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37화 (37/148)

#37

세 사람의 곡

이예은이 김세준이 건네준 곡의 가이드를 들은 그날 밤.

늦은 새벽까지도 붙박이처럼 앉아 작업하던 김세준의 컴퓨터 모니터 구석이 반짝거렸다.

“응?”

이예은한테 온 연락이었다.

[오빠. 노래 너무 좋아요.]

[고마워. 가이드라 부족하지만, 연습하는 데 도움은 될 거야.]

[네. 감정선 이해했어요. 그래서 그런데...]

이예은의 카톡이 잠시 멈췄고, 김세준이 의문을 표했다.

[아, 아니에요.]

‘뭐야?’

허무하게 끝난 그녀의 카톡.

김세준이 자신의 궁금증을 유발한 그녀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뭔데? 괜찮으니까 말해봐.]

[저 혹시... 이 노래... 제가 작사해도 괜찮을까요?]

‘응?’

이예은의 카톡에 김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작사한다고?

잠시 답장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녀의 히트곡들.

자신이 알기론 혼자 힘으로 작곡과 작사까지 도맡아 했던 곡들도 꽤 있었다.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녀의 실력을 알기에 김세준의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번졌다.

[생각나는 가사가 있어?]

[네. 되게 특이한 느낌인데, 곡을 들으면서 봄이지만 이별을 맞이하는 커플의 느낌이 들었어요.]

‘곡도 제대로 해석했네.’

작은 정자에서 봄비를 맞으며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분위기.

그가 ‘봄비’리고 이름 붙인 듀엣곡에 넣은 감정이었다.

‘궁금하기도 해.’

자신이 만든 곡에 이예은이 어떤 가사를 입힐지 강한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던 이예은의 가사들.

그 가사와 자신의 멜로디가 합쳐진다면 어떤 시너지를 불러일으킬까.

[너무 건방졌죠. 죄송합니다...]

김세준이 읽고 답장을 하지 않자, 이예은이 지레짐작하며 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야. 잠깐 생각해 본 거야. 한 번 해봐. 부담 가지지 말고. 만약, 정 아니다 싶으면 가사야 다시 쓰면 되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이예은의 답장에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고마워해야 할 건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자신이다.

훗날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이예은.

그런 그녀의 피쳐링과 가사를 무일푼으로 받는 거니까.

‘좋아. 이제 다시... 응? 이번엔 누구야?’

이예은과의 연락을 마무리한 후, 심기일전하여 작업에 열중하려던 김세준의 시선이 다시 모니터 구석으로 향했다.

새롭게 반짝이는 그곳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세현이?’

[형. 이번에 앨범 내신다면서요.]

저번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끝나고 연락처를 교환하긴 했지만, 그 뒤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자신을 좋게 봐주는 듯한 세현의 모습이 고맙긴 했지만, 큰 친분을 쌓을 정도로 그 당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응. 아직 멀었지만,]

생각해보니 세현은 또 어디서 자신이 앨범을 낸다는 걸 들은 걸까.

새삼스럽게 이 바닥이 참 좁다는 걸 느꼈다.

[혹시... 자리 있어요?]

[자리? 무슨 자리?]

뚱딴지같은 세현의 말에 김세준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쳐졌다.

[앨범 자리요. 형이랑 같이 노래 불러보고 싶어요.]

‘...!’

김세준의 동공이 확장됐다.

B.ONE의 멤버인 세현의 참여.

대중들의 이목이 단숨에 사로잡히리라.

‘이제 나도 이름값이 있으니까.’

스스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김세준의 이름이 이제 가볍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펴졌고, 회식 후 2차로 가는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는 부장과 팀장들의 18번 곡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과 대한민국 탑 아이돌이라 불러도 무방한 B.ONE의 멤버인 세현과의 합작.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눈에 받을 조합이었다.

그리고 대중들뿐만 아니라 김세준 그조차도 마음 한구석에 강한 기대감이 생겼다.

세현은 B.ONE에서 메인 보컬을 맡을 정도의 실력자다.

