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22화 (22/148)

#22

“흐아아아....”

강유나가 넋 나간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쉽지 않네...”

텅 빈 작업실에 그녀의 맥빠진 목소리만 펴져 나갔다.

늦은 새벽. 그날 이후로 곡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였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

강유나가 볼을 한껏 부풀리더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털버덕 엎어졌다.

작업했던 결과물을 틀고,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온다.

아직 단순한 가이드인 곡.

간략한 멜로디와 코드만 입혀본 노래다.

그럼에도 느낌이 온다.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그동안 전혀 다뤄보지 않았던 컨셉의 노래.

감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아... 도와달라고 해야 할까?”

머리가 답답해지자 자연스럽게 한 남자가 떠올랐다.

자신과 함께 곡을 부른 김세준.

컨셉도 기획해 낸 그라면, 곡도 구성해놓지 않았을까?

강렬한 유혹이 그녀를 감싸 안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선배의 자존심이 있지!”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했던 자존심과 명예.

음악 차트 1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녀다.

곡 하나 작곡 못 했다고, 데뷔 1년도 안 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그녀의 프라이드는 강했다.

“할 수 있어. 유나야. 넌 할 수 있어.”

스스로를 위안하며 강유나가 두 손을 불끈 지었다.

어떻게든 불후의 명곡을 만들 거라 다짐하면서.

***

[도와줘요...]

“쩝... 응?”

집에서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던 김세준은 핸드폰으로 온 문자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강유나에게 온 문자.

이어서 눈물을 흘리는 귀여운 이모티콘도 보내는 그녀였고,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갔다.

“강유나도 사람이란 건가?”

이주라는 시간.

경험 많은 그녀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해도 쉽지 않은 게 창작.

강유나라면 다를까 싶었지만, 그녀 역시도 사람인 모양이었다.

[작업이 잘 안돼?]

샌드위치를 단숨에 먹어치우고 답장을 보낸 지 1분도 안 돼서 강유나의 답장이 왔다.

[쉽지 않네여... 오빠는 생각해둔 거 있어요?]

강유나의 연락을 본 김세준이 멈칫했다.

생각해둔 거라...

자신도 컨셉만 정해놨지, 딱히 떠오르는 악상은 없다.

다만 이렇게 구상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정도?

[아니. 나도 뭐 없는데. 일단 그럼 만나서 이야기할까?]

[좋아요. 언제 오실래요? 지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네.’

그녀의 카톡에 김세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일 갈게. 지금은 쫌 그렇고.]

[알겠어요. 그럼 내일 작업실로 오시면 돼요.]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문자가 끝났고, 김세준은 의자를 끌어당겨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흐음... 그래도 구색은 맞춰 가야지.”

엄연하게 보자면 자신은 조력자다.

작곡부터 시작해, 믹싱과 프로듀싱, 더 나아가 마케팅까지 모든 건 키엔 엔터테인먼트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자신은 그저 그녀의 곡에다 목소리를 입히는 것뿐.

“그렇다고 또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건 그렇잖아?”

가상 악기 툴을 건드리며 김세준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천재의 자존심이 있는데.”

***

강남의 한 스튜디오.

원래는 인디 가수들이 녹음을 위해 대여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강유나가 인수하여 자신의 작업실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빌딩 하나를 통째로 인수한 그녀의 자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김세준이 강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나야. 나 도착했는데.”

“아, 빨리 왔네요? 잠시만요. 제가 나갈게요.”

전화를 끊고 1분도 되지 않아 문이 열리며 강유나가 나왔다.

오랫동안 두문불출했는지, 행색이 꽤나 초라했다.

무릎이 툭 튀어나온 츄리닝에 대충 묶은 머리카락.

‘무슨... 저래도 이쁜 건 사기 아니야?’

그럼에도 후광이 비치는 듯한 그녀의 외모에 김세준이 잠시 넋을 잃었고, 강유나가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쫌. 추례하죠? 죄송해요. 요즘 작곡하느라 바빠서.”

