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27화 (27/148)

#27

몰락

이주성의 대답에 임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이런 대접을 받은 게 얼마 만일까.

이주성을 향해 임태현이 눈을 부라렸다.

“지금 뭐라고...”

고함을 내지르려던 임태현이 움찔했다.

이글거리는 이주성의 눈빛.

진심으로 자신을 찢어 죽일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사람 얼굴이...’

위압적인 그의 모습에 임태현이 주춤거렸다.

그런 임태현을 보며 이주성이 한숨을 내뱉었다.

“가세요. 이제 슬슬 형님 내려올 시간이니까. 형님 앞에서도... 그런 추태 부리면 진짜 못 참을 거 같으니까.”

서슬 퍼런 그의 협박에 임태현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제기랄!’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주성의 반응이었다.

***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김세준의 차량.

평소에도 엄청 활발한 느낌은 아니었다.

이주성이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고, 김세준도 조잘거리는 걸 좋아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삭막했다.

이주성의 불편한 표정.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무슨 일 있었나?’

김세준이 이주성을 힐끔 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성아. 무슨 일 있어?”

“예? 아...”

이주성이 화들짝 놀라며 뒷말을 흐렸다.

‘말해야겠지.’

처음엔 사장님한테 말씀드릴까 싶었다.

하지만 김세준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태현이 그의 약점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저... 형님. 사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뭔데?”

김세준이 운전석으로 몸을 가까이 내밀었다.

“사실... 아까 임태현이 찾아왔습니다.”

“임태현? 걔가 왜?”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추고, 이주성이 고개를 돌려 김세준을 바라봤다.

“찾아와서, 저한테 자신의 매니저를 하라고 했습니다.”

“...?? 응?”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갑자기 자신의 매니저를 스카웃 하려고 하다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이해진의 행동이었지만, 이주성의 뒷말을 듣곤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면서 형님의 약점을 요구했습니다. 약점을 가지고 오면 돈을 더 주겠다고...”

‘얼씨구...’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는 짓이 뭐 이리 치졸해?

“근데... 네가 이 말을 나한테 한다는 건 당연히 거절했단 뜻이겠지?”

김세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물었고, 이주성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어떻게 형님을 배신합니까.”

굳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

김세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역시 진국이야.’

그의 의리.

반할 지경이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당연히 말씀드려야 할 일이죠. 사장님한텐 제가 따로...”

“응? 아니야. 사장님한테까지 말 안 해도 돼.”

“예? 하지만...”

이주성의 말을 끊으며 김세준이 손을 저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알겠습니다.”

이주성이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알아서 잘 해결하시겠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자신이 더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차량이 출발하고, 슬쩍 룸미러로 김세준의 표정을 봤다.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대고 있는 그.

잔잔한 미소가 깊게 배어있었다.

***

김세준이 라디오를 음악 방송 1위를 한 날 늦은 밤.

강수지는 회사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진짜 이 빌어먹을 회사... 언젠간 퇴사하고 만다.”

텅빈 사무실에서 홀로 일하는 그녀.

그래도 이번 기사만 잘 마무리하면 괜찮은 실적이 나오리라.

쉼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며 열중하던 그때.

그녀의 컴퓨터 구석에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응?”

강수지가 마우스로 메시지를 클릭했다.

김세준이 보낸 메시지.

[저번 부탁을 들어주신 보답입니다.]

그리고 그가 보낸 한 문서 파일.

“...!”

강수지의 눈이 크게 떠지며 경악에 물들었다.

임태현과 관련된 이야기다.

정확히는 임태현의 범죄에 관련된 찌라시.

마약부터 시작해, 마약 유통, 대기업 여성 임원들과의 스캔들.

“이게 뭐야,,,?”

보고도 믿기지 않는 글자에 강수지가 두 눈을 비볐다.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파고들면 증거는 금방 발견하실 겁니다.]

뒤이어 날라온 김세준의 메시지.

