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54화 (54/148)

#54

미국에서(1)

회의실 안에 울리는 에드 케인의 노래에 이해진과 하동준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좋은데?”

“음.”

하동준의 중얼거림에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퍼커시브(percussive) 스타일로 연주하는 리드미컬한 기타의 소리.

네 개의 코드가 반복되는 단순한 멜로디지만, 제법 감미로운 노래다.

은은하면서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가 매력적인 노래.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며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는 좋았지.’

망한 곡이라고 다 노래가 별로인 건 아니다.

세상에 수많은 명곡이 뜨지 못하고 얼마나 많이 묻혀 있던가.

에드 케인의 이 노래도 그런 쪽에 가까웠다.

흥행엔 처참히 실패했지만, 아는 사람들에겐 노래 좋다는 소리가 들리는 곡.

‘타이틀 곡이 너무 별로였지.’

그리고 그 이유는 에드 케인의 이번 앨범 타이틀 곡이 처참히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에드 케인 정도의 이름이라면, 빌보드 HOT 100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건 당연한 일.

그리고 탑 10에 들어가 1위를 두고 다른 가수들과 경쟁해야 그 이름값에 어울리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타이틀 곡이 발매 당시에 반짝했다가 그 뒤론 하향곡선을 그리며 그대로 사라졌다.

타이틀 곡이 묻히자, 자연스럽게 그의 앨범도 묻혔고 이 노래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런 곡으로 남게 되었다.

‘아무리 음악이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라지만. 솔직히 왜 이 노래가 타이틀 곡이 아니었나 의문점이 많았어.’

“세준이 네 생각은 어때?”

“예? 아... 노래는 좋네요.”

생각에 빠져 있던 김세준이 얼버무리며 답했다.

멜로디는 좋았다. 기타의 은은한 연주가 마음을 사로잡았고, 자신이 참가하여 가야금의 선율이 추가된다면 제법 매력적인 음의 조화가 이루어질 거 같았다.

김세준의 긍정적인 평을 통역사를 통해 들은 에드 케인이 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당연하지 않냐는 듯 말하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

에드 케인의 이번 앨범이 대차게 망하는 걸 아는 김세준은 작은 실소를 흘렸다.

“하실 생각이 있냐고 묻네요.”

통역사의 말에 김세준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참여한다고 이 노래의 흥망이 바뀔까?’

항상 자신감 넘치던 김세준도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없었다.

실패가 예정되어있는 곡.

그리고 자신에겐 생소한 미국에서의 활동.

자신의 앨범이 아니기에 곡에 큰 개입을 할 수 없다는 점.

모든 이유가 부정적인 방향을 가리켰다.

‘그래도...’

김세준의 시선이 아무것도 모른 채 밝은 미소를 띠는 에드 케인에게 향했다.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긴 해.’

에드 케인과의 콜라보.

자신에게 큰 밑거름이 될 경험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앨범이 아닌 만큼 실패해도 큰 타격은 없을 터.

결심한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으로 언제 가면 됩니까?”

***

일주일 후, 김세준은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에드 케인은 미팅 이후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갔고, 김세준은 오늘부터 일주일간 미국에 머물러 에드 케인과 작업할 계획이었다.

“잘하고 와.”

마중 나온 이해진의 말에 김세준이 작은 미소로 답했다.

“잘하고 오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걸어가는 김세준의 뒷모습을 보며 이해진이 감회에 잠겼다.

‘세계로 나가는 첫걸음.’

한국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아이돌부터 시작해, 서울스타일로 성공을 거뒀던 가수. 그리고 지금, 미국을 비롯해 세계에서 부각을 드러내고 있는 남자 아이돌까지.

마지막 남자 아이돌을 제외하곤 솔직히 성공이라 부를 수 없는 행보였다.

‘세준이는 어떨까.’

비록 앨범을 내는 것도 아닌, 단순한 피쳐링 참여지만 이해진의 얼굴엔 기대감이 잔뜩 서렸다.

미국인들에게 김세준의 노래가 얼마나 큰 감동을 심어줄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김세준과 이주성은 매캐런 국제공항의 입국장을 빠져나왔고, 그들을 기다리는 테일러를 발견할 수 있었다.

“Welcome to U.S.A.”

짧은 인사를 하며 반기는 테일러를 따라 공항을 나섰고, 김세준과 이주성은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여기가 라스베가스...’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

김세준이 도착한 동네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라스베가스였다.

SIN CITY(죄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동네.

마카오와 함께 세계의 도박꾼들이 모이는 곳.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호텔들을 보며 김세준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나도 도박하러 온 거나 다름없지.’

실패할 줄 알면서도 도박에 빠져드는 도박꾼들이나, 실패할 곡인 걸 알면서도 작업하러 온 자신이나.

그들과 자신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사뭇 웃겼다.

그리고 결과가 정해져 있지만, 마음속에 작은 희망을 품고 있는 모습까지도.

“I have expectations for you.”

그런 김세준을 향해 테일러가 무어라 말했고, 김세준이 이주성을 바라봤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진, 제법 유복하게 살았던 그.

어느 정도 회화가 된다는 그의 말에 따로 통역사도 구하지 않았다.

“형님한테 거는 기대가 크답니다.”

“음?”

이주성의 통역에 김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직접적인 발언이나 행동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자신을 보는 그의 시선이 그다지 곱진 않았다.

에드 케인과 자신의 콜라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느낌이었는데 뜬금없이 자신에게 기대를 건다는 말에 의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김세준을 향해 테일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자연스럽게 다시 이주성을 쳐다봤고, 이주성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아... 지금 에드 케인에게 문제가 생겼답니다.”

