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28화 (28/148)

#28

미튜브

강수지가 쓴 기사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다음날이 되자 강수지는 말한 것처럼 기사를 뿌렸고, 그녀의 기사는 뿌리 내린 씨앗처럼 단숨에 퍼져나갔다.

[유명 남자 가수, 마약 복용에 마약 유통까지?]

[국민 가수, 대기업 임원과 불법 스폰 저질렀다.]

[A씨. 현재 연락 두절, 소속사가 정황 파악중.]

그녀의 기사 이후로 우후죽순 생기는 기사.

기사뿐만 아니라 대형 커뮤니티까지 퍼졌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던 이해진이 짧게 혀를 찼다.

“이거... 임태현 맞지?”

그의 물음에 옆에 있던 하동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확실해. 애초에 스타인 내부에선 스폰설은 어느정도 돌던 이야기인가 봐. 마약은 모른 거 같지만. 박영호 사장도 스폰 때문에 임태현을 컨트롤하기 힘들어했다는 소문이 있어.”

“쯧쯧. 사장이 가수한테 휘둘려서야. 그걸 왜 두고 보고 있던 거야?”

“눈치챈 게 늦었겠지. 자신이 더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스타인도 끝났네. 이건 회생 불가야.”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이해진이었고, 하동준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과 스폰.

둘 중 하나만 터지더라도 연예인에게 치명적인 사건이다.

스타인 엔터테인먼트가 제법 거대한 회사이긴 해도, 감당할 수 없으리라.

임태현은 더 이상 얼굴을 떳떳하게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고, 나아가 그의 소속사인 스타인 엔터테인먼트도 몰락의 길을 걸어갈 게 확실했다.

“스타인의 누구 있더라? 한 번 접촉해볼까?”

하동준이 입맛을 다시며 눈을 빛냈고, 이해진도 괜찮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괜찮네. 한 번 리스트 뽑아보자. 스타인이면 그래도 그냥 버리긴 아까운 얘들이 많지.”

“응. 위약금이랑 해서 계산기 한 번 두들겨 봐야겠네.”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누군가 사무실의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이해진의 말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김세준이었다.

“세준이?”

의외에 인물이라 여겼는지 이해진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요즘 바쁘게 활동 중인 그다.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게 시국이 시국인지라 영 꺼름칙했다.

“그냥 나가는 길에 잠깐 들렸습니다.”

김세준이 이해진의 표정을 보곤 피식 웃었다.

임태현 때문에 뒤숭숭한 분위기.

혹여 자신이 무언가 고백이라도 하는 건가 싶어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아니지?”

“그럼요. 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세준의 확고한 말.

하동준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어. 인터넷 봤지? 임태현.”

“네. 봤습니다.”

“그래. 여기 언제 훅 갈지 모르는 곳이야. 너도 항상 조심해야 해.”

“명심할게요.”

그의 대답에 하동준이 어깨를 두들기며 그를 격려했다.

“그래. 지금 잘하고 있어. 인터넷에 검색해봤는데 넌 미담밖에 없더라. 그 얼마 전 술집. 그거 사람들이 되게 좋게 보더라고.”

“아, 그거요?”

김세준이 한 인터넷 글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며칠 전, 이주성과 단둘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가린다고 가렸지만, 그날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사인과 사진을 요구하는 팬들.

취기가 오른 그들의 뜬금없는 요구에 기분 나쁠 만도 하지만 김세준은 그런 기색 없이 일일이 모든 이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었다.

순식간에 싸인회 현장으로 바뀐 술집.

덕분에 김세준과 이주성의 안주는 차게 식어버렸지만, 김세준은 기뻤다.

팬. 자신의 존재의의였으니까.

그의 행동은 인터넷 커뮤티니에도 순식간에 인기 글로 자리 잡았다.

당시 술집에 있던 사람들의 목격담.

댓글도 그를 칭찬하는 말뿐이었다.

‘급하게 나오신 거 같은데, 사진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많았지.’

속이 쓰다.

나름 신경 많이 쓴 거였는데.

‘뭐 어쩔 수 없지.’

그 사건으로 민심이 매우 좋아지긴 했다.

“그래. 임태현 저 꼴 나면서, 네가 반사이익도 좀 보게 될 거야. 앞으로 처신 좀만 더 신경 쓰고.”

음원 차트 1위와 2위를 차지하던 둘.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생성되었다.

