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에드 케인(4)
“...예?”
김세준의 말을 들은 통역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곧바로 말을 전달해야 하는 통역사의 본분까지 잊고, 되물을 정도로 그는 김세준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저 남자가 무슨 말을 내뱉은 걸까.
에드 케인이랑 같이 무대 한 번 했다고 자신이 그와 동급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게...’
김세준의 말을 에드 케인에게 통역해주기도 겁났다.
한국에서 김세준의 인기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앨범을 피처링하고 싶은 가수들도 분명 수두룩할 거고.
하지만 에드 케인과 비교했을 땐, 보름달 앞 반딧불처럼 초라해지는 게 사실 아닌가.
통역사가 말을 뱉지 않고, 경악에 차자 에드 케인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김세준과 통역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통역해주세요.”
김세준이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옛날부터 남자의 말은 천금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김세준도 너무 무모한 제안이었나 싶어 약간의 후회는 들었지만, 지금 와서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연예인.
모양 빠지게 ‘아, 말을 잘못했습니다. 통역하지 말아 주세요.’ 이럴 순 없지 않나.
통역사가 비웃음을 지으며 ‘에드 케인이 헛소리하지 말랍니다.’라고 말을 내뱉을지라도.
김세준의 단호한 말에 통역사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고, 김세준과 자신을 번갈아 보며 궁금해하던 에드 케인에게 떨떠름한 말투로 말했다.
“저... 에드 케인 씨. 세준 씨가... 오히려 자신의 앨범 피쳐링에 참여하는 건 어떻냐고 물었습니다.”
“...!”
통역사의 말을 들은 에드 케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하는 그였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김세준.
굳은 얼굴이 그의 진심을 보여줬다.
‘최근 피쳐링을 제안한 게, Lil Tax, Ailee, Justin이랑 또 누구였지?’
자신처럼 미국을 넘어 세계의 이름을 떨치는 유명 가수들.
그런 이들의 제안만 듣던 자신이 동양의 작은 나라에 와서 피처링 제안을 받을 줄이야.
신선했다.
그리고 제법 혹했다.
“곡은 있어요?”
에드 케인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고, 통역사가 입을 쩍 벌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말을 김세준에게 전했다.
부정적이지 않은 듯한 에드 케인의 말에 김세준이 고민에 빠졌다.
‘에드 케인에게 어울리는 곡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나?’
고뇌하는 김세준이었고, 그런 그를 보며 통역사의 속이 탔다.
김세준의 제안이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도 한국인.
세계적인 대 가수와 한국 가수의 콜라보가 기대되는 건 사실이었다.
‘뭐해! 없어도 있다고 해야지!’
곧바로 답하지 않는 그를 보며 답답해하는 통역사였고, 이내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아...”
김세준의 솔직한 답변에 통역사가 아쉬운 탄식을 뱉었다.
하지만 거짓을 고할 수는 없는 법.
김세준의 말을 고스란히 에드 케인에게 전했고, 그사이 김세준이 재빨리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제 앨범 제작까지는 시간이 좀 있습니다. 앨범 제작 전까지 마음에 드는 곡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통역사가 김세준의 말을 재빨리 에드 케인에게 알렸고, 에드 케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거로 하죠. 게다가 먼저 제안한 것도 나니까. 내 제안은 어떻게 생각해요?”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애매하고 모호한 말.
김세준이 속으로 짧은 한탄을 뱉었다.
‘일단 절반의 성공인가.’
적어도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방금 에드 케인의 질문.
김세준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로 답했다.
“곡은 있어요?”
***
김세준과 에드 케인의 합동 무대.
수많은 기대를 받았던 무대였던 만큼, 그 반응은 뜨거웠다.
에드 케인의 콘서트를 다녀온 사람들이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 후기와 직접 찍은 영상을 올렸고, 그 영상을 본 대중들은 둘의 탁월한 하모니에 압도됐고,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솔직히 10번 넘게 본 사람 손?]
[둘이 별로 연습도 안 했다던데. 근데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지?]
[김세준이 더블링하는 거 보셈ㅋㅋㅋ. 진짜 타고난 난 놈인 듯.]
세간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한 이해진과 하동준.
하지만 둘의 모습은 평소와 매우 달랐다.
다를 때라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자신들 앞에 있는 김세준을 향해 칭찬을 내뱉을 둘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이해진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짓눌렀고, 하동준은 김세준을 보며 깊은 한숨을 끝없이 내쉬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에드 케인에게 피쳐링 제안을 받았는데 거기서 네가 오히려 피쳐링을 역으로 제안했다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관자놀이를 누르던 이해진이 김세준의 말을 요약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아...”
깡다구 있는 놈이란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
“너도 참... 내 상상을 뛰어넘는 또라이다. 또라이.”
이해진과 똑같은 생각을 하던 하동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가수가 에드 케인의 피처링 제안을 받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였으리라.
그런데 김세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제안을 해버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발상조차 하지 못할 미친 짓거리였다.
“그래. 미국인들의 인사말 안 들은 게 어디야. 일단 부정적이진 않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인사? 어떤 인사?”
