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33화 (33/148)

#33

아시안 뮤직 어워드(2)

KM 미디어에서 제공한 호텔은 오사카에서도 이름 높은 한큐 인터내셔널.

호화로운 호텔 방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 눈에 띄었다.

짐을 풀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자 푹신한 감촉이 등을 간지럽혔다.

“역시 침대는 에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솔솔 오는 잠을 느낄 때.

누군가 방의 벨을 눌렀다.

잠들기 직전.

눈을 비비고 방문을 열어보니 이진아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누나?”

“뭐해?”

“아, 저 잠깐 잠들 뻔했어요.”

그의 말에 이진아가 피식 웃더니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위층에 다른 가수들도 있는 거 알지? 걔들이 다 같이 술 한잔하자고 하는데 넌 어때? 같이 갈래?”

데뷔 1년 차인 김세준과 다르게 발이 넓은 편인 그녀.

이번 어워드에 초대된 다른 가수들하고 알음알음 아는 사이였다.

“너 아직 유나 빼고 다른 회사 가수들하곤 친분이 딱히 없지? 이번 기회에 친분 쌓아두는 것도 좋을 거야.”

‘음...’

김세준이 그녀의 제안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쁠 게 없긴 하지.’

다른 가수들과의 친분.

언젠간 도움이 될 게 확실했다.

같이 곡을 작업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나중에 내 곡을 가져갈지도 모르지.

“네. 같이 가요.”

김세준의 대답에 이진아가 싱긋 웃었고, 김세준이 방으로 돌아가 옷을 걸친 후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누구누구 있어요?”

“글쎄. 나도 잘 몰라. 나 부른 건 수호가 불렀어.”

“수호? B.ONE의 수호요?”

“응. 나 인맥 쩔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녀.

김세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질하고도 남을 인맥이었으니까.

B.ONE.

대한민국 탑 아이돌이라 말해도 무방한 5인조 보이 그룹.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그룹이다.

그중에서도 수호는 B.ONE에서 가장 큰 팬층을 가진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이 누나는 강유나도 그렇고 수호도 그렇고,’

그녀의 인맥에 감탄을 내뱉는 사이, 위층에 도달했고, 한 방문 앞에서 그녀가 벨을 눌렀다.

“아, 어서 와요.”

잠깐의 기다림 후 부드러운 선을 가진 미남이 웃으며 문을 열었다.

B.ONE의 또 다른 멤버인 노아.

‘와우...’

노아의 얼굴을 보고 내심 감탄했지만, 이내 방을 보자 더욱 큰 감탄이 나왔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호텔이 아니라 거의 집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

얼핏 봤을 때 방도 5개가 넘어 보이고, 거실 같은 공간엔 소파도 있었다.

‘내 방과 비교하는 것도 민망한 수준이네.’

그에 반해 자신의 방은 스탠다드룸.

‘이게 나와 B.ONE의 격차.’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가수와 이제 막 비상하려는 김세준의 차이였다.

자격지심을 느낄 만도 했지만, 김세준은 피식 웃었다.

저들의 위치.

자신도 조만간 올라갈 정상의 자리였다.

“아. 진아 누나 왔네! 어서 와요. 누나.”

사람 사이에서 중심에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이진아를 반겼다.

‘저 사람이 수호.’

문 앞에서 자신을 맞이한 노아가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라면, 수호는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응. 여기는 세준이. 내가 같이 데리고 왔어. 괜찮지?”

그녀의 말에 수호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 어서 와요. 세준씨.”

“반갑습니다.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김세준이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남녀가 섞여 10명 정도 있는 무리.

그중 다섯이 B.ONE의 멤버였고 여자 셋이 걸 그룹, 나머지 남자 둘은 래퍼였다.

다들 김세준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아직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국내에선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가는 그다.

그런 남자와 친해져서 나쁠 게 없었다.

비슷한 또래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달콤한 술까지 들어가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아, 그럼요.”

“편하게 말 놓으세요. 형.”

“그래. 고맙다.”

김세준의 말에 밝은 미소와 샴페인이 담긴 잔을 건네는 수호.

그 잔을 받아 들며 같이 술을 넘기는 둘이었고, 김세준은 수호의 친화력에 혀를 둘렀다.

‘타고난 인싸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과 편하게 대화하며 이 방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사생팬, 연애, 내년 활동. 어떤 주제가 나와도 거리낌 없이 주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 없는 부드러운 화술까지.

‘난 놈이네.’

얼굴이 잘생긴 놈이, 말도 이쁘게 한다.

어딜 가도 사랑받을 재주꾼.

실제로 그는 먼 미래엔 숱한 예능에 고정적으로 출현하기도 했다.

‘반면에...’

수호를 바라보던 김세준의 시선이 살짝 돌아간다.

“혹시 무슨 할 말 있어요?”

자신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 한 남자.

B.ONE의 멤버이자 수호와 함께 가장 큰 팬층을 양분한 남자.

세현.

B.ONE에서 메인 보컬을 맡은 실력파 아이돌.

그 노래 실력은 숱한 가수들에게도 인정받을 정도다.

그 노래 실력과 차갑게 생겼지만, 조각 같은 외모로 무수한 여성 팬을 가지고 있었다.

활발한 수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과묵한 남자.

화기애애한 이 분위기 속에서도 말수가 매우 적었다.

