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34화 (34/148)

#34

아시안 뮤직 어워드(3)

“형. 무대 미쳤는데요?”

모든 리허설이 끝나고, 수호가 김세준의 대기실에 찾아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온 세현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 있었다.

“미치긴. 너희 무대가 더 멋있었는데.”

방금, B.ONE의 무대.

비록 화려한 무대 장치는 없었지만, 그들이 왜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지 알려주는 무대였다.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안무.

5인조이면서도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동선.

거친 춤을 추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라이브.

모든 게 완벽한 무대였고, 김세준도 진심으로 탄복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무대를 보면서 확신했어요. 올해 신인상은 형 거라고.”

“대상 유력 후보자가 그런 말 하면 놀리는 거 아니야?”

“에이. 저희는 그래도 신인상은 못 받았어요. 진짜 어떤 의미론 대상보다 가치 있는 상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말 그대로 신인에게 주어지는 상이기에, 삶에서 딱 한 번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수호의 말대로 그런 의미론 대상보다 받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형님! 이제 슬슬 나가셔야 합니다.”

세현과 수호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이주성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시간을 알렸다.

“알았어. 나갈게."

세현과 수호도 따라 나와 자신들의 멤버에게 향했고, 김세준은 대기실을 빠져나와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와우...”

5만 명으로 꽉 찬 스타디움.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장관이었다.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자신의 가수를 응원하는 팬들.

무대 앞 출연진들의 자리로 가서 앉아 시상식 시작을 기다리며 김세준이 침을 꼴깍 삼켰다.

5만 명.

자신이 최근에 했던 아레나 뮤직 콘서트에 10배는 많은 숫자.

그것도 외국인이 대부분인 지금.

자신의 공연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의 손아귀를 쳐다보자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김세준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어제 공항 만난 팬들이 건네준 선물 중 하나.

당신을 응원할게요.라는 손으로 직접 수놓은 글자가 보였다.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외국인 가수를 위해 손수 만든 손수건.

문뜩 어제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그들을 자랑스럽게 만들 거라고.

김세준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땀이 어느새 멈춰있었다.

***

아시안 뮤직 어워드는 4시간 동안 진행되는 장정이다.

시상과 공연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시상식.

한창 진행되어 가는 시상과 무대.

김세준은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베스트 퍼포먼스 상.

이 시상이 끝나고 자신의 무대가 시작될 차례였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상을 맡은 배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통역사의 목소리도.

김세준이 뒤를 돌아보며 오늘 자신과 함께 무대를 꾸밀 조력자들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가시죠.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 옵시다.”

당당하게 발걸음을 떼며 무대로 향했다.

무대 정 중앙에 이미 배치된 가야금을 향해.

‘압권이네.’

5만 명이 오로지 자신을 향해 이목을 집중하는 지금.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쾌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중압감.

“후우...”

깊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올려 관객들을 바라봤다.

지금 저기 있는 5만 명의 외국인 중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천분지 일은 될까.’

그 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겠지.

하지만.

오늘 이 무대가 끝나고.

자신의 이름 석 자는 모두가 기억하리라.

스스로를 향한 다짐.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김세준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유려하게 가야금의 현을 뜯었다.

***

“저 가수는 누구야?”

“나도 몰라. 처음 보는 사람이야.”

김세준이 무대에 올라서자 관중들은 어리둥절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B.ONE을 비롯한 아이돌의 팬이 대다수였기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비록 단독 콘서트는 아니지만 그들의 공연을 볼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큰돈을 들여서 흔쾌히 왔는데.

저런 이름도 알 수 없는 가수가 공연을 펼치자 짜증을 부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난 저런 가수 보러 온 거 아닌데.”

“나도. 시간 아까워 죽겠네.”

투덜대는 이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이내 김세준에게 약간의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 악기... 고토?”

“어? 그러게. 고토랑 비슷한데?”

김세준의 앞에 놓인 가야금을 보며 흥미가 생겼고, 이내 줄을 뜯으며 연주를 시작하는 김세준을 보며 감탄을 뱉었다.

부드러운 선율.

자신들의 전통 악기인 고토하곤 사뭇 다르다.

가조각을 끼고 연주하는 고토와 다르게 맨손으로 연주하며, 무엇보다 고토보다 소리가 더 따뜻했다.

