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3화 (43/148)

#43

은인

전경원에게 커뮤니티를 보고 미튜브를 시청하는 건 고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하나의 낙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그가 즐겨보는 미튜브는 한 남자의 채널이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그가, 단숨에 팬이 되어버린 남자 김세준의 채널.

처음 그의 노래를 접하자마자 전경원은 순식간에 열성적인 팬이 됐다.

미튜브도 구독하고, 그의 음원은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간 지 오래다.

당연히 그의 첫 앨범이 나오자마자 음원을 찾아 들었고, 뮤직비디오를 챙겨 본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의 앨범과 뮤직비디오를 본 순간, 전경원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익숙한 여인, 그리고 ‘봄비’라는 곡에 걸린 이예은이란 이름.

“...진짜야?”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비벼봐도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순식간에 그의 두 눈동자가 물기가 촉촉해졌다.

작년 이후로 본 적 없지만, 항상 그리워하고 고마웠던 사람.

첫사랑이지만, 첫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과분했던 사람.

‘은인.’

자신의 은인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은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으리라.

옛날 생각을 떠올린 전경원의 두 눈가가 다시 그렁그렁 해졌고, 전경원이 소매로 얼굴을 쓱 닦았다.

여운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몇 번이나 자신에게 말했던 꿈을 이뤘고, 자신은 은인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 했다.

그가 평소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위가 은인인 그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채.

***

“사고?”

작게 중얼거린 김세준이 하동준이 다음으로 보낸 링크를 들어갔다.

뜬금없이 사고라니?

자신이 아는 미래엔 이예은이 무슨 사고를 친 기억이 없었는데?

‘미래가 바뀐 건가?’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 액정을 바라보던 김세준의 초조한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사고긴 사고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 굴러들어온 사고였다.

***

하동준이 보낸 링크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저는 꿈을 꾸는 집이라는 보육원 출신입니다.]

담담한 제목. 그리고 그 제목을 이어 안에 담긴 내용은 글은 진솔하고 감성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막 사회에 뛰어든 청년입니다. 제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보육원 출신입니다. 자랑할만한 과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숨겨야 할 과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갑자기 제 출신을 인터넷에 밝힌 이유는 얼마 전 화제가 된 한 여성분 때문입니다....]

장문으로 구구절절 쓰인 글.

짧게 요약하자면 이예은의 선행을 밝히는 글이었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시절, 삐뚤어질 뻔했던 자신을 도와준 자원봉사자, 자신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위로했던 그녀의 선행을 알리는 글이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감옥에 가 있거나, 진작에 죽었을 거라며 이예은에게 깊은 감사를 올리며 항상 응원한다는 말로 마무리된 글이었다.

혹여 자신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몇 장의 사진까지 첨부한 작성자였다.

“대단하네.”

글을 꼼꼼히 완독한 김세준도 감탄을 내뱉었다.

작성자가 일부러 밝히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이예은의 사생활을 모르는 건지 몰라도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상처 가진 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이들을 위해 봉사했던 그녀의 행동은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상처를 모르는 네티즌들이지만, 이예은의 행동에 깊은 감동받았다.

[얼굴만이 아니라 마음도 천사였네요.]

[앞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이런 분이 있어서 아직 세상이 살만한가 보네요. 정말 감동받았어요.]

이예은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김세준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보고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8위. 이예은.

벌써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등극한 그녀의 이름.

거기에 멈추지 않고, 좋은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던 기사들도 그녀의 선행에 관한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좋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지만 김세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이번 앨범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큰 순풍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김세준이 ‘뮤직인’ 앱을 키곤 차트를 확인했다.

아직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1위.

‘가능하겠어. 그리고...’

김세준의 시선이 2위에도 꽂혀 있었다.

어쩌면 1위와 2위의 자리를 자신의 곡으로 채워 넣는 게 불가능이 아닐지도 몰랐다.

***

다음날, 김세준은 이해진의 부름에 회사 사옥을 찾았다.

“어? 안녕하세요.”

“예은아.”

이해진의 사무실 앞, 이예은도 불려왔는지 그의 사무실 문을 열려던 와중이었다.

짧은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하동준이 그들을 보며 양팔을 벌렸다.

“복덩이들! 우리 복덩이들!”

함박웃음을 지은 채 그들을 반기는 하동준이었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이해진의 얼굴에도 흡족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예은아. 어떻게 된 거야?”

이해진이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고, 이예은이 부끄러운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냥 예전부터 꾸준히 다니던 봉사활동이었어요. 설마 그런 글을 남길 줄은 진짜 몰랐어요.”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이해진과 하동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복덩이들은 착하게 산 건가? 그래서 이런 복이 떨어지는 건가?”

“아니에요. 그냥...”

얼굴이 빨개져 얼버무리는 이예은이었고, 이해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가 조작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네. 그건 절대 아니에요.”

“글 올린 사람은 누군지 알고?”

“네. 사진 보고 바로 알아차렸어요.”

