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24화 (24/148)

#24

도발

김세준과 강유나의 녹음은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김세준은 물론 강유나 그리고 둘의 듀엣까지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숨에 다이렉트로 녹음을 마무리한 김세준.

그리고 새파란 신인에게 질 수 없다며 강유나도 작심하며 달려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녹음도 마무리되자, 키엔 엔터테인먼트에선 보도 자료를 대대적으로 풀었다.

[음원 여신 강유나, 9월에 1년 공백 깨고 복귀!]

[강유나와 김세준의 듀엣. 기대되는 조합]

[강유나와 듀엣 발표하는 김세준은 누구?]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역시 유나가 메인이네.”

키엔 엔터테인먼트에서 뿌린 자료다.

그녀가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강유나와 김세준.

누구의 이름이 대중에 이목을 끄는지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뭐 이름이라도 들어간 게 어디야.”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게다가 그녀의 이름에 편승해서 일까?

자신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도 종종 보였다.

“근데 이건 뭐야?”

흐뭇한 얼굴로 기사를 훑던 그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범람하는 기사 속에서 언짢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의 워너비! 임태현, 루나와 9월 듀엣 발표!]

[2년 만에 가수로 복귀하는 임태현. 대중들의 무수한 관심 속 음반 공식 발표!]

임태현.

한땐 정말 사랑하던 가수지만, 이제는 절대 좋아할 수 없는 가수.

“근데 9월에 활동한다고? 그것도 듀엣으로?”

공교롭게도 자신들과 시기가 겹친다.

그것도 자신들과 같은 듀엣으로.

“이거... 노린 건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기엔 너무 교묘하다.

“흐음...”

김세준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신음을 내뱉었다.

임태현.

훗날 대차게 몰락하는 그지만, 지금 당장으로선 대한민국 탑스타라고 말해도 무방한 인물이다.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에서도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는 그다.

강유나와 똑같이 음원 차트 1위는 당연히 차지하는 가수.

“이거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겠구만.”

강유나와 임태현의 활동.

다른 가수들의 아우성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래도 컨셉까지 겹치진 않겠지.”

김세준이 자신들의 컨셉을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설마 임태현이 심청가를 부를까.

아, 춘향전이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권선징악이란 주제에 딱 어울리는 놈이니까.

***

“유나야. 이거 딱 봐도 저격이지?”

“사장님. 가서 싸우고 와요. 이건 누가 봐도 싸우자는 거 아니에요?”

최태규의 사무실.

모니터링하던 최태규와 강유나도 김세준과 같은 기사를 발견했다.

임태현의 복귀.

알고 있었다.

다만 같은 시기에 활동을 재개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자신들과 똑같이 듀엣으로.

기사를 낸 시기도 모호하다.

자신들이 보도 자료를 뿌리자마자, 얼마 안 돼 쏟아져 나오는 임태현의 복귀 기사.

강유나의 이름값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강유나의 활동 기사가 묻힌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오빠. 이거 진짜 아무 말 안 할거에요? 이거 우리 무시한 처사잖아. 상도덕도 없대요?”

강유나가 인상을 찌푸렸고, 최태규도 신음을 흘렸다.

그가 생각해도 이건 선을 넘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처할 일은 아니다.

“일단 기다려. 내가 한 번 알아볼 테니까.”

“맨날 기다리래...”

강유나가 입을 삐죽 내밀었고, 최태규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차원으로 움직일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괜히 SNS에다가 저격글 같은 거 올리지 말고.”

“내가 애에요? 그런 유치한 짓거리 하게?”

강유나가 눈을 흘기며 최태규를 타박한 뒤,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최태규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온 강유나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유치한 성격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을 향해 선전포고한, 적을 가만두고 볼 성격도 아니다.

“재밌는 짓을 했네요?”

“재밌었나? 재밌으라고 한 건 아닌데.”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비웃음이 가득하고 차갑다.

임태현의 대답에 강유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오빠가 이렇게 유치한 줄은 몰랐네요.”

“유치? 오해 하지마. 나도 몰랐으니까.”

“그걸 믿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남자가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떡해요? 설마 저한테 듀엣 거절당했다고 그러는 거 아니죠?”

