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불안한 촉
“곡 괜찮네.”
이해진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강유나와 김세준이 함께 작업하며 밤샌 그 날.
둘은 꼬박 24시간을 함께 보내며 곡을 완성 시켰다.
“저도 만족스럽습니다.”
이해진의 말에 김세준도 마주 웃었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김세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신 또한 일을 허투루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강유나는 그보다 더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렇게 독한 사람은 처음 봤어...’
절로 고개를 젓게 만드는 강유나의 집요함.
반나절이면 끝날 작업이 덕분에 두 배가 걸렸다.
“괜찮네. 게다가 작곡가에 이름도 같이 올라간다며?”
“네. 그리고 아마 작사도 같이 작업할 거 같습니다.”
“좋네. 잘했다 세준아.”
저작권.
무시 못 할 수입이다.
게다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름을 한 층 더 높일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김세준에 대한 신뢰가 날로 쌓여가고 있었다.
“혼자서 알아서 척척 해내는 거 보니까, 내가 다 뿌듯하다. 근데...”
김세준을 향한 흐뭇한 미소를 거두고 이해진이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갑자기 딱딱한 얼굴이 된 그를 보며 김세준이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너, 사고 치거나 그런 거 없지?”
“예?”
“아니 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난날에든, 어렸을 때든 혹시 무슨 사고 친 거 있어?”
뜬금없는 말에 장난을 치나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살면서 자신이 깨끗하다고 자부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막말로 어렸을 때, 친구랑 흔한 주먹다짐 안 해본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만한 삶을 살아왔던 것도 아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조심스럽게 되묻는 그에게 이해진이 한숨을 푹 내뱉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야. 없으면 됐어. 요새 들리는 소문이 있어. 누군가 네 뒤를 캐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나는 왜?
“너도 이제 어엿한 가수니까 기자들이 달라붙는 거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파파라치야 뭐 어쩔 수 없고. 너무 심하면 우리가 적절히 대응해줄 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김세준이 이해가 간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예인도 피곤하구나.’
물리적인 접촉이나 피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것도 자신의 허점을 찾으러 다니는 자라면.
“그리고 세준아.”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이해진이 진중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네. 사장님.”
“네가 앞으로 가수로 살면서 많은 유혹이 있을 거야. 돈, 마약, 술, 여자 등등. 조심해. 훅 간다. 이것만큼 진심 어린 조언이 없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하늘 위에 별로 군림하다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유성우를 얼마나 많이 봤던가.
오래전부터 가요계에 몸담았던 이해진이야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연예인들이 훅 가는 경우야 수두룩했지...’
회귀하기 전 기억까지 떠올린다면, 연예인들의 몰락이야 손으로 꼽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유독 뇌리에 깊게 박혀 있는 한 가수.
그 가수의 몰락을 보며 얼마나 마음아파 했던가.
임태현.
그가 좋아하던 싱어송라이터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전락한 인물이었다.
***
이해진의 사무실을 나온 김세준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조사한다는 느낌.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후우...”
긴 한숨과 함께 김세준이 지갑에서 오래된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미디어티스 연예부 기자. 강수지.]
그가 첫 음반을 낼 때, 인터뷰했던 기자.
아직 그녀의 명함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김세준이었다.
‘너무 무례한 건 아닐까?’
그 뒤로 흔한 안부 연락 한번 없던 사이다.
그런 사이에 갑자기 부탁해야 한다는 게 영 떨떠름했다.
“나중에 인터뷰 한 번 더 해주면 되겠지.”
잠깐의 망설임 후, 김세준이 핸드폰을 들어 명함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흔한 컬러링 하나 없는 기본음이 5번 정도 울린 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강수지 기자님?”
“네. 저 맞는데요. 누구시죠?”
“아, 저 김세준입니다. 몇 달 전에 인터뷰했던.”
김세준의 말이 끝나자 핸드폰 너머로 탄성이 울렸다.
“아! 세준씨. 오랜만이네요. 일단 축하드려요. 데뷔 정말 성공적이신 거.”
강수지의 목소리가 올라갔고, 그의 전화를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사합니다. 다짜고짜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요?”
뒷말을 올린 강수지의 목소리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부정적이진 않은 건가.’
“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물론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저희 사이에 무슨. 사례까지. 나중에 인터뷰 한 번만 더 해주시면 돼요. 무슨 부탁인데요?”
쿨내가 진동하는 그녀의 답에 김세준이 혹여 변심할까 재빨리 목적을 꺼냈다.
“제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기자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뒷조사라... 파파라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파파라치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소문이 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강수지의 목소리가 침묵했다.
“... 사실 세준씨가 급부상하다 보니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긴 해요. 근데 뒷조사까지 할 정도는 아니에요. 기분 나쁘실 순 있는데, 솔직히 세준씨가 아직 그 정도 급은 아니거든요.
촌철살인 같은 그녀의 말.
사실이다.
나름 성과를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탑스타의 대열에 올라간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뇨. 사실인데요. 그래서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는 겁니다.”
“흐음... 저도 약간 흥미가 돋긴 하네요. 알겠어요. 한 번 알아볼게요. 대신 활동 시작하면 인터뷰 한 번 더 부탁할게요?”
“그건 약속 할게요.”
강수지의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전화를 끊었고 김세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연예인은 공인.
