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9화 (19/148)

#19

이예은(2)

‘저 사람. 김세준 아니야?’

‘그런 거 같은데?’

모자를 벗은 김세준을 보며 사람들의 수근거림.

어느덧 자신을 둘러싸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느낀 김세준이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손가락으로 카페를 가리켰다.

“일단 카페 가서 이야기 할까요?”

그의 물음에 이예은이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심지어 딸꾹질까지 해대는 그녀였고, 김세준은 그녀의 멘탈에 피식 웃음이 흘렀다.

‘이렇게 멘탈이 약한데, 어떻게 버스킹을 한 거야?’

카페에 들어서고 음료를 시키자, 이예은이 그제 서야 진정이 된 듯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팬이에요...”

“고마워요. 노래 정말 잘 들었어요. 잘 부르시던데.”

“아니에요..”

그의 말에 그녀가 손 사례까지 치며 부정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오빠?”

“아... 김세준님 매니저인 주성이오빠. 제 친오빠에요...”

“...!”

‘그때 중얼거린 게 진짜 이예은이었어?’

단순한 동명이인일 줄 알았는데, 설마 진짜 동생일 줄이야.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에 김세준이 적잖게 놀랐다.

‘그 곰 같은 놈과 이런 쪼꼬미가 남매라니.’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 하나 없는 둘의 외모에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되게 좋으신 분이라고...”

이예은의 중얼거림에 김세준이 민망한 웃음과 함께 겸손을 떨었다.

“아니에요. 주성이가 워낙 일을 잘하는 친구라. 제가 뭐라고 할 것도 없어요.”

자신의 친오빠를 칭찬해서일까? 이예은이 작게 웃곤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아까 그 말씀하신 거... 진짜인가요?”

불안감과 기대감.

복잡한 감정이 섞인 두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예은을 향해 김세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제가 캐스팅과 관련된 직책은 아니지만, 사장님한테 꼭 소개해주고 싶어요.”

“...!”

‘꿈일까?’

좋아하는 가수를 실제로 만난 것까지 모자라, 이젠 그가 자신을 인정하고 캐스팅하려 한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이예은이 책상 아래 허벅지를 꼬집었고, 생생히 느껴지는 고통에 순간 울상을 짓다가 이내 미소지었다.

‘뭐지?’

갑자기 울상을 짓다가 웃는 그녀를 보며 김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예은씨 생각은 어때요? 오디션 볼 마음 있어요?”

“할...할게요!”

양 손을 주먹 쥐며 굳게 말하는 그녀였다.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 알려주세요. 제가 사장님한테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김세준의 제안에 이예은이 손을 덜덜 떨며 조심스럽게 그의 핸드폰을 받았다.

혹시 번호를 잘못 누를까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입력하는 이예은이었고, 김세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여...여기요...”

“고마워요. 제가 내일 연락드릴게요.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번호를 저장하고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뱉었다.

“예은씨?”

하지만 김세준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이예은이 그의 팔소매를 붙잡고 물기 가득한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제가 진짜 입사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제가 가수가 될 제량이 있을까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촉촉한 그녀의 눈가엔 불안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녀였기에 분에 넘치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훗날 강유나와 함께 여성 싱어송라이터 계에 거물이 되는 그녀답지 않은 질문.

그런 이예은에게 김세준이 확신에 찬, 자신만만한 미소로 답했다.

“무조건. 예은씨의 상상 이상의 뛰어난 가수가 될 거에요.”

***

이예은은 어젯밤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김세준.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자 그녀가 요새 제일 깊게 빠져 있는 가수였다.

신인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실력.

그의 무대를 보며, 그의 음원을 들으면서 감탄을 내뱉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거기에 더해 오빠인 이주성을 통해 들은 그의 인성과 심성.

모자란 부분 하나 없이 완벽한 그였고, 알면 알수록 더욱 더 빠져들었다.

자연스럽게 버스킹에서 그의 노래를 커버했다.

“설마 그걸 듣고 계실 줄이야.,,”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이예은이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창피함과 민망함에 얼굴이 빨게진다.

“게다가 오디션이라니...”

캐스팅.

소문으로만 들었지, 설마 자신에게 그런 제안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무려 김세준이 직접.

그가 자신을 인정해줬다는 생각에 발끝부터 쾌감이 짜르르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차오르는 불안감.

