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3화 (13/148)

#13

첫 방송

“후우. 진아는 초대박이 났지만, 세준이는 괜찮을까?”

“나도 몰라. 알면 지금 이렇게 살 떨리며 대기하고 있을까.”

“실시간 순위 100위 안에만 들어가길 바라면 욕심일까?”

“욕심이지. 당연히 욕심이지. 생판 신인인데. 그런데 세준이라 그런가. 뭔가 기대감이 생긴단 말이지...”

이해진의 말은 하동준도 이견 없이 동의하는 바였다.

곡도 좋고, 상황도 매끄럽게 흘러왔다. 김세준을 단독 인터뷰한 기사도 난리가 났고, 이진아의 곡이 흥행하면서 아레스 뮤직에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갖 홍보성 기사를 띠었다.

그럼에도 쉽게 성공할 수 없는 게 이 바닥이다.

“뭐. 당장은 안 돼도 방송도 있고. 천천히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기대하지 않으려는 듯 중얼거린 이해진이 핸드폰으로 음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새벽 1시. 김세준의 신곡이 올라가고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를 따라하듯 하동준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뮤직인’의 화면.

키지마자 자신들이 공을 들여 들어간 ‘뮤직인’의 배너에 가야금을 들고 있는 김세준의 모습이 보였다.

배너 좋고.

이어서 실시간 차트로 접속하자 가장 위에 보이는 이진아의 ‘연꽃’.

그 뒤로 끊임없이 엄지손가락을 내린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그리고 한 번...더?

무의식적으로 엄지손가락을 내리려던 이해진의 손가락이 급하게 멈추고, 두 눈이 동그래진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고개를 황급히 들어 하동준을 바라봤고, 때마침 하동준도 똑같은 걸 봤는지 놀란 눈으로 이해진을 쳐다봤다.

“형?”

“진짜냐... 이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로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상대방에게 내민다.

<36위. 연꽃?김세준.>

유례없는 대박이었다.

***

“우와오와와와!”

이해진과 하동준이 서로의 눈을 의심하고 있을 그때.

집에서 입술을 꽉 깨물고, 흠뻑 젖은 손바닥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던 김세준도 환희 섞인 경악을 내질렀다.

“3...36위?”

보고도 믿지 않는 순위.

이해진과 하동준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그도 기대감을 적당히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의 곡의 흥행.

그도 알지 못하는 미래였기에 이진아의 ‘연꽃’처럼 자신만만할 수 없었고, 작은 불안감이 가슴에 똬리를 튼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대박 맞지?”

오늘 안에 100위 권에만 들어가도 대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음악 차트에서 중위권이라니.

차트에 이름 한 번 올려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가수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김세준 같은 신인이 발매 당일 바로 차트에 올라가는 건 기적 같은 일.

그걸 증명하듯 이해진과 하동준을 비롯하여 다른 이들이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 속에서 김세준은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거 같았다.

몇십 년이나 염원하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시작이야.”

김세준의 시선이 ‘뮤직인’ 차트 맨 꼭대기에 머물렀다.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

기쁘긴 했으나 만족하진 않았다.

***

-와. 이분 노래 뭐임? 신인 맞음?

-레알 미친 듯. 난 개인적으로 이진이가 리메이크한 것보다 김세준이 한 게 더 좋음.

-난 둘 다 괜찮은데 둘이 답가 형식해서 하는 게 쩌는 거 같아.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오빠 나죽어...

-가야금 소리 오진다. 진짜.

별이 다섯 개. 노란 색 별이 가득 찬 음반 리뷰를 보며 김세준은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호평으로 가득한 리뷰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게 만들었고, 회사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 그의 ‘연꽃’은 2단계 상승해 34위까지 안착, 순위도 착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김세준을 보는 사람마다 축하의 한 마디를 남겼고, 김세준은 웃으며 그들의 축하에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이해진의 방으로 향했고, 거기엔 이해진뿐만 아니라 이진아와 처음 보는 남성이 있었다.

“사장님. 부르셨어요?”

“어. 세준아! 축하한다.”

“축하해. 세준아.”

“축하드립니다.”

이해진과 이진아 그리고 낯선 남자의 어색한 축하에 김세준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했다.