“응? 아,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이거 커피. 왠지 필요할 거 같아서.”

카페에서 사온 아메리카노를 건네주자 강유나가 반색했다.

“까악! 고마워요! 안 그래도 카페인 필요했는데. 어서 들어와요.”

강유나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작업실.

깔끔했다.

책상 위에 수두룩하게 쌓인 커피 캔만 뺀다면.

“여기 커피 좋네요. 어디 거에요?”

“저기 사거리에서 편의점 옆에 있는 곳. 이름은 까먹었어.”

“자주가야겠다...”

사온 커피가 마음에 드는지 자꾸 홀짝이며 강유나가 말했다.

“아 맞다. 한 번 들어보실래요?”

“만들어진 거 있어?”

놀란 눈으로 묻는 그에게 강유나가 손을 저었다.

“대강은 했는데... 뭐랄까. 부족하게 느껴져요.”

‘부족하다?’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말한 부족하다는 게 어떤 건지 짐작이 갔으니까.

“그래. 일단 들어보자.”

김세준의 대답에 강유나가 노래를 틀었고,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나쁘진 않은데?’

상당히 서정적인 발라드.

잔잔하면서도, 후렴구에선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코드.

보통 사람이라면 듣고 매우 만족할만한 곡이다.

하지만 강유나같은 천재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한 곡.

그녀가 말한 것처럼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어때요? 중요한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 아니에요?”

눈을 감은 채 감상하던 김세준이 강유나의 질문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작은 미소와 함께.

“응. 하나를 놓치고 있네.”

“오. 오빠는 그게 뭔지 알겠어요?”

김세준의 반응에 강유나가 격렬하게 답했다.

몇 날을 밤새워 고민해봐도 채워지지 않던 충족감.

그 충족감을 채워줄 수 있을까?

기대심 가득한 그녀의 눈빛에 김세준이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잠깐 만져봐도 될까?”

“네.”

강유나가 재빨리 자리를 비켜주고, 김세준이 컴퓨터 앞에 다가가 그녀가 만든 곡을 분해했다.

멜로디와 코드를 기억한 채.

분해되어가는 자신의 곡을 강유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봤고, 김세준이 분해했던 곡을 다시 재조립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드럼과 어쿠스틱기타로 만들어졌던 곡이, 새롭게 탄생했다.

“어?”

강유나의 짧은 목소리.

가야금과 거문고. 산조대금.

그리고 태평소와 피리.

가지각색의 국악기로 그녀의 곡을 다시 재조립하는 그의 손짓에 강유나의 눈이 이채롭게 변했다.

‘국악기로 만든다고?’

분명 국악기의 매력이 서양악기에 뒤쳐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양악기가 국악기에 비해 매력이 뒤쳐진다?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각자의 장점이 있는 악기.

“악기만 바꿔봤어. 한 번 들어볼래?”

진짜 김세준의 말 그대로 악기만 바꿨다.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내심 생기는 기대감에 강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녀의 대답에 김세준이 미소지으며 노래를 재생시켰다.

똑같은 멜로디.

그러나 이내 들려오는 노래에 강유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작부터 애절한 인트로.

가야금과 산조대금의 적절한 조화와 이어지는 태평소의 울음 소리.

듣는 순간 감이 왔다.

‘이거구나!’

똑같은 멜로디지만, 감정이 달랐다.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원초적으로 자극하는 느낌.

“오빠? 이게 뭐에요? 왜 이렇게 좋아? 나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강유나가 충격이 적지 않은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똑같은 멜로디와 코드인데 달랐다.

김세준의 곡을 듣는 순간 머릿속으로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순간.

“괜찮아?”

“완전 좋은데요? 악기 몇 개 바꿨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악기라.

김세준은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악기를 바꿔서 부족한 게 채워졌지. 감성. 정확하게 말하면 한.”

“한이요?”

김세준의 말에 강유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뜬구름 잡는 그의 말이었고, 이해가 안 갔다.

“고전에는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고, 감정이 있잖아?”

