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20화 (20/148)

#20

이예은(3)

20화.

꺄아아약!!!“

동생의 방에 들려오는 비명에 이주성이 화들짝 놀랐다.

“왜! 무슨 일이야?”

다급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예은이 베개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예은아?”

“오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보자 이주성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한 동생이라 자주 눈물을 쏟긴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럽게 우는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다.

3년 전, 부모님의 사고 이후로 처음일 정도로.

“나... 아레스 뮤직에 연습생 됐어...”

“...! 뭐...뭐라고?”

“크흥.. 나... 아레스 뮤직하고 계약하게 됐다고...”

훌쩍거리며 내뱉는 말.

똑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이주성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진정하고 말해봐. 갑자기 우리 회사와 계약한다니?”

괜한 부담을 줄 거 같아 비밀로 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오빠한테 괜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가 나왔고, 침착하게 그간 있었던 일을 알렸다.

자신의 버스킹. 그리고 김세준과 만남 이후 오디션을 본 일까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주성의 표정이 다이나믹하게 변했다.

김세준을 향한 놀람과 감동.

‘하아... 형님. 진짜 감사합니다...’

이주성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얼굴을 푹 숙였다.

‘나 진짜 복 받았구나...’

김세준.

착하고 배려 깊은 자신의 가수.

그런 가수의 매니저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복이라 여겼다.

거기에 더해 이런 식으로 큰 은혜를 입을 줄이야.

부모님의 사고 후 단둘이 지낸 남매다.

그만큼 동생을 대하는 감정이 애틋하고 남달랐다.

사고 이후, 동생의 유일한 삶의 낙 음악.

자연스럽게 생긴 동생의 꿈 가수.

그 꿈을 옆에서 돕기 위해 매니저란 직업을 택할 정도로.

그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

“잘해야 해. 예은아. 알겠지?”

“응... 오빠...”

아직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성은 그런 동생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심이 담긴 말을 곁들이면서.

“축하해. 고생했어. 예은아.”

***

이예은이 아레스 뮤직 연습생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김세준은 다시 자신의 일에 빠져 들었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이젠 그녀가 알아서 개척해나가야할 길이다.

연습생 생활이 쉽지는 않지만, 그녀는 잘 해내리라.

“그러면 지금 당장은 강유나와 듀엣곡이 문젠대...”

그의 다음 계획은 강유나와의 듀엣곡.

아직 스케치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상태의 계획이다.

“어떤 컨셉으로 갈까...”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건들이며 김세준이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강유나면 어떤 컨셉이든 무리가 없지.”

발라드와 댄스, 포크송과 R&B, 심지어 힙합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강유나다.

섹시 컨셉마저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그녀의 능력은 대중들에 큰 사랑을 받은 인기요인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강유나도 하지 않았던 게 있을까?”

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환한 강유나의 장점이 김세준에겐 오히려 고민이었다.

“웬만한 곡으론 성에 차지 않겠지.”

책상을 두들기는 그의 손가락의 리듬이 빨라졌다.

“그리고 나도 뭔가 참신한 걸 하고 싶단 말이지...”

절로 좁혀지는 미간.

고민의 연속.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해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후우...

한숨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핀 김세준이 이어서 컴퓨터를 켰다.

이럴 때 계속 부여잡고 있어봤자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답답한 머리를 환기하기 위해 미튜브에 접속했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싶을 때 그가 종종 보는 영상들.

가야금으로 다양한 노래를 커버한 영상이었다.

머리를 비운 채 노래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마우스 스크롤을 주르륵 내리면서 턱을 괸 채 뭘 볼까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

“나도 슬슬 미튜브 시작해야 하는데.”

새로운 욕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미튜브.

지금도 엄청난 인기를 끄는 글로벌적인 플랫폼이지만, 해가 지날수록 그 인기는 배가 된다.

“다른 가수들 커버 영상 같은 건 이곳에다 올리면 되잖아?”

가야금 커버 영상.

국내 가요뿐만 아니라,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해외의 유명 가요도. 무심한 세월에도 굳건히 버티며 회자되는 불후의 명곡들까지.

자신의 오래된 취미였고, 지금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하나의 무기였다.

“글로벌적으로 인기를 끌지도 모르는 거니까.”

미래엔 해외활동 없이 인터넷만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끈 아이돌도 종종 있었다.

자신 또한 그렇게 될 줄 모르는 일.

그런 장밋빛 미래를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그러졌다.

“미튜브도 고민해보고.... 어라?”

생각을 마치면서 습관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김세준.

그의 눈에 특이한 영상 하나가 들어왔다.

“이거... 재미겠는데?”

그의 눈에 새겨진 모니터.

김세준의 눈 안엔 국악의 신선한 모습이 그러져 있었다.

***

2주라는 휴가가 끝나자, 김세준은 키엔 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향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이주성의 차를 탄 뒤, 흔들리는 차량에 몸을 맡겼다.

“형님. 감사합니다.”

“응? 아.... 예은이.?”

이주성의 깊은 목소리에 김세준이 눈을 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짐작 가능했다.

룸미러로 김세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감동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 뭘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봐.”

김세준이 장난스럽게 대꾸했지만, 이주성의 시선엔 변함없었다.

“진심입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덕분에 예은이가 아레스 뮤직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아니 뭘...”

굳이 그의 도움이 없더라도 언젠간 아레스 뮤직에 입사하게 될 운명인 그녀다.

이주성의 과도한 존경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엔 부담이 컸다.

“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예은이가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이주성의 조심스러운 고백.

김세준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진작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예은의 팬이었던 그가 모를 일 없는 사실.

