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위
김세준은 가수가 된 이후로 한가지 습관이 생겼다.
그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뮤직인’을 들어가 자신의 곡 순위를 확인해보는 것.
‘연꽃’을 발매한 이후로 생긴 이 습관은 ‘심청가’를 발매하고도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심청가’를 발매한 지 정확하게 열흘이 지난 오늘.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김세준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하아암... 어?”
졸음으로 가득했던 그의 두 눈에 단숨에 생기가 깃들었다.
“진...진짜야?”
믿기지 않는 사실에 침대 옆에 있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미지근하지만, 목을 적시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다시... 다시...”
떨리는 눈으로 다시 확인한 차트.
“아자아!!!!!!!”
김세준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른 새벽부터 활기찬 고함을 질렀다.
1위. 강유나&김세준- 심청가.
그가 염원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
'심청가'가 1위를 한 다음날 저녁.
강남에 한 파티룸에 김세준과 그의 지인들이 모였다.
“축하해! 세준아!”
이진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얼굴에 케이크를 묻혔다.
“악! 누나!”
목소리가 올라갔지만, 김세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우리 복덩이! 사랑스러운 복덩이!”
이해진이 취기가 오른 듯 붉어진 얼굴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동준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준아! 재계약은 언제 할까?”
“언제든지요!”
호기롭게 외친 김세준.
하늘 위를 나는 듯 한 기분이었다.
그의 첫 음원 차트 1위.
그걸 기념하기 위한 파티였고, 파티룸을 빌렸다.
소소한 파티였지만 충분했다.
이해진과 하동준이 대규모로 벌이겠다는 파티를 그가 극구만류하곤, 파티룸을 빌렸다.
자신의 방에선 파티는 무리였으니까.
‘슬슬 이사도 생각해봐야겠네.’
그동안 바삐 살아 이사 갈 준비도 못했다.
슬슬 정든 자취방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할 터.
“형님! 축하드립니다.”
이주성이 샴페인이 담긴 잔을 내밀었고, 김세준도 자신의 잔을 기꺼이 부딪쳤다.
“고맙다. 주성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별말씀을요.”
멋쩍은 듯 웃는 그였고, 이내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기분 좋네.’
적당한 취기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하지만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야?...’
음원 차트 1위.
평생을 염원하던 목표이자 꿈.
비록 혼자서 이룬 건 아니지만 그 목표를 이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유나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이진아가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 강유나.
“그러게요. 오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없는 게 내심 아쉽다.
다른 소속사이긴 하나, 이진아는 물론, 이해진과도 친분이 있는 그녀다.
이 자리에 함께한다고 어색하진 않으리라.
스케줄이 있어 못 오는 게 아쉬울 뿐.
김세준이 고개를 돌려 이주성을 바라봤다.
기분 좋은지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예은이도 부를 걸 그랬나?’
연습생 신분으로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있는 그녀.
연습생이지만, 못 올 곳은 아니었다.
이주성도 있고, 자신도 있고 이해진과 하동준도 그녀를 이뻐라했으니까.
하지만 연습생을 부르기엔 뭔가 어색한 자리였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테고.
“사장님. 예은이는 요즘 어때요?”
김세준의 말에 이주성이 순간 움찔했다.
“응? 아. 예은이 걔 장난 아니다.”
이해진이 생각만 해도 좋은지 살짝 미소지었다.
“재능도 있는데, 노력이 장난 아니야. 무섭게 빨아들이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 네 앨범에서 피쳐링도 무리 없어. 주성이가 동생 하나는 기가 막히게 뒀지.”
“아닙니다.”
이해진의 칭찬에 이주성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부끄러운 듯 보였지만 입꼬리가 귓가에 걸려있었다.
하나뿐인 가족.
그 가족을 칭찬하니 기분이 안 좋을 수 없겠지.
김세준도 이해진의 말에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발전.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다.
애초에 강유나 정도의 포텐이 있는 그녀니까.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음원 차트 1위도 달성했고, 다음 앨범도 이미 머릿속으론 구성이 끝났다.
이젠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갈 일만 남았다.
기쁨에 젖어있던 그를 깨운 건, 부르르 떨린 핸드폰이었다.
액정을 보니 강수지에게 온 문자였다.
[세준씨. 부탁한 거 알아냈어요. 동이 신문 기자가 세준씨를 집중적으로 파고 있더군요. 정확히는 임태현이 동이 신문 임원한테 부탁한 일인가 봐요.]
“응?”
임태현이란 이름이 나오자,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자신을 조사했다고?
[임태현이요? 임태현이 왜 저를?]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어요.]
강수지의 말에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고는 김세준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뛰어난 기자였네.”
비록 임태현의 의도까진 몰랐지만, 이 정도로 명확하게 밝혀낼 줄이야.
강수지의 실력. 자신의 기대 이상이었다.
‘임태현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걸까?’
이상하게 자신에게 적의를 표하던 그.
적의를 넘어서 이제 자신의 뒷조사까지 하는 그였다.
찜찜함을 넘어서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김세준은 피식 웃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비루한 범죄자였다.
***
음원 차트 1위를 달성한 강유나와 김세준.
