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9화 (49/148)

#49

마녀의 꿈(2)

아레스 뮤직은 이예은의 곡인 ‘마녀의 꿈’ 음원 녹음이 끝나자, 보도자료를 대대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미 ‘봄비’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적이 있는 그녀다.

게다가 김세준의 뮤비에 출연해 수많은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녀였기에 이예은의 첫 음반 발매 소식은 큰 이목을 끌었다.

[헐. 이분. 김세준 봄비 피쳐링 한 분 맞죠? 목소리 정말 좋으신 분.]

[봄비 듣고, 뮤비 보고 입덕한 남잡니다ㅜㅜ 언제 음반 나오나 했는데, 드디어 나오네요. 이제 덕질할 일만 남았다.]

[게다가 아레스 뮤직. 곡 이름부터 보셈. ㅋㅋㅋ 범상치가 않음.]

이예은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거기에 더해 작곡가가 김세준이란 사실까지 알려지자,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게다가 이 곡 작곡가가 김세준이네요.]

[완전히 미쳤네. 김세준이 다른 사람에게 곡 준 건 처음 아니에요?]

[제가 알기론 처음입니다. 김세준 곡이면 믿고 들어야 하는데, 거기에 이예은이라니. 그냥 무조건 들어야겠네요.]

김세준의 곡들이 자작곡이라는 건 세간에 이미 널리 알려진 지 오래였다.

이미 뛰어난 퀄리티를 몇 번이나 보여준 김세준이었기에, 이번 곡은 얼마나 훌륭할지, 그리고 이예은이 김세준의 곡을 얼마나 잘 소화해 어떤 조화가 일어날지 기대하는 분위기가 인터넷에 가득했다.

“예은이는 요새 어때?”

지방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김세준이 핸드폰으로 대중들의 반응을 확인한 뒤, 운전 중인 이주성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이주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진한 행복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부담감은 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래?”

“예. 어렸을 때부터 예은이의 꿈은 가수였으니까요. 요새 표정이 다이나믹합니다. 부담감에 얼굴이 퀭했다가, 또 어떤 날은 온종일 웃고 지냅니다.”

이주성의 말에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걷고 있는 길. 자신도 고스란히 걸어봤던 길이다. 그녀가 어떤 심정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예은이 멘탈 약하잖아. 주성이 네가 옆에서 잘 도와줘.”

“감사합니다. 형님.”

김세준의 따뜻한 말에 이주성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를 만난 것.

자신 남매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이었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다시 핸드폰을 바라보는 김세준을 이주성이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자.

그의 매니저니까.

하지만 자신의 동생까지 유독 잘 챙겨주는 그.

같은 회사 식구이자, 매니저의 동생이라는 이름을 넘어서는 그의 호의.

감사한 마음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의혹을 버릴 수 없었다.

‘형님이 혹시...’

그리고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

‘난 대환영이지.’

자신의 상상 속에서 먼 미래의 일을 그리며 이주성이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6월 8일.

이예은의 곡 ‘마녀의 꿈’이 발매됐고, 대중들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세준을 포함한 아레스 뮤직 관계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25위. 이예은- 마녀의 꿈.

25위.

첫 음반을 내는 신인치곤 호쾌한 출발이었고, 대중들의 평가도 상당히 좋았다.

[오랜만에 이런 노래 듣네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 여름이라고 맨날 억지로 높은 텐션의 노래 듣다가 이런 노래 들으니까 멘탈이 치유되는 느낌이에요.]

[저도 동감. 호불호가 갈릴 순 있어도,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사람들한텐 최고의 곡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예은의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진짜 곡이 너무 좋네요. 멜로디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요. 그냥 이예은 목소리도 미쳤고, 김세준 작곡 실력도 미쳤고. 미친 사람들끼리 협업했네요.]

대중들의 커다란 관심과 계속되는 호평.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첫 음반을 발매한 그녀였다.

***

이예은의 음반이 성공을 거두자, 이해진과 하동준은 그녀를 위한 축하 파티를 개최하기로 했다.

축하 파티라고 해도, 이예은과 친분 있는 몇 사람들만 모인 제법 단출한 파티였지만.

“내가 미쳤지.”

김세준이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기쁜 나머지, 자신의 집을 파티 장소로 제공한다고 호기롭게 외친 과거의 자신.

덕분에 파티가 열리는 오늘, 그는 온종일 청소와 씨름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오늘은 조용하진 않겠네.”

항상 고요함에 휩싸이던 그의 집.

스케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적막감만 감도는 그의 집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길 터.

김세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드리었고, 순식간에 청소를 끝내고 재빨리 배달 음식도 시켰다.

그리고 배달 음식이 도착하고 얼마 안 돼 당도한 사람들.

이해진과 하동준. 이예은과 이주성. 그리고 송대준과 이예은과 얕게나마 친분 있는 장준과 이진아까지.

모든 인원이 도착하고 시작된 파티는 김세준의 예상대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즐거웠다.

참여 인원의 대부분이 가수다.

흥이라면 차고 넘치는 사람들이기에 술자리는 내내 즐거웠고, 술이 물처럼 들어가는 파티였다.

“아... 좋네.”

김세준이 베란다로 나와 바람을 맞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항상 조용하고, 시곗바늘 소리만 들리던 자신의 집이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찬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풍경이 김세준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술 때문인가?”

괜히 감성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날씨 좋네.”

초여름 저녁에 시원한 바람이 그의 품을 맴돌다 빠져나가자, 술기운도 같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여기서 뭐 해요?”

