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강유나(2)
“듀엣이요?”
갑자기 듀엣이라니?
그가 알기론 향후 자신의 활동 계획은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연꽃’의 인기도 나날이 상승하는 중이었기에 당장 다음 곡을 발표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김세준의 의아함을 이해한다는 듯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놀랐어.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제안이라고?
“회사에서 추진한 계획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응. 키안 쪽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널 콕 집어서 같이 듀엣 하고 싶다고.”
‘키안이라...’
키안 엔터테이너먼트.
엔터테이너먼트 계에 후발 주자로 생긴 지 10년도 안 된 곳.
하지만 대기업에서 인수해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회사였다.
‘키안에 누구 있더라?’
아레스 뮤직과 달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고 대형 회사도 아니기에 기억나는 가수가 유달리 없었다.
“키안에서 누구랑 하는 겁니까?”
김세준의 말에 이해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 강유나. 강유나가 듀엣 제안을 해왔다.”
“...!”
놀라지 말라는 이해진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음에도 김세준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랫배가 울렁거리는 기분과 함께 전율이 등을 타고 기어오르는 느낌이다.
‘강유나라고? 강유나가 뭐가 아쉬워서 나랑?’
그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강유나의 제안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가수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아니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가수다.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한민국 대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예술가.
‘진아 누나를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
가창력의 비교가 아니라 대중성을 따져봤을 때의 이야기다.
이번 ‘연꽃’으로 첫 음악 차트 1위를 찍었던 이진아에 비해 강유나는 차트 1위를 못 찍어본 곡을 고르는 게 더 쉬울 정도다.
그녀의 수많은 곡 중 하나를 이야기해도 다들 ‘아! 그 노래!’라고 대답할 정도니까.
“강...강유나가 왜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이해진도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몰라. 수소문해보니까 강유나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데? 키안 측에서는 오히려 반대하는 것 같더라. 너 말고 다른 가수를 염두하고 있었는데 강유나가 하도 강경하게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 같아.”
‘뭘까? 강유나가 갑자기 왜?’
자신과는 일면식 하나 없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김세준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세준아. 이거 너한테는 굉장한 기회다. 강유나하고 너하고 친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라는 건 머리부터 잘 알고 있다.
신인치고 좋은 성적을 거두며 대중들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강유나에 비하면 자신은 보름달 앞에 반딧불.
이번 기회를 잘 살린다면 보름달은 아니어도 초승달 정도는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온전한 나만의 곡이 아니다.’
자신이 완전히 불렀던 ‘연꽃’조차 공연을 하려면 이진아의 이름값이 필요했던 곡이다.
하물며 강유나와 듀엣곡이라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긴 좋지만 딱 그 정도일 뿐.
그 이상의 메리트가 없다는 사실에 김세준이 머뭇거렸다.
“왜? 걸리는 거라도 있어?”
주저하는 김세준을 보며 이해진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누구나 원하는 기회. 그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고민하는 김세준이 이해가지 않았다.
신중한 모습이야 좋다지만 지금은 이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몰라도 직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장님...”
고민 끝에 김세준이 결정을 내렸고, 고개를 숙였다.
“전 앨범을 내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는 거절하겠습니다.”
‘오호. 앨범이라.’
김세준의 당돌한 대답에 이해진이 턱을 매만졌다.
앨범을 내고 싶다는 김세준의 말이 어떤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이 5월. 하반기에는 디지털 싱글이 아니라 앨범을 내고 싶다는 뜻이겠지.’
당장 강유나와의 듀엣을 하면 하반기 앨범 계획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정규 앨범이 아닌 EP 앨범이라 하더라도 8개의 곡이 적어도 4개에서 5개 정도의 곡이 들어갈 텐데.
그런 곡 작업을 하면서 강유나하고의 듀엣 활동까지 한다?
김세준이 천재라 해도 불가능한 초월의 영역이다.
몸이 남아나질 않을 테지.
“일리 있는 말이야. 가수라면 그런 욕심은 있어야지. 하지만...”
김세준의 욕심이 가수라면 응당 가져야 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이해진은 이해가 갔지만, 한편으론 진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수 없었다.
강유나와의 듀엣곡 이후, 앨범 발매.
