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0화 (40/148)

#40

장준

올해 겨울은 사람들의 예상보다 빨리 가셨다.

2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싸늘했던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그렇게 날씨가 풀리자, 동면을 취하던 명곡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기 시작했다.

비록 하위권이지만, 음원 차트에 떡 하니 그 이름을 올리면서.

[ㅋㅋㅋ. 좀비 죽지도 않고 또 기어 나옴.]

[올해 연금도 달달하시겠네.]

[우리나라는 이 노래가 차트에 올라와야 봄이 온 거임.ㅋㅋㅋ]

[계속 들어서 질릴 만도 한데, 안 질리는 게 신기함.]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한 이해진이 고개를 돌려 녹음 부스 안에 있는 김세준을 바라봤다.

그의 타이틀 곡인 ‘봄바람’을 녹음 중이었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김세준의 목소리와 봄의 설렘을 가득 담은 멜로디에 이해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두말할 필요 없는 명곡이다.

발매되는 순간, 음악 차트 상위권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가히 예상할 수 있었다.

‘1위도 불가능은 아니겠어.’

봄의 설렘을 살린 이 노래와 김세준의 이름값이 합쳐진다면 못 이룰 성과는 아니었다.

“좋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송대준의 만족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김세준이 녹음 부스 바깥으로 나왔다.

“고생하셨어요.”

김세준도 밝은 표정으로 송대준에게 인사했다. 꽤 만족스러운 녹음이었다.

“녹음은 다 끝난 건가?”

이해진이 김세준에게 다가와 물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봄비 녹음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예상보단 빨리 끝나겠네.”

“네. 아직 믹싱도 있고, 마스터링도 해야 하지만, 원래 예상보단 빠를 거 같습니다.”

송대준이 고개를 돌리며 의견을 덧붙였고 이해진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서둘러보자. 올해 날씨가 생각보다 빨리 선선해질 거 같으니까.”

이해진의 재촉에 김세준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고, 민망한지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이예은이 그의 시선에 화들짝 놀랐다.

“예은아. 이제 녹음 준비하자.”

“아... 네.”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녹음 부스로 향하는 그녀였고, 이해진이 다시 말을 꺼냈다.

“봄비도 녹음 마무리되면 바로 보도 기사 뿌릴 거야.”

김세준이 대답을 한 뒤, 녹음 부스로 들어가는 이예은을 바라봤다.

이예은의 자신의 앨범 합류.

청순가련한 외모가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오는 듯했다.

노래로만 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해볼까?’

고민에 빠진 김세준이 생각을 접어두고 녹음 부스로 향했다.

일단은 녹음부터 끝내야 했다.

***

이해진이 말한 대로 곡의 녹음을 마치자, 김세준의 1집 앨범에 대한 가사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세준 첫 앨범 아닌가요?]

[네. 맞아요. 엄청 기대하는 중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악으로 봄이라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동안 대중들에게 선보였던 노래가 헛되진 않았는지, 많은 이들이 그의 앨범을 학수고대 중이었다.

하지만 김세준의 앨범 컨셉을 보곤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글세... 봄 노래는 김세준이어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나도. 솔직히 김세준이어도 1위는 불가능할 듯.]

몇몇 이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김세준의 팬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가 긍정 파와 부정 파로 나뉘어 설왕설래를 나눴고, 김세준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부정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곡이 나오면 알게 되겠지.’

자신의 판단이 틀렸는지 옳았는지.

그리고 동시에 김세준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벌써 왔나?’

김세준이 소파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고, 열린 문 앞엔 장준이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장준씨.”

어색해 보이는 장준과 달리 김세준이 느긋한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저번에 말한 약속대로 앨범 작업이 얼추 끝나자, 김세준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 정확히는 그의 실력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가 드린 곡은 완벽하게 연습하고 오셨죠?”

“네. 그렇긴 한데...”

장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그가 보낸 음원 파일. 미친 듯이 연습하라고 말했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틀어봤던 음원.

깜짝 놀랐다. 자신에겐 과분할 정도로 곡이 훌륭했으니까.

“어떻게 공연할 준비는 됐습니까?”

김세준의 물음에 장준이 힘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계획. 듣긴 했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런 장준을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손을 컴퓨터로 옮겼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실버 버튼 받은 사람이니까.”

김세준의 계획. 미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장준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

김세준의 미튜브 채널은 구독자만 10만을 훌쩍 넘긴 커다란 채널로 변한 지 오래였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다른 가수들의 커버 곡을 부르는 영상을 올리며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편집자까지 따로 구해서 체계적으로 관리 중이었다.

“제가 오늘 최소 수천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거죠?”

장준의 목소리가 한없이 떨렸다.

“네. 아마도? 많으면 만 명까지 들어올 수도 있고요.”

아득한 숫자에 장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미 듣긴 했지만, 평소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관객 수였다.

두 개의 음반을 내는 동안 흔한 방송 출연 한 번 하지 못했던 그다.

수십, 수백 명 앞에서도 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최소 수천 명이라니.

온라인이긴 하지만 머리가 하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싫어요? 싫으시면 그냥 저하고 술 먹방이나 하시죠.”

김세준이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들더니 웃으며 말했고, 장준이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아니요. 당연히 해야죠. 이게 어떤 기횐데.”