김세준이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이예은이 베란다 문을 반쯤 열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술 취한 모습도 이쁜 건 반칙 아닌가?’

누가 봐도 술에 취해 제법 흐트러진 모습이지만, 그조차도 아름다웠다.

김세준이 대답하지 않자, 이예은이 그를 따라 베란다로 나왔다.

“너는 왜 나왔어?”

“그냥요.”

머리를 쓸어넘기는 이예은이 밤바람의 기분 좋은지 살며시 미소지었다.

“사실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응?”

기분 좋은 날씨와 술이 들어가서일까?

이예은의 말이 묘하게 들렸다.

자신과 이예은을 맴도는 묘한 기류에 김세준의 얼굴에 당혹감이 새겨졌다.

“뭐...뭔데?”

그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고, 그런 김세준을 향해 이예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휴우...’

이예은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김세준이 그녀의 말을 듣곤 한숨을 푹 내뱉었다.

자신이 걱정했던 말이 아니었기에 나오는 안도의 한숨.

그가 한숨을 쉬든 말든, 이예은이 다시 입을 재차 열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전 정말 오빠 덕분에 계약했고, 오빠 덕분에 데뷔했고, 오빠 덕분에 음원도 냈네요,”

“...”

‘많이 해주긴 했네.’

이예은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 김세준이 생각해도 꽤 많은 도움을 줬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요.”

이예은이 김세준 옆으로 다가와 난간에 걸치며 물었고, 자신의 옆에서 쳐다보는 이예은의 시선을 피하며 김세준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말했잖아. 나 아니었어도 넌 잘 됐을 거라고. 네가 잘한 거라고. 그리고 사람은 원래 상부상조하고 사는 거지. 그리고...”

김세준이 잠깐 뜸을 들인 후,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을 뱉었다.

“난 곡. 공짜로 준 거 아니야.”

“네?”

그의 말에 이예은의 얼굴에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나도 예은이 네 곡 하나 받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거로.”

“제 곡이요?”

김세준의 말에 이예은이 순간 생각에 잠겼다.

‘내가 오빠한테 곡을 들려준 게 있나?’

버스킹 때 들려준 노래인 ‘죽은 편지’ 말고는 없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술이 들어간 그녀의 뇌는 완벽한 사고를 못 했고, 그녀는 이내 자신이 언젠가 들려줬다고 판단했다.

“어떤 곡이든 줄게요.”

그녀의 말에 김세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진짜지?”

“네. 약속할게요. 오빠한텐 무조건 줄게요. 어떤 곡이든...”

“그래. 그 말 꼭 지키고. 난 먼저 들어갈게. 예은이 너도 술 깨면 안으로 들어와.”

김세준이 그녀의 어깨를 두들긴 후 발걸음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베란다에 혼자 남은 이예은.

그녀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영문 모를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

이예은의 음반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동안, ‘태조 이성계’도 제작발표회를 진행했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대하사극.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들어도 아는 명배우들의 출연.

대작에 목말랐던 시청자들이 열광할만한 요소가 모였고, 제작발표회만으로도 제법 많은 이슈를 끌었다.

그리고 거기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김세준과 세현의 OST 참여.

특히 김세준의 OST 참여는 ‘태조 이성계’의 방영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사극의 주된 시청자는 중장년층의 남성들이다.

그리고 가수 중에서 김세준보다 그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이는 없었다.

자신이 제일 기대하는 드라마에,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OST로 참여한다는 하니, 남자들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곡이 보통 곡인가.

‘단심가’와 ‘하여가’라는 지금도 전해지는 중세시대의 걸작 문학.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두 시조를 배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의 기대치는 한없이 올라갔다.

[진짜 김세준 아이디어는 미친 듯.]

[음반은 언제 나와요? 검색해도 안 나오던데.]

[보통 OST는 드라마 중간에 음원 발표하지 않나요? 아직 방영하지도 않은 드라만데, 음원 나오려면 한참 남은 듯ㅜ]

[아... 안돼. 그럼 노래 들으려면 음원 나오기 전까진 드라마 무조건 봐야겠네.]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

그 반응에 힘입어 ‘태조 이성계’는 첫 방송부터 시청률 20%를 넘기며 대박의 조짐을 보였다.

***

“재밌네. 오랜만에 봐도.”

‘태조 이성계’의 첫 방송을 지켜본 김세준이 맥주를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명작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법.

수십 번도 넘게 본 드라마지만 그 재미는 여전했고, 팬으로서 그리고 관계자로서 김세준은 본 방송을 사수했다.

“이제 자야지.”

드라마 끝나고, 남은 맥주를 털어 넘기고 씻으려고 할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벌써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 액정을 들여다본 김세준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띠었다.

“편집자?”

자신의 미튜브 편집자였다.

자신의 사촌 형인 김세훈 지인의 동생.

예의도 바르고 실력도 좋은 사람으로, 이런 늦은 시간에 이유 없이 전화할 인물은 아니었다.

“여보세요?”

“네.... 세... 세준이형.”

“뭐야? 너 무슨 일 있어?”

늦은 시간에 전화해 말까지 더듬는 그를 보며 김세준이 급하게 물었다.

“아니. 후우....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래. 심호흡하고 차분하게 말해봐.”

“후우..후우... 형... 형 놀라지 말고 들어요.”

“뭔데?”

자꾸 감질나게 말하는 그.

김세준이 핸드폰을 귀에 더 가까이 붙였고, 이어진 그의 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에... 에드 케인이. 형이랑 같이 공연하고 싶대요! 다음 달인 7월! 자신의 내한 콘서트에 형을 게스트로 초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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