“그쵸?”

“그럼 우리나라 고전의 감정은 뭘까?”

“그게 한이라는 거에요?”

되묻는 강유나를 향해 김세준이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응. 한.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

“너무 광범위하게 생각한 거 아닐까요?”

납득이 가지 않는지 강유나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한(恨).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

흔히 우리나라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 많이 차용되는 단어.

“심청전, 흥부전, 춘향전, 콩쥐 팥쥐 등 고전 들을 생각해봐. 다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아? 주인공들한테?”

“물론 그렇긴 하죠...”

“홍길동전, 사씨남정기같은 소설에도 마찬가지. 우리나라 고전을 이야기할 때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을 빼놓을 수가 없어.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의 감정을 한 글자로 표현한 게 한. 그리고 그 한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국악이 낫다. 이런 말이네요?”

장황하게 설명하던 그의 말을 가로채며 강유나가 빙그레 웃었다.

국악 중에서도 유독 슬프게 들리는 악기들이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 태평소와 대금과 아쟁과 해금 같은 것들.

물론 어떻게 연주하냐에 따라 다른 감정이 들지만, 사람들의 애절한 마음을 자극할 때 많이 쓰이는 악기들.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한이라는 감정이 떠오르는 악기들이다.

“확실히 뭔가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느낌이 있어서요. 오빠가 노래를 편곡한 뒤로.”

“그게 국악이 가진 매력이지.”

강유나가 다시 한 번 노래를 재생하곤, 차분히 감상했다.

한 번 더 노래를 들은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뜨곤 김세준에게 말했다.

“오빠! 오늘 스케쥴 있어요?”

“응? 아니. 없어.”

“잘됐네. 오늘 여기서 밤샐 준비해요. 곡 오늘로 끝내죠.”

“...응?”

그녀의 말에 김세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 자신은 적당히 도움만 주려고 왔을 뿐.

같이 작업하러 올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 난 그냥 도움 주려고 온 건데...”

김세준이 반론을 내뱉었지만, 강유나가 그의 소매를 끌어 억지로 자신의 옆에 앉혔다.

“저작권료 주면 되잖아요. 빨리요! 오빠가 옆에서 도와주면 오늘 안에 곡 완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 같으니까!”

의욕이 활활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김세준이 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저녁에 예약했던 영화.

취소해야겠네.

***

박영호의 사무실.

김세준에 대해 알아보라는 임태현의 명령 같은 부탁.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김세준에 대해 모든 걸 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듣고 임태현이 내뱉은 한 마디.

“그니까, 뭐 별 볼일 없는 신인이라는 뜻이잖아요?”

그 한마디를 듣고 박영호는 어이가 없었다.

“별 볼일 없는 것 까진 아니고...”

“아니 뭐, 신인이 이 정도 성적 내는 게 대수에요? 사장님. 저 몰라요? 데뷔하자마자 차트 1위 찍은 거?”

그의 말에 박영호가 침묵으로 답했다.

맞다. 비록 도덕성은 결여됐지만, 재능 하나는 최고다.

노래뿐만 아니라 외모도 타고난 남자.

이미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로.

“와. 이런 쓰레기 때문에 날 버렸다고?”

그럼 임태현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박영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얘네 발표 언제인지 알아요?”

“아마 9월이나 10월쯤이 되지 않을까?”

박영호의 말에 임태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좋네. 저도 그때 활동 시작하죠.”

“..! 뭐? 태현아!”

강유나 같은 음원 강자랑 비슷한 시기에 활동해서 좋을 게 없다.

그게 임태현 같은 또 다른 음원 강자라면.

서로 적당히 시기만 조절하면 상부상조할 수 있는데, 굳이 맞불을 놓는 건 악수다.

“그. 태현아. 김세준은 몰라도 강유나는 무시할 수 없잖아...”

그의 기분을 살피며 박영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아. 사장님.”

임태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답답한지 한쪽 머리를 쓸어넘기고, 이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가 질 거 같아요? 이 쓰레기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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