔나 보네요.”

“응. 잘됐네. 아는 사람 없을까 고민했는데.”

태평한 김세준의 말에 세현이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형은 걱정 안 돼요?”

“걱정? 걱정할 게 뭐가 있어. 그냥 다른 공연이랑 똑같은 거지. 오히려 재미있을 거 같은데. 북한 주민들은 공연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대범한 그의 말에 세현은 어이가 없었다.

북한에서의 공연. 두 번 다시는 못해 볼 경험이란 걸 알기에 장고(長考) 끝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이 불안하고, 겁나는 건 사실.

그런 마음을 김세준과 대화하며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이야기를 꺼넸는데...

자신 앞에 있는 이 천재는 자신과 달리 그런 불안감 따윈 없어 보였다.

***

세현에게 곡을 준 뒤로, 김세준은 이진아와 장준에게도 피쳐링 제안을 건넸고, 둘은 곡이 나오지 않아 듣지 않았음에도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준의 경우엔 오히려 고맙다며 자신의 양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었다.

미튜브 공연 이후 자신감을 되찾은 그지만, 아직까진 무명의 가까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그였으니,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 가긴 했다.

“흐음. 이제 남은 사람은 둘인가.”

회사 녹음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김세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예은과 에드 케인.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 에드 케인이야 곡만 좋으면 피쳐링은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 큰 걱정은 없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곡을 쓸 자신은 있었으니까.

“문제는 예은인데...”

저번 사건 이후로 무언가 서먹해진 분위기.

연락이 끊긴 건 아니지만, 무언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게 내 김칫국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스스로 눈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요즘은 조금 더 눈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예은이 자신을 대하는 감정.

평범한 감정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건 진작에 눈치챘다. 하지만 그게 자신을 은인으로서 여기는지, 아니면 이성으로서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지 그 모호한 경계를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괜한 설레발일 수도 있고, 일단 내 감정조차 모르겠다...”

이예은의 마음을 모르겠는 것처럼, 김세준은 스스로의 마음도 아직 뚜렷하게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자신이 이예은을 가수로서 좋아하는지, 아니면 한 여자로서 좋아하는지.

그녀의 팬으로 살아간 기간이 무려 20년을 훌쩍 넘긴다. 그녀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팬심인지, 아니면 사심인지 쉽게 단정 짓기 어려웠다.

“일단 곡부터 작업하자.”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예은과 관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오늘은 ‘브라이니’와 녹음 작업이 있는 날.

피쳐링을 맡기로 한 다른 가수들이 바쁜 것에 비해 ‘브라이니’는 슬프게도 한가했고, 이 틈을 타 김세준은 그녀들과의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회사 녹음실로 도착하자 ‘브라이니’는 이미 송대준과 녹음 작업이 한창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세준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녹음 중인 줄리아를 제외하고 다른 맴버들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김세준도 꾸벅 고개를 숙여 그녀들에게 인사 후, 녹음 중인 줄리아를 바라봤다.

‘확실히... 잘해.’

메인 보컬이 아닌, 서브 보컬임에도 그 실력이 썩 나쁘지 않다.

비단 줄리아뿐만이 아니라, ‘브라이니’자체가 실력이 모난 편이 아니다.

연아는 ‘명곡의 대결’에서 2주 연속 우승했을 정도의 실력자고, 다른 맴버들도 기본 이상은 하는 걸 그룹.

이미 그들의 몇 안 되는 팬들이 올린 직캠과 음원으로 확인했던 그지만, 막상 녹음을 보니 다시 한번 확신이 생겼다.

“어? 오셨어요?”

줄리아의 녹음이 끝나고, 송대준이 의자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곤 김세준을 반겼다.

“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은요. 세준 씨처럼 녹음 자주 하는 사람도 드문데.”

노력가.

요즘 이 단어만큼, 김세준을 설명할 때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어쩌면 천재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아무리 천재여도 게으르고, 나태하다면 김세준만큼의 활동량은 보여줄 수 없었으니까.

올 한해만 하더라도 EP 앨범 네 곡. 단심가와 하여가. 그리고 이예은의 곡. 거기에 에드 케인의 곡까지.

벌써 미친듯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는 그인데, 여기에 멈추지 않고 정규 앨범 작업까지 시작한 그다.

그런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보여주는데, 또 곡이 기가 막히게 좋다.

그동안 발매했던 곡들은 물론이요, 오늘 녹음하고 있는 이 곡도 처음 듣고 얼마나 감탄했던가.