숱한 솔로곡을 냈고, 그 곡들을 히트시키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뛰어난 가수다.

어떤 대작이 탄생할지 기대가 안 된다면 그게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김세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 자리 없음.]

[... 진짜로요?]

메시지라도 물씬 풍기는 세현의 진한 아쉬움에 김세준이 혀를 찼다.

세현뿐만 아니라 김세준 그도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도 그의 제안을 거절한 건.

자신의 첫 앨범에 세현이 참가하는 게 좋은 일만이 아닐 거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첫 앨범보다 세현이 참가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더 큰 주목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

즉, 까닥했다간 주객전도(主客顚倒)가 될 수 있는 상황.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싶진 않았다.

‘그 정도로 B.ONE의 이름은 크지.’

특히 B.ONE 팬들의 화력은 그 가수의 팬답게 한 손가락에 꼽힌다.

만약 세현이 타이틀 곡도 아닌 수록곡에 참여하게 된다면 안 좋은 의미로도 말이 많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알겠어요... 다음엔 꼭 같이했으면 좋겠어요.]

[미안하고 고마워. 다음에 같이 꼭 작업하자.]

세현과의 연락도 마무리된 후 김세준의 입가에서 문뜩 웃음이 흘러나왔다.

작년의 그는 어땠나.

무명이었던 그.

다른 가수 피쳐링 하나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었는데.

이젠 탑 가수가 자신과 같이 작업하려고 성화다.

1년 만에 찾아온 변화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꼈다.

“많이 변했지.”

자신의 위치와 이름이.

“근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도 까마득한 자신의 길.

자신의 첫 앨범은 그 길을 따라 걷는 첫 발걸음이었다.

***

1월 말.

김세준과 이해진 그리고 송대준이 작업실에 모였다.

“세준아. 미안한데 타이틀 곡은 내 곡으로 해야겠다.”

“예?”

“들으면 알 거야. 이 곡은 무조건 타이틀로 써야 한다는 걸.”

다크서클이 코까지 내려온 이해진이 자신감 넘치는 말로 김세준을 도발했다.

“곡이 그렇게 좋다면 당연히 그래야죠.”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번 세준씨 타이틀 곡은 제가 이름을 올려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얼굴이 반쪽이 된 송대준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해진의 말을 반박했다.

피골이 상접해진 둘의 모습.

이번 곡을 위해 시간과 몸을 갈아 넣은 둘이었고, 둘과 마찬가지로 좀비 같은 행색이 된 김세준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죄송하지만, 전 제 곡이 가장 좋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하동문입니다.”

피로가 겹겹이 쌓인 모습임에도 그들의 눈엔 자신들의 곡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있어 빛이 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 모습에 김세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같은 작곡가로서는 경쟁심이 붙었지만, 가수로선 저들의 자부심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곡은 결국 김세준이 부를 노래였으니까.

“그럼 누구 노래부터 들어볼까요?”

“내가 먼저 틀지.”

이해진이 먼저 앞으로 나섰고, 그가 직접 만든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감상할 준비 마친 김세준이었고, 멜로디를 듣자마자 입가가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호오...’

인트로부터 흥미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을 알리는 듯한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바이올린의 잔잔한 소리와 함께 가야금의 선율이 어우러진다.

‘아침?’

곡을 듣고 떠오르는 느낌은 상쾌한 봄의 아침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열고 들어와 포근하게 안기는 느낌.

‘산뜻하네.’

산뜻한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곡이다.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알겠어.’

뉴에이지의 느낌이 가볍게 담겨있으면서도 취향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노래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산뜻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노래다.

“후우,,, 좋네요.”

노래가 끝나자 송대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탄을 뱉었다.

듣는 순간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게 만든 그의 곡.

이런 곡이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저도 진짜 좋았습니다.”

김세준 또한 이해진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고, 이해진이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나도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야. 다음은 누가 할래? 대준이?”

자신만만하게 송대준을 지목한 이해진이었고, 송대준도 지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노래를 틀었다.

