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새로운 시도
“오. 이거 좋은데?”
김세준의 말에 이예은은 어리둥절했다.
‘응? 진짜로?’
눈을 부릅뜨고 미소 짓는 김세준을 보며 이예은이 놀라 물었다.
“오빠... 진짜 이 노래가 좋아요?”
평소 김세준이 작곡하던 장르가 아니다.
게다가, 이건 자신이 장난삼아 반쯤 건드려 본 노래다. 빈말로도 좋은 곡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인데...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는 조잡한 곡을 듣고, 좋다고 말하는 그가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응. 이거 맘에 들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세준이었고, 이예은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문했다.
“하지만, 이거... 일렉트로 팝인데요?”
일렉트로 팝(Electro Pop).
신스 팝(Synth Pop)이라고도 불리는 음악 갈래.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전자음으로 만들어지는 곡이다.
물론 전자음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을 크로스오버하여 곡을 만들 수 있지만, 김세준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선뜻 떠오르는 음악 스타일은 아니었다.
“괜찮아. 일렉트로 팝이든, 락이든 노래만 좋으면 그만이지.”
김세준이 회상에 빠져들며 미소지었다.
이 노래의 제목은 ‘....’
이예은의 미니 앨범 2집에 들어간 수록곡으로, 당시 이예은의 팬 중에서도 몇몇만 좋아하던 숨겨진 명곡이었다.
서정적인 발라드와 알엔비 위주로 부르던 이예은의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성공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운 노래.
‘그래도 노래는 좋았지.’
대중들이 기대하던 이예은의 노래와 부합하지 않아 사랑을 못 받은 곡이지, 이예은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겐 신선한 시도란 평을 받은 노래다.
기계음 중심으로 빠른 템포로 파워풀한 곡이면서도, 이예은 특유의 목소리가 더해져 감성적인 면모도 보였던 곡.
“오빠. 하지만 이 노래... 오빠하곤 진짜 전혀 다른 느낌이잖아요.”
이예은이 김세준을 보며 우려를 표했다.
이예은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김세준이 발표한 노래도 서정적인 게 대부분이다.
‘연꽃’. ‘심청가’. ‘봄바람’ 등 그를 대표하는 노래만 떠올려봐도 신나는 댄스 음악이 아닌,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들이었다.
그녀의 우려대로 이 노래는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하던 방향과는 사뭇 다른 곡이었다.
그런 이예은을 보며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사람들한테 그렇게 낙인 받는 게 싫어.”
이진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심정을 이제야 조금 이해했다.
발라드만 부르던 자신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연꽃’을 댄스곡으로 편곡하려던 그녀의 마음이.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굳혀지는 게 제법 무섭다.
감성적, 서정적인 노래만 부르는 가수.
이제 데뷔한 지 고작 2년 차인 그에게 붙는 꼬리표.
2년 차 임에도 이런데,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저런 이미지가 고착화될 게 훤했다.
‘더 늦기 전에 보여줘야지.’
‘김세준’이란 가수가 한계가 없다는 걸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뿐만이 아니라, 신나고 즐거운 노래로 대중들을 웃게 만드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걸.
‘게다가 내 한계가 나만의 한계가 아니지.’
김세준이 가야금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자신이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 가야금으로 그런 노래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과 동일한 의미였다.
“예은아. 난 이 노래가 좋은데. 줄 수 있어?”
이미 결심을 굳힌 듯한 김세준을 보며 이예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상관없어요... 근데 진짜... 괜찮으신 거죠?”
아직도 우려스러운지 조심스럽게 내뱉는 그녀였고, 김세준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하아...”
세현이 자신의 옆에서 깊은 한숨을 내뱉는 수호를 바라봤다.
“힘들어?”
“아, 아니야. 그냥 고민이 있어서.”
세현의 걱정 가득한 말에 수호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곤 했지만 세현은 수호가 받을 스트레스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그.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탈락하는 냉혹한 세계에서 아이돌이란 타이틀을 달고도 선방하는 그였다.
“왜? 세미 파이널 때문에?”
선방 수준이 아니구나.
벌써 준결승에 올랐으니까.
스스로 말하고 깨달은 세현이었고, 수호가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아니. 세미 파이널은 이미 곡도 확정 났고, 웬만하면 이길 거 같은데. 결승 때문에.”
“결승?”
“응. 프로듀서분들이 곡은 잘 만들어주셨는데, 피쳐링이 아직도 안 정해졌어.”
수호의 물음에 세현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를 입에 담았다.
“세준이 형은 어때?”
“세준이 형? 세준이 형은 좀 그렇지. 물론 실력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이 프로그램이랑은 잘 매치가 안 되잖아.”
“그런가? 난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어우. 세준이 형 빠돌이 자식.”
수호가 몸서리를 치며 징그러운 눈으로 세현을 바라봤다.
김세준이라면 불가능한 게 없다고 말할 자신의 친구다.
“아니. 나는 진심으로 어울린다 생각해.”
“응?”
진심으로 뱉는 세현의 말에 수호가 눕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아는 그는 진심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짜로?”
“응. 물론 난 잘 모르지만, 가야금이란 악기하고...”
세현이 검지를 턱에 갖다 대며 상상을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랩이란 장르와의 조합이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
“오. 제법 기대 이상인데?”
김세준이 음원 차트를 보며 감탄을 뱉었다.
