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5화 (15/148)

#15

강유나

“쟤 뭐야?”

‘배진구의 음악캠프’의 담당피디인 박지호는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김세준을 보며 넋을 잃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명실상부 이진아다.

김세준은 단순히 이진아의 이름으로 나올 수 있던 들러리.

그녀와 같은 곡을 리메이크했다는 점 때문에 섭외한 무명 가수였다.

배진구 선생님의 요청이 있긴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음반 순위를 보곤 제법 놀라긴 했으나, 고작 신인이자 무명.

그냥 실수 안 하고 적당히 건질 만한 앵글만 나와줘도 만족할 심산이었다.

‘그림 기가 막히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매혹적이고 빛나는 무대였다.

가야금 연주와 그의 노래의 절묘한 조화가 방청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편집까지 더해진다면, 완벽한 그림이 만들어지리라.

“카메라! 카메라 지금 잘 찍어 놓으라고 해!”

박지호가 고개를 황급히 돌리곤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주인공은 이진아가 아니라 저 새파란 신인이었다.

***

자신이 출연한 ‘배진구의 음악캠프’가 방영되고, 모니터링하던 김세준은 제법 적잖게 놀랐다.

“피디님. 편집 실력이 대단한데?”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봐도 괜찮았던 무대라고 자부한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하지만 방송에 그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다 들어나긴 힘들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방송이 현장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 우려를 씻어내는 완벽한 편집이었다.

입장부터 풀샷으로 그를 부각하더니, 연주가 시작되자 풀 피겨 샷(Full Figure Shot)으로 노래와 연주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감미롭게 연주하는 김세준의 얼굴과 넋을 잃은 듯한 방청객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빠르게 교차하는 장면.

“괜찮네.”

김세준의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말려 올라갔다.

고작 무대 한 번.

그럼에도 방송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겼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방송을 보고 있던 네티즌들은 술렁거렸다.

[지금 배진구의 음악캠프 보는 사람?

이진아 특집인데 저 남자 가수 뭐임? 노래 미쳤네...]

-나 지금 보고 있음. 처음에 얼굴 보고 실망했는데 무대는 개쩜.

-관객들 표정 보소.

-매력쩌는 듯. 가야금도 되게 매력적이네. 개인적으로 이번 무대 되게 좋았음.

-그래도 기대했던 비쥬얼이 아니었어... 사진빨이었구나....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 섹시 그 자체. 오빠 나 죽어...

그의 얼굴에 실망한 몇몇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대체로 호평 일색이었다.

술렁거리는 인터넷 속 호사가들의 움직임은 예상 외의 파장을 일으켜왔다.

“이거 진짜야?”

끝까지 방송을 모니터링하며 인터넷 속 여론을 살펴보던 김세준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순간 떨어트릴 뻔했다.

믿기지 않는 액정 속 글자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박이네...”

여러 커뮤니티에 언급된 힘일까?

그의 이름이 떡하니 실시간 검색어에 자리잡았다.

심야 시간이라는 메리트가 있지만, 자신의 무대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감명 깊었다는 뜻.

뿌듯함과 자신감이 차오르며 스스로 대견하다는 감정이 들 때, 그의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아버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 건 그의 아버지인 김창용이었다.

하나의 동영상을 보낸 걸 확인한 김세준이 의아한 마음과 함께 동영상을 클릭했다.

“웬 동영상이지?”

익숙한 공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본가.

널찍한 거실이 보이고, 이어서 그의 어머니인 박진숙이 화면에 나타났다.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팔짱을 낀 채 티비를 주시하고 있는 그녀.

“뭘 그렇게 찍어대요?”

동영상을 촬영하는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박진숙이었고, 김창용은 소리죽여 웃을 뿐이었다.

촬영을 멈추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를 확인한 박진숙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티비로 돌렸다.

“하하...”

반진숙의 반응에 김세준이 턱을 긁적였다.

카메라에 비친 티비 속엔 ‘배진구의 음악캠프’가 방영 중이었다.

아마 아버지를 통해 자신이 저기에 나온다는 걸 알게 됐으리라.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보가 못마땅하신 거겠지.

