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31화 (31/148)

#31

아레스 뮤직 콘서트(2)

삭막했던 관객석이 거짓말인 것처럼 어느새 사람들로 득 채워졌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객석.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득 찬 관객들은 다른 콘서트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다른 콘서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중년 남성들의 비율.

평범한 콘서트와는 다른 제법 색다른 풍경이었다.

“우리 동년배도 많네요.”

“음. 우리 동년배들은 이런 거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김세준의 초대로 콘서트에 참석한 김창용과 박진숙.

둘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뭇 놀란 목소리로 말을 나눴다.

난생처음 와보는 콘서트.

대중매체로만 접하던 콘서트였기에 작은 편견을 가지고 있던 둘이었다.

김세준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콘서트하곤 거리를 두고 살아갔을 그들.

자신들과 비슷한 연배가 이런 콘서트를 와서 즐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좀 덜 민망하네요.”

박진숙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주변인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들의 첫 공연.

당연히 보러와야 하지만, 작은 민망함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주변을 보아하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뭔가 신선하고 재밌네요. 우리 앞으로 종종 다녀요. 생각보다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 같아요.”

김세준 때문에 대중가요의 맛을 알게 된 박진숙.

그녀의 말에 김창용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자주 보러 옵시다.”

김창용의 마음에도 쏙 드는 좋은 제안이었다.

김창용과 박진숙이 아들의 무대를 기다리며 설레할 때.

김세준은 무대 뒤편에서 하동준과 입장한 관객들을 보며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많네요,,,”

실제로 4천 명의 인파를 보니 말문이 턱 막힐 지경.

그런 김세준을 향해 하동준이 넉살을 떨었다.

“네 팬이 제일 많은 거 같은데?”

“제 팬이요?”

하동준이 손가락으로 관중석을 훑었다.

“봐라. 다양한 분들이 계시지만, 중년 남성분들도 많이 보이지 않아? 저분들은 다 네 팬인 거지 뭐.”

그의 말대로 중년 남성의 모습이 제법 보였다.

하지만 저들이 전부 자신의 팬이라는 건 지나친 비약이었다.

“저분들이 다 제 팬인 건 아니죠.”

김세준이 겸손을 떨었지만, 하동준은 확신에 찼다.

“우리 회사에 저분들이 좋아할 뮤지션이 얼마나 있다고. 물론 오로지 다 네 팬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태반 이상은 네 팬일 거다. 심청가가 아버님들의 심금을 얼마나 많이 울렸는데. 내 주변에도 네 팬이 된 사람들이 엄청 많다.”

‘흐음...’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김세준이 차마 더 부정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바라보니 그들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한껏 상기되어 있는 그들의 얼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자신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이들.

“잘해봐. 저분들한테 너의 무대를 제대로 보여드리고.”

하동준의 격려.

김세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들의 발걸음을 헛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모든 관중이 안으로 들어오고, 콘서트가 시작됐다.

이해진이 무대 위로 홀로 올라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아레스 뮤직의 대표이자 가수 이해진입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이해진이 등장하자 관객석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환호에 미소로 보답한 이해진이 짧은 소통을 하며 분위기를 띠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 됐고, 그가 오늘 무대를 선보일 가수들을 소개했다.

이름이 불리면 무대 위로 올라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가수들.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도 손뼉을 치며 그들을 환영했다.

“후우...”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김세준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떨리는 발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

자신이 등장하자마자 들리는 엄청난 환호성.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 천명에 관객들.

자신에 대한 동경과 흥분이 넘실거리는 그들의 눈빛.

아직 공연하는 것도 아니지만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게다가 자신이 등장할 때의 환호성.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가수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굳이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깊은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런 그의 생각이 착각이 아닌지, 다른 가수들이 흐뭇하고 부러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김세준을 이어 몇몇 가수들이 더 등장했지만 김세준만큼의 환호성은 들리지 않았다.

