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59화 (59/148)

#59

모성애

수호가 ‘쇼미’ 시즌 6의 우승자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 수호가 가지고 있던 뛰어난 랩 실력.

그리고 트루비가 만든 기가 막힌 명곡.

마지막으로 예상외로 힙합과 잘 어울린 김세준의 피쳐링.

삼박자가 고루 갖춘 무대였고, 수호는 시즌 6 동안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구백만 원이라는 역대 공연비 최고 금액을 받으며 당당히 우승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무대를 생생하게 바라본 현장 관객들은 물론, 방송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까지 수호의 우승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우승 소감을 내뱉는 수호를 김세준이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원래 미래라면 피쳐링을 맡은 가수의 실수로 아깝게 우승을 놓치는 그다.

그런 만큼 자신이 그의 우승에 한몫 보탰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했다.

우승 소감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끝났고, 수호가 김세준에게 다가와 허리를 크게 숙였다.

“형! 감사합니다!”

“축하해! 이제 아이돌 딱지 뗄 수 있겠네.”

“흐흐. 그 딱지 떼려고 이렇게 고생했네요.”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아이돌이란 편견 때문에 제법 마음고생을 했던 걸까?

수호의 모습이 제법 속 시원해 보였다.

“아, 형! 뒤풀이 가실 거죠? 제가 쏘겠습니다.”

“가야지. 수호 너하고 이야기할 것도 있고.”

“이야기요?”

“그건 가서 말해줄게. 트루비형들도 가지?”

“네. 무조건 모셔야죠.”

“알겠어. 있다 봐.”

김세준의 말을 마지막으로 수호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떠났고, 김세준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도와줬는데, 수호도 도와주겠지.’

자신의 다음 앨범.

수호를 또 한 명의 피쳐링 맴버로 점찍어놓은 상태였다.

자신도 결승 무대를 도와줬는데, 그도 기꺼이 도와주겠지.

게다가 결승전에서 맞춰본 합이 얼마나 좋았던가.

‘그리고 트루비형들 한테도 곡 하나만 달라고 하고.’

김세준이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한 번 검증된 네 남자의 조합.

그 조합을 앨범에서 다시 재연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간 뒤풀이.

그 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들어간 수호와 트루비는 김세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

‘쇼미’ 무대가 끝나고 김세준은 오랜만에 본가를 찾았다.

“오랫동안 못 찾아뵙긴 했지.”

연초에 찾아뵈고 그 뒤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다.

실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지만 그게 자신의 불효가 합리화되진 않기에 김세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쯤 효자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저 왔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김세준이 큰소리로 외치자, 부엌에서 어머니인 박진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엄마 아들이요.”

“우리 집은 자식 없는데?”

‘어이쿠.’

박진숙의 대답에 김세준은 어머니가 단단히 뿔이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도마 위 대파를 다듬고 있는 박진숙.

거친 칼질에 감정이 담겨 있는 건 기분 탓일까.

김세준이 박진숙의 뒤로 다가가, 어머니의 손에서 칼을 빼곤 어머니를 껴안았다.

“죄송해요.”

“불효막심한 놈! 하나뿐인 아들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텔레비전으로 봐야 알아야 해?”

“전화는 자주...”

“시끄러!”

말은 거칠지만, 아들의 포옹에 그간 쌓인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진 박진숙이 이내 미소지으며 아들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반쪽은. 엄마 얼굴이 반쪽이 됐지. 요새 다이어트해요?”

“다이어트는 무슨, 요새 살만 뒤룩뒤룩 찌고 있는데.”

박진숙과 김세준이 모자지간의 정을 쌓는 동안, 김창용이 안방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왔어? 웬 인삼이냐?”

부엌 탁자 위에 놓인 홍삼을 발견한 김창용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자 김세준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보이지도 않으세요?”

“왜 안 보여. 잘만 보이는 구만. 오. 이거 천급삼이네?”

‘아빠도 서운한 가 보네.’

괜히 퉁명스럽게 말하는 김창용을 보며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표현은 안 해도 김창용 또한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내심 미운 모양이었다.