“사장님의 곡이 정말 뛰어나긴 하지만... 제 곡도 뒤처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들어보면 알겠지.’

자강두천을 펼치는 두 사람을 김세준이 흥미진진하게 봤고, 송대준의 노래가 나오자 다시 눈을 감았다.

‘...!’

스피커에서 나오는 송대준의 노래에 김세준의 입가가 다시 한번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이건 또 새롭네...’

송대준의 노래.

이해진처럼 인트로에 제법 특색 있는 소리를 넣었다.

휘파람 소리.

하지만 밝고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약간은 서글픈 느낌이었다.

늦은 밤, 술 취한 남자가 비틀비틀 길거리를 거닐며 휘파람을 부는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이어지는 멜로디가 색채를 더했다.

‘어둡네.’

이해진이 봄의 밝음을 떠올리게 했다면, 송대준은 봄이어도 어두운 느낌이다.

늦은 새벽.

약간은 쌀쌀한 그 새벽을 홀로 거니는 외로운 남자의 이야기.

특색 있는 노래에 김세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외로움과 싸우는 시대.

이 노래는 그 시대를 위로해줄 명곡이 될 가능성이 풍부했다.

“어떻습니까?”

노래가 끝나고 송대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만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쪼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좋은데? 자신감 가질만 하네.”

이해진의 칭찬에 송대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이 노래는 세준씨 팬분들이 진짜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제 팬들이요?”

“네. 제가 이 노래를 작업하면서 생각하게 저희 아버지거든요. 항상 늦은 새벽 귀가하시는 아버지의 외로운 귀갓길. 그런 느낌이요. 세준씨 팬분들인 어르신들이 들으면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자신의 특정 팬들이 들으면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노래였다.

“좋아요. 그러면 다음은 저네요.”

김세준의 의견에 이해진과 송대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세준이 말을 이었다.

“먼저 제 솔로 곡입니다.”

김세준이 말과 함께 노래를 틀었고,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김세준의 노래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들린 건 김세준의 시그니처인 가야금이었다.

가야금의 선율.

하지만 평소 김세준이 들려줬던 애잔했던 느낌보단 더 밝고 따뜻했다.

‘호오.’

이해진과 마찬가지로 밝은 감성의 곡.

하지만 그의 곡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산뜻한 느낌이었던 이해진의 곡과 달리 김세준의 곡은 좀 더 활기찬 느낌이었다.

‘좋은데?’

꽃놀이를 온 듯한 기분이다.

형형색색의 꽃들 사이에 자리 잡은 듯 마음이 붕 뜨는 느낌.

듣는 사람으로 저절로 설레고 미소짓게 만드는 곡이었다.

그리고 곡이 코러스에 진입하자 비트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라면 절로 흥이 날 수밖에 없는 비트.

친숙한 비트에 이해진과 송대준의 얼굴에 물음표가 생겼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인데.’

마치 드럼처럼 곡의 리듬을 이끌어가는 악기다.

찰나의 의문.

잠시 후, 이해진이 무언가 떠오른 듯 감았던 눈을 크게 떴다.

‘장구하고 북!’

비트가 아닌 장단이라고 말해야 하나.

익숙한 리듬이 진짜 ‘놀이’에 온 듯한 심정이었다.

꽃밭 사이에 파묻혀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걱정 없이 노는 꽃놀이에 초대받은 듯한 김세준의 노래에 이해진이 혀를 내둘렀다.

‘이 곡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국악의 풍미를 잔뜩 살려놓고 봄의 즐거움을 제대로 표현했다.

여기에 김세준의 목소리가 입혀진다면 봄의 새로운 왕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네...”

“저도 좋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탄성을 내뱉는 둘.

붕 뜨는 마음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졌네. 졌어.”

“저도 졌습니다.”

김세준의 곡을 듣고 둘이 허탈한 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의 곡이 부족하진 않지만, 김세준의 곡에 비하면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대단하네.”

“도저히 못 이기겠네요.”

경외심을 담은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둘.

그 둘을 향해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직, 곡 하나 더 남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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