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5화 (45/148)

#45

갓세준

대학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이해진과 하동준은 김세준을 급히 불렀다.

“반응은 좋은데...”

하동준이 핸드폰으로 어제 있던 김세준의 무대 반응을 보며 낮게 말했다.

어제 펼쳤던 김세준의 축제 공연 후기는 칭찬으로 가득했다.

대한 커뮤니티 앱에서 시작된 관객들의 후기는 순식간에 다른 커뮤니티로도 퍼져나갔다.

고작 대학교 무대 축제가 다른 커뮤니티까지 퍼지는 김세준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세준 또한 그런 반응을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즐겼다는 방증이었으니까.

“어제 재밌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순간 하늘을 나는 기분이더군요.”

“그래. 제삼자인 내가 봐도 뽕 차오르는데, 가수인 너는 오죽하겠냐.”

하동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말이지.

누군가가 찍어서 영상으로 올린 김세준의 무대.

콘서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수백 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은 보는 이에게도 진한 여운을 남겨줄 정도였다.

영상을 본 대중들의 감정이 그런데, 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김세준이 느낀 감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

“여기까진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왜. 왜 하필 이런 말을 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냐 세준아.”

하동준이 머리를 짚으며 김세준을 향해 핸드폰을 내밀었고, 거기엔 김세준이 관객들을 향해 공연비를 기부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공연비를 전액 기부하겠다는 그의 발언. 인터넷상에선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었다.

특히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에 허덕이는 청춘들은 김세준을 갓세준이라고 부르며 김세준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소리까지 할 정도로 큰 지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이거 지금 당장 반응은 좋지만, 후폭풍은 어떡할래? 너 앞으로 대학 축제는 다 무료봉사하게 생겼어. 그리고 다른 가수들은 너 때문에 지금 욕먹게 생겼고. 후우...”

하동준이 깊은 한숨과 함께 그동안 보이지 않던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동안 잘해온 모습만 봐서일까?

김세준의 경솔한 발언이 너무 아쉬웠다.

이해진 또한 하동준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런 둘을 보며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이런 일을 벌인 건 지나치긴 했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이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숙였고, 하동준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어. 올해 대학 축제는 다 무료로 진행하고, 공지 올려야지. 다른 가수들 비난은 자제해달라는.”

하동준의 말에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이 정도가 최선. 하지만 그의 시선에 달싹거리는 김세준의 입술이 보였다.

“무슨 하고 싶은 말 있어?”

“저... 방금 떠올린 생각인데, 혹시 저 대학 축제 앞으로 계속 무료로 하면 안 됩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김세준의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둘이었고, 김세준이 차분히 다시 말을 이었다.

방금 하동준의 말을 듣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한 가지 생각.

급하게 떠오르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했을 땐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약간의 포장을 해서요.”

“이걸 어떻게 포장하겠다고?”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가수들이 연말마다 하는 기부콘서트. 저는 기부 공연인 거죠. 연말에 하는 기부콘서트가 아닌, 대학 축제 공연을 기부 공연이라고 포장해서 매년 진행하는 거죠.”

“...!”

김세준의 급조한 아이디어가 제법 그럴싸했는지 하동준과 이해진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런 둘의 감정을 읽은 김세준이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다시 말을 뱉었다.

“솔직히 올해만 하는 것도 너무 속 보이지 않습니까. 분명 언젠간 말이 나올 거고, 차라리 이렇게 된 거 대놓고 컨셉을 잡는 게 낫지 않을까요? 대학 축제 수입이 나쁘진 않지만, 따지고 보면 고작 한 달 장사잖아요. 어쩌면 제 이미지도 챙기고, 다른 가수들한테 끼치는 피해도 잠재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호오...”

그의 말에 이해진이 턱을 쓰다듬고, 하동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대로 대학 축제 수입이 나쁘진 않지만, 김세준 정도라면 크게 아쉽진 않은 정도.

게다가 대학 축제는 학교 축제라는 명목하에 평소 몸값에 50&~70% 받는 게 상도의다.

즉 수입만 따지고 봤을 땐 엄청 큰 손해는 아니라는 뜻이다.

“컨셉은 좋은데?”

“네. 게다가 이미지도 엄청 좋아질 거고요. 특히 20대들한테 엄청난 호응을 받을 겁니다.”

“그렇지. 학생들이 등록금에 고달파하는 건 매년 똑같을 테니까.”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하동준도 이어서 말을 내뱉었다.

“네가 매번 행사비를 기부한다고 하면 대학교에서도 매년 찾을 거고, 일 년에 대학교 공연을 몇 개나 할지도 정해놔야겠네. 그리고 맨 처음이야 가수들 사이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어도, 시간 지나면 가수들도 대중들도 받아들이겠는데? 납득할 수 있게 포장만 잘하면.”

“세준이 너, 이거 언제부터 생각한 거야?”

이해진이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물었고, 김세준이 손을 내저었다.

“어제 발언할 땐 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부사장님 말씀 듣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갑자기 떠오른 거 치곤, 나쁘지 않은데. 진짜로.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뻔뻔하게 이렇게 밀고 나가는 것도 괜찮겠어.”

“다른 가수들도 받아들일까요?”

김세준의 질문에 하동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말했지만, 처음엔 좀 욕할 수 있어도 시간 지나면 너만의 시그니처로 받아들이겠지. 네 말대로 기부콘서트 한다고 다른 가수들이 욕하진 않잖아?”

