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데뷔와 녹음
김세준이 오픈마이크에 참가했던 날.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건 이해진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한 명의 손님으로 그의 무대를 구경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김주영.
‘오픈마이크’라는 이벤트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긴 했지만,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가진 않았다.
그저 맥주를 홀짝이며 노래를 감상하고 일상의 피로를 푸는 정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거기서 김세준의 무대를 봤다.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모습.
남자인데도 아름다웠고, 부드러운 선율이 울려펴지며 가슴에 진한 감동을 남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
그는 자신이 받았던 감동을 오로지 혼자만 가지고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한 번 보내볼까?’
자신의 핸드폰에 찍힌 한 영상.
거기엔 김세준이 가야금을 뜯으면서 노래했던 그 날의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날 이후로 수십 번도 더 틀어봤던 영상.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그의 무대.
‘나만 보긴 아까워!’
결심한 김주영은 그 영상을 ‘페이스온’이라는 SNS의 유명 채널 관리자에게 보냈다.
이 영상이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이 받았던 감동을 다른 자들도 느끼길 바라면서,
***
‘하아... 진짜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이해진은 김세준이 들고 온 곡을 듣곤 감탄과 경악 그리고 기쁨과 난처함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벌써 네 번째다.
네 번, 그것도 연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곡을 만든 괴물 같은 놈.
‘이런 놈의 데뷔를 1년 후에 시키라고?’
매니지먼트 사장으로서,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납득할 수 없었다.
당장 가요계를 휩쓸 인재를 일 년이나 허송세월하게 두라니.
‘그렇다고 송 피디 곡을 버리는 것도 말이 안 돼.’
그의 취향은 김세준이 만든 곡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송대준의 곡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었다.
‘어느 곡이든 세상에 나가기만 한다면...’
대중들을 사로잡을 희대의 명곡이 되리라.
딜레마에 빠진 이해진이 급하게 하동준에게 연락했다.
자신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내려온 그.
하지만 하동준 또한 이해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반응이었다.
곡에 감탄하다가, 이내 당황해한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그를 보면서 이해진이 고뇌에 빠졌다.
‘두 곡 다 살릴 방법이 뭘까...’
그런 이해진의 고민을 해결해준 건, 다급히 작업실로 들어온 한 직원이었다.
“사...사장님! 저희 대박 났습니다!”
작업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는 뭐가 그리 기쁜지 호나한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고, 김세준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케팅팀?’
이름까진 기억이 안 나지만, 하동준이 회사를 안내해줄 때 마케팅팀에 있던 얼굴이었다.
“뭐가? 뭐가 대박 났다는 건데?”
이해진이 대표로 묻자, 직원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거 보세요! 완전 난리 났습니다. 지금!”
핸드폰을 꺼낸 그가 ‘페이스온’에 접속하더니 한 영상을 틀어 그들에게 보여줬다.
“...!”
“이...이거 세준이 아니야?”
“맞아. 내가 처음 세준이 본 날. 그 날인데?”
그 영상엔 작은 무대 위에서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하는 김세준이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그를 내리쬐고, 풋풋한 미소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다웠으며, 가야금의 선율이 영상미에 백미(百媚)를 더했다.
“노래가 이거였어? 대박이네...”
하동준이 홀린 듯 중얼거렸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무대를 지켜봤던 이해진 조차 오랜만에 보는 그의 무대에 세삼 다시 반했다.
가야금 연주와 노래의 조화가 그들의 시선을 빼앗았고, 짧은 영상이 끝나자 직원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대박은 이겁니다. 사장님. 이 영상 좋아요가 3만이고, 댓글이 4천 개입니다. 조회 수도 10만이고요!”
“...!”
“정...정말이야?”
“네! 게다가 이거 올라온 날짜가 고작 어제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몰라요.”
SNS의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일평생 무명으로 지내던 가수도, SNS에서 떠서 갑작스럽게 인기 가수의 반열에 드는 것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많은 매니지먼트에서도 SNS홍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아레스 뮤직도 마찬가지였고.
