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에드 케인(3)
7월 12일 오후 6시.
잠실 실내 체육관 내부는 만삼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드디어 오늘, 이들이 학수고대하던 에드 케인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만삼천 명이나 되는 수많은 인파.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똑같은 감정이 서려 있었다. 생기 넘치는 그들의 표정은 그들이 얼마나 흥분했고 기대하는지를 여실히 알려줬다.
에드 케인의 첫 내한 공연.
오늘이 지나면 앞으로 평생 못 볼 수도 있는 공연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대치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리고 오늘 게스트로 참여하는 김세준도, 관객들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후후. 에드 케인의 무대를 코앞에서 본다라... 게스트도 할 만하네.”
김세준이 무대가 코앞인 자리에 앉으며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대기실이 아닌, 객석에서 무대를 구경해도 되냐는 그의 제안을 에드 케인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덕분에 김세준은 무대 앞에 새로운 자리 하나를 만들어 그의 무대를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공연 시작까지 어느덧 15분 전, 슬쩍 뒤를 돌아보니 만삼천 명이 내뿜는 열기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아시안 뮤직 어워드보단 적은 숫자지만, 만삼천 명이 내뿜는 고양된 열기는 김세준의 얼굴을 미소짓게 했다.
‘내 콘서트는 아니지만, 저들의 흥분감에 내 비중도 최소 1%는 있겠지.’
저들이 저렇게 기대감을 내뿜는 이유엔 자신의 존재도 분명 있으리라.
고작 한 곡.
하지만 그 한 곡을 기대하는 대중들이 얼마나 많던가.
오늘의 주인공은 에드 케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김세준은 혹여 누군가 생각을 읽었다면, 건방지게 느낄 방자한 각오를 다지는 중이었다.
자신과 에드 케인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
그때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약간 발칙한 생각을.
***
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기체 상태인 드라이아이스가 무대 위를 뿌옇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에드 케인이 리프트를 타고 무대 위로 등장했고, 하얀 연기 속 그의 실루엣이 보이자 관객들이 커다란 환호성을 내뿜었다.
꺄아아아악!
마치 잠실 실내 체육관이 무너질 듯한 관객들의 커다란 환대.
무대 위 에드 케인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게 김세준의 눈에 들어왔다.
‘저 때, 기분 미치지.’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가슴이 붕 뜨고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통해 이미 경험해본 김세준이기에 에드 케인의 기분을 헤아릴 수 있었다.
수만 명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순간은, 평생 곱씹을 추억거리였다.
에드 케인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고, 지체하지 않고 바로 첫 무대를 시작했다.
***
과열되는 분위기 속 진행되는 콘서트.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에서 가야금을 챙기고 무대 아래로 향했다.
이제 다음 무대는 드디어 자신과 에드 케인이 합동으로 무대를 꾸밀 차례였다.
리프트 위에 올라탄 채로 김세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어떤 반응이려나.”
문뜩 리허설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단순한 연습임에도 연습 같지 않았던 그 순간.
리허설을 위해 모인 모든 스텝이 자신과 에드 케인의 무대에 넋이 나갔다.
수많은 공연을 지켜본 스텝들이 그러했는데, 과연 저기 모여 있는 만삼천 명의 관객들은 자신과 에드 케인의 무대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세준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에드 케인의 노래가 끝났다.
“후우...”
관객들에게 무어라 말을 내뱉는 에드 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스트인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라고 어림짐작할 때.
관객들의 커다란 함성을 뱉었고, 김세준이 올라탄 리프트가 천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
무대 위에 올라서자 눈앞에 보인 건 야광봉을 흔들며 자신에게 환호를 내뱉는 만삼천 명의 관객이었다.
‘장관이네.’
3년 전, 한겨울에 등산했던 한라산.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날씨에 봤던 백록담의 고운 자태.
햇빛에 반짝이는 백록담과 눈꽃이 수북하게 내려앉은 한라산의 풍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김세준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열광하는 관중들을 보면.
그때와 비슷한 감동을 하게 된다고.
“안녕하세요! 김세준입니다!”
김세준이 객석을 향해 인사를 올렸고, 그의 인사에 환호와 박수로 관객들이 화답했다.
“오늘, 영광스럽게도 에드 케인의 첫 내한 공연에 게스트로 참가하게 됐습니다. 저를 초청해준 에드 케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오늘 공연에 와주신 관객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에드 케인은 김세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도 분위기상 어떤 말을 했는지 대략 알 수 있기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인사를 마친 김세준이 가야금 앞으로 가 앉았고, 에드 케인을 바라봤다.
에드 케인도 김세준을 바라봤고, 서로 눈빛이 통한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Next song is With you.”
에드 케인의 말과 동시에 김세준이 빠르고 정확하게 가야금의 현을 뜯었다.
원곡의 빠른 전자비트를 가야금으로 재현하는 김세준의 모습에 관객들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원곡의 중독성 있던 비트가 가야금으로 바뀌어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
많은 이들이 김세준의 연주에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가장 큰 자극을 받은 건 그의 옆에 있는 에드 케인이었다.