오늘 무대를 꾸밀 모든 가수가 올라와 소개를 마치자, 이해진만 남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해진.

그가 콘서트의 시작을 맡는 건, 처음 개최된 이후로 관습으로 쭉 이어지는 일이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콘서트의 첫 무대를 꾸미는 그.

열광에 빠져 있던 관객들이 어느새 그에게 홀리기 시작했다.

흥분을 감추고, 손을 흔들며 그의 노래에 심취하는 사람들.

이해진이 관객들과 감정을 공유할 때, 무대 뒤편에선 다른 가수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분주히 준비 중이었다.

김세준 또한 오늘 자신의 무대를 완벽히 꾸며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점검을 놓치지 않았다.

복장을 확인하고, 가야금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발걸음을 서성거리며 목을 풀고, 긴장감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수없이 내뱉었다.

평소 자신이 흠모하던 가수들의 공연.

하지만 그들의 무대를 구경할 틈 따위는 없었다.

“다음 차례에요. 세준씨!”

한 스텝이 그의 대기실로 들어와 순서를 알렸다.

‘그럼 지금 진아누나가 하는 건가.’

아레나 뮤직이 계획했던 무대 구상.

이진아가 마지막 곡으로 연꽃을 부르고, 그 뒤에 자신이 등장해 연꽃을 부른 뒤 심청가를 부른다.

답가 컨셉인 만큼, 이진아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게 괜찮은 그림이란 판단이었다.

그리고 스텝에 말에 서둘러 무대 뒤편으로 향했고, 관객석에서 이진아의 이름을 연호하는 게 들려왔다.

그리고 자신도 익숙한 이진아의 ‘연꽃’의 멜로디와 청아한 이진아의 목소리.

익숙한 노래를 들어서일까.

잔뜩 머금고 있던 긴장감이 조금은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후우...’

다시 한번 심호흡.

그리고 이해진이 그를 지나쳐 무대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이진아의 노래가 끝났고, 그가 등장할 차례였다.

“이진아의 연꽃.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그 답가를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다음은 우리 회사에서 초신성처럼 등장한 가수인 김세준입니다!”

이해진의 소개 영상에 사람들의 눈빛이 이채롭게 변했다.

지금 콘서트에 온 관객 중에는 김세준만 보기 위해 찾아온 자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들의 심금을 울렸던 ‘심청가’.

그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 싶다는 욕망이 그들을 여기로 이끌었고, 그 순간이 눈앞에 닥치자 진심이 가득 담긴 환호를 뱉었다.

올림픽홀을 가득 채우는 그들의 환호.

하지만 김세준은 바로 등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화려하게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순식간에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 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대를 보며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아무리 콘서트에 미지한 자들이더라도,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기대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컴컴한 무대를 오매불망 바라본 게 잠시.

은은한 조명 하나가 켜졌고, 무대 위에 홀로 있는 김세준을 내리쬐었다.

“...!”

무대 위에 덩그러니 있는 김세준.

그런 그를 보며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복장이 평소와는 달랐다.

연한 하늘색에 봉황이 금색으로 수놓아진 한복.

그런 복장을 입은 채 가야금 앞에 앉아 있는 그.

마치 조선 시대 선비 같은 모습에 관객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심청가’ 티져 영상을 찍을 때 한복을 입긴 했다.

하지만 방송이나 무대에서 한복을 입고 연주하는 건 처음 하는 일.

덕분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제법 즐겁게 만들 수 있었다.

“잘 어울리네.”

“응. 느낌 있다.”

“남자 한복이 이쁘다고 느껴진 건 처음이네.”

몇몇 관객들의 대화.

그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던 다른 이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근데 저건 뭐야?”

“응? 뭐?”

“가야금이 2 갠데?”

“응? 어라. 그러네.”

한복을 입은 김세준에게 집중된 이목.

덕분에 그의 앞에 디귿 자로 놓인 2개의 가야금엔 뒤늦게 시선이 갔다.

