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4화 (44/148)

#44

대학 축제

“1위하고 2위를 동시에 이뤘다고?”

이해진이 음원 차트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허...”

음원 차트 1위와 2위를 동시에 석권한 말도 안 되는 업적.

보고도 믿기지 않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랬던 적이 지금까지 있었나?”

중얼거리며 혼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연륜 가득한 가수도, 전국을 히트한 아이돌도 이런 풍경을 이뤄냈던 적이 있는가.

잠시 후, 이해진이 고개를 저었다.

없다.

자신이 아는 가수들을 총동원해봐도, 이런 대기록을 세운 가수는 없었다.

“이게 고작 데뷔 1년 차인 가수가 이뤄낸 거라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속사 사장으로서는 누구보다 기쁜 쾌거이지만, 같은 가수라고 생각했을 땐 내심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약간의 질투가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들었음에도 이해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김세준이란 가수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

실력이야 당연히 무결점이고, 인성 또한 흠잡을 데 없다.

팬들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도 차고 넘쳤다.

미튜브를 통해 끊임없이 덕질할 수 있는 떡밥을 던져주는 그의 모습은, 다른 가수 팬들이 김세준의 팬들을 부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 진짜 한국에서는 탑클래스네.”

작년까지는 반짝이던 신인이, 올해는 모든 가수가 우러러보는 탑클래스로 변모했다.

“1위를 2번, 그리고 1, 2위를 동시 석권이라...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성과지.”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중 손꼽히는 가수인 이해진 그조차도 감히 이뤄낼 수 없는 대단한 업적이었다.

아직 새벽이지만, 내일 해가 뜨고 나면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지리라.

회사 차원에서도 전폭적인 홍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동준이형이 기뻐하겠네.”

작년에도 김세준으로 인해 늘어난 매출을 보며 기뻐하던 그였는데, 이번엔 얼마나 기뻐할까.

피식 웃음을 터트린 이해진이 냉장고로 향했다.

오늘은 축배를 들고 싶은 날이었다.

김세준의 말도 안 되는 성과와 그런 김세준을 발굴한 자신의 안목을 기념하는 축배를.

***

이해진의 예상대로 1위와 2위를 동시에 석권한 김세준의 앨범은 파급력이 엄청났다.

여름철의 장마처럼 쏟아지는 기사들과 각종 커뮤니티에 그와 관련된 게시물이 넘쳤다.

[새로운 연금 등장인가요? ㅋㅋㅋ]

[ㅋㅋㅋ근데 이번 앨범을 진짜 잘 만듬. 신날 땐 봄바람, 슬플 땐 봄비, 외로울 땐 외로운 봄날. 그냥 봄의 감정이란 감정은 다 때려 넣었음ㅋㅋㅋ]

[나도 맨 처음엔 이예은 빨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음원 듣고 생각이 바뀌었음. 그냥 김세준의 노래 자체가 좋은 것도 분명함.]

[김세준 음악성 좋은 건 작년부터 유명했으니까.]

긍정적인 여론이 넘치는 김세준의 앨범이었고, 4월은 말 그대로 그의 달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전국에서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봄 냄새가 더욱 물씬 풍기는 5월이 됐고, 김세준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전국을 돌아다녔다.

바야흐로 가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학 축제의 시기가 다시 돌아왔다.

“느낌이 색다르네.”

김세준이 차 안에서 대기하며 대학교 운동장에 커다랗게 마련된 무대를 보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작년. 강유나와 함께했던 대학 축제.

그때와는 전혀 다른 위치. 그리고 감정.

고작 한 곡만 부르고 씁쓸하게 홀로 내려와 무대에 남아 있던 강유나를 바라봤던 작년과는 달리, 이번엔 그는 30분의 공연을 대학과 계약했다.

“그러고 보니 30분 동안 공연하는 건 처음이네.”

숱한 방송과 무대를 다녔지만, 이 정도로 길게 무대를 꾸미는 건 처음이었다.

방송 무대나, 여태 나갔던 콘서트도 다 한두 곡 불렀던 게 전부다.

“형님. 슬슬 준비할 시간입니다.”

이주성이 핸드폰을 힐끗 본 후 말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은이는?”

“먼저 대기 중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이주성이 문을 열고 나와, 뒷문을 열었다.

이주성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무대 뒤편으로 향했고, 김세준의 모습을 발견한 몇몇 대학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김세준이 들뜬 마음을 가진 채, 무대 뒤편으로 향했고 거기엔 이예은이 목을 풀며 대기 중이었다.

“예은아.”

김세준이 부르자, 이예은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김세준과 이주성을 발견한 그녀의 눈빛에 반가움이 번졌다.

“안녕하세요.”

첫 방송 무대를 했던 때와는 달리, 긴장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김세준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젠 긴장 안 돼?”

“네. 혹시 몰라서 청심환을 먹고 오긴 했지만요.”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그녀였고, 김세준은 그녀를 보며 작년의 자신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오늘 그녀의 처지는 작년의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작 한 곡. 그 한 곡을 위해 무대를 서는 그녀였고, 혼자 힘으로는 이런 무대에 오르질 못할 깍두기 같은 신세.

잠깐 안쓰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던 김세준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반도 낼 그녀다. 자신처럼 비상할 일만 남았기에 이런 걱정은 사치였다.

