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57화 (57/148)

#57

새로운 시도(2)

김세준의 예상대로 ‘태조 이성계’에서 나온 그 장면은 사람들에게 감명 깊게 다가왔다.

실시간 검색어가 ‘태조 이성계’와, 정몽주 그리고 이방원, ‘하여가’와 ‘단심가’로 가득 찼고 동시에 김세준과 세현의 대한 칭찬도 끝없이 이어졌다.

[앞으로 사극 하면 OST는 무조건 이 두 노래 떠오를 듯.]

[인정. 드라마랑 너무 잘 어울렸음.]

[김세준 목소리 나오는데 순간 온몸에 소름 돋은 건 저뿐임?]

네티즌의 반응에 미소 짓던 김세준이었고, 이어서 음원 순위까지 확인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9위. 김세준 ? 단심가.

10위. 세현 ? 하여가.

“... 엄청 올랐네?”

기대 이상의 순위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기지 않아 눈을 껌뻑거렸다.

30위권이던 노래가 단숨에 10위권으로 진입했다.

그 장면이 방영된 게 이틀 전이었으니, 이틀 만의 행보치곤 상상 이상의 성과였다.

기껏해야 10위권에서 놀 줄 알았는데, 끝자락이긴 하지만 10위 안으로 들어오다니.

놀라움과 기쁨이 그를 먼저 찾아왔고, 이어서 작은 아쉬움이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그래도 여기가 한계겠지.”

정몽주가 죽은 이상, 자신의 노래가 드라마에서 들리는 날이 많지는 않으리라.

김세준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쉬움을 홀가분하게 털어냈다.

애초에 쉽게 공감하기 힘든 곡.

그런 곡으로 이 정도 순위까지 오른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자신을 위안하면서.

“오늘은 온종일 앨범 작업해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김세준이 오늘 하루 계획을 짤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문자를 본 김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

오늘 하루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할 계획이었던, 김세준은 계획을 철회하고 삼성역으로 향했다.

“형! 여기에요!”

역세권임에도 제법 한적한 카페.

미리 약속한 장소로 향하자,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하지만 그런데도 빛이 나는 외모를 가진 수호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뭐야. 뜬금없이 갑자기 도와달라니?”

“에이. 그건 핑계고 그냥 형 얼굴 한 번 보려고 그런 거죠.”

곰살궂게 말하는 그를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말투나 행동 가짐이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진짜로? 그럼 딱히 안 도와줘도 되겠네?”

“아... 그건 좀 곤란한데...”

수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크크. 일단 음료부터 시키고 올게.”

“아, 형. 제가 살게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대접해야죠. 뭐 드실래요?”

김세준이 일어나려 하자, 수호가 먼저 벌떡 일어나며 말했고, 김세준이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다시 앉았다.

“그럼,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김세준의 말에 수호가 카운터로 갔고, 잠시 후 커피를 들고 왔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뭐야?”

커피를 마시며 김세준이 물었고,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 커피 맛있네?

적당한 신맛이 있는 아메리카노를 쪽쪽 빠는 그에게 수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혹시 저 피쳐링 한 번만 해줄 수 있어요?”

“응? 피쳐링?”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눈치챘는지 짧은 탄성을 뱉었다.

“아! 쇼미?”

김세준의 탄성이 들렸고, 수호가 민망한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SHOW ME.

이 시기쯤에 유행했던 예능 플롯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다만, 가수가 아닌 래퍼들의 경쟁이란 플롯으로 제법 많은 인기를 끌었다.

“요즘, 쇼미 모르면 간첩이지. 네가 지금 세미 파이널 진출했잖아. 대단하네. 축하한다. 진짜로.”

김세준이 수호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했다.

수호 정도의 아이돌이라면 ‘쇼미’에 나가는 게 오히려 독이다.

이미 실력이 검증됐고, 인기 많은 아이돌로서,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 혹여 바로 탈락이라도 한다면 오히려 이미지가 깎여버리니까.

