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7화 (17/148)

#17

강유나(3)

난감한 상황 속 김세준을 구한 건, 노크하며 안으로 들어온 한 스텝이었다.

“김세준씨. 준비... 어?”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온 젊은 남자가 의외의 인물인 강유나가 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유나씨. 저 지금 가봐야 할 거 같네요...”

김세준이 뒷말을 흐리며 문밖으로 시선을 보내자, 강유나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쩝.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무대 잘 하세요.”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강유나가 인사 후 밖으로 빠져나갔고, 김세준은 그때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형님! 진짜 강유나입니다!”

강유나가 밖으로 나가자 이주성이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외모가 진짜... 와... 어떻게 사람 얼굴이 저렇지?”

첫사랑에 빠진 시골 소년 같은 순박한 이주성.

매니저의 본분을 순간 잃은 그였지만 김세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봐도 숨이 턱 막힐 듯한 외모였으니까.

***

김세준의 대기실을 빠져나온 강유나의 입꼬리가 살짝 말아 올라갔다.

반응을 보아하니 차태규의 추측이 확실한 듯 보였다.

입술을 매만지며 강유나가 콧소리를 흥얼거렸다.

“거절할 수 있지. 김세준의 마음인데.”

자신 또한 다른 가수들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적지 않다.

김세준이라고 해서 그러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근데 거절을 거절하는 건 내 마음이잖아?”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중얼거린 그녀가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주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김세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흐음. 강유나가 도대체 왜 나랑 하려는 걸까.”

창문에 기대며 김세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흔들리는 창문을 따라 그의 머리가 동시에 흔들렸다.

“강유나가 형님이랑 같이 곡 만들려고 하는 건 좋은 거 아닙니까?”

운전하던 이주성이 룸미러로 슬쩍 뒤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좋지. 뭐가 인정받은 느낌이니까. 하지만 이유가 궁금해서 그래.”

중얼거리며 답하는 김세준을 보며 이주성이 넌지시 말했다.

“형님의 실력 때문 아닐까요?”

“내 실력?”

김세준이 창문에서 머리를 떼고 이주성을 바라봤다.

“예. 제가 뭐 음악에 큰 조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형님 무대 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새 형님 평판도 매우 좋거든요. 스텝이나 매니저나 형님 칭찬이 자자해요.”

장황하게 내뱉는 이주성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무대 뒤편. 스텝과 매니저들의 자리인 그 곳에서 들리는 각종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엔 김세준의 이야기도 있었고, 자신이 알기론 그를 좋게 보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신인답지 않은 실력은 물론이요, 그의 밝은 모습과 인사성을 비롯한 인성까지.

억지로 까고 싶어도 깔 게 없는 김세준이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매니저인 이주성은 자부심을 느끼며 자신의 일에 큰 보람을 느꼈다.

자신의 연예인을 기다리는 매니저들과 한가로이 이야기하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기 마련이다.

매니저에게 폭언을 물론, 장난을 가장하여 주먹까지 휘두르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에 비하면 난 복 받은 놈이지.’

폭력은 무슨 자신에게 욕설 한 번 뱉지 않는 김세준을 보며 이주성이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김세준은 낯 간지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됐어. 그런 칭찬은... 어?”

멋쩍은 웃음을 지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나의 메시지.

[세준아. 너 다음 주 수요일 날 뭐해?]

이진아에게 온 연락이었다.

“주성아. 나 다음 주 수요일 스케줄 있어?”

김세준의 물음에 이주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고, 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없습니다. 형님.”

[아무것도 없어요.]

답장한 뒤 핸드폰을 집어넣으려 하는데 1이 단숨에 사라졌다.

빨리도 읽네.

생각과 동시에 순식간에 답장이 왔다.

[잘됐다. 수요일 날 밥 한 끼 먹자. 너한테 한 번 사야 하기도하고.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거든. ㅎㅎ]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

“흐음... 냄새가 나는데... 아주 뻔한 냄샌데 이거...”

“예? 형님 어떤 냄새 말입니까?”

이주성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뱉곤 코에다 갖다 댔다.