강유나와의 듀엣의 흥망은 모르지만, 흥하기만 한다면 앨범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건 분명하리라.
게다가 아티스트 적인 측면으로 김세준과 강유나의 듀엣이 어떤 음악을 만들지 내심 기대되는 면도 있었지만.
“후우. 알겠다. 키안 측에는 우리가 적절하게 거절할 테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하면 돼.”
아레스 뮤직은 아티스트의 의견을 우선으로 두는 곳.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하더라도 아티스트가 싫다는 일을 억지로 권할 순 없기에 이해진이 억지로 입을 열었고, 김세준은 그의 말에 허리를 깊게 숙였다.
“감사합니다.”
***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아레스에서 거절했다고. 시기가 적절하지 않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상반기에 연꽃으로 활동하고, 하반기에 나하고 듀엣으로 활동하면 얼마나 시기적절한 일이야.”
키안 엔터테이너먼트의 사장인 차태규는 강유나를 앞에 두고 쩔쩔맸다.
명색의 사장이지만 키안 엔터테이너먼트에서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강유나였으니까.
막말로 당장 그녀가 회사와 재계약을 거절한다면 자신도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김세준 말고, 처음 구상했던 것처럼 임태현으로 가자. 임태현은 계속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고, 너랑 궁합도 나쁘지 않잖아? 생판 신인 보다 검증된 임태현이랑 하면 좀 더 반응도 괜찮을 거고.”
그녀를 달래듯이 말하는 차태규였지만 강유나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임태현은 싫어요. 그 오빠 자꾸 저한테 달라붙으려고 한단 말이에요. 진짜 거절한 거 맞아요? 사장님이 미리 밑밥 깔아 놓으신 거 아니죠?”
눈을 가늘게 뜨며 흘기는 강유나를 보며 차태규가 양손을 내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야. 야. 내가 그랬겠어? 우리 회사 사칙이 뭐냐. 강유나는 신이다. 어떻게 네 의견을 내 마음대로 바꾸겠어?”
“아, 진짜 그런 것 좀 하지 마요. 부담스러워 죽겠네. 그런 말 안 해도 재계약할 거니까. 흐음... 그럼 왜 거절한 거지?”
“진짜? 진짜다? 그냥 지금 계약서 작성할까 유나야?”
고민에 빠진 강유나를 두고 차태규가 설레발을 쳤지만, 강유나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 강유나를 보며 차태규가 길게 한숨을 내뱉곤 양손을 내밀며 어깨를 들썩였다.
“아니 유나야. 왜 그렇게 김세준을 고집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해서 김세준이랑 듀엣하는 게 너한테 도움 될 게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도움이 돼요. 무조건. 확신할 수 있어요.”
차태규의 의문에도 강유나는 강한 어조로 그의 불안에 답했다.
‘진짜 충격이었어.’
이진아의 제안으로 다시 보기로 본 ‘배진구의 음악캠프.’
맨 처음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이진아의 예능 무대를 보며 웃음 지을 뿐.
그리고 방송 중간쯤 되자 나타난 김세준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작은 기대감을 가진 채 지켜봤다.
이진아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그가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일지.
잔잔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시작된 그의 무대.
특이하고 신선했다. 가야금이란 악기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반주가 끝나고 그가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을 연주할 때 강유나는 반쯤 누워 있던 자세를 바로 고쳤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그의 무대.
“뭐야...”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
절로 감탄이 튀어나올 정도로 훌륭한 가창력은 아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눈과 귀가 다 즐거운 그의 무대에 강유나가 홀딱 빠져들었다.
“잘하네.”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라 무대를 잘했다.
이진아처럼 능숙한 손짓과 표정은 없지만,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왜 천재라고 했는지 알겠네.”
그리고 왜 무대체질이라고 했는지도.
능숙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손짓과 표정. 하지만 그 모든 게 자연스럽고 무대에서 빛이 났었다.
‘그때 결심했지. 한 번 같이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일단 알겠어요. 근데 나 아직 포기한 거 아니니까, 아직 홀드 해놔요.”
“응? 진짜로? 뭐 어떻게 하게?”
강유나의 말에 차태규의 얼굴에 불안감이 서렸다.
회사를 배려하고, 큰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아이.
