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2화 (42/148)

#42

첫 예능

“반응 좋고.”

김세준이 이른 아침부터 핸드폰을 보며 흡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튜브에 올라간 자신의 첫 뮤직비디오.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조회 수와 좋아요의 숫자가 꽤 긍정적이었다. 댓글들도 칭찬 일색이었다.

그리고 그런 댓글 대다수가 한글이긴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외국어로 적힌 댓글들.

짧은 영어로 인해 완벽하게 해석할 순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했을 때, 그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좋아.”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긍정적인 말.

뮤직비디오를 칭찬하거나 자신의 노래를 칭찬하는 댓글이 다수이지만 종종 낯선 존재인 이예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곧 밝혀지겠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가 자신의 곡을 피쳐링한 이예은이란 사실은 금방 밝혀지리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록곡인 ‘봄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거고.

김세준이 순조로운 계획에 미소를 잔뜩 머금었고, 이어서 음악 앱인 ‘뮤직인’을 켰다.

‘뮤직인’을 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현재 1등에 자리 잡은 그 곡.

“진짜 대단하긴 하네.”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 정도다.

벌써 발매한 지 몇 년이나 지난 곡인데, 아직도 봄만 되면 1위에 올라서는 저력에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흐음...”

그리고 한쪽 눈을 감고,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위로 쓸어올렸다.

마치 카드를 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순위를 확인하는 그.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딱 한 번 내렸음에도 등장하는 자신의 곡을 보며 김세준이 납득했다.

11위. 김세준- 봄바람.

하루 만에 11위라는 호성적 성적.

강유나와 함께했던 ‘심청가’와 비슷한 순위지만, 그때와 달리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게다가 ‘봄’이라는 컨셉을 잡은 무수한 곡 중에서도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중이었다.

“1위까지 올라가야지.... 어?”

계속 엄지손가락으로 액정을 쓸어올리던 김세준이 짧은 감탄을 내뱉고 눈빛이 다채롭게 변했다.

“이건 예상왼데?”

그의 데뷔 앨범 수록곡 네 곡이 전부 차트에 진입했다.

보통 앨범을 내면 타이틀 곡을 제외하곤 묻히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예상외의 선전에 김세준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앨범이 발매되자, 김세준의 스케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곡 모두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차트에 진입하자, 방송 피디 중 그를 안 찾는 사람이 없었다.

작년, 김세준이 보여준 대박 행보.

그리고 연말에 터트린 아시안 뮤직 어워드로 화룡점정을 찍은 그였다.

거기에 올해 첫 활동인 앨범마저 초반에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아레나 뮤직엔 하루도 빠짐없이 김세준의 섭외 전화가 물밀 듯 걸려왔고, 김세준은 그중 한 방송에 출연을 결심했다.

“형님. 근데 갑자기 웬 예능입니까?”

“응?”

“원래 예능 출연은 조금 꺼리시지 않았습니까.”

룸미러로 시선을 보내며 물어보는 이주성이었고, 김세준이 작은 탄식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받았던 무수한 섭외 제의. 하지만 김세준은 그동안 그런 예능 출연 제의를 전부 거절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화려한 입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을 웃기는 재주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굳이 예능에 출연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 그랬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어.”

며칠 전 확인한 미튜브 댓글.

그 댓글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턱을 긁적였다.

고마운 댓글도 많았지만, 팬들에게 미안함을 주게 만드는 댓글도 많았다.

[세준이 형. 형 노래 잘 듣고 있는데, 혹시 방송 출연은 좀 더 많이 하실 생각 없어요? ㅜㅜ 형 출연하는 건 본방사수 할 자신 있는데. 좀 더 자주 보고 싶어요.ㅜㅜ]

나름 부족하지 않게 활동했다고 생각했지만, 팬들 입장에선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법 많은 ‘좋아요’와 대댓글이 달린 댓글이었고, 김세준은 그동안 거절했던 예능 출연을 결심했다.

‘방송 출연이 뜸하긴 했었으니까.’

음악 방송 외엔 출연한 적이 없으므로, 팬들이 아쉬움을 토론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예능 같은 전국민적으로 즐겨보는 방송에 자신의 가수가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은 희열을 느낀다.

미튜브만으로는 충족시켜줄 수 없는 감정이었고, 김세준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이해진이나, 다른 가수들 나올 때면 꽤 좋아했지.’

방송 활동이 드문 그들이 방송에 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던 그.

이젠 그가 팬들에게 뿌듯함을 안겨줄 차례였다.

‘그리고 겸사겸사 곡 홍보도 할 수 있으니까.’

앨범을 낸 가수가 예능에 나가 곡 홍보를 하는 건 당연지사. 김세준도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김세준입니다.”

“아! 반가워요. 세준씨.”

방송 스튜디오에 도착한 김세준은, 바로 고정 출연진들에게 인사하러 갔다.

연예계 대선배인 그들이었고, 까마득한 후배인 자신이 먼저 인사하러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자신이 출연한 이 프로그램의 메인 MC인 인현규의 대기실이었다.

인현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근육질 체구를 가졌고, 그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인상이 순박한 남자.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며 유려한 입담과 깔끔한 상황 정리가 일품인 남자로 MC로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김세준이 들어서자, 인현규가 순한 미소로 그를 반겼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너무 좋더라고. 내 주변 사람들도 다 세준씨 팬이에요.”

인현규의 칭찬에 김세준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도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무슨. 편하게 형이라고 해요. 나도 말 놓을 테니까. 어차피 우리 방송 컨셉 알지? 방송하다 보면 나중에 말 놓고 편하게 하니까. 미리미리 편하게 하는 것도 좋아.”