분명 가글 했는데?

이주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김세준은 그런 이주성을 무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강유나가 갑자기 찾아왔고. 이어서 이진아가 누군가를 소개해주려고 한다?’

쉽게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고, 김세준은 고민 끝에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두들겼다.

[좋습니다.ㅎㅎ 다음 주 수요일 날 봐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녀가 왜 자신과 함께 노래를 만들려고 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을 테니까.

***

이진아와 약속한 날이 되자 김세준은 청담의 한식당을 찾았다.

방으로 예약한 이진아였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 세준아 왔어?”

예약자 이름을 대고 직원에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서자, 이진아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네. 누나. 일찍 왔네요?”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겉옷을 벗고 자리에 착석한 김세준이 주변을 둘러보곤 물었다.

“그 소개해주고 싶다는 분은요?”

“아, 곧 올 거야. 거의 도착했다고 하더라.”

이진아가 배시시 웃었고, 김세준이 숟가락을 꺼내며 넌지시 운을 뗐다.

“혹시... 강유나?”

“...!”

이진아가 흠칫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번에 알아챈 김세준을 보며 이진아가 감탄을 터트렸다.

“와... 너 눈치가 귀신이네?”

“눈치 못 채는 게 더 이상하죠. 그날 강유나씨가 찾아오고 바로 누나한테 연락 왔는데요.”

“그런가?”

김세준의 말에 이진아가 아쉽다는 듯 작은 웃음을 지었다.

나름 놀라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유나 맞아. 유나가 너를 꼭 설득하고 싶다고 자리 좀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거든. 혹시 부담스럽니?”

이진아가 조심스럽게 묻자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부담스러웠으면 거절했겠죠. 근데 누나는 강유나씨가 왜 저랑 작업하려는지 알아요?”

“다행이네. 글쎄. 너랑 작업하려는 이유? 난 오히려 너한테 묻고 싶어. 왜 강유나하고의 작업을 거절하는지. 혹시 너 유나 안티니?”

싱긋 웃으며 장난스럽게 되묻는 이진아에게 김세준이 깜짝 놀라며 손사레를 쳤다.

“아뇨! 누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 앨범 작업해야 해서 거절하는 거에요. 안티라니.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개인적으로 진짜 팬이에요. 엄청 좋아하는 가수에요. 제가 궁금한 건 강유나씨가 너무 적극적이라는 점이에요. 회사 차원에서 거절했는데도 대기실까지 찾아오고, 이렇게 누나한테 부탁까지 해서 약속 잡고 그러는 거 보면... 저와 듀엣을 엄청 원하는 거 같아서요.”

김세준의 말을 들은 이진아가 속으로 강유나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하여간 지지배... 밀당이 없어요. 밀당이. 너도 연애는 못 할 운명인가 보다.’

불도저 같은 강유나의 성격을 생각하며 이진아가 피식 웃었다.

“유나가 원래 그래. 하나 꽂히면 끝까지 돌진하는 스타일이야. 아마 설득하기 쉽지 않을걸?”

이진아의 말을 들은 김세준의 동공이 미묘하게 떨렸다.

“그럼 어떡해요? 저 앨범내야 하는데...”

“포기해. 포기하면 편하거든.”

깔깔 웃으며 던진 이진아의 말에 김세준이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분위기 되게 좋네요?”

김유나가 방문을 드르륵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유나야.”

“안녕하세요.”

이진아와 김세준이 강유나를 반겼고, 강유나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혀서.”

“괜찮아. 얼른 앉아. 밥은 내가 시킬게. 여기 C코스가 괜찮아.”

이진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유나가 널찍한 공간에서도 김세준 바로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턱을 괴곤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는 강유나의 시선에 김세준이 식은땀을 흘렸다.

‘와... 진짜 미모 하나는 기가 막히네.’

거리낌도 없는지 시종일관 미소를 띠며 김세준을 쳐다보는 강유나였고, 김세준은 절로 감탄을 터트렸다.

회귀하기 전 삶까지 포함해 꼽아 봐도 강유나 같은 미녀를 눈앞에서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저런 미녀가 싱글싱글 웃으며 코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니.

