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방구석 콘서트
‘와우...’
김세준은 시청자 수를 보고 속으로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800명.
적지 않은 숫자.
그 숫자가 어느새 2천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제 고작 첫 곡을 불렀을 뿐인데.
“벌써 2천 명이나 들어오셨네요. 감사합니다. 아, 슈퍼쳇은 지금 비 활성화 해놨습니다. 방구석 콘서트인데, 비용이 들면 안 되잖아요?”
시청자들과 소소한 소통.
하지만 소통을 하면서도 김세준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한 번 가야금을 쓸 때마다 다시 조율해야 하는 개량 가야금의 특성.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색다른 모습에 즐거워했다.
‘이런 맛에 방송하는구나.’
생각보다 재밌고, 보람찼다.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제일 많은 좋아요를 받은 게 큐트걸 분들이 부른 소원이었죠?”
그의 말에 시청자들이 열렬한 동의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그들을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뭔가 어미 새가 된 기분이네.’
자신만을 바라보며, 기대감을 내뿜고 있는 그들.
“그러면 시작할게요.”
큐트걸.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걸 그룹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들이지만, 세월의 무색함에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작년 해체를 선언하고 각자 솔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들.
그리고 그녀들의 노래 ‘소원’.
그녀들을 명실상부 대한민국 톱 걸 그룹으로 만들어준 노래.
그녀들의 팬들이 아직도 그리워하는 명곡이다.
‘키는 적당히 낮춰서 부르면 되겠지.’
목을 가다듬고 가야금을 뜯기 시작하는 그.
‘소원’은 발랄하고 싱그러운 소녀의 감성이 듬뿍 담긴 곡이다.
20대 남자가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노래.
‘하지만 무리 없지.’
자신에겐 가야금이 있다.
가야금의 음색으로 색다르게 부르면 될 뿐.
김세준의 왼손이 안족의 오른쪽으로 넘어가 오른손과 같이 현을 뜯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가야금 주법은 오른손으론 현을 뜯고 왼손으론 현을 움직여 여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자의 노력이 있었고.
이제 왼손은 단순히 현을 움직여 여음을 변화시키는데 국한되지 않았다.
안족의 오른쪽으로 넘어가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하였고, 가야금 연주의 혁명이 시작됐다.
이후 왼손은 단순한 선율 연주를 벗어나 마치 피아노의 왼손처럼 화음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템포는 조금 늦추고.’
원곡은 아이돌 댄스곡이니만큼, 빠른 템포.
하지만 템포는 조금 늦춰 차분한 감정을 집어넣는다.
발랄하고 싱그러웠던 소녀 같던 원곡이, 부끄럽고 수줍은 많은 소녀로 변했다.
같은 듯 다른 미묘한 편곡.
원곡의 느낌을 원했던 누군가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와... 이걸 이렇게 편곡한다고?]
[오빠 나 죽어요. 진짜ㅠㅠ]
[이거 음반 내야 한다 진짜로.]
[이것도 리메이크하실 계획 없으신가요?]
난리 난 채팅창.
하지만 김세준은 그것도 눈치 못 챈채 연주와 노래에 심취한 중이었다.
너의 손을 한 번 잡아볼 수 있다면.
너의 눈동자에 내가 담길 수만 있다면.
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겠니.
김세준에 평소 스타일과는 다른 부드러운 가성.
색다른 그의 음색에 시청자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허스키하고 독특했던 그의 음색이었는데.
예상외로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노래엔 그런 목소리는 아니지.’
소녀의 느낌이 가득한 만큼, 자신의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불렀다.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 못 하는 게 아쉽군.’
채팅창이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긴 하지만, 정확한 글씨까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드문드문 보이는 ‘박수’ 이모티콘을 비롯한 긍정적인 이모티콘을 통해 나쁘지 않을 거 같다고 지레짐작할 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다시 연주를 이어나가는 김세준.
잔잔하고 부드러운 선율과 제법 감미로운 목소리.
새롭게 탄생한 ‘소원’에 큐트걸의 팬이었던 시청자들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자신들의 아련한 옛 추억을 자극하는 그의 노래.
큐트걸의 큰 팬이었던 박수진.
눈물이 찔금 나올 정도로 감동이었다.
소매로 눈가를 살짝 닦은 그녀가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입덕이다.’
큐트걸이 해체하고 가까스로 탈덕할 수 있었던 그녀.
그리고 맹세했었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입덕하지 않을 거라고.
오늘은 그녀의 다짐이 산산이 부서지는 날이었다.
***
“다들 어땠어요? 괜찮았나요?”
노래가 끝나고 김세준이 묻자, 난리 나는 채팅창.
엄지와 박수 이모티콘과 무수한 칭찬.
김세준이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우. 시청자 수 많이 늘었네.’
숙인 고개를 올리면서 확인한 시청자 수.
어느덧 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몰렸다.
그에 생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이제 막 ‘방구석 콘서트’를 시작한 참.
그럼에도 벌써 만 명이라니.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얼마나 모일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음 활동이요? 다음 활동은 아직 모르겠어요. 확정 난 게 없어서요. 일단 지금 하는 활동부터 잘 끝내고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요?”
시청자들의 물음에 친절히 답해주면서도, 적절히 선을 지켰다.
이미 그의 내년 활동은 계획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회사 기밀인 향후 계획을 발설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그 뒤로도 이어진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소통을 이어가다, 조율이 끝나자 김세준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다음 곡도 한 번 볼까요? 다음으로 많은 좋아요를 받았던 게 에드 케인의 With you죠?”
With you.