임태현의 압도적인 인지도에 말도 안 된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지만.

임태현은 몰락했고, 그의 선행은 널리 알려지는 중이다.

여기서 그가 잘만 처신한다면, 남자 가수로서 공공연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해진의 진심 어린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꺼냈다.

“사장님.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뭔데? 말해 봐.”

“혹시 저 미튜브 개설해도 될까요?”

“미튜브?”

의외에 말인지 이해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튜브가 이미 어느 정도 대중화된 시기.

아레스 뮤직도 회사 차원으로 개설한 미튜브 채널이 있다.

10만이 넘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우리 회사 미튜브도 있잖아?”

“저... 회사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한번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팬서비스 차원에서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팬서비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하동준이 끼어들었다.

“그 얼마 전 루즈비아 곡 너만 보여 제가 가야금으로 편곡한 거 방송 나갔잖아요. 그게 평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다른 가수들 곡도 편곡해서 올리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맞다! 그거 평이 좋긴 했어. 회사에 음반까지 내달라는 전화도 왔더라.”

하동준이 손뼉을 치며 옆에서 그의 말에 동조했다.

“흐음. 그런 목적이면 상관없지. 근데 그거 저작권은 괜찮은 거야?”

이해진이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고, 김세준도 확신은 못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미튜브가 저작권은 예민하게 다룬다고 하니까. 큰 문제는 안 생길 거 같습니다.”

“그래? 한 번 해봐. 개인적으로 나도 궁금하긴 하다.”

세간에 이미 발표된 수많은 명곡.

그 곡들이 김세준의 입맛대로 바뀐다면 어떤 느낌일까.

김세준의 사장이자, 선배이지만.

한 사람의 팬이기도 했다.

큰 기대가 서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김세준은 이해진과의 상담 이후 재빨리 미튜브를 개설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그가 좋아하는 속담이었다.

미튜브를 개설하긴 했지만, 동영상에 있는 건 단란한 소개 영상 하나였다.

앞으로 미튜브로 팬분들이 원하시는 곡을 커버 영상 찍을 거라는 단란한 소개 영상.

별거 없는 영상이었고, 김세준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고작 소개 영상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끈다고.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올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 김세준은 자신의 채널을 보며 넋을 잃었다.

“이게 뭐야...”

놀란 입에서 터져 나온 감탄.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실에 두 눈을 껌뻑거렸다.

소개 영상 밑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

소개 영상 하나만 올렸음에도 구독자 수만 명이다.

다시 한번 껌뻑.

“도대체 왜...?”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도 올라와 있는 자신의 영상.

상상도 할 수 없던 결과였다.

놀란 속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댓글을 살폈다.

[진짜 팬이에요!!! 미튜브 개설 실화에요??!!!! 저는 큐트걸의 소원을 오빠가 편곡한 버전으로 듣고 싶어요!! 꼭!! 제발류!!ㅠㅠㅠ]

제일 위에 보이는 댓글.

‘좋아요’와 ‘대댓글’이 제일 많이 달린 글이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다른 댓글들.

위에 있는 댓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팬이라고 칭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커버 곡들을 말하고 있다.

아이돌의 노래, 발라드, 댄스곡도 있다.

심지어 힙합과 해외 팝송까지.

가지각색인 그들의 요구사항.

“이렇게나 많았어?”

일일이 댓글을 확인한 김세준이 맥빠진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하는 자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최애곡과 가야금의 조화.

어떤 시너지가 날지 궁금해하는 자들이 많았다.

“무슨 느낌인지 알지...”

김세준이 중얼거리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저들이 어떤 심정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자신의 최애곡.

그 곡들을 직접 편곡하여 방구석에 연주하던 그가 아닌가.

아마 저들도 자신과 같은 심리겠지.

가야금이란 악기가 자신들의 최애곡을 어떻게 바꿀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 거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지...”

김세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수 천개의 댓글들.

자신의 팬이라고 말해는 댓글도 부지기수다.

“내가 생각 이상으로 컸어.”

주변에 워낙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아는 톱스타의 대열에 천천히 들어가는 중이었다.

***

미튜브의 어마어마한 인기.

팬들한테 이만한 성원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뭐라도 보답을 해야 했다.

“뭐가 좋을까...”

김세준의 두 눈에 고뇌가 깊어졌다.