문제?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해 보이던 에드 케인이다.

아니 멀쩡한 걸 넘어서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르던 모습.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앨범 작업을 마무리하려는 의욕을 내뿜던 그였다.

의아한 모습에 김세준을 향해 테일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장황한 영어 속에서 김세준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하나.

슬럼프란 말이 귓가에 박혔다.

테일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베네티안 호텔이었다.

호텔의 천국이라고 봐도 무방한 라스베가스에서도 그 이름이 드높은 곳이었다.

테일러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향했고, 김세준은 오랜 비행시간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푹 쉬라 했지?”

일주일 동안의 여정.

오늘 하루는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6일간 에드 케인과의 곡을 작업해야 했다.

곡 하나의 녹음을 위해 일주일이란 시간은 제법 넉넉한 기간이기에 김세준도 조급해하지 않고 오늘 하루는 휴식을 취할 참이었다.

테일러가 차에서 내뱉은 말만 아니라면.

“갑자기 슬럼프라... 이거 딱 각 나오는데?”

침대에 벌러덩 누운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에드 케인이 앨범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다는 테일러의 말.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종종 그랬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이번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하며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며 이번 자신의 피쳐링 참여가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테일러는 아직 모르는 건가?”

말하는 걸 보아하니 테일러는 아직 에드 케인의 문제를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김세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알기로 지금 에드 케인이 당면한 상황은 슬럼프라고 부르지 않았다.

***

에드 케인의 작업실은 김세준이 머무는 베네티안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거대한 단독주택.

에드 케인이 작업실 겸 집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화려한 주택에 들어서자, 에드 케인이 나와 그를 반겼다.

“Welcome!”

양팔을 벌리며 기뻐하는 그.

‘일주일 사이에 얼마나...’

하지만 그 얼굴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광대뼈까지 내려왔고, 눈빛이 거무죽죽하며 퀭한 게 그가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다는 걸 여실히 알려줬다.

퇴폐적이었던 그의 외모가 퇴폐적인 걸 넘어서 음습하게 보였다.

힐끔 테일러를 바라보자 테일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확실해 테일러는 모른다.’

김세준도 짐짓 모르는 척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김세준의 말을 이주성이 통역해 에드 케인에게 전하자 에드 케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안을 가리키는 그였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뒤를 따랐다.

화려한 주택과 달리 그의 작업실은 평범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컴퓨터와 마이크 같은 녹음 장비로 이루어진 평범한 녹음실.

김세준이 주변을 쭈뼛거리며 구경하는 이주성을 툭 쳤다.

“타이틀 곡 한 번 들어볼 수 있냐고 물어봐 줘.”

“아, 네!”

이주성이 에드 케인에게 다가가 말하자, 에드 케인이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에서 이번 앨범 타이틀 곡을 틀었다.

‘맞네...’

마지막 기대가 산산이 부서졌다.

자신이 아는 미래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자신이 기억하는 타이틀 곡이다.

온갖 혹평을 받았던 그의 곡.

‘흐음..’

곡을 들으며 김세준이 차분히 생각에 빠졌다.

‘이번 앨범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 그리고 내가 피쳐링한 곡까지도. 그리고 내가 참여한다고 해서 그 미래가 그렇게 크게 바뀌진 않을 거야.’

한국에선 몰라도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가진 영향력이 크지 않다.

즉 변화를 줘야 한다는 말.

‘일단 줄 수 있는 변화가...’

노래가 끝나자 김세준이 에드 케인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Not good.”

“...!”

상당히 직설적인 말.

“형...형님!”

이주성이 깜짝 놀라 김세준의 양팔을 붙잡았다.

그런 이주성을 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생각했다.

‘알아. 나도 잘 안다고.’

지금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무례한 말일까.

하지만 이대로 가면 침몰해가는 배에 같이 탑승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김세준이 에드 케인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Kane. Change the title track.”

“Hmm...”

상당히 무례한 말을 들었음에도 에드 케인은 화내지 않고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I want my song to be the title Track.”

‘일단 타이틀 곡부터 바꾼다.’

완벽한 말은 아니지만, 자신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됐을 터.

김세준의 말을 들은 에드 케인이 여전히 미소짓더니 입을 열었다.

“... 그... 너무... 월권행위아니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님.”

자신에게 그대로 전달하기엔 너무 수위가 높았나 보다.

아마 건방지게 굴지 말라는 듯한 말이었겠지.

그의 말에 김세준이 작게 미소지었다.

당연히 저런 반응을 예상했다.

그러기에 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떡밥을 던져야 했다.

에드 케인.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자, 세계적인 대 가수.

하지만 그가 이름이 한국에 널리 알려진 건 노래뿐만이 아니었다.

라스베가스는 곡을 작업하는 데 있어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시끄럽고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쾌락의 도시.

왜 이런 곳에 이 자의 작업실이 있는 걸까.

‘뻔하지.’

그도 그 쾌락에 중독된 사람이니까.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미국에선 범죄가 아니기에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카지노가 범죄인 한국에선 그의 이력이 미래에 제법 논란거리가 됐었다.

‘눈이 퀭하고 다크서클이 진하게 진 게 꼭 작업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지.’

에드 케인이 한국에서 불리는 또 다른 별명.

100억 잃은 가수.

그런 그를 향해 김세준이 입을 열었다.

“타이틀 곡 걸고, 게임 한 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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