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1화 (41/148)

#41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고?”

이해진이 자신을 찾아온 김세준을 보며 다리를 꼬았다.

자신의 사무실을 방문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는 김세준이었다.

옆에 있던 하동준이 팔짱을 끼며 신음을 뱉었다.

“뮤직비디오라...”

뮤직비디오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음반을 낼 때 필수 불가결인 존재였지만, 현재 트랜드에선 점점 사장되는 홍보수단이었다.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들의 무대 퀄리티도 많이 올라왔고, 다른 대중 매체들도 발달하면서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확연하게 떨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경우가 적어졌고, 현대에 있어선 대다수에 가수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왜 뮤직비디오를 찍겠다는 거야?”

뮤직비디오 촬영에 들어가는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때그때 마다 다르긴 하지만.

금액을 신경 써야 하는 하동준의 입장에선 김세준의 제안이 썩 달갑진 않았다.

그런 하동준을 향해 김세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사장님. 우리나라 노래 중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노래가 뭘까요?”

“당연히 서울 스타일이지. 미튜브에서... 어?”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답하려던 하동준이 뒷말을 흐렸고, 김세준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

“네. 서울 스타일이죠. 그리고 이미 아시지만, 서울 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인기몰이했던 건 뮤직비디오의 힘이 컸죠.”

“흐음...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잖아?”

하동준의 반박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전 뮤직비디오가 아직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K-POP의 팬들을 끌어들이기엔 뮤직비디오만 한 홍보 매체도 없죠.”

자기 소관을 뚜렷하게 내뱉는 그를 보며 이해진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릇이 다른 건지...’

포부가 남다른 김세준의 말이었다.

한국만 바라보지 않고 세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네 뮤직비디오가 서울 스타일처럼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이해진이 김세준이 직접 그려온 뮤직비디오 콘티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할 특별한 무언가도 없는 무난한 뮤직비디오였다.

“네. 저도 이 뮤직비디오에 큰 공을 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시간과 금액 같은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적은 투자로 리스크를 줄였습니다. 이렇게 적은 리스크로 만드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재조명이 돼서 인기를 끌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제 개인적인 미튜브도 있지 않습니까.”

장황한 김세준의 말에 하동준이 흥미가 돋는지 눈빛을 빛내며 답했다.

“그렇지.”

“제 미튜브가 그래도 나름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구독자도 벌써 10만을 넘겼고, 조회 수도 꾸준히 잘 나오고 있고요. 게다가 제 미튜브 구독자 중엔 외국인들도 제법 있습니다. 그 사람들한테도 영향을 많이 끼칠 거 같고, 그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서 색다른 바람을 몰고 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김세준의 말을 경청하던 하동준과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야.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겠어.”

이해진의 입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김세준이 들떠 쉬지 않고 말을 뱉었다.

“네. 그래서 저는 아예 영어 자막까지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자막까지?”

“네. 미튜브에 자막 기능도 있지 않습니까. 미튜브 자체적인 조잡한 자막 말고, 미리 만들어 놓은 자막을 심어놓으면 외국인들한테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겁니다.”

신이 나서 내뱉는 그를 보며 이해진이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하루 이틀 생각해둔 게 아니었다.

‘미튜브를 개설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였나.’

작년, 뜬금없이 미튜브를 개설해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아마 그 시절부터 이런 계획을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그려놓은 상태였을 게 틀림없었다.

‘궁금하네.’

이해진이 김세준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빛냈다.

그의 재능.

자신과 한국인을 사로잡은 그의 재능이 과연 세계에도 먹힐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좋아. 꽃이 만개하면 바로 촬영 들어가게 준비해보자.”

***

3월이 되자 어느덧 전국 팔도에서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찾아온 봄이 화사한 날씨를 뽐냈고, 자취를 감췄던 꽃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김세준도 뮤직비디오를 예상보다 빠르게 찍을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강화군 고려산을 찾은 김세준은 자신의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이예은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추워?”

“아, 아니요...”

김세준이 체감하기에도 날씨가 그리 쌀쌀하지 않았다.

게다가 두꺼운 담요 하나가 이예은 위에 걸쳐 있기도 했다.

즉 추워서 떠는 게 아니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떠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냥 단순한 촬영이야.”

“네... 근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예은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고, 김세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예은이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건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저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빠는 안 떨려요? 오빠도 뮤직비디오 촬영은 처음 아니에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예은이 물어봤고, 김세준이 한 동물을 떠올렸다.

‘햄스터 같네.’

두꺼운 담요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그녀가 위를 쳐다보자, 동글동글한 햄스터가 연상됐다.

“생각보단 안 떨리네. 그냥 평소랑 똑같아.”

김세준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이예은의 말대로 그도 뮤직비디오는 처음이었다.

떨릴 만도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했다.

“프로구나...”

자신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는 그녀였고,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아직 긴장감이 가득해 보이는 그녀였기에 긴장감을 풀어주고 싶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세준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예은아. 저기 봐.”

그의 손가락엔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텝들이 있었다.

카메라를 세팅하고, 음향을 확인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을 가리키며 김세준이 재차 입을 열었다.

“저분들도 다 프로야. 우리가 조금 못해도 저분들이 충분히 커버해 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콘티 봐서 알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연기도 없으니까.”

“아...”