명백히 비꼬는 강유나의 말이었으나 임태현은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솔직히 너하고 같이 듀엣하길 원했지. 하지만 뭐 이렇게 된 거 서로 최선을 다해보자고. 그 김세준? 그 사람이 얼마나 잘 할진 모르겠지만.”

‘음? 질투하는 건가?’

김세준을 언급할 때 임태현의 목소리가 거칠다.

자신을 거절하고 김세준과 듀엣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는 듯한 그의 말투에 강유나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지금 질투하는 거에요?”

“...!”

정곡을 찌르는 강유나의 말에 임태현의 숨소리가 순간 거칠어졌다.

“와... 조용한 거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저기요. 세상에서 남자의 질투만큼 추한 게 없대요.”

“...장난도 적당히 하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는 임태현이었고, 강유나는 그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그거 알아요? 질투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 하는 거.”

“...!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할 거면 전화 끊...”

“즐. 내가 먼저 끊을 거다. 멍청아.”

강유나가 그의 말을 가로채며 통화를 종료했고, 임태현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강유나의 마지막 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김세준을 질투하고 있는 자신.

임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8월이 되자 김세준의 활동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진우가 곡의 믹싱과 프로듀싱을 하는 동안, 김세준과 강유나는 섬진강을 찾았다.

이번 곡인 ‘심청가’의 티저 영상을 찍기 위해서.

“오빠. 저 어때요?”

“...”

몸을 한 바퀴 빙그르 돌며 말하는 강유나.

“오빠?”

“어? 아, 잘 어울려. 진짜. 진심으로.”

그런 강유나를 넋 놓고 바라보던 김세준이 강유나의 되물음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미친 거 아니냐...’

지금 강유나는 평소와는 색달랐다.

한국의 미(美).

연분홍의 치마와 꽃이 수놓아진 흰색의 저고리.

그리고 길게 땋은 머리와 연하게 한 화장.

고운 한복을 갖춘 그녀의 모습은 고전 속 묘사하는 미녀 그 자체였다.

흔해 빠진 츄리닝과 생얼이어도 빛이 나던 그녀가, 전통의 미를 잔뜩 살린 한복을 입었고.

김세준은 다짐할 수 있었다.

모든 삶을 통틀어서, 지금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다고.

연예인이라면 숱하게 봐왔을 스텝들도 강유나의 외모에 말을 잃을 정도였으니.

“고마워요. 오빠도 잘 어울려요.”

두루마기를 걸쳐 입은 김세준에게 강유나가 눈을 찡긋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강유나의 애교를 코앞에서 볼 줄이야.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지만, 김세준은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가?? 고마워.”

“헤헤. 뭔가 한복 입으니까 기분이 설레네요.”

“그래?”

한복을 입었다는 사실에 들뜬 강유나.

반면 김세준은 무덤덤했다.

그에게 한복은 일상복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의 아버지인 김창용은 개량 한복을 수십 벌을 갖고 있을 정도.

“촬영 들어갈게요! 먼저 유나씨!”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던 때에, 촬영 감독이 강유나를 불렀다.

한복을 입고 조심스럽게 그녀가 감독에게 다가갔고, 김세준은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잠깐의 이야기 후 시작된 촬영.

방금까지 환한 웃음을 짓던 그녀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거 같은 얼굴.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얼굴이지만, 한편으론 희망이 가득하다.

“못하는 게 없네.”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가수.

브라운관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강유나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상대로도 뒤지지 않던 연기를 숱하게 보여줬던 그녀가, 지금도 그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감독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는 그녀.

마치 진짜 아비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로 작심한 소녀 같다.

“좋습니다! 세준씨. 세준씨도 촬영 들어갈게요!”

강유나를 만족스럽게 찍은 감독이 이내 김세준을 불렀다.

‘질 수 없지.’

이상하게 자신에게 승부욕을 불태우는 강유나였다.

덩달아 자신도 그녀에게 승부욕이 생겼다.

열연을 펼쳤던 강유나.

그런 강유나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김세준이 눈을 감았다.

절망.

단 한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그의 연기.

