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32화 (32/148)

#32

아시안 뮤직 어워드

김세준의 무대 뒤로, 3명의 가수가 더 공연했고 아레나 뮤직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성황리에 끝난 콘서트.

열광과 감동의 도가니였던 관객들의 반응.

거짓이 아니지 인터넷에 올라온 생생한 후기는 칭찬 일색이었다.

[와... 김세준 무대 왜 라이브로 들으라고 했는지 이해했어요. 그냥 감정전달력이 미쳤습니다.]

[가야금 양손으로 연주하는 거 보고 진짜 기겁했어요. 슬프면서도 화려한 가락이 뭔지 느꼈네요.]

[내 옆자리 아버님은 엄청 눈물 흘리시더라고요. 보면서 저도 울컥했습니다.]

10명에 가까운 가수들로 꾸몄던 무대.

혹평 하나 없는 완벽한 무대.

하지만 거기서도 유독 호평인 무대 하나.

김세준의 무대였다.

그의 공연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무서울 정도로 일관적이었다.

칭찬일색으로 뒤덮인 인터넷 여론.

감동과 재미를 다 잡은 김세준의 공연은 사람들이 그의 단독 콘서트를 원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찬사만 넘쳐 흐르는 인터넷 여론.

그런 세간의 평가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한 노인이 있었다.

“흐음...”

누군가가 올린 김세준의 무대 영상.

한복을 입고 가야금을 뜯고 있는 김세준과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남자가 턱을 쓰다듬었다.

“괜찮을 거 같은데?”

대한민국 전통문화를 한껏 살리면서도, 대중들에게 큰 호감을 사는 인물.

자신들의 홍보대사로 딱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남자가 자신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빼빼 마르고 안경 쓴 남성을 바라봤다.

“좋은데요? 반응 보니까 인기도 많고, 그렇다고 실력이 부족 한 거 같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더 알아보니 이 친구 아버님이 김창용님이시더라고요.”

“오. 무형문화재인 창용이?”

“네. 맞습니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그들에겐 친숙한 이름이었다.

“창용이 아들이면 실력은 진짜겠네.”

“그렇죠. 게다가 호부무견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창용님의 아들이면 인성도 훌륭할 겁니다. 이미 인터넷엔 그의 팬서비스가 훌륭하다고 제법 알려져 있었습니다.”

안경을 치켜세우며 뱉은 남자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 번 추진해봐. 계획은 잘 진행되어 가고 있나?”

“네. 확정은 아닙니다만, KM 미디어측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철두철미한 남자의 일 처리에 노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의 책상엔 한국문화 진흥원 대표 홍성원이라 적힌 명패가 올려져 있었다.

***

“아, 내려갔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눈을 뜨자마자 김세준은 음원 차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짙은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와 강유나의 곡이었던 ‘심청가’.

3달 정도 굳건히 1위를 지켰던 노래가 연말이 되자 1등을 내줬다.

주간으로 따지자면 11주나 유지했던 순위.

만족할만한 성적이고, 언제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긴 했지만.

내심 순위가 떨어지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네.”

그들의 곡을 꺽고 올라간 곡.

크리스마스를 노려 발매한 곡이었다.

풋풋한 사랑 노래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노래.

“어쩔 수 없지.”

침대에서 일어나며 김세준이 아쉬움을 털어냈다.

이미 떨어진 순위다.

미련 가져봤자 자신만 고달플 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고작 한 단 계 떨어진 것 뿐이야.’

속으로 자신을 위안하며 김세준이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이미 벌어진 일.

아쉬워하는 것도 미련한 짓이었다.

***

김세준의 오늘 첫 스케줄은 미팅이었다.

자신을 홍보대로 임명하고 싶다는 한국문화 진흥원과의 미팅.

아레나 뮤직이나 김세준이나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었다.

‘오랜만에 들었지.’

한국문화 진흥원.

회귀하기 전 가야금 명인의 삶을 살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곳이다.

자신을 후원해주는 몇 안 되는 단체이기도 했고.

나쁜 기억도 없고, 그들의 제안이 썩 괜찮았기에 김세준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회의실 안엔 이미 이해진과 하동준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자, 하동준이 바로 본론을 꺼넸다.

“넌 이거 어떤 거 같아?”

“전 좋아요. 한국문화 진흥원이면 공공단체고, 저하고도 이미지가 썩 잘 맞지 않습니까?”