“봉사활동은 언제부터 한 거야?”

“저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좀 지난 뒤에... 저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거든요...”

마음 아픈 마지막 대답에 사무실이 침묵에 잠겼고, 이내 이해진이 다시 말을 뱉었다.

“음... 그래. 일단 지금 반응이 매우 좋아. 예은이가 만들어 온 좋은 기회다. 세준아. 이 기회 놓치지 말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보자.”

“네.”

이해진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예은이 너는 인터뷰 잡혔으니까, 준비하고.”

“네?”

“인터뷰 들어왔다고. 봄비의 성적이 나쁘지도 않고, 뮤직비디오도 반응이 괜찮아. 게다가 이번 일로 인해서 언론사에서도 너한테 꽤 관심 가지고 있어.”

“아... 네.”

이해진의 설명에 이예은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김세준이 그런 그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세간의 화제가 될수록 자신에게 나쁠 게 없었으니까.

짧게는 ‘봄비’의 성적이 좋아질 거고, 길게 보면 세계로 뻗어나갈 때에도 도움이 되리라.

“그리고 이번 주 BBS 음악 방송에 세준이 나가는 거, 예은이랑 해서 봄비도 추가됐으니까 알고 있고.”

“네.”

이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방송국 측에서도 이예은의 화제성을 무시하긴 힘들었으리라.

“한 방송에 무대 2번 꾸리는 경우는 드문데, 세준이도 많이 컸네.”

하동준이 대견하다는 듯 말하자 김세준이 손을 내저었다.

“다 예은이가 한 거 아닙니까.”

“그런 예은이를 우리 회사에 데리고 온 것도, 앨범에 피쳐링으로 넣어달라고 했던 것도, 뮤직비디오에 출연시키기로 했던 것도 다 네 계획이야. 네가 없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하동준이 시선을 이예은에게 돌리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예은이 너는 세준이한테 많이 고마워해야겠다.”

하동준은 장난스럽게 내뱉은 말이었기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예은은 그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정말로요. 정말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평소에는 보지 못한 이예은의 진중한 표정에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시간이 흘러 음악 방송 녹화 날이 다가왔고, 김세준은 핸드폰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노래. 타이틀 곡 ‘봄바람’은 4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고, ‘봄비’는 9위까지 순위가 상승했다.

나머지 두 곡도 나날이 상승세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고맙다. 예은아. 다 네 덕분이다.”

같이 대기실에 있던 이예은에게 말하자, 이예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야. 네 인터뷰도 화제가 많이 됐잖아.”

이예은의 인터뷰.

그녀는 과감 없이 자신의 모든 걸 밝혔다.

그녀가 왜 봉사활동을 했는지, 언제부터 하게 됐는지.

즉, 그녀가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위로해 주려는 마음이었다는 것까지도.

그녀의 인터뷰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향한 측은지심과 동정과 경외.

가지각색의 감정을 이입한 사람들이었고, 덕분에 김세준과 이예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호감이 넘쳐흘렀다.

흐뭇한 생각에 잠긴 김세준을 이예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고, 김세준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오빠... 어떡해요...”

발을 동동 구르며 창백해진 안색으로 벌벌 떠는 중이었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첫 무대를 한다는 공포가 엄습한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오빠...”

“응?”

“토할 거 같아요...”

첫 무대의 긴장감.

자신도 지극히 잘 알고 있는 감정이었다.

안색이 창백해지다 못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예은이 재차 물었다.

“오빠 진짜 어떡해요?”

훗날 완벽한 표정 연기로 팬들을 조련하는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김세준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은 저래도,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누구보다 잘 해낼 걸 알고 있었다.

***

이예은은 무대 뒤편에서 김세준의 무대를 구경했다.

앞서 올라가 타이틀 곡인 ‘봄바람’을 부르는 그였고, 그녀는 긴장감에 눈앞이 캄캄했다.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 관객들도 그에게 홀라당 빠져들었고, 그런 능숙한 무대를 선보이는 김세준의 모습이 이예은엔 눈엔 너무 크게 보였다.

이예은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무대로 향했고,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아아... 어떡해...’

이대로 심장이 터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 기분.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 이예은이 김세준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시선을 그의 얼굴로 보내자, 그가 은은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김세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평온해지는 마음.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고 이예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을 향해 눈빛을 빛내는 관객들.

그리고 긴장감을 밀어내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근거림.

이예은이 깊은숨을 내뱉었다.

한숨과도 같이 느껴지는 깊은 숨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져 나갔고, 이내 둘의 무대가 시작됐다.

***

이예은과 김세준의 방송 무대는 관객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크나큰 호평을 받았다.

그 증거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음원 차트 순위였고, 봄기운이 가득한 4월 초에 드디어 이변이 일어났다.

여태껏 무너지지 않았던 철옹성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연금의 등장을 알렸다.

김세준의 곡 ‘봄바람’이 1위에 등극했고.

김세준의 또 다른 곡 ‘봄비’가 2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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