그나마 자신이 들고 온 인삼을 보고 얼굴을 씰룩거리는 게 그나마 기분이 조금 풀어진 거 같아 다행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얼른 씻고 와. 밥 다 되어가니까.”

박진숙의 따뜻한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욕실로 향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자, 식탁 위에 한가득 차려진 음식이 그를 반겼다.

백숙과 갈비찜. 박진숙의 손맛이 담긴 김치와 잡채를 필두로 각종 밑반찬이 깔린 밥상.

잔칫상을 방불케 하는 식탁에 김세준이 군침을 흘렸고, 김창용이 숟가락을 들자 식사가 시작됐다.

“아. 맞다. 아들.”

“네.”

살코기 가득한 갈비찜 하나를 우물거리며 김세준이 답했고, 김창용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팬 미팅 때 받은 산삼은 어쨌어?”

“아... 그거 아직 집에 있죠.”

김창용의 물음에 김세준이 자신이 그래도 부모님에게 꾸준히 연락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별의별 이야기를 다 말씀드렸구나.

“먹은 건 아니고? 산삼이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던데. 쓸 대 없으면 아빠한테 양보하는 건 어떠냐? 요즘 둘...”

“밥상 앞에서 징그러운 소리 마요!”

김창용의 농에 박진숙이 눈을 치켜뜨며 숟가락으로 식탁을 내려치자, 김창용이 금세 꼬리를 내렸다.

“크흠. 그래. 장난이야. 근데, 요즘 만나는 여자는 없고?”

부모에게 자식의 연애는 언제나 궁금한 법.

박진숙도 아들을 힐끔 쳐다보며 관심을 표했고,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작업하느라 진짜 바빠요. 연애할 틈이 어딨어요.”

그의 말에 김창용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넌지시 조언했다.

“그래도 남들 하는 건 하고 살아야지. 연애도 젊을 때 많이 해봐야 나중에 결혼해서 부인 속 안 썩인다.”

“네. 알겠습니다.”

김창용의 말에 김세준이 미소지으며 답했고,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한 여성이 떠올랐다.

‘허어. 내가 무슨 생각을.’

순간 떠오른 여성의 얼굴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워버리는 그였고, 박진숙이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준아.”

“네. 엄마.”

“엄마는 서운해.”

“예?”

자신이 오랜만에 찾아온 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계신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어진 박진숙의 말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너 언제쯤 엄마 관련된 노래 불러줄 거야?”

“네? 아...”

자신을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박진숙.

김세준이 올해 초에 왔을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심청가’를 듣고 아버지를 질투하고 시샘하던 그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향해 모성애와 관련된 노래도 작업한다고 이야기했었지.

“아... 그게.”

“널 키운 건 엄마야. 네 아빠는 아무것도 안 했어.”

질투에 눈먼 박진숙의 말에 김창용이 어이가 없어 바로 반박을 내뱉었다.

“아니, 여보. 또 말을 그렇게...”

하지만 그의 반박은 눈꼬리가 하늘 높게 솟구친 박진숙의 얼굴을 보곤 금세 사그라졌다.

“음. 난 한 게 없지. 아무렴.”

꼬리 내린 김창용을 잠시 안쓰럽게 쳐다본 김세준이 박진숙을 어르고 달랬다.

“올해, 아, 아니 내년, 내년 안에는 낼 수 있도록 해볼게요.”

그의 말에 박진숙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기는. 내 모닝콜이랑 컬러링이 심청가인데 네 엄마가 얼마나 부러워하는 줄 모른다.”

김창용의 말에 박진숙이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타박했고, 김세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관점에서야 충분히 서운할 수 있을 터.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유치해지는 면이 있지 않나.

아마 어머니로선 아버지가 세상 그 누구보다 부러웠을 거다.

‘흐음. 한 번 고민해봐야겠네.’

김세준이 생각을 마치고, 다시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박진숙의 진수성찬.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가야 후회하지 않으리라.