“그냥 2곡 부르니까 가야금 2개 준비한 거 아닐까?”

“그런 건가?”

알 수 없는 의도에 추측만 내뱉었고, 익숙한 반주가 올림픽홀에 흘러나왔다.

이진아의 연꽃에 화답하기 위한 김세준의 연꽃이었다.

그리고 가야금 앞에 앉아 있던 김세준이 능숙하게 현을 뜯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그의 앞과 옆에 놓인 2개의 가야금을 동시에.

왼손과 오른손.

양손으로 가야금 2개를 동시에 뜯는 김세준이었다.

“...!”

그런 그의 모습에 관객석에서 미친듯한 환호성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김세준의 입가에 슬그머니 생기는 미소.

‘이거지.’

그가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

가야금 2개 동시 연주.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리자 김세준은 자신의 이벤트가 성공했다는 걸 직감했다.

가야금 2개를 동시에 연주하는 것.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음색의 큰 변화 없이 시각적으로 큰 임펙트를 줄 수 있는 연주.

카메라맨이 그의 손을 클로즈업하여 찍자, 그의 예상대로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더 커졌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두 손.

그 두 손에 이어 김세준의 입도 독특한 목소리를 발성하기 시작했다.

연꽃이 피어날 때 그대만 바라봤죠.

연꽃보다 그대만 눈에 담고 왔죠.

동시에 무려 3가지 일을 하는 그.

지켜보던 관중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와... 저게 가능한 거야?”

“몰라... 머리 안 터질까?”

김세준의 모습에 경악을 터트리던 그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웅성거림이 멈췄다.

김세준의 무대.

순식간에 사람들을 홀렸다.

화려한 그의 연주.

그리고 올림픽홀을 가득 채우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

사소한 잡담을 나눌 때가 아니었다.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김세준의 목소리가 멈추자 사람들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느새 그의 첫 무대가 끝나 있었다.

아쉬움도 잠시, 멋진 무대를 보여준 김세준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크흠. 감사합니다.”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을 타 스텝들이 가야금 2개를 새롭게 가져왔다.

“이번에 제가 준비한 퍼포먼스 괜찮았나요?”

김세준의 질문에 한 목소리로 답하는 관객들.

부정 따윈 없었다.

그런 그들의 대답에 김세준이 흐뭇한 미소를 짓곤 재차 말을 이었다.

“다음 노래는 다들 아시겠지만 심청가입니다. 원래는 듀엣곡인데 그냥 제가 다 부를 게요. 그리고...”

김세준이 좌중을 훑어보며 다시 말을 뱉었다.

“오늘 이 노래를 듣기 위해 많은 분이 찾아와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노래. 들려드리겠습니다.”

말과 함께 다시 허리를 크게 숙였고, 김세준이 바뀐 가야금 앞으로 가 앉았다.

***

아레나 뮤직 콘서트를 찾은 가장들.

그들이 제일 기대했던 무대가 시작되자 다들 숨을 죽였다.

그리고 이내 올림픽 홀에 절절하게 울리는 김세준의 탁한 목소리.

“...!”

듣는 이의 감정 밑바닥부터 자극하는 그의 목소리.

“진짜... 라이브로 들어야 하네...”

한 남자의 중얼거림.

김세준의 무대는 라이브로 들어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소문.

기대하긴 했지만, 네티즌들 특유의 과장이 포함된 거라 여겼다.

하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거대한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와 멜로디.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대박이네.”

무대 뒤편.

김세준의 무대가 끝나고 올라가길 기다리던 이해진이 관객석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자식 없는 자신도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하물며 오늘 그의 무대를 보기 위해 왔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의 시선에 보인 몇몇 사람들.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쏟는 자들이 있었다.

측은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던 이해진이, 고개를 돌려 김세준을 바라봤다.

무대 위에서 아직도 열창하고 있는 그.

동시에 이해진은 확신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가장들의 지지를 받는 가수는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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