까마득한 숫자에 손이 흠뻑 젖었지만,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기회였다.

수천, 혹은 만 명 앞에서 노래 부를 기회가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장준의 굳은 다짐에 김세준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준의 실력이면 미튜브 시청자들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 주리라.

당연히 채팅창도 그의 칭찬으로 가득할 거고, 장준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그동안 가수로서 느끼지 못했던 쾌감을 느끼게 될 게 분명했다.

즉, 장준이 가수로서 살아갈 원동력을 만들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곡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고.’

장준이 흥얼거리며 연습하는 곡.

그가 당초 앨범 첫 컨셉으로 구상했던 사계에 들어갈 곡이었다.

사계절 중 가을에 해당하는 노래.

계절이란 똑같은 컨셉을 잡은 만큼, 장준이 제 실력만 보여준다면 자신의 앨범에 대한 기대감도 같이 상승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장준의 비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김세준은 장준에게 은혜를 베풀면 훗날 큰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한 번의 일로 세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는 거지.’

피식 웃으며 김세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장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김세준이 미튜브 라이브 방송은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수천 명의 사람들.

그 앞에서 김세준이 장준을 소개했고,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인물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장준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장준의 목소리.

그리고 김세준이 직접 만든 완성도 높은 곡.

곡과 목소리의 조화에 김세준도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역시...’

괜히 자신이 팬이 된 게 아니다.

두 눈을 감으며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자신이 여성이었다면 반할 정도로 멋있었다.

실제로 몇몇 여성들로 인해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짧은 노래 한 곡이 끝났고, 김세준이 장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그.

묵묵부답이었지만, 얼굴엔 진한 감동이 가득했다.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어둠 속만 헤매던 그에게 미튜브 방송 시청자들에 격한 반응은 한 줄기 빛보다 아름다웠다.

말도 제대로 잊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난생처음 느껴보는 대중들의 사랑.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았다.

그런 장준을 보며 김세준과 시청자들이 위로를 건넸고, 김세준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이제 장준이 가수를 포기할 걱정은 접어둬도 되리라.

‘그리고 예상대로네.’

그의 두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채팅.

장준에 대한 칭찬도 많았지만, 곡에 관한 관심과 칭찬은 물론, 앨범을 기대한다는 반응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

“크으. 진짜 고마워 세준아.”

“가수는 계속할 거지?”

“그래야지. 이 뽕맛을 느꼈는데.”

맥주를 마시며 장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준의 무대 이후, 김세준도 몇 곡의 노래를 부른 후 미튜브 라이브 방송을 끝냈고, 장준과 김세준은 맥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가졌다.

동갑내기 남자 둘.

술까지 들어가자 서로 의기투합하여 친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너는 꼭 성공할 거라고. 그냥 운이 없던 거라고.”

“솔직히 그걸 어떻게 곧이곧대로 들어. 그냥 위로한다고 생각했지.”

“이제 믿냐?”

장준이 피식 웃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넌 왜 나 도와준 거냐?”

김세준을 바라보는 장준의 눈빛에 의혹이 물결쳤고, 그 눈빛을 읽은 김세준이 무심하게 답했다.

“말했잖아. 팬이라고.”

“단지 그것뿐이어서? 다른 의도는 없고?”

속마음을 떠보듯 내뱉는 장준이었고, 김세준은 살짝 양심이 찔렸다.

처음 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을 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뒤 며칠 후엔 장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아버님이 범상치 않은 분이었지.’

먼 미래에도 우연과 우연이 겹쳐 세간에 드러난 그의 출생.

장준은 자신이 그의 출생을 눈치채고, 혹여 그것 때문에 접근한 건 아닐까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그것뿐이었어. 좋아하는 가수가 은퇴를 생각한다는데, 안 도와줄 팬이 어딨어?”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김세준을 보며 장준이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미안. 내가 조금 예민한 게 있어서.”

장준의 대답 이후로도 계속 늘어나는 잡담과 술병들.

김세준이 보기엔 장준은 첫인상대로 호쾌하고 시원스러운 남자였다.

비록 최근에 슬럼프가 와서 우울한 면모를 보였지만, 술이 들어가자 그의 본래 성격이 나타났다.

“하아. 세준아 넌 목표가 뭐냐?”

“응? 목표?”

얼굴이 약간 상기된 장준이 술 냄새를 풍기며 물었다.

“난 일단 부모님께 인정받는 게 목표거든. 나중 가선 너처럼 음원 차트 1위 찍어보는 게 목표고. 근데 음원 차트 1위 찍어본 사람은 목표가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목표라...

장준의 물음에 김세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안쪽에서 가야금 하나를 들고 와 앉았다.

“뜬금없이 웬 가야금?”

장준의 물음에 김세준이 답하지 않고 가야금의 현을 차례대로 긁었다.

부드럽게 울리는 가야금의 선율에 장준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아름답지?”

장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야금 소리야 뭐, 잘은 몰라도 너무 좋지. 부드럽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소리.”

장준의 말에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소리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심 아쉬운 소리다.

김세준이 반쯤 남아 있던 맥주를 전부 들이켰다.

“크으...”

시원하고 짜릿한 탄산이 목을 찔렀고, 김세준이 소매로 입가를 닦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소리, 한국인만 좋아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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