***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건 이해진이었다.

“어쩐 일이야?”

밝은 웃음과 함께 그를 반기는 이해진이었고, 김세준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사장님. 저한테 들어오는 제의 엄청 많다고 하셨죠?”

“응? 엄청 많지. 네가 다 거절해달라고 해서 거절 놨긴 했지만.”

원래도 섭외 제의가 폭풍처럼 쏟아지던 그였다. 워낙 방송 활동을 드물게 하는 친구다 보니, 방송국에선 그를 섭외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중이었다.

그랬던 그가, 에드 케인의 노래를 피쳐링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주며 화제가 됐다.

당연히 방송국에선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고, 이해진에겐 면식 있는 예능 PD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번 올 정도였다.

이해진이 개인적으로 욕심 나는 섭외 제의도 몇 개 있었지만, 정규 앨범 제작에 집중하겠다는 김세준의 뜻을 존중하여 모든 섭외를 거절했다.

물론 아직도 구애를 보내는 곳이 수두룩하긴 했지만.

이번에 ‘쇼미’를 나간 것도 방송국 사이에선 큰 화제가 됐다고 들었다.

“혹시, 괜찮은 예능 하나 잡아주실 수 있을까요? 음반 낼 수 있는.”

“오. 생각이 바뀐 거야?”

이해진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앨범 제작이 조금 늦춰지긴 하겠지만, 방송 하나 정도는 큰 차이가 없을 터.

그가 생각을 바꾼 이유.

어머니인 박진숙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올해 앨범에 넣기는 힘들 거 같고. 방송을 이용해서 음반 내는 게 최선이지.’

게다가 자신도 모성애와 관련된 노래를 아예 낼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어머니에게 큰 효도 한 번 해드리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흠. 보자···.”

이해진이 김세준의 말에 턱을 괴곤 생각에 잠겼다.

최근 그에게 들어온 방송 섭외 중 음반을 낼 수 있는 예능이 뭐가 있을까···.

“아! 세준이 너, 그거 알지? 명곡의 대결. 그쪽에서도 계속 너한테 섭외 제의가 들어오고 있긴 한데.”

“아, 알고 있습니다.”

명곡의 대결.

세상을 호령했던 명곡들을 리메이크하여 가수들끼리 경쟁하는 프로그램.

방송날짜 기준으로 10년 전에 나온 노래로, 화마다 약 5명의 가수가 나와 승부를 가렸다. 우승자는 패배할 때까지 계속 방송에 출연하고, 5번 이상의 승리를 하면 연말에 있는 최강자전에 진출하는 시스템.

자신과 함께 배진구구 선생님의 ‘연꽃’을 리메이크했던 이진아가 출연하여 3번의 우승을 경험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거 좋은데요? 근데, 전 우승해도 계속 출연할 생각이 없는데.”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김세준이라면 충분히 내뱉을 자격이 있는 말이다.

이해진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방송국에 미리 양해 구하면 그쪽에서도 허락할 거야. 이미 그랬던 전적이 몇 번 있어.”

지금 김세준은 예능 PD들에게 있어 철저한 갑이다.

이미 전례가 있는 상황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게 분명했다.

“좋네요. 그럼 명곡의 대결에 출연하겠습니다.”

“알겠어. 그쪽이랑 이야기하고 주성이 통해서 연락해줄게.”

이해진의 말에 김세준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뒤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기대하세요. 어머니.”

사무실을 나오며 김세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사랑이라...”

감히 자신이 표현하기도 어려울 지고한 사랑.

하지만 김세준은 박진숙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생각했던 노래 하나가 있었다.

자신과 엄마가 공유하는 추억이 깃든 노래.

“엄마한테 드디어 효도 한 번 제대로 하겠네.”

김세준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곡을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자신이 이번에 부를 노래.

어머니는 분명 만족하시리라.

그리고 전국에 있는 어머니들 또한, 이 노래를 들으면 감회에 빠질 게 분명했다.

자식을 둔 어머니라면, 이 노래를 안 불러본 적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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