‘리허설 때에도 봤지만...’
이미 한번 지켜본 김세준의 연주.
그런데도 가야금의 소리엔 여전히 전율이 흐른다.
생에 두 번째로 바라보는 가야금의 연주는 여전히 우아했고, 고결했다.
‘영상은 애교 수준이었어.’
김세준의 커버 영상을 수십 번 봤던 자신이다.
그리고 볼 때마다 감탄을 뱉었지만, 눈앞에서 바라보는 김세준의 연주는 영상과는 그 깊이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많은 사람이 내 노래를 커버했지만...’
전 세계에 알려진 자신의 곡.
그만큼 자신의 노래를 커버하는 영상과 무대를 수두룩하게 봤다.
하지만 김세준만큼 자신에게 깊은 감명을 준 사람은 없었고, 지금 울리는 노래처럼 깊은 감동을 준 노래는 없었다.
김세준을 바라보는 에드 케인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고, 이어서 그의 파트가 시작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에드 케인이 노래를 시작하자, 관중들이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켰고, 그의 옆에서 연주하던 김세준도 속으로 감탄을 뱉었다.
‘리허설 때도 들었지만...’
목소리가 사기 수준이다.
거칠고 투박한 듯하면서도, 따스하게 귀를 감싸는 그의 미성.
자신의 곡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김세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에드 케인의 노래를 바로 코앞에서 듣는 호사.
지금 이 순간은 왕도 부럽지 않았다.
“미쳤다...”
그리고 둘의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김세준의 가야금과 에드 케인의 기타와 목소리.
두 악기와 목소리가 만들어낸 하모니만으로도 콘서트에 온 게 아깝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김세준과 에드 케인이 합창하자 관객들의 눈에 깊은 감동이 서렸다.
Girl, Do you know I want your body? (내가 너의 모든 걸 사랑하는 걸 알잖아?)
I'm in love with your body. (난 너의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어.)
Don't push me away. (날 밀어내지 마.)
You're just like me.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잖아.)
김세준과 에드 케인이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씩 웃었다.
‘하...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네.’
듀엣을 불러본 경험이 많진 않지만, 여태껏 듀엣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희한한 기분.
듀엣이지만 솔로인 느낌이다.
마치 에드 케인과 한 사람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듯한 쾌감.
아마 에드 케인도 지금 자신과 비슷한 감정이리라.
천재는 천재들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법.
김세준이 예상한 대로 에드 케인도 김세준과 듀엣을 부르는 지금.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4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김세준과 에드 케인의 듀엣 무대는 끝났다.
그리고 그동안 조용할 일이 없던 관객석이 이 노래가 울리는 동안만큼은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그동안 에드 케인의 노래를 모조리 따라 부르던 관객들.
하지만 ‘With you’에서 그들은 침묵했다.
감히 이 순간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
에드 케인의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람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잔뜩 남았고, 앙코르를 요청하는 팬들을 위해 에드 케인은 5곡을 더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김세준 또한 자신의 차례가 끝나고 나선 다시 관객으로 돌아와 그의 콘서트를 즐겼다.
그리고 콘서트가 마무리하고 에드 케인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단연코 김세준이었다.
통역사와 함께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에드 케인이 활짝 웃으며 무어라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멋진 연주였어요.”
통역사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말.
김세준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과 듀엣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김세준의 말에 통역사가 빙긋 웃으며 에드 케인에게 전했다.
그리고 이내 통역사에게 말을 건네는 그였고, 에드 케인의 말을 들은 통역사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왜 저래?’
통역사의 굳은 얼굴을 보며 김세준이 의아해했고, 이내 통역사가 떨리는 눈으로 김세준을 바라봤다.
“저... 세준 씨.”
“네?”
“그... 에드 케인 씨가 세준 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요.”
‘제안?’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어진 통역사의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에드 케인이 자신의 다음 앨범 작업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거든요...”
“...!”
쉽게 풀이하자면 자신의 앨범에 피쳐링으로 참가하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혹여 자신이 잘못 이해한 걸까 싶어, 김세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은, 피쳐링으로 참가하라는 소립니까?”
김세준의 물음에 통역사가 에드 케인에게 말을 건넸고, 에드 케인이 밝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무대를 함께 하고 확신이 생겼답니다. 꼭 같이 한번 작업해보고 싶다고...”
‘허... ’
김세준이 속으로 탄식을 뱉었다.
에드 케인이란 가수.
그와의 협업을 원하는 가수들로 일렬종대를 시키면 한강보다 긴 줄이 생기지 않을까.
그와 함께 작업한다는 건, 그 정도로 매력적인 일이다.
‘흐음...’
하지만 김세준은 쉽게 답하지 않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그의 제안을 듣는 순간, 자신의 가슴에 작은 욕망이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에드 케인과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욕망이지만,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같이 작업 한 번 해보고 싶다라...’
즉, 어찌 됐든 같이 작업만 하면 된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정반대의 제안도 가능하지 않을까.
못 먹어도 쓰리고.
김세준이 결심했고, 침을 꿀꺽 삼킨 후, 에드 케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제 앨범 피쳐링하는 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