“오늘 한 곡이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그리고 자신과는 멘탈 자체가 남다른 부분이 있었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성격 자체가 불만보단 모든 일에 감사하는 그녀였다.

아마 지금도, 이런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뿐일 거다.

“내년에는 각자 따로 공연하러 다니자.”

“네? 아... 좋으면서도 아쉽네요.”

김세준의 말에 이예은이 눈을 크게 뜨며 실망했다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수줍게 웃었다.

“저, 김세준님? 이제 무대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진행 요원이 멋쩍게 다가와 말을 걸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무대는 자신의 솔로곡. 이예은은 중간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꺄아아아악!!”

“오빠! 사랑해요!”

측면에서 스테이지를 바라보던 이들이 무대로 향하는 김세준의 등장을 환호성으로 알렸고, 이어 그가 무대 위로 오르자 관객들의 환희 섞인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꽉 찬 운동장. 폴짝폴짝 뛰며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김세준이 얼굴 가득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김세준입니다!”

고작 인사만 했음에도 그를 향한 환호성이 하늘을 찔렀고, 김세준은 관객들의 반응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러분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영광이네요. 가타부타 길게 시간 끌지 않고 바로 시작할까요?”

김세준의 말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고, 김세준이 눈빛을 보내자 거대한 스피커에서 그의 데뷔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반주만 나왔음에도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김세준은 자신의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이 맛에 가수하는 거지.’

자신을 보며 열광하는 사람들.

삶의 애환이 가득한 그들이겠지만, 지금 저들에겐 즐거움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김세준이 관객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관객들의 반응만 봐도 온몸이 짜릿짜릿하며 저린다. 가수만의 특권이자 가수만 가질 수있는 사치였다.

연꽃이 피어날 때, 그대를 처음 봤죠.

연꽃보다 그대만 눈에 담고 왔죠.

그대의 붉은 입술이

붉은 연꽃처럼 눈부셨죠.

“...!”

노래를 부르던 김세준의 동공이 커졌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오르는 감동.

마이크를 통해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입이 뻐끔거리고, 수백 명의 목소리가 섞여 자신의 귓가를 때렸다.

일명 떼창이라고 불리는 현상.

수백 명이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자 김세준이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쾌감이었다.

‘진짜. 진짜로 가수하길 잘했다.’

가수가 아니라면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곡의 하이라이트가 나오자 김세준이 마이크를 아예 관객들 쪽으로 내밀었다.

그날의 기억. 이제 잊고 싶은 그때.

연꽃이 지면, 난 그대를 떠날게요.

수백 명의 목소리가 아우러져 만들어내는 코러스.

그 화음에 김세준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온몸을 떨었다.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이었다.

***

‘연꽃’에 이어 심청가까지 말 그대로 관객들과 함께 부른 김세준이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즐겁죠?”

“네!”

“저도 즐겁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여러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김세준이 무대를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녔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핸드폰이 빛을 내뿜었다.

“제가 오늘 얼마나 기쁜지 여러분들한테 말로 다 형용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행동으로 보여드릴게요.”

김세준의 말에 관객들의 얼굴에 기대감과 호기심이 서렸다.

잠깐 말을 멈춘 김세준이 미소를 잔뜩 짓고 재차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받은 공연비. 전부 다 장학금으로 다시 돌려드릴 거예요! 한 푼도 빠짐없이 다! 전부 다시 장학금으로 기부하겠습니다!”

“...!”

김세준의 말에 관객들이 놀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수백 명 앞에서 내뱉는 말.

절대 거짓일 리가 없었다.

김세준! 김세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을 보며 김세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시작할 때부터 빚을 지고 살아가는 그들에 비해 자신은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그런 그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공연비를 고스란히 다시 대학에 돌려줄 심산이었다.

‘약간의 립 서비스를 섞어 말하면 더 좋지. 그리고 지금 나에겐 돈보다 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게 더 중요해.’

중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자신의 20대 팬층.

이번 앨범이 흥하면서 그들에게도 나름 인기를 끌었지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인터넷상에 널리 퍼진다면, 적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인기는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갈 게 훤했다.

‘몇백만 원으로 그들의 인기를 사는 거면 싸게 먹히는 거지.’

그리고 저들의 열성적인 반응에 진심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다음 노래는요. 남자분들이 진짜 기다리시던 무댄데.”

김세준의 말에 누군지 짐작한 남자들이 굵직한 목소리로 기쁨을 표출했다.

“요새 저보다 바쁜 분이에요. 간신히 데리고 왔어요. 예은이랑 함께하는 노래 봄비입니다.”

김세준의 소개와 함께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던 이예은이 무대로 올라왔다.

김세준이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렸고, 이예은이 깜짝 놀란 듯 멈칫했지만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웃음을 본 남자들이 자지러졌고, 여자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녀의 미모에 감탄을 내뱉었다.

언니 이뻐요! 같은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이예은이 미소를 지을 때마다 기쁨 섞인 비명이 들려왔다.

관객들의 반응을 만끽하던 김세준이 이예은을 향해 눈빛을 보냈고, 그 시선을 읽은 이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빗소리.

사람들이 익숙한 소리에 열광했고 김세준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이날의 감동은 관객에게도, 이예은에게도, 그리고 김세준에게도 오랫동안 곱씹을 거대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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