자식을 잃은 부모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을 위해 자식이 죽는다면?

허망한 그의 얼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와... 이거 티져 대박 나겠다.”

김세준의 연기를 지켜보던 한 스텝의 중얼거림.

그 말에 동의하듯 옆에 있던 여자 스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나는 그렇다 쳐도... 김세준은 뭐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수준급 연기.

촬영 감독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이거 그림 괜찮게 나오겠어.’

***

8월 말이 되자 김세준과 강유나가 촬영한 티저 영상이 세간에 발표됐다.

수준급의 연기가 찍힌 영상미 좋은 영상.

‘심청가’라는 특이한 컨셉의 노래.

그리고 저번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이 더욱더 공격적으로 기사를 뿌리는 키엔 엔터테인먼트.

삼박자가 절로 어우러졌고, 인터넷은 순식간에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마치 강유나가 음반 발표를 했을 때와 비슷한 순간.

다만 저번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강유나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그때 비해 지금은 김세준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와. 심청가라니. 컨셉 미쳤는데?

-이거 분명 김세준 아이디어 일 듯. 가야금 치니까 국악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아이디어 진짜 독특하네.

-들리는 말로는 저번 연꽃 답가도 김세준 아이디어라던데. 센스가 쩌네.

-아이디어 천재... 오빠 나죽어...

“역시 아빠. 선견지명이 기가 막히네요.”

키엔 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 같이 반응을 살피던 강유나가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요즘 김세준을 오빠가 아닌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그녀다.

실제로 40대 후반의 삶을 살았던 김세준.

양심이 콕콕 찔리는 그녀의 말에, 질색팔색했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반응을 즐기는 그녀였다.

덕분에 김세준도 이젠 포기하고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너 그러다 내 숨겨둔 딸한테 고소당한다?”

“헐. 오빠 결혼했어요?”

“아니. 저기 아프리카에 후원하거든. 안젤라라고 걔가 내 딸이야.”

그의 말에 강유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오빠랑 듀엣한 거 진짜 후회 안 해요.”

“와. 방금 뭔가 되게 감동적인데?”

싱긋 웃는 김세준.

그러자 그의 두 눈을 마주 보며 강유나가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

“진심이에요. 오빠랑 듀엣 한 거 후회 안 해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강유나가 진심을 가득 담아 말하자 김세준이 멋쩍어 뒤통수를 긁적였다.

“오빠. 저 이번에 무조건 1등하고 싶어요.”

“너야 당연히 1등...”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던 김세준이 말을 멈췄다.

이번엔 그녀의 이름으로도 1등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임태현이란 거물.

이번 활동 내내 그들을 괴롭힐 이름이다.

게다가 그들은 공교롭게도 음원 발표를 자신들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한다.

즉, 일주일 동안 그들은 1위의 위치를 공공연하게 다져놓을 게 분명했다.

자신들은 그런 그들을 꺾고 1위를 차지해야 하고.

쉽지 않은 일.

“지고 싶지 않아요...”

이를 앙다문 채 말하는 그녀였고, 김세준은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무언가 강박증에 시달리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얘도 부담감이 엄청나겠지.’

1등이 당연시된 위치.

알고 있다. 그런 그녀의 부담감.

자신도 명인이란 무게감을 원 없이 느껴봤으니까.

그나마 자신은 마흔 중반에나 느낀 무게감.

반면 그녀는 고작 이십 대 중반이다.

어린 나이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무게.

강유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김세준이 무심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김세준도 놀랐고, 강유나도 놀랐다.

“...!”

하지만 김세준이 아무렇지 않은 척 곧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

따뜻하고 편안한 그의 말.

강유나의 두 눈이 커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빠. 나 머리 안 감았는데요?”

“...”

그의 말에 김세준이 조심스럽게 손을 떼었다.

“냄새 안 나죠?”

“...”

손을 코로 가져다 대곤 아무 말 없는 김세준.

강유나가 토라진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김세준이 뒤늦게 외쳤다.

“안 나! 냄새 안 났어. 유나야.”

“됐어요. 머리 감으러 갈 거에요...”

서운한 듯 내뱉는 그녀였지만, 얼굴엔 작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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