게다가 평소 김세준이 작곡하던 곡들과는 다른 느낌.

일렉트로니컬한 음악을 만드는데에도, 재주가 있는 그다.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의 뛰어난 재능에 송대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년엔 더 자주 찾아뵐게요.”

김세준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고, 고개를 젓던 송대준이 순간 움찔했다.

그동안 김세준의 행보를 봤을 때, 방금 그 말이 농담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아레스 뮤직 프로듀서인 자신도 더욱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뜻.

“내년엔 좀 쉬시는 것도...”

지금도 하루하루가 빡빡할 지경이다. 송대준이 울상을 하며 말하자, 김세준이 피식 웃곤 그의 귀에다 작게 속삭였다.

“그나저나 어떤 거 같아요?”

‘브라이니’에게 안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인 김세준의 말에 송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던데요? 걸 그룹 치곤 발성이나 호흡이 나쁘지 않아요. 감정 표현도 괜찮고. 솔직히 노래 실력 따지고 봤을 땐, 왜 아직 무명인지 이해가 안 가네요.”

“음.”

자기 생각과 일치한 송대준을 보며 더욱 깊어지는 확신.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고, 송대준이 처음엔 의아해하다가 이내 신경을 껐다.

“오신 김에 세준 씨 녹음 바로 들어가죠.”

“예.”

김세준이 대답과 함께 녹음 부스로 향했고 이내 시작된 녹음.

“...!”

김세준의 녹음을 가만히 지켜보던 ‘브라이니’ 맴버들의 두 눈에 놀라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우와...”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김세준의 목소리.

평소 노래를 부르는 김세준의 목소리는 거칠다. 그래서 사실 이런 발랄한 노래에 잘 어울릴까 내심 고민했었다.

하지만 방금 김세준의 노래를 듣는 순간, ‘브라이니’ 맴버들은 그런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달았다.

거칠지만, 따뜻한 음색이 담긴 그의 목소리.

오히려 평범한 다른 사랑 노래보다 조금 더 독특한 느낌이 사뭇 들었다.

“잘하네요...”

“응. 진짜 잘한다...”

녹음 부스안에서 열창하는 김세준의 모습.

그런 김세준을 보며 맴버들이 작게 중얼거리며 김세준을 향해 경외감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시선 속, 한 사람의 시선만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부드러웠다.

***

‘브라이니’와의 녹음을 마무리한 김세준은 이어서 에드 케인에게 줄 곡을 작업하는데, 온 힘을 다했고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물에 곧바로 에드 케인에게 곡을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곡을 보낸 지 하루가 지났고 김세준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하다 에드 케인에게 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킴?”

“맞아. 에드.”

“오! 영어가 늘었네?”

능숙한 목소리로 답하는 김세준을 보며 에드 케인이 놀라움을 표했다.

통역이 필요했던 처음과 달리, 제법 능숙해 보이는 김세준의 영어.

“뭐, 그 뒤로 공부했으니까. 그나저나 어때?”

김세준의 물음에 에드 케인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미칠 정도로 좋아! 마음 같아선 돈을 주고 그 곡을 내가 사고 싶을 정도로!”

멜로디나, 코드. 세션을 포함해 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는 곡.

듣자마자 진심으로 감탄했고, 바로 김세준에게 전화를 건 에드 케인이었다.

그런 에드 케인의 반응에 김세준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좋아! 그럼 에드. 언제쯤 한국으로 올 수 있어?”

“잠깐! 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음. 자네한테도 나쁜 조건은 아니야. 들어준다면 나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녹음하러 한국으로 갈게.”

‘음...’

김세준이 순간 고민에 잠겼다.

조건이라. 뭔가 심각한 느낌은 아닌 듯했다. 지금 이야기를 꺼넨 에드 케인의 목소리가 심각하기보단, 무언가 장난치듯 가벼운 느낌이었다.

“뭔데? 말이라도 해봐. 이상한 조건이라면 불가능이야.”

“크크. 일단 연말에 스케줄은 무조건 비워놔.”

“연말 스케줄을 벌써?”

아직 9월인 지금.

연말까진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연말에 스케줄을 비워두라고?’

순간 에드 케인의 말에 김세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추측.

연말이라면 연예인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다.

각종 시상식이 벌어지는 시기이기 때문.

“설...설마?”

김세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에드 케인이 작게 웃으며 그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꿨다.

“그래미 어워드.”

“...”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고 권위 있는 그 시상식에 나와 함께 가자고. 킴. 그게 내가 한국으로 자네의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갈 조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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