하지만 수호는 그런 위험요소까지 감수하며 ‘쇼미’에 나갔다.

실력을 비하하는 몇몇 안티팬들에게 실력을 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

도전정신만으로도 박수를 쳐줄 만 한데, 거기서 수호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중이었다.

그를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비교하며 깎아내리던 안티팬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아마 이번 쇼미에서 수호가 3등을 했나? 2등을 했나?’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일단 우승자는 아니었다.

‘아쉬운 결과였지.’

과거를 떠올린 김세준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우승하지 못한 건 그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었다.

피쳐링을 맡았던 래퍼가 무대 위에서 가사 절반을 절어버리는 대참사 일어났으니까.

미안함에 펑펑 우는 래퍼를 웃으며 위로하던 그의 모습이 유독 인상적이었지.

“네. 일단 당장 이번 주가 준결승이고, 다음 주가 이제 결승전인데... 세미 파이널은 솔직히 자신 있어요. 근데 결승전은 불안해서요. 믿음직하고 실력 좋은 분이 피쳐링 해주시면 이길 거 같더라고요.”

수호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김세준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같은 사람?”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그였고, 둘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 곡은 나왔거든요? 생각해보니까, 가야금이랑 이번 곡이랑 조합이 제법 괜찮은 거 같더라고요.”

“오호...”

수호의 말에 김세준이 눈빛을 빛냈다.

‘나쁜 제안은 아니지.’

가야금으로 뻔한 음악을 한다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다음 앨범은 색다른 음악을 준비하고 있던 그다.

그런 상황에서 수호의 제안은 김세준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다음 앨범을 내기 전에 맛보기로 새로운 모습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것도 괜찮은 시도가 아닐까.

‘랩이라...’

엄청 좋아하던 장르는 아니지만, 아이돌의 팬이었던 그로서 필연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던 장르.

‘게다가 앞으론 랩이 더 흥하는 장르가 될 거고.’

‘쇼미’의 인기는 시즌이 지날수록 더욱더 커지고, 래퍼들의 위상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날이 올라간다.

그런 랩의 위상을 생각해봤을 때, 이건 김세준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수호가 결승에서 부르는 곡이 보통 명곡이 아니었지.’

수호가 라이브에선 패자였지만, 음원에선 이번 ‘쇼미’에 승자였다.

그가 결승에서 부른 곡은 음원 차트에서 순식간에 1위를 찍으며 한동안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다.

‘이런 좋은 기회를 거절하긴 아깝지.’

생각을 마친 김세준이 씩 웃곤 수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김세준을 보며 수호도 씩 웃곤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을 굳게 맞잡으며 김세준이 다음 주를 떠올렸다.

‘다음 주면 에드 케인의 곡도 나올 텐데.’

에드 케인과 쇼미라...

다음 주는 아무래도 자신의 이름으로 꽤 시끄러워질 거 같았다.

***

수호는 그의 예상대로 준결승전에서 가뿐히 승리하며 결승전에 진출했고, 아레스 뮤직에서도 김세준의 피쳐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쇼미’ 결승 4일 전, 김세준이 피처링한 에드 케인의 곡 ‘Remember’가 발매됐다.

“후후...”

김세준이 미국 최대 음원 사이트인 ‘Spofy’에 접속한 후, ‘Remember’를 검색한 후 낮은 웃음을 흘렸다.

에드 케인이란 이름 옆에 괄호 안에 들어간 자신의 영어 이름.

“내 이름이 미국 음원 사이트에 등장한다라...”

이제 고작 발매한 지 한 시간.

당연히 아직 차트 안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에드 케인이란 이름이 가볍지 않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차트에 진입하는 건 순식간이리라.

그리고 차트에 진입하는 순간, 4억에 가까운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목소리와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뜻.

상상만 해도 짜릿한 전율이 흘렀고, 김세준이 한국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아직은 잠잠한 인터넷.