가야금을 뜯는 가수.

한국문화를 알리는 홍보대로서 제격이다.

자신과 그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

아마 그들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 거겠지.

김세준의 말에 하동준도 동의했다.

“우리도 긍정적이야. 너하고 이미지도 잘 맞고. 그쪽에서 광고까지 넣어준다고 하니까.”

“오호...”

김세준이 씁쓸한 감탄을 내뱉었다.

회귀하기 전, 가야금 명인일 때에도 홍보대사로 임명된 적이 있다.

그땐 광고제안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또 무슨...”

하동준이 신나게 부연설명을 하려 할 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2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풍채 좋은 노인과 삐쩍 마르고 안경 쓴 중년 남성.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에 김세준이 티를 내지 못하고 반가움을 표했다.

홍성원과 박지원.

회귀하기 전에도 자주 얼굴을 봤던 두 사람이다.

둘 다 자국 문화에 지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있는 좋은 사람들이고.

가끔 그게 지나쳐 국수주의 같은 이념을 지니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반갑습니다. 홍성원입니다.”

“박지원입니다.”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하고, 시작된 미팅.

“저희의 제안서입니다. 살펴보시고 말씀 주시길 바랍니다.”

박지원이 서류 가방에서 종이 더미를 꺼내 그들에게 나눠줬다.

“흐음...”

신중하게 살펴보는 셋.

김세준 또한 반가움은 접어두고 철저하게 서류를 살폈다.

‘평범하네.’

몇 번이나 살펴봤지만 거슬리는 건 없었다.

어려운 단어로 점철된 서류를 쉽게 풀자면.

그냥 광고 한 번 찍고.

홍보대사라는 이름 달고.

자신들의 행사에 몇 번 참석해 달라는 게 다다.

아무리 살펴봐도 자신에게 나쁠 게 없는 제안.

저 정도 제안에 계약금을 이 정도 주면 오히려 날로 먹는 느낌이다.

“크흠. 다 괜찮습니다만, 금액적인 부분에선 저희가 좀더 검토하고 말씀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와우...’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신은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봐 단숨에 승인하는 법이 없구나.

계약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밑밥을 던지는 그였다.

“예. 그 부분은 얼마든지 협의가 가능하니 검토하시고 말씀주세요. 아, 그리고.”

박지원이 말을 멈추고 홍성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

홍성원의 고개가 살짝 까닥거리는 걸 본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만, 미리 알려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방영하는 KM미디어하고 한 가지 합의 중인 사항이 있습니다. 만약 세준씨가 저희와 계약하게 되면 그 합의에 따라 무대를 구성하셔야 합니다.”

“합의요?”

김세준이 되물었고, 박지원이 안경을 지켜세우며 미소지었다.

“아, 세준씨에게 해가 되는 제안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가 이번에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후원하게 되면서 구성한 게 있습니다.”

잠깐 말을 멈추고, 침을 삼키는 그.

다시 말을 내뱉는 그였고, 그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김세준의 눈빛에 밝은 빛이 서렸다.

한국문화 진흥원에서 구성한 계획.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

아시안 뮤직 어워드.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음악 시상식.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의 K-POP 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시상식이다.

K-POP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위상이 올라갔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며 열리는 시상식이었고, 압도적인 공연 스케일로 호평이 자자했다.

그리고 올해 히트곡을 2곡이나 발매하며 입지를 단단히 다진 김세준이, 이 어워드에 초대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 이번 아시안 뮤직 어워드는 일본 아닙니까?”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핸들을 잡은 이주성의 질문에 김세준이 입에 머금던 커피를 꿀꺽 삼켰다.

“응. 일본 오사카.”

“흐흐흐.”

그의 대답에 이주성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의 의미.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설렘이 가득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놀러가는 거 아니야.”

“아, 그런 뜻으로 웃은 게 아닙니다. 형님의 음악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게 좋아서 웃은 거였습니다.”

예상외의 대답.

김세준이 이주성의 뒤통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특한 자식.

아시아에서 넘사벽의 인기를 자랑하는 K-P0P의 위용.

덕분에 그의 존재도 아시아에 차츰 퍼지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일본에서 나름 매니악한 팬층을 형성하는 중이라 들었다.

‘미튜브의 힘도 컸지.’

저번에 개설한 미튜브.

점점 늘어나는 미튜브 영상에 다양한 국적의 언어로 댓글이 달렸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 거기에 일본어까지.