“좋다...”

투덜대던 한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가야금의 포근한 선율이 불만을 잠재운다.

그리고 이내 김세준을 둘러싼 한 무리의 여성들.

그들의 아름다운 군무에 관중들에서 일제히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미이자 전통춤인 부채춤.

태평무(太平舞)부터 내려와 현대무용까지 이어져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춤.

부채춤의 아름다움과 가야금의 가락이 조화되는 순간이었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고, 화려한 꽃부채 한 쌍을 든 채 김세준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미는 그녀들.

‘연꽃’을 부르고 있는 김세준에게 맞춰 대형 백스크린엔 연꽃이 수놓아진다.

꽃들의 향연.

거기에 더해 의미는 모르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김세준의 목소리.

“난 이런 무대도 좋아...”

화려함의 극치였던 무대.

퍼포먼스가 중심이었던 아이돌들의 공연.

그들이 비하면 김세준의 무대는 소박하게 보일 지경.

화려한 폭죽도, 시선을 강탈하는 레이저나 조명도 없지만.

절제된 아름다움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너무 이쁘다...”

파도를 치다가, 원을 만들고 흩어지는 부채춤의 군무.

그 군무를 본 한 관객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절절한 김세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다.

“저 가수 이름이 뭐랬지?”

“나도 기억이 안 나.”

“진짜 너무 좋다.”

감탄을 절로 내뱉으며 관객이 속으로 다짐했다.

이 무대가 끝나면, 저 가수의 이름을 검색해봐야겠다고.

***

이해진은 자신의 방 소파에 앉아 생중계되는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지켜봤다.

화려한 아이돌의 무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공연.

하지만 자신이 지금 제일 기대하고 있는 무대는 김세준이었다.

“부채춤과 가야금의 조화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한국 문화 진흥원에서 건넨 제안.

김세준의 무대를 부채춤으로 꾸밀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한국 문화를 알리기에 아시안 뮤직 어워드는 좋은 홍보수단이었고, 김세준은 그들의 취지에 딱 알맞은 가수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매우 괜찮았던 제안.

“오. 시작하네.”

맥주 한 캔을 비운 그가 새로운 맥주를 꺼낼 때, 김세준이 무대에 올라섰다.

시원한 탄산이 목을 적시며 이해진의 눈빛에 강한 기대감이 서렸다.

이 무대를 눈앞에서 직접 못 본다는 진한 아쉬움.

카메라맨이 숙련된 베테랑이길 바랄 뿐.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뚫어지게 티브이를 바라봤다.

“와...”

이해진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김세준의 무대.

아쉬움을 넘어 분할 지경이다.

이 무대를 눈앞에서 못 보는 현실에.

동시에 느낀다.

이 무대를 직접 보는 저들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외국 유명 가수들의 내한 공연.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수십만 원을 쓰는 사람들.

지금 김세준의 무대는 그런 유명 가수들의 무대와 견줘봐도 손색이 없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감정은 통한다.

카메라가 비추는 일본 관객들의 얼굴엔 진한 감동이 서려있었다.

5분간의 짧은 공연.

그 공연이 끝나자 이해진이 맥주를 들이켰다.

“허...”

5분 동안 한 모금도 안 마신 맥주.

탄산이 벌써 어느 정도 빠져나간 뒤였다.

맥주가 이 모양 이 꼴이 날 동안 마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니.

말 그대로 무대에 빠져든 자신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이해진이 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자신도 이럴 지경인데 대중들의 반응은 어떨까.

급히 인터넷을 킨 그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곤 이내 핸드폰을 내려놨다.

굳이 반응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

이미 김세준의 이름으로 잔뜩 도배된 뒤였다.

***

“후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무대가 끝나고 내려온 김세준이 같이 꾸민 한국 무용단 단원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코앞에서 지켜본 그녀들의 무대.

실로 황홀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정말 좋은 무대를 꾸밀 수 있었습니다.”

“아니에요. 저희야말로 세준 씨 노래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훈훈한 분위기 속 김세준은 이내 그녀들과 헤어졌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김세준이 자리로 돌아가자 가수들이 그를 보며 경외감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자신들도 지켜본 그의 무대.