수많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습관처럼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자신을 위로한 건 음악과 하나뿐인 오빠라고.

“그런 예은이가 삶의 활력을 얻은 계기가 음악이었습니다. 죽어가던 동생이 점점 기운을 차려가는 걸 보면서 다짐했습니다. 어떻게든 예은이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이주성의 목소리에 물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의 진솔한 고백에 김세준이 신음을 삼켰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매니저 일도 시작했습니다. 제가 먼저 연예계 생활을 하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

“그런데 이렇게 형님에게 은혜를 받을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운전만 아니었다면 큰절이라도 올릴 기세다.

“됐어. 너무 고마워하지 말고. 평소처럼 해. 또 처음 봤을 때처럼 딱딱해지면 난감하니까.”

김세준이 손 사레를 치며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는 듯 농담을 던졌고, 이주성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답을 본 김세준이 다시 눈을 감은 채 의자에 몸을 기댔고, 이주성은 그런 김세준을 보며 깊은 다짐을 새겼다.

‘형님을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키엔 엔터테인먼트는 대기업에 인수된 만큼, 사옥의 크기도 만만치 않았다.

“와우...”

아레스 뮤직도 4층짜리 건물로, 작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키엔 엔터테인먼트는 무려 8층짜리 빌딩을 통으로 사용했다.

“돈이 좋긴 좋아.”

대기업의 힘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규모.

[유나야. 나 도착했는데.]

사옥을 구경하며 강유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금새 답장이 왔다.

[아, 잠깐만요. 귀찮은 사람이 자꾸 달라붙어서. 6층 회의실에 가계시면 금방 갈게요.]

‘귀찮은 사람?’

스토킹이라도 붙는 걸까 싶어 궁금증이 생겼지만, 캐묻지 않았다.

자신의 오지랖 없어도 알아서 잘 해결하리라.

강유나가 말한 회의실은 3개의 책상이 디귿자로 나열되어 있고, 거대한 스크린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이주성과 물을 홀짝이며 기다린 지 20분.

강유나가 문을 열고선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죄송해요.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김세준이 사옥까지 왔는데 오히려 자신이 늦었다는 생각에 강유나가 허리를 크게 숙였다.

“괜찮아. 오랜 만이네. 잘 지냈.. 어?”

자리에서 일어나 강유나를 맞이하던 김세준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강유나의 뒤를 이어서 들어온 한 사람.

중년 남성으로 이해진보단 어려보인다.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말끔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무언가 못마땅한 듯 얼굴에 불만이 새겨있었다.

“인사하세요. 저희 회사 사장님이에요.”

“차태규입니다.”

차태규의 목례에 김세준이 허리를 크게 숙였다.

“김세준입니다.”

키엔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라니.

게다가 강유나를 직접 발굴한 장본인이다.

가볍게 볼 인물은 아니라는 뜻.

갑자기 등장한 차태규 때문에 이주성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귀찮은 사람이 사장이야?’

아까 강유나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무언가 트러블이 있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불만에 찬 눈빛이다.

눈을 흘기며 차태규를 보는 강유나였고, 자연스럽게 추론이 가능했다.

‘사장을 귀찮다고 표현해도 돼?’

강유나의 솔직담백함에 당황한 것도 잠시, 차태규가 자리에 앉자 김세준도 따라서 자리에 앉았다.

“제가 따라왔다고 부담되거나 그러지는 않죠?”

“물론입니다. 사장님의 의견이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세준은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답했으나, 강유나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꼰대...”

“크흠... 본론으로 들어가면, 유나가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듀엣곡하면 보통 사랑 노래를 떠올리는데 이미 한 적도 있고.”

알고 있다.

그녀가 데뷔하고 얼마 안 돼서 냈던 음반.

음원 차트 1위를 하며 전국적으로 사랑받았던 노래다.

아이돌이었던 듀엣 상대도 덕분에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래서 이번엔 뭔가 색다른 걸 하고 싶단 말이죠... 유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곡으로. 그런 면에서 세준씨를 선택한 점도 있어요. 특이하고 독특하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유나하곤 색다른 걸해보고 싶었습니다.”

차태규가 무얼 원하는지 미리 예상했던 그다.

때문에 한동안 골머리를 썩기도 했고.

“이해진 선배님한테 들으니까, 오빠 곡 써 놓은 거 많다면서요? 그중에 괜찮은 거 있어요?”

강유나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고개를 내민다.

‘그동안 썼던 곡이라...’

‘술과 함께’를 비롯하여 아직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곡들.

명곡이라 자부할 수 있지만, 김세준은 고개를 저었다.

강유나와 차태규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정도로 색다르진 않다.

“나쁘진 않지만, 유나 너하곤 어울리진 않을 거 같아.”

김세준의 대답에 강유나가 입술을 삐쭉 내민다.

아쉬움이 물씬 풍기는 그녀의 표정.

하지만 귀여움도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뭐 생각해두신 건 있어요?”

“음... 제법 신선한 게 있긴 해.”

김세준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강유나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차태규도 순간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사랑이긴 한데... 특별한 사랑.”

“특별한 사랑?”

“가족. 가족에 대한 사랑.”

순간 기대감이 가득했던 강유나가 실망한 눈빛을 보냈다.

모성애나 부성애.

그런 이야기를 다룬 가요가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순 없다.

“듀엣으로 가족 이야기라... 참신하지만, 뭔가 좀 아쉬운 데요.”

직설적으로 내뱉는 그녀였고, 차태규도 그럼 그렇지 하며 기대감을 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김세준이 고개를 저으며 회심에 찬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야. 고전으로 내려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고..,고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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