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에드 케인(2)
김세준이 에드 케인 공연의 게스트로 참가한다는 소식으로 인터넷이 난리가 나고 삼일 뒤.
실시간 검색어에 다시 한번 김세준의 이름이 올라갔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다고 말해도 무방한 ‘태조 이성계.’
어젯밤에 방영됐던 ‘태조 이성계’에 처음으로 정몽주란 캐릭터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정몽주의 등장과 함께 김세준의 노래가 드라마에 나왔고, ‘단심가’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노래.
브릿지(Bridge) 부분만 짧게 나왔음에도 드라마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 대부분이 감탄을 내뱉었다.
한과 얼이 가득 담긴 그의 노래는 정몽주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시청자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어제 태조 이성계 보신 분? 단심가 어땠나요?]
[미쳤어요. 정몽주 등장하면서 딱 나오는데, 드라마하고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전 조금 올드한 느낌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느낌 하나도 없어요.]
[음원으로 언제 나오나 기다리는 중입니다ㅜㅜㅜ]
“반응 좋네.”
이해진이 인터넷의 반응을 보며 짧게 중얼거렸고,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에서 잘 뽑아줬더라고요.”
어제 ‘태조 이성계’를 본방송으로 시청했던 김세준이다.
관복을 입으며 굳은 표정으로 등장하는 정몽주의 모습과 자신의 노래인 ‘단심가’.
보는 순간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잘 어울렸다.
“단심가는 이제 시작인 거 알지?”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심가’는 이제 막 세간에 등장한 참이다.
아직 음원도 나오지 않았으며, 이방원과 정몽주가 실제로 ‘단심가’와 ‘하여가’를 읊을 장면은 방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녀의 꿈도 순조롭고.”
이해진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고, 김세준이 음원 차트를 확인했다.
25위로 출발했던 마녀의 꿈.
어느덧 10위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잘하면 1등도 가능하겠는데요?”
매섭게 치고 올라간 순위를 보며 김세준이 제법 놀랐다.
그의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 중인 곡의 순위였다.
“예은이 무대가 한 번 크게 화제가 됐어. 덕분에 팬층도 제법 빨리 쌓이고 있고. 아 그리고 요새 세준이 너도 주변에서 요즘 난리라며?”
이해진이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말하자, 김세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네. 다들 곡 하나 달라고 성화이긴 합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곡을 주지 않던 김세준.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이예은에게 곡을 줬고, 그 곡의 흥행을 지켜보던 다른 가수들이 은근슬쩍 곡 하나만 달라며 부탁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있고?”
이해진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 곡을 줄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주고 싶진 않았다.
자식 같은 곡을 어중이떠중이들에게 줄 순 없었으니까.
“그래. 정 줄 곳 없으면 나한테 주고.”
이해진의 농담에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렸고, 둘의 이야기는 최근 제일 화제인 에드 케인의 콘서트로 넘어갔다.
“콘서트 준비는 잘 돼가고?”
“네. 특별한 걸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연습 중입니다.”
“음. 그게 좀 아쉽지. 네 콘서트가 아니다 보니까.”
그의 말에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콘서트라면 특별한 무언가라도 보여주겠지만, 에드 케인의 콘서트다 보니 딱히 준비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좀 더 완벽한 무대를 위해 연습에 매진할 뿐.
“그나저나 하실 말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드 케인의 콘서트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스케쥴이 없는 김세준이었고, 다짜고짜 오늘 김세준을 호출한 이해진이었다.
김세준의 물음에 이해진이 손깍지를 끼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즘 들리는 소문이 있는데, 너도 알아둬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소문이요?”
흥미로운 표정으로 묻는 그였고, 이어진 이해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부에서 가수들을 데리고 무슨 프로젝트 하나 꾸미는 거 같다.”
“네?”
이해진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낯설어 김세준이 되물었다.
그의 입에서 ‘정부’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 듯했다.
“아직은 단순히 소문이야. 확실하진 않고, 올해 겨울에 정부에서 가수들과 함께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 같은데. 정부는 아직 묵묵부답이야.”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보며 김세준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올해 정부가 무슨 일을 벌였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곰곰이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그였고, 이내 떠오른 생각에 속으로 탄식을 뱉었다.
‘아!’
올해 겨울과 내년 초에 일어나는 사건들.
남한과 북한의 교류 장.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세준이 너는 무조건 정부의 제안이 올 거니까. 알아는 두고 있으라고 불렀다.”
“제안이 안 올 수도 있는데, 너무 확신하시는 거 아닙니까.”
김세준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이해진이 코웃음을 쳤다.
“너한테 제안을 안 하고 누구한테 한다고. 연예인이 정치랑 엮여서 좋을 거 없으니까. 혹시 모를 일 대비해서 말해주는 거다. 세준이 너도 무슨 제안 오면 바로 알려주고.”
“네. 알겠습니다.”
강한 경각심을 가진 이해진이지만 김세준은 이번 일이 그렇게 큰 경각심을 가질 사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그로선 재밌다고 느껴질 일.
‘살면서 북한에서 공연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
아마 두 번 다시는 겪지 못할 일이리라.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대한민국에 감동을 심어줬던 자신의 연주.
