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55화 (55/148)

#55

미국에서(2)

“Game?”

이주성을 통해 김세준의 말을 전해 들은 에드 케인이 되물었다. 동시에 초췌했던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방금 들었던 김세준의 건방진 말도 잊을 정도로, 강한 흥미가 생겼다.

“내가 이기면, 내가 피쳐링한 곡을 타이틀 곡으로 삼죠.”

“오호?”

제법 커다란 판돈이 아닌가.

자고로 도박은 판돈이 커야 재밌는 법.

도박사의 피가 들끓는 그의 말에 에드 케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이기면?”

그의 말에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원하시는 거 뭐든지.”

“하아?”

이주성이 쭈뼛거리며 통역했고,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에 에드 케인의 두 눈빛이 분노로 일렁거렸다.

게임 문화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동양의 애송이에게 무시당할 자신이 아니다.

“좋아요. 무슨 게임으로?”

“텍사스홀덤으로 가시죠.”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 하는 카드 게임.

김세준도 지인들과 몇 번 만져본 적 있는 게임이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홀덤은 내 전문 분야인데, 괜찮겠어요?”

에드 케인이 패기롭게 말을 뱉었고, 김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분야는 무슨.

텍사스홀덤의 전문적인 호구겠지.

***

작업실 안에 급조하게 만들어진 게임 테이블.

테일러가 딜러를 맡은 김세준과 에드 케인의 홀덤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어...어떻게 이..이런 일이...”

에드 케인이 김세준이 오픈한 카드 2장을 보며 경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각자 40개의 칩을 가지고 시작한 게임.

손 한 번 쓸 틈 없이 모든 칩이 털렸다.

세상 허무한 표정을 짓는 에드 케인이었고, 테일러와 이주성이 김세준을 경외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형...형님. 타짜이십니까?”

이주성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김세준 자신도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예상했지만...

자신의 예상 이상이었다.

설마 이렇게 못할 줄이야.

홀덤에 큰 조예가 없는 김세준조차, 그를 이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김세준이 특출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에드 케인이 특출나게 못 했다.

지독할 정도로.

‘100억을 잃었다는 게 과장이 아니겠는데?’

과장된 별명이라 생각했던 100억 잃은 가수.

그와 홀덤을 겨뤄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홀덤은 포커페이스가 필수.

하지만 에드 케인의 얼굴엔 희로애락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났다.

오픈하지 않고 표정만 봐도 그의 패가 훤히 보였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내가 이겼네요?”

김세준의 말에 에드 케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변명할 여지도 없는 참패였다.

***

참패의 여파가 너무 컸던 걸까.

에드 케인은 당일 김세준의 녹음을 취소했고 다음 날 방문을 요청했다.

아직 여유로운 시간이었기에 김세준도 흔쾌히 요구를 받아들였고, 다음 날 그의 집을 찾았다.

‘어제와는 다르네?’

초췌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 에드 케인의 얼굴은 한결 밝았다.

숙면을 했는지 피곤함이 가신 그의 모습에 김세준이 의아해했고, 에드 케인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오랜만에 카지노를 안 갔어요. 당신한테도 질정도면 내가 재능 없다는 소리겠죠. 지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이주성이 전해주는 그의 말에 김세준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꾼들이 근처에 얼마나 있던 거야?’

자신의 형편 없는 실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게 만드는 꾼들이 주변에 붙어 있던 모양이었다.

점점 홀덤에 빠지게 만들어 결국 그의 재산을 갉아먹으려던 전문적인 도박사들이 말이다.

“하여간, 카지노는 이제 접었어요. 그리고 어제, 카지노 대신 곡을 조금 손봤죠.”

에드 케인의 말을 이주성을 통해 전해 들은 김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김세준을 보며 에드 케인이 희미한 웃음을 짓곤 노래를 재생했다.

“...!”

호기심 가득하던 김세준의 얼굴이 노래가 들리자, 놀라움으로 변했다.

‘더 좋아졌는데?’

그가 피쳐링을 맡기로 한 곡.

네 개의 코드를 이용한 단조롭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가야금을 비롯한 새로운 악기가 추가됐다.

‘이 소리는?’

청량하게 울리는 소리에 김세준의 귀가 쫑긋거렸다.

김세준이 자주 애용하는 세션이 산조대금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높은 음을 내뱉는 악기.

‘플롯?’

플롯의 청아한 울음이 기타와 가야금 사이에 중심을 잡아줬다.

현악기로만 이루어져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는 소리가 플롯이 합쳐져 미묘하게 그 조화를 이뤘다.

가야금과 기타와 플롯의 3중주.

가야금과 플롯이 추가되면서 곡의 리듬을 조금 수정했고, 좀 더 부드럽게 바뀐 곡을 들으며 김세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웠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다.’

못난 꼴을 보였던 어제의 그와 사뭇 다르게 보였다.

100억 잃은 가수.

에드 케인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를 칭찬하는 말이기도 했다.

음악으로 100억이란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가수란 소리니까.

가수 중에서 음악 활동으로 100억 이란 큰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가수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에드 케인을 비하하던 사람 중에서 100억이란 숫자에 의문점을 가지는 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거면 모르겠는데?’

편곡하기 전 곡이, 적당히 좋은 곡이라면.

편곡이 마무리된 곡은 모든 사람의 귀에 꽂힐 노래였다.

‘이런 곡이 타이틀 곡이면... 앨범도 저번처럼 쫄딱 망하진 않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흡족해하는 그를 향해 에드 케인이 물었다.

“어때요?”

간단한 그의 질문에 김세준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두말할 필요 없는 훌륭한 곡이었다.