기사들에게 공인에 흠은 돈다발이나 다름없고, 보물창고를 뒤지듯 과거를 뒤져볼 수 있는 일이니까.
“근데 무언가 찜찜하단 말이지...”
그래서 강수지에게 부탁까지 했다.
혹여 모를 불상사가 일어날까 싶어서.
과민대응일 수도 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그가 좋아하는 옛 격언 중 하나였다.
***
“주성아.”
“예. 형님.”
“혹시 근래에 수상한 사람 뭐 없었지?”
“예?”
키엔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운전 중이던 이주성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 그냥 뭐 요새 나에 대해서 묻거나 그런 사람 있었나 싶어서.”
사뭇 진지한 그의 모습에 이주성도 쉽게 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에 빠졌고, 그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제 기억엔 없었습니다. 형님.”
“그래? 알겠어.”
대답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고, 이주성이 주차를 끝내자 김세준이 내리면서 재차 말했다.
“혹시 수상하거나, 뭐 나에 대해 묻는 사람 있으면 잘 기억해둬.”
“네. 알겠습니다!”
확고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주성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예은이 아레스 뮤직에 연습생이 된 뒤로 자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그다.
메주로 콩을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역시 저런 남자가 진국이지.’
든든한 그의 모습에 웃음을 흘리며 김세준이 안으로 향했다.
녹음실로 향해 안으로 들어가자, 강유나가 이미 녹음 중이었다.
부스 안에서 열창을 하는 그녀와 부스 바깥 책상에서 프로듀싱 중인 한 남자.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집중하는 둘이었다.
한참 진행되어 가는 녹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김세준이 구석에 쭈구리고 있던 지가 한참.
강유나가 녹음 부스 바깥으로 나오더니, 김세준을 향해 다가왔다.
“오빠. 왜 그러고 있어요?”
구석에서 구경하는 그가 신기했는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녀였다.
“집중하고 있길래. 흐름 끊기 싫어서.”
“아아... 인사해요. 여기는 우리 회사 프로듀서. 진우 오빠.”
“오진우입니다.”
그녀의 말에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인상 좋은 미소를 지었다.
기껏해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훈훈한 남성.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산뜻함이 가미된 느낌이었다.
“반갑습니다. 김세준입니다.”
“아. 알죠. 진짜 팬이에요. 노래 듣고 진짜 반했습니다.”
그의 기분 좋은 칭찬에 김세준이 슬며시 웃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진우씨 이름 많이 들었어요.”
“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네요.”
빈말이라 생각했는지 웃으며 넘기는 그였지만, 실제로 김세준은 그의 이름을 숱하게 들었다.
천재 프로듀서.
강유나의 노래 대부분의 프로듀싱을 맡으며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또 하나의 주인공.
젊은 나이에 맞지 않게 뛰어난 실력으로 가수라면 누구나 함께하고 싶어하는 프로듀서로 거듭나는 그.
미래엔 방송에도 몇 번 출연하며 훈훈한 얼굴과 매너로 많은 팬을 확보하기도 하는 남자였다.
“일단 제 부분은 잠깐 쉬고 가려 했는데. 그럼 오빠 파트 녹음할래요?”
“그래도 됩니까?”
흐름을 끊은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묻는 김세준에게 오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안그래도 마침 유나가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 거 같았어요. 세준씨만 준비됐으면 바로 녹음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오진우의 말에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야 여기 오는 동안 충분히 풀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
김세준이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마이크에 데고 입을 열었다.
“들리세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김세준을 보며 오진우가 재차 말했다.
“일단, 두 번째 벌스(Verse)부터 녹음 들어갈게요. 딱 5마디만.”
오진우의 말에 김세준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오진우가 녹음된 부분을 틀었다.
단소와 해금과 태평소의 부드러운 선율이 들리자, 김세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빛을 보면 뭐할까.
내 세상의 빛을 잃었는데.
네가 말해주던 하늘의 색깔.
푸르고도 푸르더만.
내 마음은 까맣기만 하는구나.
“...!”
“우와...”
오진우의 눈이 커지고, 강유나가 탄성을 터트렸다.
김세준의 목소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약간은 허스키하면서도 독특한 그의 목소리.
그런데 지금은 알고 있던 그의 창법보다 훨씬 더 특이했다.
‘아니. 특이한 게 아니라 탁하다.’
탁한 목소리.
마치 쉰 목소리 같다.
하지만 그런 듣기 싫은 목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먹먹한 목소리.
진짜 자식을 잃은 아비처럼 구슬픈 그의 감정 전달력.
‘미친 수준이군...’
천재라고 불리는 강유나하고 수두룩하게 작업했던 그다.
웬만한 실력으론 눈 하나 깜빡 안 할 자신도 있었고.
그러나 방금 김세준의 모습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 진우씨?”
약속했던 5마디의 녹음이 끝났음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 오진우를 김세준이 불렀고, 오진우가 다급히 외쳤다.
“세준씨! 바로 다이렉트! 다이렉트로 쭈욱 갑니다! 지금 완전 좋으니까!”
큰 목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오진우를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굳이 다이렉트가 아니어도 좋은데.
몇 번을 해도 지금처럼 잘 부를 자신이 차고넘쳤다.
다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자신보다 심봉사의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