“감사합니다.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테니까.

“됐어. 사람 무안하게 그러지 말고, 인사해. 여기는 오늘부터 네 매니저 할 사람인 이주성.”

“반갑습니다. 이주성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허리를 90도 숙이며 인사했고, 김세준이 떨떠름하게 받았다.

“아, 반갑습니다. 김세준입니다. 그런데 매니저요?”

“이제 너도 활동 시작할 건데, 매니저 없이 다닐 순 없잖아. 앞으로 바빠질 텐데. 도와줄 사람은 있어야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 꾸벅 허리를 숙이는 이주성을 보며 김세준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매니저가 될 이주성이란 사람은 뭐랄까.

막 군대를 제대한 사회 초년생의 느낌이다.

앞으로 자신과 한 몸처럼 다닐 사람. 과하게 긴장한 느낌이 있지만 나쁘지 않다.

초면부터 푸욱 퍼져 있는 것보단 이렇게 빳빳한 사람이 낫다.

차차 친해지면 빳빳한 것도 괜찮아지겠지.

시선을 그에게 거둔 후 김세준이 이진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곤 축하를 건넸다.

“축하해요. 누나. 1등 하신 거.”

김세준은 이제 34위. 그에 반해 이진아는 1위,

진작에 축하받아야 할 인물은 그녀였다.

“고마워. 나중에 밥 한 끼 먹자. 내 생각엔 가사 컨셉이 큰 도움이 된 거 같아.”

자신을 치하하는 그녀에게 김세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누나가 곡을 잘 살린 거죠.”

빈말이 아닌 진심이다.

그의 도움 없이도 1위를 할 게 분명했으니까.

“둘 다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 그래서 이번에 둘한테 방송 들어왔다. 이번 주 금요일. 둘 다 준비해.”

“어머? 진짜요? 저랑 세준이랑 같이 나가요?”

이진아가 폴짝 뛰며 좋아했고, 김세준의 눈빛에 기대감이 서렸다.

“어. 배진구의 음악축제. 선생님이 직접 하시는 프로그램인데 이번에 리메이크도 했고, 워낙 진아를 좋아하셔서 힘 좀 쓰셨나 보더라. 그러니까 진아가 메인이고, 세준이는 그냥 게스트. 그래도 신인한테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는 거 알지?”

“... 진짜에요?”

이해진의 말에 김세준이 눈을 끔뻑거렸다.

첫 방송부터 지상파 방송이라니.

“어. 선생님이 제작진한테 강하게 요구했나 보더라. 제작진 측에서도 재밌을 거라고 판단한 거고.”

“첫방부터 지상파인 거 대단한 거다? 세준아?”

‘알지. 지독히도 잘 알지.’

전생에 가야금 명인으로 이름을 드높였을 때에도 지상파 방송에 촬영 나간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 데뷔하자마자 첫 방송이 지상파 방송이라니?

세삼스럽게 다시 실감한다.

대중가요의 인기를.

“감사합니다!”

김세준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이해진이 손사레를 쳤다.

“가서 선생님한테 인사해. 솔직히 우리보단 선생님이 추친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

회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소와 달랐다.

지금까지와 달리 오늘부터는 이주성이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타게 됐으니까.

몸은 확실히 편했지만, 참을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가 차량을 가득 채워 심적으로 불편했다.

‘말주변이 있는 사람은 아닌가?’

묵묵히 운전만 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김세준이 운을 뗐다.

“저. 주성씨?”

“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아, 전 25살입니다.”

“오. 나보다 어리네요. 말 편하게 해요. 전 26살이라 1살 차인데. 너무 어렵게 대할 필요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편하게 하시면 저도 편하게 하겠습니다.”

‘강적이네.’

칼같이 대답하는 그를 보며 김세준이 혀를 내둘렀다.

군대에 갓 전역한 초년생이 아니라, 막 입대한 신병 같았다.

빳빳하게 굳어 있는 그에게 김세준이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그의 고향과 가족. 어떻게 매니저 일을 하게 됐는지 등 간단한 사항들이었고. 이주성은 반문 없이 그의 질문에 묵묵히 대답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말주변이 없는 사람도 흔하지 않은데.’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가볍지 않은 그의 모습이 썩 나쁘지 않다.