그리고 유독 조용한 이 남자의 시선.

술자리 내내 시종일관 자신을 따라다녔다.

‘뭐지?’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사르르 시선을 돌리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

“혹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반복되는 시선에 조심스레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뿐.

“아닙니다...”

‘도대체 뭔데...’

김세준의 의문을 해결한 건 수호였다.

“아, 형. 세현이가 형 진짜 팬이라서 그래요. 형 처음 노래 듣는 순간 완전 넋 나갔더라고요.”

수호가 세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고, 세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들키기 싫은 비밀을 들긴 아이처럼, 얼굴이 하얘지는 그.

“얘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티 내지 못하고 이러는 거예요. 형이 이해 좀 해주세요. 얘 형 팬클럽도 가입했을걸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는 수호였고, 세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민망한 듯,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

김세준이 그때 서야 이해한 듯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고마워요. 세현씨.”

“아니에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네네. 그럼 나도 편하게 말할게.”

김세준의 대답에 세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크크. 얘, 아레나 뮤직 콘서트도 엄청 가고 싶어 했어요. 근데 저희 스케줄 때문에 못 가서 종일 우울해하고 그랬다니까요. 신기해요. 얘가 이렇게 누구한테 빠져드는 게 처음인데.”

수호가 술기운에 벌겋게 올라온 얼굴로 장황하게 말을 내뱉었다.

세현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굳어졌고, 김세준은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수호가 세현이를 많이 놀려먹는구만.’

얼굴에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오는 세현.

말수는 적지만 놀려먹기 좋은 스타일이었다.

“아, 고마워. 다음엔 내가 너네 콘서트 보러 갈게.”

세준이의 말.

하지만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게스트로 초대할게요.”

“아, 좋다. 형이 저희 게스트로 와주면 진짜 좋을 거 같은데요?”

“내가? 곡도 없잖아. 너네 피처링 해준 가수들만 불러도 자리 꽉 찰 거 같은데?”

김세준의 말. 그 말에 세현이 굳은 다짐을 내뱉었다.

“같이 해요. 곡.”

***

다음 날이 되자 김세준은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내부가 아닌 야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공연이다.

12월치곤 한국의 늦가을 날씨 같은 오사카의 기후 덕분에 큰 무리가 없었다.

“진짜 크네.”

나가이 스타디움을 보며 김세준이 그 규모에 감탄을 터트렸다.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올림픽 공원 올림픽 홀의 10배는 되는 규모였다.

“세준아. 저 사람들은 뭐야?”

이진아가 다가오더니 한 무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오늘 저랑 같이 공연하는 분들이에요.”

“응?”

이진아의 되물음.

하지만 김세준은 딱히 알려주지 않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한국문화 진흥원.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김세준이었고, 오늘 그의 무대는 단순히 그만의 무대가 아니었다.

한국문화 진흥원에서 보내준 저들.

오늘 저들과 자신은 함께 무대를 꾸밀 예정이었다.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지.’

분주하게 준비하는 그들을 보며 김세준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건네면, 홍보대사직도 거절할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

자신의 무대를 꾸미기에 더없이 좋은 아이디어였다.

“뭐야? 뭘 또 꾸미고 있는 거야?”

그런 김세준을 보며 이진이가 눈을 흘겼고,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보시면 알 겁니다.”

***

“세준씨! 리허설 들어갈게요!”

“네!”

무대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리허설.

김세준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무리를 보며 말을 뱉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저희야 말로 잘 부탁드리죠.”

아름다운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들.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세준의 무대 위로 올라오자 리허설을 끝마친 다른 가수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뭐야?”

“헐. 대박인데?”

김세준의 뒤를 따라 무대로 올라오는 열 명 남짓한 인원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들의 등장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리고 이내 시작된 무대.

무대 중앙에서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는 그.

그리고 그런 그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무대를 꾸미는 그녀들.

그동안 김세준의 무대가 애절하고 감동적이었다면.

지금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와. 이거 국뽕 치사량인데?”

한 가수의 중얼거림에 다른 이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반칙이지.”

“진짜 무대 구성하는 게 클라스가 다르네.”

아시안 뮤직 어워드.

화려한 무대 스케일이 화자가 되는 만큼, 그들의 무대도 다른 공연과는 차원이 달랐다.

조명과 레이저가 다른 무대에 비해 배는 쓰이고, 특별 분장과 백던서들도 평소보다 더 공을 들였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무대가 김세준의 무대보다 낫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B.ONE도 리허설을 끝마치고 김세준의 무대를 구경 중이었고, 수호는 넋 나간 세현을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야. 너 그러다 침 흘리겠다.”

입 다물 생각도 못 한 채 김세준의 무대에 홀딱 빠진 그.

수호의 질책에 세현이 입을 다물었지만, 시선은 김세준의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너무 좋다.”

단순한 중얼거림.

하지만 수호는 그게 세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란 걸 안다.

자신들을 단숨에 인기 아이돌로 바꾸게 해 준 미니 앨범 타이틀.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에도 세현은 단순히 저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응. 진짜 좋네.”

수호 또한 세현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자신들의 무대처럼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는 없지만.

한국의 미를 잔뜩 살린 그의 무대.

한국인이라면 보면서 아름답다고 절로 중얼거리리라.

김세준의 무대.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인터넷이 난리가 난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무대를 수호가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또 한바탕 난리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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