영국 출신의 가수인 에드 케인의 히트 곡.
현재 음원 차트에서도 꾸준하게 상위권을 차지하는 노래다.
빌보드차트에서도 1위를 꾸준하게 유지했던 명곡.
인트로에서부터 실로폰처럼 울리는 전자 비트 소리.
마치 실로폰처럼 울리는 소리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된다.
별거 없이 느껴질 수 있는 노래.
음악적인 완성도는 낮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은 곡.
김세준도 매우 좋아하던 노래다.
회귀하기 전엔 가야금으로 몇 번이나 편곡했던 적도 있는 노래.
“다들 이 노래 후렴 아시죠?”
김세준이 카메라를 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채팅창이 난리가 났고,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 그때 다 같이 떼창 불러주세요. 이거 콘서트니까!”
‘진짜 재밌네.’
비록 온라인이지만 소통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With you의 매력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독성 넘치는 비트.
두 번째는 매우 직설적인 가사.
인트로에서부터 실로폰처럼 울리는 단순한 전자 비트가 단숨에 사람들에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김세준이 그 매혹적인 비트를 가야금으로 뜯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비트.
그 비트가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순간.
김세준이 가야금을 뜯자마자 채팅창은 열광에 빠졌다.
[와... 쩐다. 진짜.]
[이 비트를 가야금으로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전자 비트와는 사뭇 다른 소리.
실로폰처럼 들리던 소리가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중독성 있는 그 느낌만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몇몇은 더 매력적으로 느꼈다.
제법 빠른 비트였기에 김세준의 손도 현란하게 움직였다.
[와. 님들 저거 진짜 어려운 거에요.]
[저도 가야금 어렸을 때 배웠는데, 가야금으로 저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거 절대 쉬운 거 아닙니다.]
[맞아요. 이런 박자하고 곡에 맞는 분위기 내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닌데... 진짜 대단하네.]
김세준에 대한 찬사가 넘치는 채팅창.
거기에 그치지 않고, 김세준이 입을 열자 채팅창에서 다시 한번 찬사가 쏟아져 내렸다.
Girl, Do you know I want your body? (내가 너의 모든 걸 사랑하는 걸 알잖아?)
I'm in love with your body. (난 너의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어.)
Don't push me away. (날 밀어내지 마.)
You're just like me.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잖아.)
아까와 달리 김세준 특유의 독특한 목소리.
그런데 평소보다 조금 더 거칠고 허스키했다.
With you의 또 다른 매력.
직설적인 가사로 사람의 본능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육체적인 사랑. 본능이고 원초적인 감정.’
그 감정을 살리기 위해 평소보다 거친 느낌으로 부르는 그.
김새준 나름대로 해석한 감정이었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빠 나죽어...]
[목소리 섹시한 것 봐...]
[진짜 오늘부터 김세준에게 입덕한다.]
팔색조처럼 계속해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그.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매력에 사람들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곡자인 에드 케일이 내한했을 때 관객들이 다 같이 불렀던 떼창.
후렴이 시작되자 그때의 광경이 재현됐다.
김세준이 노래를 멈춘 뒤, 가야금만 뜯었고, 채팅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렴 가사로 도배되어 가는 채팅창.
‘이게 콘서트지.’
비록 직접적인 소통은 못 하더라도, 가수와 관객들 모두가 즐기고 있는 순간이었다.
***
김세준의 ‘방구석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콘서트가 마무리될 때에는 무려 10만 명이라는 시청자를 끌어모았고, 실시간 검색어도 장악했다.
처음 예상은 5곡 정도로 생각했지만, 시청자들의 끊임없는 앵콜에 결국 10곡까지 부른 그였다.
“우리 복덩이! 아주 대박 사고쳤네?”
“감사합니다.”
자신을 부른 이해진의 사무실에 가자 하동준이 자신을 보며 팔을 벌렸다.
얼굴 가득 담긴 진한 웃음은 그가 진심으로 현 상황을 기뻐한다는 걸 알렸다.
“진짜 이건 대박이다. 인터넷에서 여론이 너무 좋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바라보던 이해진도 시선을 김세준에게 돌렸다.
김세준의 ‘방구석 콘서트’.
미튜브를 한다고 했을 땐, 그냥 적당한 팬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자신의 생각 이상이었다.
김세준의 기획력도, 그 파급력도.
대박 신인 정도로 취급받던 그가, 이젠 다른 톱스타들과도 비교 대상이 되었다.
이번 일로 김세준의 몸값도 천정부지 오를 게 분명하리라.
‘심청가’로 40대와 50대 가장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그가, 이번 일로 다른 세대에게도 큰 호감을 받았다.
‘진짜 복덩이네. 이 정도면.’
벌이는 일 하나하나가 대박으로 이어지는 그.
김세준을 바라보는 이해진의 시선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잘했어. 그래서 콘서트 해 본 소감이 어때?”
이해진의 물음에 김세준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콘서트라 칭하긴 했지만, 숱한 콘서트를 해본 이해진 앞에서 이걸 콘서트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좋더라고요. 완벽한 콘서트는 아니었고, 직접적인 소통은 아니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천성이 가수네. 그냥.”
그의 말에 하동준이 옆에서 등을 두들기며 거들었고, 이해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다.
김세준은 무대 체질이라고.
“좋네. 그러면 다음 달에 콘서트도 잘할 수 있겠어.”
이해진의 중얼거림.
그 중얼거림을 들은 김세준이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콘서트요?”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그.
“응. 우리 다음 달에 콘서트 있다. 미튜브에서 한 방구석 콘서트 말고."
이해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