마음이 살짝 무거워질 때쯤, 김세준이 탄식을 내뱉었다.

“어?”

박진숙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티비 속에 김세준이 나오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을 부릅 떴다.

그의 연주가 시작 되자, 팔짱을 낀 팔을 풀고 티비에 가까이 붙으며 시선을 티비에서 떼지 않았다.

“엄마?”

그런 박진숙의 모습에 김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김창용의 큭큭 거리는 작은 웃음이 들려왔다.

무대가 진행되어 갈수록, 미간이 잔뜩 모여 있던 박진숙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못마땅하게 여기던 눈빛에 기특함이 가득 서리곤 이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목을 앞으로 내밀며 빨려 들어갈 듯 티비를 바라보고, 팔짱 끼던 손이 어느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

“당신! 당장 동영상 안 멈춰요?”

김세준의 무대가 끝나자 붉어진 얼굴로 김창용을 향해 버럭하는 박진숙.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김창용이 보낸 메시지 하나.

‘아들. 무대 좋았다.’

그 누구에게 들은 말보다 더욱 더 힘이 되는 기분.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

이진아는 오랜만에 맞은 휴일에 인적 드문 카페를 찾았다.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그녀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몇몇 이들이 있었지만 이내 그 관심도 짜게 식을 때 한 여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비명을 질렀다.

“까악! 언니! 오랜 만이야!”

이진아와 비슷하게 얼굴을 가린 여자.

하지만 이진아는 그녀가 자신의 오랜 친구라는 걸 단숨에 알아차리곤 목소리를 높였다.

“기집애! 이게 얼마만이야!”

한참을 호들갑을 떨며 서로를 반기던 둘이 진정이 됐는지 자리에 앉곤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진짜 언니 요새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커피 한 잔 마시기도 힘드네.”

“나만 바쁘니? 유나 너도 라디오 하나 새로 들어갔다며? 축하해.”

이진아의 말에 유나라 불린 인물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순백처럼 새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진한 쌍커풀로 인해 더욱 더 이국적으로 보이는 미녀.

대한민국 국민 여동생 중 한 명으로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독보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강유나였다.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작곡과 작사까지 하며 내는 곡마다 히트곡인 장래가 촉망한 가수이자, 이진아하곤 혹독한 연습생 생활을 같이한 오랜 친구였다.

“감회가 진짜 새롭다. 언니. 언니하고 이런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그녀의 말에 이진아도 강유나를 기특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선생님에게 혼나고 연습실에서 나랑 같이 밤새 울 땐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진아의 한 마디에 강유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때 생각하면... 진짜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지. 언니 없었으면 난 아마 가수 데뷔 못 했을 거야.”

치열하고 가혹했던 그때의 경쟁.

동기들이 하나둘 꿈을 접고 포기할 때에도 끝까지 남아 서로의 위안이 되었던 둘이다.

결국 이진아는 아레스 뮤직 오디션을 통과하며 성공적인 가수가 되었고, 강유나는 작은 매니지먼트에 들어갔지만, 이젠 그 매니지먼트를 책임지는 대형 가수가 됐다.

“나도 너 없었으면 마찬가지야.”

이진아가 따뜻하고 진심이 가득 목소리와 함께 강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 또한 그때 당시 강유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때 만들었던 진하고 농밀한 우정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며 바쁘고 힘든 나날에도 종종 약속을 잡아 회포를 푸는 둘이었다.

“언니 이번에 낸 노래. 너무 좋더라. 그리고...”

강유나가 뒷말을 흐리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장난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답가로 부르는 남자. 김세준이라고 했나? 무슨 사이야? 솔직하게 불어!”

“뭘 솔직하게 불어.”

“어허! 내 눈은 못 속여.”

강유나의 장난에 이진아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너도 참 한결같다. 만날 때마다 그러네. 미안한데 아무 사이 아니란다.”

이진아의 말에 강유나가 입을 쌜쭉거리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흐음. 그래? 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세준이는 그냥 동생이야. 배울 거 많은 천재 동생.”

“천재 동생?”