이예은이 고개를 들어 벽면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무심하게도 오후 9시를 가르키는 시계초침에 그녀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역시... 내가 무슨 아레스 뮤직에...”

하루종일 고대했던 연락이 아직도 안왔다.

이예은이 베개에 얼굴을 처박았고, 아쉬운 마음에 베개에 눈물자국이 새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핸드폰을 확인하는 그녀.

[늦어서 미안해요. 내일 3시까지 아레스 뮤직 사옥으로 올 수 있어요?]

핸드폰 액정에 나타난 메시지.

그 메시지를 보며 이예은이 눈가엔 물기를 가득 머금곤, 환한 웃음을 지었다.

***

아레스 뮤직 연습실에서 김세준은 어제 온 이예은의 답장을 보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어제 자신이 보내자마자 바로 온 답장.

그녀의 다급하고 조급했던 심경이 물씬 느껴지는 답장이었다.

“세준아. 네 말 듣고 보긴 하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어제 자신이 그녀에게 연락을 늦게 한 이유.

하동준과 이해진이 쉽사리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저녁을 훌쩍 넘어서까지 그들과의 씨름 후, 간신히 그들의 시간을 뺐었다.

그럼에도 하동준은 아직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옆에 앉아 말하는 하동준을 향해 김세준이 싱긋 웃었다.

“네. 진짜 후회 안하실 거에요.”

자신만만한 그의 말에 이해진과 하동준이 동시에 한숨을 내셨다.

휴식을 취하라고 했음에도 일거리를 들고 오는 그를 보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침을 튀겨가며 이예은을 꼭 영입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는 그에게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 뭐 들어보면 알겠지.”

이해진이 그래도 기대는 된다는 듯 슬며시 미소지었고, 동시에 연습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예은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자신의 절반만 한 키보드를 들고 힘겹게 들어오는 그녀였다.

낯선 인물인 하동준이 있어 순간 흠칫하면서도 김세준을 보자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서 와요. 이예은씨?”

“네. 이예은이라고 합니다.”

이해진이 그녀에게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고, 이예은도 허리를 크게 숙였다.

“반가워요, 저희가 원래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보는데, 세준이가 워낙 적극적으로 추천을해서 따로 시간을 마련했어요.”

“감...감사합니다!”

“앞으로 가서 준비하시고, 시작하시면 되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원래 실력 보여주시면 됩니다.”

나긋나긋한 이해진의 말에 그나마 긴장이 풀렸는지 이예은이 살짝 미소지으며 답한 뒤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쥬얼은 나쁘지 않은데?”

그런 그녀를 보며 하동준이 이해진에게 속삭였고, 이해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외모는 좋네.”

전형적인 동양 미녀 상이다.

검은색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미녀.

눈이 큰 편은 아니지만 깊이가 있고, 이목구비의 균형이 좋았다.

“저 정도 비쥬얼이면 아이돌로 나가도 될 정돈데?”

하동준의 속삭임은 옆옆 자리인 김세준에게도 들렸고, 김세준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쥬얼만 봤을 땐 아이돌로 데뷔해도 손색 없는 외모였으니까.

비록 아레스 뮤직에서는 아이돌을 육성하지 않지만, 다른 기획사에서 아이돌로 데뷔해도 충분하다는 뜻.

그들을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돌에게 비쥬얼은 가창력만큼 중요한 무기였으니까.

“네. 준비 다 됐습니다.”

어느새 모든 준비를 끝마친 이예은이 키보드 건반 앞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세요.”

“후우우...”

이해진의 말에 이예은이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키보드 건반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이건?’

익숙한 반주.

하지만 김세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지금 연주하는 노래는 자신의 노래인 ‘연꽃’.

아레스 뮤직에 오디션이라고 ‘연꽃’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이게 아니지.’

하지만 김세준은 그녀의 선곡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레스 뮤직의 가수들은 대부분 싱어송라이터.

그녀 또한 여기서 자신이 싱어송라이터의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했어야 했는데.

그녀의 안타까운 선택에 김세준이 고개를 돌려 이해진과 하동준을 쳐다봤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예상대로 이해진과 하동준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완전 실망한 건 아니지만, 기대 이하라는 눈빛.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이해진이 신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음.. 나쁘진 않지만... 약간 실망이네요.”

이해진읲 평가에 긴장 가득했던 이예은의 얼굴이 굳어졌다.