‘그러고 보니 옛날에 그런 찌라시가 돌긴 했지... 임태현 스폰 설....’

경악에 물들었던 강수지의 눈.

그 눈에 점점 진한 욕망이 피어나오기 시작했다.

매우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발견한 포식자의 눈빛처럼.

***

[고마워요. 이 카톡은 나갈게요. 혹시 모르니까.]

몇 시간 후 온, 강수지의 답장에 김세준이 찬 바람을 맞으며 피식 웃었다.

“물 줄 알았지.”

강수지라면 덥석 물을 줄 알았다.

기자로서 욕망도 있고, 실력도 있다.

이 정도만 던져줘도 그녀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게 분명했다.

‘임태현...’

임태현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동정을 표했다.

그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

***

‘심청가’는 음원 차트에서 굳건히 1위를 지켰고, 김세준을 찾는 방송 PD들도 덩달아 많아졌다.

평소 아레스 뮤직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방송을 강요하는 편은 아니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원하는 방송을 할 수 있게 인도해주는 역할.

즉, 김세준은 자신을 향한 수많은 러브콜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고른 건.

당연하게도 아이돌들이 같이 게스트로 나오는 케이블 방송이었다.

“자, 오늘 특별 게스트인 김세준씨가 특별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죠?”

방송이 한창 진행되어가던 도중, 제법 덩치가 있는 개그맨 출신의 MC가 작가의 신호를 받고 운을 띠었다.

“그렇죠. 바로 오늘 게스트인 루즈비아분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데요. 세준씨! 어떤 선물인지 알 수 있어요?”

남성 MC의 말을 이어 아이돌인 여자 MC가 김세준에게 물었다.

“아, 다른 건 아니고. 제가 가야금을 뜯잖아요? 그 루즈비아 분들의 히트곡인 ‘너만 보여’를 가야금으로 한번 연주해 드릴려고요.”

“우와!”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4인조 걸 그룹인 루즈비아가 방방 뛰며 좋아라했다.

반면에 같이 나온 보이 그룹인 타이탄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형! 저희 노래는요?”

타이탄의 멤버 중 한 명이 김세준을 향해 끼를 부렸다.

넉살 좋고, 곰살맞은 그의 행동.

하지만 김세준은 티 나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는 관심 없다. 이놈아.’

“아, 오늘은 루즈비아 분들 노래만 준비를 해서. 다음에 해드릴게요.”

적당히 둘러대고, 진작에 조율된 가야금을 들고 온다.

“우와. 루즈비아 분들. 오늘 횡재했네요.”

“그러니까요! 너무 기대되는데요?”

MC들이 바람잡이를 하며 분위기를 띠었고, 루즈비아도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타이탄도 아쉬움과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고.

김세준이 가야금을 뜯었다.

“우와...”

제법 빠른 비트인 루즈비아의 ‘너만 보여’.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현란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

그리고 그의 손짓에 맞춰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를 내뿜는 가야금.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탄성을 내뱉었다.

‘너무 좋은데?’

루즈비아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원곡보다 좋은 거 같아...’

그녀들의 감탄.

그녀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텝들까지도 넋을 잃고 그를 바라봤다.

김세준의 연주.

소문으론 익히 들었다.

김세준의 노래와 연주는 음원이 아니라 라이브로 봐야 한다고.

‘소문이 진짜였네...’

과장된 소문이라고 생각했던 한 스텝.

그 스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재빨리 시선을 김세준에게 돌렸다.

놓치기 1초가 아까운 황홀한 연주였다.

***

무더웠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제법 선선한 10월 중순이 됐음에도 ‘심청가’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1위라는 위치를 계속 유지하는 그들의 노래.

그 덕분일까?

인터넷에선 김세준에 대한 평가가 날이 갈수록 고공행진이었다.

-김세준 진짜 대박...

-솔직히 이번 노래 살린 건 강유나보다 김세준이 컸음.