대스타답지 않은 심성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아이지만, 그런 강유나에게도 작은 단점이 하나 있었다.
고집과 욕심.
그녀를 대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결심한 모든 걸 이뤄내야만 하는 그 성미에 골치 아팠던 과거가 종종 있었다.
“유나야. 설마 막 아레스 뮤직에 무작정 때 쓰러 가는 거 아니지? 거기 이해진 사장님 계신 곳이다. 대선배야. 그런 추태 부리는 거 아니다.”
“...!”
‘역시...’
움찔하는 그녀를 보며 차태규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강유나가 밖으로 나가려던 몸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차태규를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안 통할까요? 선배님이 나 엄청 이뻐하시는데.”
“그거 민폐야. 그리고 내 추측인데 아마 회사가 반대했다기보단 김세준이 반대한 걸 거야. 그러니까 아레스 뮤직에 폐 끼치지 말고 김세준을 설득해봐.”
“응?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레스 뮤직에선 반대할 게 전혀 없다고. 오히려 절을 해야 할 입장이지. 근대 거절당했다는 건 아티스트 측에서 거절한 거겠지. 게다가 아레스 뮤직이 유명하잖아. 아티스트의 의견 존중하는 걸로.”
“오호. 역시 사장님. 사장 자리를 짬으로 먹은 건 아니네요.”
“후우... 그렇다고 막 가서 억지 부리지 말고.”
“사장님. 나 어린애 아니거든요?”
입을 샐쭉 내밀며 불만을 토하는 그녀가 이내 밖으로 나갔고, 차태규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스타이긴 하지만 이제 24살.
그가 보기엔 아직도 한참 철부지였다.
***
“형님. 진짜 식사 안 드십니까?”
“응. 나는 생각이 없네. 주성이 너 많이 먹어.”
SBC에 음악 방송인 ‘뮤직 중심’에 출연하기 위해 대기실을 찾은 김세준이 이주성의 말에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형님이라고 부를 거야?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아, 죄송합니다. 이게 습관이 돼서. 쉽게 고쳐 지지가 않네요.”
이주성이 도시락을 먹다가 급하게 답했다.
체대 출신인 이주성은 편하게 부르라는 김세준의 제안에도 ‘형님’이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대했다.
“그래... 밥 많이 먹어라...”
“네. 형님도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바로 사오겠습니다.”
“고마워. 아 그리고 오늘 스케쥴은 이게 끝이지?”
김세준의 물음에 이주성이 씹던 밥을 꿀꺽 삼키고 대답하려 할 때, 그의 대기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쏠렸고, 김세준이 무신경하게 노크에 답했다.
‘벌써 내 차례인가?’
준비하라는 말을 전해줄 스텝으로 예상한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야금을 챙길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
“쿨...쿨럭! 강...강유나?”
밥을 차마 다 삼키지 못했는지 이주성이 밥알을 튀겨가며 기침을 했다.
얼마나 놀랐으면 저럴까.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김세준도 의외의 인물이 자신을 찾아오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예의가 없었나요?”
이주성의 모습을 보며 강유나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 친구가 너무 놀라서 그랬나 봐요. 근데 어쩐 일로?”
‘오늘 강유나는 라인 업에도 없었는데?’
아니 그전에 강유나의 최근 활동은 작년.
올해 아무런 활동이 없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음악 방송 대기실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짐작가는 게 하나 있긴 했다. 얼마 전 그녀에게 들어왔던 듀엣 제안.
“아,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역시.’
“아, 그 듀엣 제안은 너무 감사하지만, 회사가 반대를...”
“왜 거절했어요?”
“....”
말을 자르는 그녀.
자신의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김세준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김세준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이주성을 바라보며 매니저의 본분을 다하길 요청했다.
‘저 미련 곰탱이가!’
자신의 가수를 보호해야 할 매니저의 본분도 잊은 채 강유나의 외모에 홀라당 빠져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주성을 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이를 바득 갈았다.
“그 다시 말씀드리지만, 회사가...”
“저도 다시 말씀드릴게요. 왜 거절했어요?”
그의 말에 싱긋 웃으며 말하는 강유나.
울상이 된 얼굴로 김세준이 속으로 이해진을 찾았다.
‘알아서 잘 해결한다면서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