그런 자신의 연주가 북한 사람들에게도 통할지 진심으로 궁금하긴 했다.
***
7월 10일.
인천국제공항에 취재진이 모여 장사진을 이뤘다.
그동안 대한민국 연예계를 뜨겁게 달궜던 한 남자가 드디어 오늘 한국에 입국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입국장 문이 열리면서 한 남성을 필두로 외국인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의 불빛.
그 불빛이 비치는 건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 에드 케인이었다.
“와우...”
쏟아지는 카메라 불빛의 향연을 보며 에드 케인이 짧은 감탄을 뱉었다.
자신이 한국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인기가 없다면 공연도 하지 않았을 거고, 자신의 이번 콘서트가 매진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모여 있을 줄이야.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에드 케일이 입을 열었다.
“테일러. 내가 한국에서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 거 같은데?”
기고만장한 웃음과 함께 자랑하듯 말하는 그였고, 옆에 있던 테일러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가 알지 못한 진실을 일러줬다.
“김세준 때문이야.”
“응? 김세준?”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던 에드 케인이 되물었고, 태일러가 흘러내리는 가방을 다시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번 공연에 네가 게스트로 초대한 남자 김세준 있잖아. 그 남자가 네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한다는 게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는군. 에드 네 팬뿐만 아니라 김세준의 팬들도 기대하는 중이라는군. 너와 김세준의 합주를.”
테일러의 말에 에드 케인의 눈이 반짝였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 자신도 이번 공연에서 김세준과의 무대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던가.
한국 팬들이 기대감을 물씬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테일러.”
“응?”
“콘서트 전에 그하고 만날 수 있을까?”
에드 케일의 말에 테일러가 재빨리 계산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에드 케일의 일정을 떠올린 그가 10초 안 되어 계산을 끝내고 말을 뱉었다.
“이미 스케쥴이 꽉 찼어. 불가능해.”
3박 4일의 계획.
무대를 제외하고 인터뷰와 예능 하나 출연이 이미 예정된 상태다.
그런 매니저의 말에 에드 케일이 아쉬운 듯 혀를 찼다.
그와 단둘이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며 음악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싶었는데.
“뭐, 굳이 한국이 아니어도 되니까.”
에드 케일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
“와,.. 음색 미쳤네. 진짜.”
에드 케인의 공연 전날.
리허설을 위해 잠실 실내체육관을 찾은 김세준이 무대 위에서 가볍게 노래 부르는 에드 케인을 보며 감탄을 뱉었다.
리허설인 만큼, 가볍게 부르는 그였지만, 그가 왜 글로벌하게 사랑받는 가수임을 알려주는 무대였다.
거칠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에드 케인 특유의 음색이 들릴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리고 노래 한 곡 리허설을 끝낸 그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더니 급히 무대 아래로 내려와 김세준에게 걸어왔다.
‘묘한 분위기가 있네.’
다가오는 그를 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모습.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흐트러진 회색 머리카락과 팔에 가득한 문신.
약간 처진 눈꼬리 때문일까. 얼굴이 선하게 보이면서도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듯한 인상이었다.
세간에서 흔히 묘사하는 천재의 모습.
에드 케인이 김세준에게 다가와 손을 건네며 무어라 말했다.
그러자 그와 동행한 남성 통역사가 그 뜻을 알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드 케인입니다. 리허설 때문에 늦게 인사드리는 점, 사과드리고 무리한 요청을 받아줘서 감사하답니다.”
“반갑습니다. 김세준입니다. 저야말로 콘서트에 게스트로 불러줘서 영광입니다.”
김세준이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고, 이내 통역사가 에드 케인에게 그의 인사를 알렸다.
통역사의 말을 듣던 에드 케인이 이내 김세준이 들고 있는 가야금으로 시선을 보냈다.
순진무구한 그의 표정.
김세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가야금을 보는 그의 시선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에드 케인이 통역사에게 무어라 말을 했고, 김세준은 통역사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케이스에서 가야금을 꺼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김세준의 행동을 보며 에드 케인이 밝은 웃음을 지었다.
“Wow...”
가야금의 고운 자태가 눈앞에 나타나자 에드 케인이 진심 어린 감탄을 뱉었다.
가야금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이리저리 살펴보는 그.
현을 가볍게 튕겨보기도 하고, 뜯어보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 김세준이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Beautiful...”
“매력 있는 악기죠.”
가야금의 소리에 중얼거리는 에드 케인을 보며 김세준이 자부심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처음 듣는 순간 진심으로 빠졌답니다.”
시종일관 가야금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
통역사의 말이 거짓이 아닌듯했다.
“혹시 가야금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묻는군요.”
통역사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지금?
김세준의 의아한 시선을 읽은 에드 케인이 다시 무어라 입을 열었다.
“나중에 미국으로 초대할 테니 그때 알려달라는군요.”
에드 케인의 말에 김세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웃음을 터트리는 김세준을 보며 에드 케인도 마주 웃었다.
저 남자.
지금 자신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에드 케인은 진심으로 그를 미국에 초대할 심산이었다.
정확히는 이번 콘서트에서 그의 실력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김세준에게 자신의 다음 앨범 피쳐링을 제안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