-나도 인정. 진짜 전국에 계신 아버님들 김세준 목소리 듣고 엄청 우셨대잖아ㅋㅋㅋ

-20대에 40대 아버지 감정을 노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진짜 오랜만에 굵직한 가수가 나온 듯.

-그러게. 임태현과 김세준. 20대 남자 가수 포텐 터지는 듯.

-오빠 나죽어...

음원 차트 1등과 2등을 양분하는 김세준과 임태현.

20대의 남성이라는 동일점 때문일까?

둘을 비교하는 인터넷 여론이 많았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그래도 아직 임태현보단 아니지.

-고작 1년 차 신인이랑 임태현이랑 비슷하다고?

-나도 그건 아니라고 봄.

아직 임태현의 입지가 더 높긴 했지만.

“크크크. 내 동생 진짜 연예인 다됐네.”

그런 인터넷 여론을 보던 덩치 큰 남성이 놀리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앞에서 모자를 쓴 채 술잔을 기울이던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럼. 음원 차트 1위를 찍은 사람이야. 내가.”

김세준의 너스레에 김세훈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이 술집. 여기서 했던 말 기억나?”

“응? 무슨 말?”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김세훈이 검지로 스피커를 가리켰다.

“저거. 저기서 네 노래가 나오면 되게 신기할 거 같다고 말했던 거 말이야.”

“아... 맞아. 형이 그런 말 했었지.”

“지금 나오고 있네.”

가야금 소리와 함께 김세준의 목소리가 울리자 김세훈이 웃었다.

자신의 사촌 동생.

설마하니 진짜 가수가 될 줄이야.

오픈 마이크에서 명함을 받았다고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대한민국에 톱 가수하고도 이름을 비비는 날이 왔다.

지금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실내에서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평소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그지만.

묘한 괴리감과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형. 이것 봐라.”

그때 그에게 김세준이 핸드폰을 내밀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ㄷ.... 어어!!”

호기심에 가득 찼던 그의 눈이 단숨에 시샘과 질투로 바뀌었다.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뺐어 들고,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 소꿉친구!! 네가 어떻게!”

5명에 미녀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헤벌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김세준의 사진.

김세훈이 경악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번에 같이 사진 찍었다. 형이 소꿉친구 팬이였지?”

반달처럼 휘어진 눈.

김세훈을 놀리는 김세준의 표정이 사뭇 즐거워 보였다.

“와아... 진짜 부럽다. 정말 진심으로...”

그런 사촌 동생의 핸드폰을 김세훈이 한참을 들여다보곤, 다시 돌려줬다.

“다음에 만나면 사인 한 장만 받아줘...”

김세훈이 침울한 목소리로 내뱉었고, 핸드폰을 돌려 받은 김세준은 답이 없었다.

김세훈의 말에도 답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그런 그를 보며 김세훈이 다시 불렀다.

“야. 뭐해? 사인 받아 주기 싫다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받아 줄게. 근데 형. 형이 스타인 엔터테인먼트 주식 가지고 있다 했지?”

“응. 그 임태현 있는 곳.”

“얼마나 가지고 있는데?”

“며칠 전에 대부분 팔았어. 근데 왜?”

그의 물음에 김세준이 피식 웃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잘했네.’

하마터면 고점에서 제대로 물릴 뻔했겠네.

그것도 영영 오지 않을 구조대를 기다리면서.

김세준의 핸드폰으로 온 하나의 메시지.

[보내주신 임태현 찌라시. 증거 다 찾았어요. 내일 아침 되자마자 바로 기사 뿌릴 거에요. 고마워요.]

‘역시 잘 해낼 줄 알았지.’

빌어먹게도 잘생기던 임태현의 얼굴.

그 얼굴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중얼거렸다.

이젠 그 얼굴, 평생 볼 일이 없으리라.

“형. 한잔할까?”

김세준이 김세훈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털어 넘긴 술.

“크으으. 달다. 달아.”

앓던 이가 빠진 속 시원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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