“네. 애청자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딱딱해 보이는 김세준의 모습에 인현규가 피식 웃었다.

“예능은 처음인가?”

“아, 네.”

“괜찮아. 괜찮아. 긴장하지 말고. 나랑 얘들이 잘 도와줄 거야. 적당히 눈치만 챙겨.”

김세준이 긴장했다고 생각한 인현규가 긴장을 덜어주려는 듯 말을 뱉었다.

짧은 인사가 끝나고, 김세준은 다른 이들의 대기실로 가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온 김세준이 의자에 털썩 앉으며 긴 숨을 뱉었다.

“막상 예능 출연한다 생각하니 긴장감이 생기긴 하네.”

손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

자신의 업인 노래가 아닌 입담과 몸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내뿜어야 하는 곳.

방송 울렁증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그래도 잘해보자.”

김세준이 스스로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번에 출연을 결심한 예능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방송이었다.

이 예능 고정 출연진들은 동남아시아와 홍콩 그리고 중국에서까지도 웬만한 연예인들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다.

그가 무수히 많은 출연 제의에도 이 예능을 고른 건, 아시아에서의 인기도 한몫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보단 몸으로 하는 게 편하니까.’

토크가 주로 이루어지는 다른 예능들에 비해, 이 예능은 몸으로 움직이는 게임 위주의 예능이란 점도 한몫했지만.

회귀하기 전 김세준, 그는 노잼이란 평가를 종종 받는 인물이었다.

***

“오늘의 게스트 등장해주세요!”

세트장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세준이 안현규의 말에 멋쩍은 웃음과 함께 세트장 안으로 향했다.

30분 전 시작된 오프닝.

출연진들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띠었고, 어느 정도 분량이 나왔다고 생각한 피디의 지시에 작가가 스케치북으로 김세준의 등장을 지시했다.

안현규의 외침에 김세준이 허리를 연신 숙이며 출연진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등장하자 박수하며 좋아하는 사람들.

제법 환영받는 기분이지만, 김세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와... 이것도 쉽지 않겠네.’

무대와는 색다른 압박감.

자신의 등장과 함께 수십 명의 시선과 카메라가 자신을 향한다.

무대와는 달리 코앞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시선. 얼굴이 따끔따끔할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가수 김세준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자, 인현규가 그를 소개했다.

“반가워요. 세준씨. 오늘 저희와 함께할 게스트!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 중 한 명이죠? 김세준씨 모셨습니다!”

인현규의 인사말과 함께 작가가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다.

[김세준. 앨범 홍보.]

큼지막한 글씨로 적힌 글자를 인현규가 재빨리 스캔하고 다시 말을 뱉었다.

“아, 그리고 세준씨 앨범 낸 거 노래 엄청 좋던데요.”

“감사합니다.”

이어서 인현규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넉살을 떨었다.

“내가 이야기 들었는데, 세준씨 라이브가 그렇게 좋다며?”

인현규의 말에 다른 출연진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찐텐으로 공감했다.

“저도 들었어요! 세준씨 노래는 무조건 라이브로 들어야 한다고!”

“내 친구! 내 친구가 세준씨 그 콘서트 갔는데 대박이었다는데? 사람들 다 실신하고 막.”

흥분하며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과열되는 분위기를 인현규가 정리하며 김세준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다들 원하는데, 한 번 불러줄 수 있죠?”

임현규의 말에 다른 출연자들도 환호하며 김세준을 부추겼고, 김세준이 못 이기는 척 중앙으로 나섰다.

그러자, 제작진에서 준비한 MR이 흘러나왔고, 김세준이 눈을 감았다.

꽃향기 가득 품은 봄바람에

모두가 눈을 감고, 걸음을 멈췄죠.

그대 향기 가득 담긴 봄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죠.

김세준의 목소리에 출연진들과 스텝들이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음원으로 들었지만, 이번 노래도 진짜 좋네.’

인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에 빠졌다.

노래만 들어도 심장이 간질간질하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진짜 봄 느낌이 물씬 나네.’

야외에서 촬영 중인 오늘.

따사로운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이 안 그래도 기분을 설레이게 만들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의 설레는 감정을 완전히 살린 김세준의 노래.

어디선가 향기로운 꽃냄새도 나는 듯했다.

어느새 김세준의 노래를 감상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설렘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몇몇 스텝은 배시시 웃음을 흘렸고, 몇몇 이들은 눈을 감은 채 미소지었다.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곡.

기분 좋은 봄의 설렘을 한껏 살린 김세준의 노래였고, 오늘 방송의 메인 PD인 최희원은 흡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수들의 앨범 홍보 무대. 시청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는 장면은 아니지만, 지금 김세준의 무대는 제법 커다란 관심이 생길 거란 확신이 들었다.

***

“오우... 빡세네.”

예능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김세준이 허리를 두들겼다.

10시간이 넘게 지속한 촬영.

시종일관 뛰어야 하는 예능 컨셉 상 몸이 피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제법 괜찮았던 건 같은데?”

몸을 아끼지 않고 뛴 보람이 있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제법 그럴듯한 장면도 뽑아냈다.

물론 피디가 보고 가차 없이 편집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방송 분량이 적진 않을 거야.”

자신의 곡도 홍보했고, 팬들의 요구도 충족시켜준 김세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레스 뮤직 부사장인 하동준이 보낸 메시지였다.

[세준아. 예은이 사고 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