한 번 올라간 위치는 쉽게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성적은 1등을 차지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들이 다시 한번 음악 방송을 하는 날.
하지만 저번과는 다른 긴장감이 김세준을 감돌았다.
1위 후보.
자신들의 곡이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올랐으니까.
음원 차트 1위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우리가 되겠지?”
“당연하죠. 무조건 우리에요. 게다가 임태현은 오늘 오지도 않았던데요?”
모든 무대를 끝내고 엔딩을 기다리면서 김세준이 물었고, 강유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자! 지금 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스텝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가수들이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 위에선 MC들이 마무리 멘트를 하고 있었다.
“자! 문자 투표 종료! 오늘의 1위 후보는 강유나와 김세준의 심청가. 그리고 임태현과 루나의 노래인 너의 모든 것. 이례적으로 두 곡 다 듀엣인데요.”
남자 MC의 말을 여자 MC가 이었다.
“그렇죠! 1위 후보를 듀엣곡이 다 차지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죠? 과연 누가 이 주의 1위를 했을지! 지금 확인하시죠!”
카메라를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 MC가 말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예상은 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났고.
김세준과 강유나의 머리 위에서 꽃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축하합니다! 이번 주 1등은 김세준과 강유나의 심청가입니다! 우리나라 고전인 심청가를 가요로 편곡한 아주 특색 있는 곡이었는데요. 아버지와 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죠!”
“그렇죠! 세준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다른 가수들이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고, MC가 마이크와 트로피를 건넸다.
‘와우...’
손에 들린 트로피.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왔다.
비록 시상식도 아닌, 음악 방송 주간 1등 트로피였지만, 그가 난생처음 받아보는 가요 트로피였다.
고양된 감정이 그를 휘감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김세준이 흥분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먼저 저희 노래를 사랑해주신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노래를 만들어간 스텝 분들. 그리고 저한테 듀엣을 제안한 유나한테도 진심으로 감사하고요. 날이 쌀쌀해지는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황한 수상소감.
수십 번도 넘게 연습했던 대사다.
김세준의 소감이 끝나자, MC들이 마무리 멘트를 내뱉었고, 그렇게 방송이 끝났다.
“오빠. 잘하네요? 난 처음에 그냥 어버버 거렸는데.”
강유나가 김세준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일주일 걸렸어. 멘트 외우는데.”
김세준의 넉살에 강유나가 그의 어깨를 툭쳤다.
“잘했어요. 다음에도 그렇게 준비해와요.”
“당연하지.”
“알겠어요. 오빠 전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그럼 먼저 가볼게요.”
“그래. 다음에 봐.”
강유나가 초조한 눈빛을 보내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다가갔고, 김세준도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주성.
김세준이 들어오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고마워. 오늘 또 뭐 있나?”
“라디오 하나 있어요.”
“그래? 바로 가자. 아, 먼저 내려가 있을래? 난 화장실 좀 들렸다 갈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가서 준비해 놓을게요.”
***
이주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김세준의 고공행진.
자신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견디기 힘들었던 세상의 풍파.
더럽고, 역했다.
치열하단 말로 포장하기엔 너무 어두운 기억.
그런 와중에 만난 김세준.
따뜻하고 넓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생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그.
진심으로 감사할 마음뿐이었다.
“응?”
생각과 함께 걸어가던 이주성이 의아한 기색을 눈빛을 보냈다.
자신이 주차한 구역 벽면.
그곳에서 한 남자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임태현?”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남자였다.
대한민국 톱가수 임태현.
그런 자가 갑자기 으슥한 주차장에서 나타난다니?
게다가 오늘 그는 1위 후보임에도 방송에도 안 나타나지 않았나.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등장에 이주성의 눈빛에 경계심이 서렸다.
“당신 이주성 맞죠? 김세준 매니저인.”
임태현이 다가와 묻자, 이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이주성의 대답에 임태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집안이 좀 힘든 거 같던데... 제가 도움 좀 드리고 싶어서요.”
“...”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일까.
이주성은 답하지 않았고, 임태현은 그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김세준. 그 새끼 버리고 저한테 오는 거 어때요? 페이는 적어도 세 배는 챙겨줄게요. 물론 더 줄 수도 있고.”
“...”
이주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임태현의 눈빛.
구토가 치밀어오를 정도로 추악했다.
순수하고 맑은 눈빛인 김세준과는 전혀 상반되는 그의 눈빛.
“대신, 조건이 있죠. 김세준 그 새끼의 약점. 약점 하나만 들고 오면 돼요. 그러기만 한다면 천 단위는 약속하죠.”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임태현.
더 듣다간 귀가 썩어 녹아내릴 거 같았다.
“그만.”
묵묵히 듣고 있던 이주성의 입이 열렸다.
임태현이 순간 움찔했으나 다시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너무 적어요? 그럼 최소 5장은 챙겨줄게요.”
“하아...”
그의 말에 이주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을 고민의 흔적이라 여겼는지 임태현이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이런 기회 흔하지 않아요.”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썩은 내가 진동한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저 얼굴.
도저히 못 참겠다.
“저기요.”
이주성이 자신의 주먹을 꽉 말아쥐었고.
이글거리는 눈빛과 함께 낮게 으르렁거렸다.
“닥쳐요.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