원래 예상은 어떤 아이돌의 곡을 편곡해서 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에 커다란 인기.

원래의 계획대로 하기엔 아쉽다.

팬들의 성원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흐음... 생각을 해 보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뭘까?”

아이돌 덕질만 수십 년.

그동안 그가 가장 감명 깊었던 순간과 가장 감동 받았던 때를 떠올린다.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많은 순간.

그런 기억 속에서 그가 가장 좋았던 몇몇 순간들.

“역시 그때가 가장 좋았지.”

새로운 신곡 발표도, 오랜만에 컴백도, 음원 차트 1등도 다 좋았지만.

가장 깊은 감동을 느꼈던 순간은.

그들의 공연.

그들의 공연을 눈앞에서 볼 때의 감정이란.

그것도 콘서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콘서트라... 콘서트 좋지...”

작게 중얼거리는 그.

두 눈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

박유진은 자신의 단 댓글을 보며 조마조마한 심정을 가졌다.

김세준에 유튜브에 단 댓글.

고맙게도 제일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즉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

“제발...”

자신이 추천한 곡.

그 곡이 가야금으로 연주되면 어떨까.

절로 생기는 기대감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응?”

그때 그녀의 핸드폰에 뜬 알람.

알람 설정까지 해놓은 김세준의 미튜브 알람이었다.

“응?? 설마?”

기대감 어린 눈으로 재빨리 알람을 누르고 미튜브에 접속했다.

“...!”

박유진이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영상 속에선 김세준이 나와 짧은 말을 내뱉었다.

[구독자 여러분! 많은 관심과 사랑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에 성원에 어떻게 보답을 할까 고민하다 방구석 콘서트를 열고자 합니다. 3일 후 오후 5시. 미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대박....”

입을 틀어막았음에도 절로 나오는 감탄.

기껏해야 한 곡 정도 부를 거라 예상했는데.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김세준의 이벤트였다.

***

3일 후.

김세준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진 채 회사 연습실에서 5시를 기다렸다.

“얼마나 많이 들어올까?”

미리 알리긴 했지만, 막상 몇몇이나 라이브 방송을 보러올지는 미지수인 상황.

“후우...”

5시가 딱 되자 깊은 한숨과 함께 김세준이 방송을 켰다.

“안녕하세요! 김세준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양한 말을 내뱉으며 김세준을 반기는 시청자들.

방송을 키자마자 8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송에 들어왔다.

오후 5시인 걸 생각해보면 꽤 많은 숫자.

김세준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채팅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 소개 영상을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이런 콘텐츠를 한 번 기획해봤어요. 다들 괜찮으시죠?”

김세준의 물음에 순식간에 박수 이모티콘으로 도배되는 채팅창.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좋아해 주시니 좋네요. 그럼 먼저 심청가로 콘서트 시작하겠습니다.”

김세준이 말과 함께 가야금으로 다가갔다.

MR도, AR도 없는 생 라이브 연주.

악기도 오로지 가야금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연주를 시작한 김세준.

그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텅 빈 연습실.

가야금의 선율로 연습실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고, 김세준의 목소리가 선율과 합쳐졌다.

홀로 방송한다는 민망함도 잠시, 김세준이 노래에 홀딱 빠져들었고.

그건 김세준의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쳤다 진짜...”

김세준이 방송을 키자마자 접속한 박수진.

그녀가 홀린 눈빛으로 방송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야금 하나로 연주하는 그의 노래.

‘심청가’는 이미 수십 번 들었던 곡.

강유나도 없고, 다른 세션도 없다.

“근데 왜 노래가 더 좋은 거 같지...”

가야금과 김세준의 목소리만 있는 노래.

덕분에 가야금 연주와 김세준의 목소리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선율의 가야금.

탁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김세준의 목소리.

두 음색의 조화가 박수진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귀를 부드럽게 자극했다.

회사에 남아 듣던 직장인도, 학교 아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드는 학생도, 집에서 보던 가정주부까지.

모두가 김세준의 연주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4분이라는 짧은 시간.

노래가 끝나자, 김세준이 다시 핸드폰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으셨나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

채팅창이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김세준의 이름은 연호하는 시청자들.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김세준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비록 눈앞에서 보진 못하지만, 핸드폰 너머로도 그들의 감동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볼까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하는 김세준.

박수진이 영상을 보다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들의 최애곡이, 가야금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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