분에 넘치는 사치였다.

결국, 김세준이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훽 돌려 시선을 피했고, 어색함을 못 이겨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동시에 강유나가 녹아내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오빠.”

“푸흡!...”

“꺄악!”

이진아가 김세준의 분수 쇼에 비명을 내질렀고, 김세준이 사례가 들린 듯 기침을 쏟아냈다.

그나마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 타면 강유나의 얼굴에 물을 내뿜을 뻔했다.

“콜록.. 죄..죄송합니다.”

재빨리 휴지를 꺼내 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홱 돌려 강유나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리고 오빠라니.”

“아, 오빠의 음악을 좋아한다고요. 그리고 프로필 보니까 저보다 나이 많던데. 그럼 오빠잖아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강유나.

김세준이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후우... 감사해요. 저도 유나씨 음악 스타일 좋아해요.”

“말 편하게 하세요. 그리고 그럼 같이 작업해요.”

“그럼 편하게 할게. 그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은데 나랑 작업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김세준의 물음에 강유나가 활짝 웃었다.

“탐이나요. 오빠가. 아, 정확하게는 오빠의 음악이.”

“...?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하고 같이 작업하면 분명 엄청난 곡이 나올 거 같다는 직감. 그런 직감이 들어요.”

강유나의 대답에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게 봐줘서 고마워. 나도 좋은 작업물이 나올 거라고 확신하는데...”

김세준의 말을 할 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직원이 음식을 날라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일단 먹고 이야기하자. 여기 음식 진짜 괜찮으니까.”

이진아의 말에 김세준과 강유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방문이 열리고 음식이 들어오자 침을 꿀꺽 삼켰다.

군침 돌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이었다.

***

“언니. 여기 음식 진짜 괜찮네? 자주 와야겠다.”

강유나가 휴지로 입을 닦으며 감탄을 터트렸고,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요 며칠간 먹었던 곳 중에서 제일 괜찮았다.

정갈하면서 깔끔한 음식.

그의 취향을 사로잡는 맛이었다.

“그치? 난 잠깐만.”

이진아가 그들의 반응에 기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볼일을 보러 가는 듯했고, 김세준은 밥이 나와 멈춘 이야기를 다시 이었다.

“유나야. 미안한데 올해 하반기에 난 앨범을 낼 생각이야.”

김세준의 말에 강유나가 싱긋 웃었다.

“그래서요?”

“응? 그래서요가 아니라...”

머뭇거리는 김세준을 보며 강유나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제가 오빠보다 연하지만 그래도 가요계에선 선배니까 조언 하나 할게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

‘급하다고?’

“그때 오빠의 심정 잘 알아요. 빨리 앨범을 내고 빨리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곡으로 무대를 채우고 싶겠죠.”

“..!”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본 듯한 강유나의 말에 김세준이 토끼 눈이 되어 그녀를 바라봤다.

“근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전 되게 공감해요. 저도 오빠처럼 생각하다 크게 데였거든요.”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말에 김세준이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내가 지금 강유나라는 강력한 조력자를 거절하고, 앨범을 고집하는 이유는?’

‘빨리 무대를 하고 싶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강유나의 말 중 틀린 말은 없었다.

‘욕심이 있었어. 빨리 나만의 무대를 꾸미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 축제 때부터 느꼈던 감정.

그날의 기억을 농밀하게 분석해봤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때의 심정은.

분하고 조급했던 자신의 마음.

창밖으로 보이는 이진아를 보며 부러워하고, 아쉬워했던, 그날의 순간.

“후우...”

생각을 마친 김세준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강유나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조급했으며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앨범을 조금 늦게 낸다고 해서 자신의 가요계 생활에 큰 지장이 있을까?

아니다.

고작 한 분기, 길어지면 1년일 뿐.

김세준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마냥 고집쟁인 줄 알았는데,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팩폭 잘하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죠.”

싱긋 웃는 강유나였고, 김세준이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그래. 같이 한 번 해보자.”

그의 말에 강유나가 환한 웃음과 함께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지금 선택.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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