“바로 녹음 들어갈까요?”

녹음 부스를 가리키는 에드 케인이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인 후 녹음 부스로 향했다.

에드 케인이 천재라 불리는 또 다른 이유.

믹싱과 마스터링을 포함한 프로듀싱까지 혼자 힘으로 해내기 때문이다.

김세준이 녹음 부스로 들어가자, 에드 케인이 그에게 신호를 보냈고, 김세준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러자 녹음실에 방금 들었던 멜로디가 다시 울려 퍼졌다.

김세준이 기억하기론 ‘Remember’란 제목이 붙는 노래.

Do you remember? (기억나니?)

the place with the memories of you and me. (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그 장소가)

밖에서 듣고 있던 이주성과 테일러가 동시에 감탄을 터트렸다.

곡과 김세준 목소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에드 케인조차 김세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아 올라갈 정도로.

곡의 코러스 부분을 특유의 목소리로 부르는 김세준이었고, 발성과 발음,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완벽하게 부르는 듯한 김세준의 모습에 테일러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잘하는데?’

이미 콘서트에서 그의 실력을 봤던 그지만, 녹음은 콘서트하곤 또 다른 법.

작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테일러였고, 그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김세준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테일러가 시선을 에드 케인에게 보냈다.

‘에드 케인을 만족하게 하긴 쉽지 않을 거야.’

음악에서는 철저한 완벽주의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에드 케인을 보아하니 그의 나쁜 버릇이 다시 도질 느낌이었다.

완벽한 녹음.

하지만 더 완벽한 녹음을 위해 끊임없이 재녹음을 요구하는 그의 성격.

그와 함께 작업했던 수많은 가수가 그와 일하면서 얼마나 많이 혀를 내둘렀던가.

그러면서도 나날이 늘어가는 곡의 퀄리티에 꼼짝없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좋아요. 근데 한 번만 더 해보죠.”

그리고 테일러의 예상대로 에드 케인이 김세준에게 재녹음을 요구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는 김세준.

그런 그를 보며 테일러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저 친구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느긋하다고 생각했으리라.

‘뭐 일주일이면 짧은 편이지.’

보편적으로 에드 케인의 녹음이 무려 2주 넘게 걸리는 걸 생각하면 김세준의 경우엔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편이긴 했다.

***

총 일주일 동안 진행됐던 미국에서의 여정.

그 여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김세준에게 이해진이 물었다.

“어땠어?”

“음...”

이해진의 질문에 김세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많이 배웠습니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할 뻔했던 사람 구해주고 온 이야기는 빼자.

괜히 이해진이 가지고 있는 에드 케인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녹음 과정에선 많이 배웠다.

‘확실히 달랐지.’

그동안 녹음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지 않던 그였다.

그와 작업한 프로듀서들을 큰 어려움 없이 만족하게 한 김세준이였지만, 에드 케인만은 달랐다.

끝없이 그에게 한계를 요구하는 그였고, 매번 나아지는 곡의 퀄리티를 보며 김세준도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한계를 조금 탈피한 기분이랄까?

“발매는 이주 뒤라고?”

이해진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곡의 발매는 오늘부터 이주 뒤.

어떤 곡이 탄생할지 기대가 되면서, 동시에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세준이 너도 슬슬 앨범 작업 들어가야지.”

“첫 정규 앨범이네요.”

김세준이 이해진의 말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생각해둔 곡은 있어?”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과거를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자신의 정규 앨범.

몇 달 전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이예은과의 약속.

그녀의 명곡을 자신이 가져올 차례였다.

“예은이한테 부탁해보려고요.”

***

김세준이 이예은을 만나 오래전 약속을 들먹이자, 이예은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진짜 제 곡으로 괜찮아요?”

“왜? 이제 와서 주기 싫다 이거야?”

장난스럽게 묻는 김세준의 말에 이예은이 깜짝 놀라며 양팔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오빠 첫 정규 앨범인데... 진짜 제 곡이 들어가도 괜찮을지...”

“괜찮아.”

김세준이 단호하게 말했고, 이예은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빠 앨범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곡들이 아니에요. 다듬을 것도 많고...”

자신감 없는 그녀였지만 김세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발매한 수많은 앨범.

그리고 그 앨범 속에 묻힌 보석 같은 명곡들을.

김세준은 그 보석 같은 명곡 중 하나를 꼽아 자신의 앨범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너무 유명한 곡들은 제외해야지.’

훗날 그녀의 앨범 타이틀 곡이 되거나, 그녀를 대표하는 곡들은 제외.

그런 곡들을 자신이 가져가겠다는 건 그녀의 성장을 가로막는 일이나 다름없다.

“곡들은 가지고 있지?”

아레스 뮤직 작업실에서 김세준이 물었고, 이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클라우드에...”

이예은이 말과 동시에 자신의 인터넷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했고, 김세준이 스무 개 남짓한 곡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게 보물 창고지.’

하지만 스무 개 남짓한 곡들을 보며 작은 불안감이 생기긴 했다.

이 곡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곡이 없을 수도 있을 테니까.

불안감을 뒤로하고 김세준이 맨 위에 있는 파일부터 차례대로 음악을 틀었다.

‘오. 이 노래는 이때부터 완성된 거였어?’

훗날 세간에서 큰 인기를 끄는 명곡부터.

‘이건 처음 들어본다.’

자신도 처음 들어보는 발매되지 않은 아쉬운 곡들까지.

수많은 곡이 그녀의 클라우드에 담겨 있었고.

14번째 곡을 들었을 때.

김세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이거다!’

그가 그토록 찾던 숨겨진 명곡.

그 노래가 김세준의 귓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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