김세준의 말에 이예은의 시선이 그들에게 꽂혔다.

그의 위로가 도움이 된 걸까?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던 그녀의 몸이 어느새 진정됐고, 한 스텝이 그들을 불렀다.

“세준씨! 예은씨! 촬영 들어갑니다!”

“가자. 예은아.”

“네. 오빠.”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예은이었지만, 그전과 달리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었다.

***

시작된 촬영은 순조로웠다.

긴장이 한껏 풀린 이예은도 감독의 요구에 따라 멋진 연기를 펼쳤고, 김세준도 능숙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좋네요.”

40대 중반인 감독이 까끌까끌한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을 내뱉었다.

“이리 와서 볼래요?”

감독의 제안에 김세준과 이예은이 감독 옆으로 다가갔다.

녹화된 촬영본. 김세준과 이예은의 모습 뒤로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야금을 받침대에 올려놓고 뜯는 김세준과 옆에 있는 이예은.

분홍색으로 가득 찬 화면 속,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두 남녀가 봄을 만끽한다.

그리고 꽃들 한가운데서 고고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가야금까지.

‘기가 막히네.’

김세준이 촬영본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고, 이예은도 옆에서 눈을 반짝였다.

제법 마음에 드는지 영상에 빠져들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

김세준이 슬쩍 고개를 돌려 이예은을 바라봤고, 슬며시 웃었다.

‘이런 외모를 가만두고 있는 게 말이 안 되지.’

이예은을 뮤직비디오에 출현하게 된 계기는 그의 힘이 컸다.

“예은씨가 본판도 괜찮은데, 카메라도 잘 받네요. 특히 한복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감사합니다.”

감독의 칭찬에 이예은이 붉어진 얼굴로 작게 답했고, 옆에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화제가 될 거야.’

동양의 미라는 칭송까지 들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한복을 입고 꽃들 사이에 있으니 더욱 부각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외국인들도 제법 관심을 표할 거야.’

회귀하기 전, 미래에도 그녀의 인기는 한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시아에 머물지 않고, 북미와 유럽에서도 제법 많은 팬층을 이끌었던 그녀.

가수인 만큼, 그녀의 노래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그녀의 외모에 반한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 뮤직비디오가 뜬다면 이예은의 공도 분명히 있을 거야.’

무명이지만, 그녀의 외모는 그때와 별 차이가 없다.

훗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 그녀였고, 이 뮤직비디오는 그녀의 첫 데뷔작으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신기한 듯 영상을 바라보는 그녀.

훗날 김세준이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앞으로 큰 도움을 줄 조력자였다.

***

미국 LA의 늦은 새벽.

한 여성이 침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었다.

K-POP의 팬인 파티마인 그녀는 작년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생중계로 본 뒤 김세준의 큰 팬이 되었다.

아이돌들의 화려했던 무대와는 다른 멋이 있던 무대.

생전 처음 보는 악기와 군무.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5분이라는 짧은 무대는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그 뒤로 계속해서 알아본 무대의 주인공.

정말 감사하게도 미튜브 채널이 있었고, 그가 올리는 영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한국어는 잘 모르지만, 감정은 고스란히 전해졌고, 어쩌다 미국 팝송이 올라올 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한인타운에 사는 한국 친구들을 통해 들은 정보.

미국의 시간으로 오늘 새벽 4시. 그의 첫 데뷔 앨범과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파티마가 눈을 비비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유였다.

“됐다!”

파티마가 환호성 섞인 말을 뱉으며 김세준의 미튜브 채널을 들어갔다.

새로운 영상.

한글은 모르지만, official이란 단어와 M/V란 단어가 어떤 영상인지 알려준다.

다른 글자는 몰라도 저 두 글자만 알아도 어떤 뜻인지 해석은 충분했다.

두근대는 심장을 가진 채, 동영상을 클릭한 그녀였고, 두 눈을 끔뻑이지도 않고 노트북을 바라봤다.

이내 시작되는 영상.

시작부터 화려한 꽃들로 가득 찬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드럼 같은 악기가 리듬을 지휘하더니, 자신을 김세준에게 홀라당 빠지게 만든 가야금이란 악기의 소리가 들렸다.

“와우...”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는 파티마. 그리고 이내 김세준과 이예은의 모습이 영상에 나오자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이쁘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채 꽃밭 속에 있는 남녀.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마치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웠다.

거기에 더해 귀까지 즐겁게 만들어주는 멜로디와 김세준의 목소리.

“맞다! 자막!”

파티마가 급하게 영상을 멈추고, 미튜브에 자막 기능을 켰다.

비록 완벽한 해석은 안된더라도 없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자막 기능을 키고, 다시 영상을 시청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눈에 기쁨이 넘쳐 흘러나왔다.

자막 영상을 많이 보다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이게 미튜브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자막인지, 아니면 채널에서 관리하고 제작한 자막인지.

그리고 지금, 김세준의 뮤직비디오 자막은 엉성한 미튜브 자막과는 전혀 다른 완벽한 자막이었다.

“미쳤어!”

피타마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이어서 끝까지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짧은 5분의 동영상.

영상이 끝났음에도 진하게 남아 있는 여운.

파티마가 까만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영상.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다고.

내일 자신의 친구들에게 기필코 이 영상을 소개해줄 거라는 굳은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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