리허설에서도 봤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그 아름다움에 혼이 나갈 정도였다.

“형! 진짜 미쳤네요. 와... 보면서 진짜 눈물 나올 뻔했네요.”

“고마워.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무대였다. 진짜.”

수호의 호들갑에 김세준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이번만큼은 겸손 떨지 않으리라.

자신의 겸손이 같이 무대를 꾸민 한국 무용단 단원들을 깎아내릴 수 있었으니까.

“세준아. 이것 봐봐.”

옆자리에 앉은 이진아가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의자 아래로 건넸다.

“축하해. 완전 대박이네.”

그녀가 보여준 건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7위까지 김세준과 관련된 연관 검색어였다.

그의 이름부터, 부채춤. 아시안 뮤직 어워드 공연 등,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반응이 뜨겁다는 증명이었다.

“이제 네 이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겠다.”

이진아의 농담에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렸고, 시선을 무대로 돌렸다.

너무 오랫동안 핸드폰을 보다 카메라에 찍혀 구설에 오르고 싶진 않았으니까.

김세준의 무대 뒤로도 진행되어 가는 시상식.

어느덧 시상식 막바지에 이르렀고, 남은 시상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김세준이 유일하게 후보로 이름을 올린 남자 신인상의 시상이 시작됐다.

“올해는 정말 많은 가수분들이 신성처럼 등장하셨는데요. 먼저 후보부터 보시고 가시죠!”

시상을 맡은 여배우의 말과 함께 대형 스크린에 김세준을 비롯한 몇몇 가수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총 3개의 팀과 김세준.

김세준을 제외하곤 오로지 아이돌이었다.

“네. 그럼 2017년 아시안 뮤직 어워드 신인상.”

말을 멈추고 다시 한번 큐카드를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축하합니다! 김세준! 김세준은...”

김세준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예상은 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친 후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실제로 확인하자 감동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형 축하해요!”

“축하해! 세준아!”

“축하드려요.”

자신을 포옹하며 축하해 주는 동료 가수들에게 김세준이 진심을 가득 담아 화답했다.

“고마워요.”

짧은 인사 후 무대 위로 올라가는 그.

아직도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레드 카펫을 따라 무대 위로 올라섰고, 김세준은 순간 다시 한번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던 관객들.

그들이 어느새 서툰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

시상식이 끝나고 다시 모인 B.ONE의 숙소.

“후후...”

매끈한 트로피의 촉감.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트로피를 어루만지자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형 그렇게 좋아요?”

김세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생겼고, 고개를 들자 콧대가 한껏 높아진 수호가 그를 향해 트로피 두 개를 내밀었다.

신인상보다 배는 커 보이는 트로피.

올해의 앨범상과 대상 트로피였다.

“크윽...”

턱을 치켜들며 우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호.

김세준이 땅을 짚으며 탄식을 뱉었고, 수호가 그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 축하드립니다.”

“너도 축하해.”

“기분이 어때요?”

“어떻긴. 째지지. 너는?”

“저도요.”

다시 한번 터지는 웃음.

예상 가능했던 서로의 수상이지만 진심으로 기쁨을 만끽하는 둘이었다.

김세준이 샴페인으로 목을 축이며 올해의 앨범상 트로피로 시선을 보냈다.

정확히는 ‘앨범’이라는 두 글자에 시선이 꽂혔다.

이미 머릿속으론 앨범의 컨셉까지 확고하게 정해놓은 상태.

‘아마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들으면 미친놈 취급하겠지.’

그가 생각한 앨범의 주제.

가요계에선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미 그 분야에서 공공연하게 자리를 잡은 노래가 존재하니까.

즉, 그의 앨범이 고스란히 묻힐 수도 있다는 뜻.

그럼에도 김세준은 이미 뜻을 확고하게 굳힌 상태였다.

“가야금 하면 또 이 주제를 빼놓을 수 없으니까.”

김세준의 혼잣말에 멀찍이 있던 수호가 뒤를 돌아봤다.

“네? 뭐라 하셨어요?”

“아니야.”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고 수호가 갸우뚱거리다 이내 신경을 껐다.

반쯤 남은 샴페인을 입으로 털어 넣은 김세준.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앨범’이란 두 글자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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