‘부사장님까지 말하면 멘탈이 못 견딜텐데.’

그나마 이해진이라 저정도지, 하동준이라면 좀 더 신랄하게 평가할 터.

개복치인 그녀의 멘탈이 견디기엔 하동준은 지독하리만큼 솔직한 사업가였다.

그러기에 김세준은 하동준이 입을 열기 전, 재빨리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예은씨. 제 노래 말고 예은씨 본인 노래 불러보는 거 어때요? 저번에 들었던 노래 진짜 좋았는데. 그 죽은 편지라는 노래 있잖아요.”

“네?”

이예은이 영문을 알 수 없어 되묻자, 김세준이 얼른 한쪽 눈을 감았다 떼었고, 이내 그의 뜻을 알아차린 이예은이 대차게 답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지금 김세준이 마지막 기회를 주려한다는 건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재빠른 대답에 하동준이 눈썹을 꿈틀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 한 번 정도 더 주는 것쯤이야.

“후우...”

심호흡과 함께 시작된 그녀의 연주.

“...!”

“오호...”

처음부터 강렬하게 울리는 키보드 소리에 이해진과 하동준의 눈빛에 이채로움이 새겨진다.

가녀린 체구에 맞지 않는 파워풀한 연주에 둘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고, 김세준의 입 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죽은 편지.

그가 회귀하고 나서 처음 들었던 그녀의 노래.

강렬한 반주가 단숨에 귀를 사로잡았다.

“그대의 편지가 하루의 빛이었죠.”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가슴이 먹먹하고.”

사랑 노래.

하지만 흔해빠진 사랑 노래가 아니다.

연인이 죽은, 그것도 전쟁터에서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굉장히 특이한 컨셉을 가진 노래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가수들을 좋아하는 이해진과 하동준의 특성상 이 노래를 상당히 재미있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그리고 김세준은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해진을 바라보곤 웃음을 터트렸다.

음악 변태.

그의 또 다른 표정이 다시금 나오고 있었다.

자신을 처음 만난 술집에서 지었던 그 얼굴이.

‘끝났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김세준이 눈을 감았다.

그도 이제 맘 편히 그녀의 노래를 감상할 때였다.

***

“잘 들었어요. 예은씨. 노래 좋네. 진작 이 노래 불렀어야죠.”

“감사합니다!”

하동준의 칭찬에 이예은이 감동받았는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답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크게 숙였다.

“일단 저희가 상의해봐야겠지만 솔직히 인상 깊네요.”

계속되는 칭찬에 그녀가 어쩔 줄 몰라했고, 이해진이 김세준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세준이에게 고마워해야겠네. 이런 원석을 또 어디서 구해서 온 건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김세준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이예은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은인.

그녀에게 있어서 김세준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버스킹을 전전하던 무명의 가수인 자신에게 아레스 뮤직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은인.

김세준을 바라보는 이예은의 시선엔 존경과 감동이 한가득이었다.

일단은 저희끼리 상의 한 후 따로 안내해 줄게요. 오늘은 고생했어요.“

“네. 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이예은이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끊임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 하동준과 이해진이 동시에 김세준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진짜 복덩이네?”

“내 말 맞지? 얘 복덩이라니까.”

어느덧 하동준에 이어 이해진도 그를 복덩이라 칭하고 있었다.

“어때요? 나쁘지 않죠?”

이예은을 가리키는 말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매력 있어.”

“나도 동의. 독특하고 비쥬얼도 좋고. 근데 당장 데뷔보단 일단 연습생으로 시작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하동준의 말에 이해진이 맞장구를 쳤다.

“음. 그것도 괜찮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으니까. 아직 낯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고. 당장 무대에 올랐다간 어떤 꼴이 날지 모르긴 할 거 같다.”

단숨에 그녀의 개복치 같은 멘탈을 캐치한 이해진이었고, 김세준은 둘의 판단에 아쉬움을 느꼈으나 받아들였다.

적어도 이예은은 매우 만족하리라.

“혹시 내년엔 데뷔할 수 있곘죠?”

“내년?”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김세준의 질문에 이해진과 하동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저 내년엔 앨범 낼 수 있죠?”

“그건 약속한다. 듀엣 끝나면 바로 1집 들어간다.”

이해진의 확답에 김세준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제 첫 앨범. 예은이 피쳐링으로 쓰고 싶어서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