‘이런 사람이 친해질수록 진국이거든.’

“나한테 궁금한 건 없어?”

마치 군대 선임이 신병한테 말하는 듯한 질문. 하지만 이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말에 바로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어떻게 아레스 뮤직과 계약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응? 뭐지? 이 뜬금없는 질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기에 김세준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피었고, 찰나의 칠묵이 차량을 휘감았다.

“아, 친동생이 한 명 있는데 가수를 꿈꾸고 있거든요.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대답 없는 김세준의 기분이 상했다고 착각했는지 이주성이 다짜고짜 사과했고, 김세준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야.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그냥 잠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그냥 뭐 우연이었어. 어디 오픈마이크에 참가하게 됐는데 거기에 우연히 이해진 사장님이 계셨고, 그러다 캐스팅된 거야.”

“아하. 감사합니다! 예은이한테도 알려줘야겠네. 오픈 마이크...”

잊어먹지 않겠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였고, 그의 혼잣말을 들은 김세준이 눈을 크게 떴다.

‘예은이? 설마 이예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여성.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지워버렸다.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

배진구의 음악축제.

지상파 BBS에서 방영하는 음악프로그램.

비록 심야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지만, 고정 시청자를 가지고 있는 제법 인기 있는 음악방송이었다.

벌써 5년이나 방송하는 프로그램으로, 배진구와 게스트의 토크, 게스트의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방송이었다.

배진구의 나긋나긋하고 배려 넘치는 입담은 시청자들은 물론, 출연진들에게도 큰 호평이 자자했다.

BBS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김세준은 곧바로 배진구의 대기실을 찾아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생님! 신인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더 빨리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김세준은 대기실을 들어가자마자 허리를 크게 숙였다.

배진구. 대한민국 가요계의 거장이자, 후배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존경을 받는 인물.

이순을 넘길 때까지 사소한 잡음 하나 없는 훌륭한 품격을 갖춘 대선배이자 인격자.

그런 자의 곡을 받아서 리메이크 한 만큼, 진작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게 맞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까마득한 후배로서 예의에 한참 어긋나는 일.

하지만 배진구는 깊게 파인 주름이 한 번 더 파일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반겼다.

“아이고. 어서 와요.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내 곡을 그렇게 훌륭하게 리메이크해줘서 고맙지. 노래 잘 들었어. 진짜 좋더라고.”

“아닙니다. 선생님. 그리고 오늘 출연도 선생님이 먼저 제안하셨다고 들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제안할 수밖에 없지. 곡을 그렇게 잘 만들었는데,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

“네?”

이해진이 되묻자, 배진구가 싱긋 웃었다.

“그렇게 좋은 곡. 라이브론 어떨지 궁금할 수밖에 없지. 기대하고 있어요.”

***

이어서 다른 촬영까지 마치고 온 이진아도 제 시각에 도착하자, 배진구의 음악캠프의 촬영이 시작됐다.

배진구가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가 방청객들에게 인사하며 오프닝을 시작했고, 배진구의 소개와 함께 이진아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의 반면 김세준은 무대 뒤에서 가야금을 꼼지락거리며 대기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오늘의 메인은 이진아다.

김세준은 그저 이진아가 ‘연꽃’을 부르고 난 뒤 등장해, 그의 버전으로 ‘연꽃’을 불러 답가하는 게 전부.

맡은 게 크다고 볼 수 없는 일이지만 두근거리며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무대 및 방송에 나가는 날이었으니까.

‘첫 공식 무대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슬쩍 무대를 보니 이진아가 노래 한 곡을 부르고 있다.

청아한 음색으로 무대를 채우는 그녀. 은은한 조명을 받는 그녀의 얼굴엔 행복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런 이진아를 보며 김세준이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도 빨리 나가고 싶네,”

빨리 무대에 나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이 생김과 동시에 김세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대기실에서 만났던 배진구가 했던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기대하고 있다는 그의 말.

그 말을 떠올린 김세준이 주먹을 꽉 말아쥐며 조용히 다짐했다.

“기대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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