에드 케인의 곡 피쳐링이 워낙 급속도로 진행된 터라 보도자료 하나 뿌릴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대중들은 그가 에드 케인의 곡을 피쳐링했다는 사실을 몰랐고, 이제 몇몇 이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서서히 알려지리라.

“뭐 그래도, 내 이름 석 자만으론 큰 화제가 안 될 거야.”

미국 음원 차트에 한국인이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흔하진 않지만 없던 건 아니다.

그런 만큼 1위도 아닌 고작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론 엄청 화제가 되진 않으리라.

하지만.

“가야금이라면 다르지.”

김세준이 자신의 가야금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가야금.

한국인의 한과 얼이 담긴 이 악기가 미국 전역에 울려 퍼진다?

한국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전율이 흐를 게 분명했다.

“얼마나 걸릴까?”

낮은 웃음을 흘리며 김세준이 핸드폰을 침대에 두고, 욕실로 향했다.

***

정상진은 에드 케인의 오랜 팬이었다. 그의 첫 내한 콘서트 티켓팅을 성공했을 때, 기쁨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런 그가 이번 에드 케인의 새 앨범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우. 이제 나왔겠지? 어떤 곡일까.”

떨리는 감정을 가진 채, 들어간 미국 음원 사이트인 ‘Spofy’.

‘Ed Kane’이란 이름을 검색하자, 이번에 새로 나온 앨범이 보였다.

기대감으로 가득 찬 정상진의 눈빛.

“오오!! 타이틀 곡은 Remember라고? 피쳐링도 붙었....어?”

곡 제목을 읽고, 가수 명을 읽던 그의 눈에 에드 케인의 이름과 괄호와 Feat이란 글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이름을 읽던 정상진의 두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눈을 한 번 깜빡.

다시 한번 깜빡.

그래도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비볐다.

“김...김세준 맞지?”

영어로 적힌 Kim Sejun.

“김세준이 왜 여기서 나와?”

어처구니가 없어 절로 나오는 혼잣말이었고, 그가 재빨리 음원을 틀었다.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음원 내내 시종일관 울리는 가야금의 청량한 소리.

그리고 김세준 특유의 목소리가 그가 본 사실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렸다.

“...!”

순간 온몸에 돋는 소름에 정상진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쳤다. 이건 진짜 미쳤어.”

에드 케인이면 단숨에 빌보드 차트에 올라가리라.

그리고 이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올라간다는 건, 가야금의 소리가 4억 미국인들에게 들린다는 뜻이었다.

“어우. 빨리 알려줘야지.”

이 소름 돋는 사실을 재빨리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야 했다.

그런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쌓인 정상진이 재빨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하지만 이미 그보다 빠른 사람들이 있었다.

[님들. 이거 제 눈이 잘못된 것임? 이거 김세준 맞죠?]

한 사람이 ED KANE(Feat. Kim SEJUN)이라고 적힌 사진 하나를 커뮤니티에 올린 게 시작이었다.

[헐! 노래 들어보니까 맞네.]

[미쳤다. 공연 게스트하더니, 타이틀 곡까지 피쳐링 한 거임?]

[내가 살면서 가야금을 세션으로 쓰는 미국 노래를 들을 줄은 몰랐다. 레알로....]

그들의 반응은 포털사이트로, 그리고 더 나아가 기사로 퍼져나갔다.

[미국에 울리는 김세준의 가야금!]

[팝스타 에드 케인과 가야금의 조화!]

[에드 케인마저 홀렸다. 가야금의 음색!]

김세준의 예상대로 사람들은 김세준의 이름보다 가야금에 주목했다.

한국인들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악기.

한민족의 한과 얼이 담긴 악기가 미국에 널리 퍼진다는 사실에 대한민국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렁이는 건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음원 시장인 미국.

그곳에 가야금과 김세준의 이름이 작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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