‘일본에서 인기는 좀 의외이긴 했지.’

동남아는 K-POP의 인기가 워낙 좋아 자신도 부가적으로 이름을 알릴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일본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토 때문일까?’

고토.

가야금과 비슷한 일본의 전통악기.

어쩌면 가야금을 연주하는 자신을 보며 그들도 동질감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감지덕지지.’

무엇이 됐든,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 주는 해외 팬들의 존재가 감사하면서도,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형님. 예은이도 형님처럼 빛 보는 날이 올까요?”

생각에 빠진 김세준을 깨우는 이주성의 질문.

김세준이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기억으론 이예은은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만 2번 정도 받았던 거 같았으니까.

김세준이 창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니까.”

***

“잘 갔다 와라. 컨디션 관리 잘 하고.”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12월 15일.

김세준과 이진아가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이해진이 직접 공항까지 나섰다.

“아시안 뮤직 어워드 좋은 경험일 거야. 살면서 그렇게 큰 무대에 서는 것도 흔하지 않아. 게다가 외국인들 상대로 공연하는 것도.”

“네. 좋은 밑바탕으로 삼고 오겠습니다.”

이해진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고,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김세준과 이진아는 발걸음을 옮겼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으로 들어서자, 이진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우... 힘들다.”

오늘 새벽까지 스케줄이 있던 그녀.

피로가 가득 쌓여 있을 만했다.

“한숨 자요. 누나.”

“그래야지. 너는?”

“전 설레서 잠은 안 올 거 같아요.”

기대 가득 쌓인 그의 얼굴.

이진아가 그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세준아. 엄청 큰 기대는 하지마.”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하는 김세준을 향해 이진이가 진중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솔직히 해외에서는 우리보다 아이돌이 더 잘 먹히니까. 대부분 아이돌 팬들일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약간 들러리 같은 느낌이지. 공연에서 엄청 큰 호응을 받고 그런 건 기대하지 마.”

“아...”

걱정이 가득 담긴 그녀의 눈빛.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리라.

그녀의 우려가 무엇인지 십분 이해했다.

너무 들뜬 마음으로 갔다가 실망하는 걸 걱정하는 것이리라.

“뭐, 넌 그래도 신인상 강력 후보니까 그나마 낫겠다.”

이진아가 말을 뱉곤 안대를 썼고, 김세준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러리라...’

물론 지금은 그렇지만.

미래에도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

오사카의 국제공항인 이타미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함께 타고 온 비행기.

그들의 팬이 공항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가수들이 나올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플랜카드를 흔드는 그들의 팬들.

이진아가 가진 우려가 확신이 됐다.

저들이 들고 있는 플랜카드.

대부분 아이돌의 이름과 별명이 적혀 있었다.

‘약간 위축되긴 하네.’

한국에선 겪지 못했던 푸대접에 김세준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경호원들도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아이돌들을 경호하는데 열중이었으니까.

씁쓸한 마음이 들 때 누군가 김세준의 어깨를 두들겼다.

“...!”

고개를 돌려 보니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십 명에 사람들이 보였다.

“I’m your fan. Please...”

어수룩한 영어와 함께 종이 한 장과 펜을 내민다.

“하하...”

그 뒤에 줄지어 있는 사람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인 그들의 손엔 각종 선물이 들려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린 그림.

손수 만든 거 같은 과자.

곱게 포장된 상자까지.

“주성아. 저거 빨리 다 받아.”

“네. 형님.”

이주성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해하며 그들의 선물을 챙겼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김세준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어.

진심을 담긴 그의 감사에 그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남겼다.

갑자기 진행된 간략한 패미팅.

한 남성이 제법 그럴듯한 한국어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진...진짜 팬이에요. 저희 모두 세준님 응원합니다. 일본에서 세준님 노래 많이 들어요. 힘내세요!”

가슴 찡한 울림.

‘진짜 사치스럽네.’

머나먼 타국에서 느끼는 팬들의 존재.

감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치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진짜로.”

허리를 꾸벅 숙였고, 이주성이 스리슬쩍 눈치를 봤다.

슬슬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시간.

이주성의 초조함을 눈치챈 김세준이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전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아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인사와 함께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도 꾸준히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김세준이 깊은 다짐을 새겼다.

이번 공연.

저들이 자신의 팬이 된 게 자랑스럽게 만들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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