이예은과 만남이 있고, 일주일 후.
드디어 자신의 노래인 ‘단심가’와 세현의 노래인 ‘하여가’가 음원으로 발매됐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의 이목을 잡았던 노래들이었고, 음원으로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중이었다.
35위. 김세준 - 단심가.
39위. 세현 - 하여가.
35위와 39위.
그동안의 곡들과 비교했을 땐, 제법 낮은 순위였지만 김세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취향도 타고, 공감받기 힘든 노랜데 이 정도면 선방이지.”
노래란, 자고로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노래가 끊임없이 나오는 건, 사랑 만큼 대중들이 공감하기 쉬운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들의 이번 곡 주제는 충(忠)이라는 감정.
현대 사회에선 쉽게 공감하기 힘든 감정을 소재로 만든 곡 치곤 선방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오늘을 기점으로 떡상할 수도 있지만.”
김세준이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엔 맥주와 마른안주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안방을 책임지던 ‘태조 이성계’.
이대로만 가면 연말에 있을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 기세인 드라마였고, 오늘도 곧 있으면 사람들을 안방으로 모을 시간이었다.
김세준도 스케쥴이 없는 날이면 본방송을 빠지지 않고 챙겨봤고, 저번 주는 놓쳤지만, 오늘은 챙겨볼 심산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지.”
김세준이 맥주를 따며 낮게 중얼거렸고, 그 얼굴엔 회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번 주, 자신이 본방송을 놓친 태조 이성계에서 드디어 정몽주의 최후를 암시하는 장면이 나왔다.
즉, 오늘 방송에 드디어 이방원과 정몽주가 만나 ‘하여가’와 ‘단심가’를 읊는 장면이 나올 거고, ‘단심가’를 부른 가수로서 오늘 방송은 절대 놓칠 수 없는 화였다.
“게다가 명장면이고.”
이방원과 정몽주가 서로에게 시조를 읊는 장면.
미래에 봤던 ‘태조 이성계’에서 손에 꼽는 명장면이다.
둘의 절절한 시조와 마음을 굳힌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장면까지.
자신의 노래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던 장면이었는데, 자신의 노래가 그 장면에 울려 퍼지면 어떤 기분일지 쉽게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시작한다.”
김세준이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봤고, 순식간에 몰입되어 빨려 들어갔다.
30분이란 시간이 사라지고, 김세준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장면이 전환되고, 텔레비전 안에서 이방원과 정몽주가 만났다.
패기 넘치고 오만한 젊은 사내와 현명하고 불세출의 천재인 중년 관료의 만남.
방 안에서 단둘이 차 한잔을 깃들이며 사소한 담화를 나눈다.
얼핏 보기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이방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정몽주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만 감정이 담겨 있는 그의 표정에 정몽주도 들고 있던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방원이 정몽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려보세.
“...!”
드라마를 보던 김세준이 소름이 돋은 자신의 팔을 비볐다.
척추부터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전율.
천천히 시조를 읊는 이방원의 목소리와 동시에 울리는 세현의 노래.
시조와 노랫말로 동시에 울리는 하여가의 조화는 ‘태조 이성계’를 몇 번이나 봤던 김세준조차도 경악에 빠트릴 정도였다.
‘와... 미쳤는데?’
웅장하게 들리는 BGM과 배우의 열연이 합쳐진 명장면.
그리고 이내 텔레비전이 정몽주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줬다.
동공이 흔들리며 손을 부들부들 떠는 중년.
끝까지 고려를 향한 마음을 버릴 수 없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분노에 찬, 그리고 신념 가득한 목소리로 이방원에게 화답했다.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든없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야 있으랴.
“...!”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정몽주가 시를 읊었고 동시에 울리는 김세준의 목소리.
두 가지 방식의 단심가가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방송을 보고 있던 김세준도 BGM으로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넋을 잃었다.
‘내 목소리라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잘 어울린다.’
신념 가득한 이방원의 목소리와 한이 서린 듯 노래를 부르는 김세준의 목소리.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두 남자의 목소리였고, 김세준의 노래가 정몽주의 굳은 결심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내 끝난 정몽주와 이방원의 담화.
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은 여기가 아니었다.
선죽교를 건너는 정몽주.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드는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와 그의 수하들.
철퇴와 몽둥이를 들고 사람을 습격한 그들의 비열함을 질책하는 정몽주의 성난 모습.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한 듯한 정몽주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한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어두워지는 화면과 함께, 김세준의 단심가가 다시 흘러나왔다.
충절을 표현하던 김세준의 노래가 피를 흘린 채 시체가 되어가는 정몽주의 씁쓸한 최후를 장식하는 장송곡이 되었고, 태조 이성계의 이번 화는 이렇게 끝났다.
“볼 필요도 없겠다.”
김세준이 인터넷 반응을 확인하려다 피식 웃곤 핸드폰을 소파에 던졌다.
보지 않아도 뻔히 예상되는 사람들의 반응.
분명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있으리라.
이런 완벽한 영상과 노래의 조화를 보고도 감동에 받지 않았으면 그게 이상한 일.
그리고 김세준의 예상대로 인터넷은 ‘태조 이성계’로 순식간에 들끓었으며, 이번 화를 화려하게 마무리 지은 노래.
김세준의 ‘단심가’와 세현의 ‘하여가’의 인기가 매섭게 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