강유나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호기심을 표했다.

십 년을 훌쩍 넘은 기간을 알고 지낸 사이지만, 그녀가 누구를 천재라고 표현한 걸 들은 적 없다.

자기만의 철학과 가치관이 확고한 이진아인 만큼, 가벼운 평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질투 나네.’

자신도 그녀에게 천재라는 칭찬 한 번 듣지 못한 걸 알기에, 강유나가 작은 질투심을 느끼며 재차 물었다.

“그분 곡도 좋긴 하던데. 근데 천재라고 부를 것까지 있어?”

이진아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말도 마. 그냥 이번 곡은 세준이가 다 한 거나 다름없더라. 답가라는 컨셉도 세준이가 제안한 거였고. 난 몰랐는데 피디님이 그러시더라고. 이 곡 브릿지랑 코러스는 세준이한테 도움받았다고. 작곡이나 작사나 다 세준이 도움 받은 꼴이지.”

‘어머?’

이진아의 말에 강유나의 눈에 진한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번 이진아의 곡의 가장 큰 장점은 가슴 절절하게 만드는 브릿지와 코러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정을 잘 녹여낸 가사다.

자신이 생각한 장점을 김세준이란 남자가 모조리 포함되어 있다는 말에 강유나는 김세준을 인정하기로 결심했다.

“음악 센스는 있나 보네.”

“그치. 근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알아?”

“뭔데?”

“나 저번에 배진구 선생님이 하시는 음악캠프 나갔잖아. 그때 세준이도 같이 나갔거든. 혹시 봤어?”

“아니. 나 그때 스케쥴 있었어.”

이진아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강유나에게 꿀밤 때리는 듯한 시늉을 했다.

“언니 방송도 안 보고. 서운하다 너? 어쨌든 한 번 봐. 후회 안 할 거야. 특히 세준이 연주는 꼭 봐.”

“응? 언니 연주 말고?”

“내 연주도 봐야지! 근데 세준이 할 때 잘 봐. 얘가 카리스마랑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야. 순식간에 관객들을 사로잡더라. 단숨에 눈치챘지. 얘는 무대체질이구나. 그리고 진짜 천재구나. 반주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데... 어우... 그때 진짜 나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잖아.”

팔뚝을 비비며 말하는 이진아를 보며 강유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정도야?”

“응. 보고 느꼈어. 신인이지만 배울 게 많은 친구겠구나.”

“재밌네...”

쉼 없이 칭찬한 이진아의 말 덕분일까?

강유나의 얼굴에 호기심이 잔뜩 실렸고, 그녀는 김세준이란 인물을 머릿속으로 남겨뒀다.

***

5월은 가수들이 유독 고대하고 기대하는 날이다.

대학축제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시절이니까.

청춘을 만끽하는 젊음의 현장에서 그들과 하께 즐기며 노래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비도 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관중들과 함께 무대를 즐길 수 있다는 기쁨도 가수들이 5월을 기다리게 만드는 큰 이유였다.

김세준 또한 지방의 한 대학축제에서 공연을 마무리하고, 차 안으로 돌아왔다.

“형님. 무대가 별로셨습니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는 김세준을 보며 차에서 대기하던 이주성이 우려를 표했다.

“응? 아니야. 그냥 아쉬워서.”

이주성의 우려에 김세준이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무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연꽃’의 고공행진. 20위까지 치솟은 성적은 각종 대학교에서 그를 섭외하게 만들기 충분한 순위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의 발표곡이 ‘연꽃’ 하나라는 점.

‘빨리 더 곡을 내고 싶다.’

아직도 무대 위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이진아와 그녀에게 열광하는 관중들을 향해 김세준이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냈다.

***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작스러운 이해진의 호출에 김세준은 아레스 뮤직 사옥으로 향했다.

“사장님. 다녀왔습니다.”

“고생했다. 세준아.”

이해진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던 이해진이 밝은 미소와 함께 그를 반겼다.

“말씀하실 게 있으시다고요?”

“음...”

이해진이 다리를 꼬며 그를 넌지시 바라봤다.

“세준아. 너 듀엣 한 번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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