“그리고 우리 대학은 왜 안 오냐는 불만도 선착순으로 받아들이면 해결할 수 있겠지.”

이해진의 말을 마지막으로 세 남자가 작게 미소 지었다.

다음 날, 아레스 뮤직에서는 김세준이 앞으로 대학 축제는 무료로 진행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대대적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이 아닌, 평생 무료로 공연하겠다는 아레스 뮤직의 선언은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김세준의 이미지는 천정부지 솟구치기 시작했다.

[와..... 진짜 갓세준이네....]

[이게 말이 됌?ㅋㅋㅋㅋ 진짜 클래스가 다르구나.]

[김세준 공연을 공짜로 보는 거임? 미쳤네.]

김세준을 향한 긍정적인 여론은 다른 가수들을 향한 비판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도 있었다.

[김세준이 대단한 거지, 다른 가수들이 잘못한 거 아닌데?]

[당연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건데, 그걸로 욕하시면 안 되죠. 님은 남들이 기부한다고 님도 기부하실 겁니까?]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가수가 욕을 먹자, 그들의 팬덤까지 나서서 가수들을 변호하기 시작했고, 다른 가수들을 욕하던 이들은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

봄이 빨리 찾아온 만큼, 여름도 빨리 찾아오는 걸까?

5월 말이 되자 포근히 감싸주던 햇살이 매섭게 변했다.

따뜻함을 넘어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고, 김세준의 노래는 음원 차트에서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쉽네.”

어느덧 10위 권쯤에 안착한 자신의 노래들을 보며 김세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제법 오랫동안 1위를 유지했던 ‘심청가’와 달리 이번엔 두 달 정도 1위를 유지했다.

“뭐, 내년에 다시 올라갈 테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내년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 곡은 말 그대로 연금, 내년 봄이 된다면 다시 차트 위에 새겨지리라.

“일단 아쉬운 마음은 접어두고... 다음 계획은 OST인가?”

일주일 뒤에 있을 BBS 드라마국과의 미팅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턱을 쓸었다.

태조 이성계.

사극의 화룡점정을 찍은 작품.

이 작품 이후로, 더 이상 이 작품을 뛰어넘는 사극은, 김세준이 살던 시대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 있는 작품이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김세준이 이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었던 다른 이유 있었다.

‘이란에서 이성계가 제법 인기를 끌었지?’

‘대장금’을 통해 이미 한 번 대한민국 사극의 맛을 맛본 이란인들에게 ‘태조 이성계’는 제대로 통했고, 이란을 넘어서 중동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즉 이번 OST에 참여한 자신의 곡이 그들의 귓가에 울린다는 뜻이었다.

***

일주일 뒤 BBS 방송국을 찾아온 김세준을 ‘태조 이성계’ 총괄 감독인 김병서는 밝은 얼굴로 맞이했다.

‘신의 한 수였어.’

얼마 전 있었던 한 가지 사건.

안 그래도 팬층이 탄탄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승세라고 봐도 무방한 그가, 얼마 전 또 전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김세준이 자신들의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한다는 기사만 뿌려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게 틀림없었다.

“회의실로 가시죠.”

김병서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로 향했고, 김병서말고도 한 명의 남자가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음향 감독 박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세준입니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박준영이 그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세준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박준영을 보며, 김세준이 미소로 답했다.

“너무 크면 실망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대한민국에서 세준씨보다 사극이랑 잘 어울리는 가수가 있을까요?”

그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긴 하네요.”

박준영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자신보다 사극에 잘 맞는 음악 스타일을 가진 가수는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일단 저희가 세준씨에게 부탁드릴 곡이 메인 곡은 아닌데 괜찮으세요?”

“네. 오히려 좋네요.”

박준영의 조심스러운 말투가 무색하게도 김세준은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생각한 컨셉은 메인으로 쓸 수가 없으니까.’

그가 진작에 생각하고 있던 이번 OST 곡의 컨셉은 태조 이성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주제가 아니라, 캐릭터를 중심으로 잡은 곡이다. 그것도 이성계가 아닌 조연들을 중심으로 잡은 곡.

“오히려 좋으시다면.. 혹시 뭐 생각해두신 거라도?”

박준영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김세준을 바라봤다.

그가 지금까지 세간에 발표했던 곡들.

참신함은 물론, 세간의 귀를 사로잡았던 명곡들뿐이다.

“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생각해둔 컨셉은 있었습니다.”

“오오!”

“그게 뭡니까!”

그의 말에 김병서와 박준영의 얼굴에 밝은 빛이 띠었다.

흥행가도만 달렸던 그의 노래들. 자신들의 OST도 틀림없이 그러하리라.

“일단 리메이크곡입니다.”

“리메이크요?”

“그 저번 연꽃처럼요?”

약간은 맥빠진 목소리로 답하는 둘.

이미 한 번 사용한 컨셉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극 OST인데 리메이크라. 네. 일단 그러고요?”

“그리고 답가 형식이기도 하고요.”

“... 답가까지도요?”

부드러운 미소를 시종일관 짓고 있는 김세준과 달리 두 남자의 얼굴에 띠었던 밝은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대감 가득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는 둘.

그런 둘을 향해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하여가.”

“네?”

“그리고 단심가.”

“하여가하고 단심가... 아!"

김세준의 생각을 이해한 두 남자의 동공이 커졌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시조. 그 두 시조를 리메이크, 그리고 답가로 부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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