이해진의 물음에 하동준이 친절하게 중지를 치켜세웠다.
“퍽큐. 영화 보면 미국 애들은 이게 인사던데?”
그런 하동준의 답에 이해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준의 제안.
그 자리에서 욕먹었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그럼 네가 피처링하는 건 거의 확정이라고 봐야겠네. 그리고 에드 케인이 너를 피처링하는 건 곡이 나오고 나서 정해지는 거고.”
“저희도 곡은 들어봐야죠.”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김세준을 보며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기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에드 케인이란 이름에 매몰될 뻔했지만, 가수는 곡으로 움직여야 하는 법.
그의 곡이 마땅치 않다면 자신들도 거절할 수 있었다.
자신이 아는 김세준은 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칼에 거절할 사람이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네. 내려가 있자.”
이해진이 손목시계를 힐끔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에드 케인과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
“후우... 에드 너 진심이야? 정말 그 친구 곡이 마음에 들면 피쳐링을 해줄 거야?”
아레스 뮤직 사옥으로 향하는 거대한 벤.
그 벤 안에서 테일러가 에드 케인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어제 자신이 없던 그 짧은 틈을 타 그가 무슨 짓을 벌인 걸까.
“어제 너도 무대 봤잖아. 그 친구. 평범한 친구가 아니야.”
“그래. 알아. 나도 잘 안다고. 너와 김세준의 무대가 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레전드 무대였다는 걸.”
테일러가 에드 케인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안다. 그와 에드 케인의 조합이 제법 잘 어울렸다는 걸.
무대를 지켜봤던 자신도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을 정도로 둘의 하모니는 잘 어울렸고, 완벽했다.
하지만 에드 케인의 제안은 너무 즉흥적이지 않나.
좀 더 많은 고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자꾸만 한숨을 내뱉는 테일러를 보며 에드 케인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테일러. 내가 어제 그 친구와 노래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 줄 알아?”
“무슨 생각?”
테일러의 되물음에 에드 케인의 두 눈이 반짝였다.
“세상은 넓다. 그리고 천재도 많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천재가 이 작은 나라에 있었다고.”
“,,,”
그의 말에 테일러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김세준에게 홀라당 빠진 그다.
자신이 아무리 뭐라고 더 말을 해도 알아듣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친구. 욕심이 있잖아. 나한테 역으로 제안한 걸 생각해봐. 욕심이 보통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런 친구가 한국으로 만족할까?”
“...!”
“김세준. 이미 한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던데? 아마 조금 더 활동하다가 시선을 세계로 돌릴 게 분명해. 그리고 김세준이라면 미국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아시아에서 인기 많은 가수가 미국에서 고꾸라지는 게 얼마나 많았어?”
비단 한국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2위의 음반 시장을 가진 일본에서 성공한 가수들도 야심 차게 태평양을 건넜다가 쓴 물을 들이켠 경우가 많았다.
노래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문화와 민족. 언어와 피부색. 태생적으로 아시안들이 가지는 한계가 있었다.
“아니. 김세준이라면 성공할 거야. 그리고 김세준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그때. 그 친구에게 특별참여를 부탁하는 건 쉽지 않겠지. 즉, 우린 미래에 대 가수를 지금 미리 부려먹는 거라고.”
“망상이나 다름없군.”
테일러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에드 케인의 말을 부정했다.
그의 말. 자신과 같은 미국인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소리였다.
불확실이 아닌 불가능.
하지만 에드 케인의 눈빛엔 확신이 가득했다.
테일러와 에드 케인을 태운 벤이 끝없이 도로를 달렸고, 한 시간 후 그들은 아레스 뮤직 사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자 1층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김세준과 이해진 그리고 하동준과 아레스 뮤직이 준비한 통역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테일러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해진입니다.”
웃으며 짧은 인사를 건네고, 그들은 거대한 회의실로 향했다.
“음. 먼저 일정부터 확인해봐야겠군요. 저희 측에서는 올해...”
이해진과 하동준. 그리고 테일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팅.
김세준은 딱히 그 미팅에서 할 말이 없었고, 그의 신경은 오로지 에드 케인에게 꽂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드 케인이 들고 왔을 곡.
그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가져온 곡은 과연 어떤 곡일까.
김세준의 시선을 읽었는지 에드 케인이 그를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일단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곡 한 번 들어볼까요?”
도돌이표를 걷던 금액 문제를 테일러와 타협을 본 이해진이 시선을 에드 케인에게 돌렸다.
그의 말에 동의하듯 테일러도 고개를 끄덕였고, 에드 케인이 묘한 미소와 함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미 한국에 오기 전부터 작업하고 있던 자신의 다음 앨범 곡.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에드 케인이 곡을 틀었다.
회의실 가득 울려 퍼지는 에드 케인의 노래.
그 노래를 듣던 김세준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경험해본 그는 익숙한 멜로디다.
굳은 표정이었던 김세준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넘어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해진과 하동준에게 들리지 않게, 김세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망했던 노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