“이게 웬 떡이야? 세준아. 이거 네가 계획한 일이야? 네가 찍은 영상이냐고.”
하동준이 환한 웃음과 함께 김세준을 바라봤고, 김세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찍은 영상 아닙니다. 애초에 영상 찍을 생각도 못했고요.”
김세준도 영상을 보며 적잖아 놀랐다.
그날 무대를 누군가 영상으로 찍어놨을 줄이야.
얼떨떨하면서도 가슴 속에서 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영상에 달린 댓글들.
간헐적으로 홍보 댓글도 보이긴 하지만, 하나같이 자신의 무대를 칭찬하는 말뿐이다.
자신의 무대가 대중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줬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솟구쳐 올랐다.
“이거.. 계획 전면 수정해야겠네.”
직원의 말대로 이 정도면 당분간은 파급효과가 더 일어날 터.
더욱더 많은 대중에게 김세준이 노출될 거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향한 관심도 높아질 게 확실하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않나.
일 년이라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생성된 관심도 싸늘하게 식고도 남을 기간이었다.
“세준아. 진아야. 둘 다 준비해. 진아는 송피디 곡으로, 세준이는 자작곡으로. 두 곡 다 발표한다.”
이해진의 결심에 찬 한 마디.
김세준의 데뷔가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
그들의 예상대로 동영상의 인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동영상의 좋아요는 10만을 훌쩍 넘겼고, 조회 수도 수백만을 넘겼다.
김세준의 대한 세간에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를 아는 지인들이 간단한 신상을 나불거렸지만, 고향과 학교 출신 등 사소한 정보뿐.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렀고 김세준의 대한 관심이 시들어질 때, 커뮤니티에 몇몇 글들이 올라왔다.
-페이스온에서 가야금 뜯으면서 노래 부르던 남자, 아레스 뮤직 소속 가수였네!
-헐, 진짜임?
-ㅇㅇ 아레스 뮤직 홈페이지에 프로필 사진 뜸.
-완전 대박. 와 역시 아레스 뮤직 소속 뮤지션들이 개성 하나는 넘치는 듯.
-곡은 언제 낸대요? 아직 데뷔는 안 한 거에요? ㅜㅜ 앨범 나오면 무조건 들어야지!
-그런 듯? 프로필에 아직 앨범 관한 건 없음.
“반응 화끈한데요?”
그 말을 반영하듯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린 걸 보자, 아레스 뮤직 홍보팀 직원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좋아. 이렇게 식지 않게 떡밥 계속 던져줘야지.”
홍보팀장이 잘했다는 듯 어깨를 두들겼고, 직원은 다른 커뮤니티에도 똑같은 글을 남겼다.
자신들이 의도했던 일은 아니지만, 벌어진 일.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했고,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심산이었다.
재빨리 김세준의 프로필 촬영을 한 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커뮤니티에 알린다.
별다른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김세준에 대한 이야기가 각 커뮤니티마다 돌았고, 덕분에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홍보팀이 자신들이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김세준 또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리메이크곡이라고 해서 굳이 가사를 고스란히 쓸 필요는 없다.
약간의 변경은 가능하니까.
손가락으로 펜을 굴리며 동시에 머리도 굴려보지만 명쾌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똑같이 가야 하나?”
그러기엔 뭔가 또 아쉽다.
“뭔가 신선하고 좋은 시도가 없을까?”
신음을 삼키며 고민해 봐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는 컴퓨터에 저장된 한 메모장을 켰다.
그러자 수두룩하게 적힌 글자들.
그가 회귀하기 전 좋아하고 자주 들었던 그만의 플레이리스트.
기억을 더듬어가며 작성했던, 지금은 그만이 알고 있는 노래들의 향연이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그가 곡의 제목들을 훑어봤다.
곡의 컨셉들을 떠올리며 혹여 자신이 쓸만한 게 있을까 하면서.
“이건 그냥 이별 발라드 곡이고, 이건 참신했던 병맛 댄스곡. 그리고... 어?”
턱을 괴며 보던 그의 눈에 흥미로운 곡 두 개가 들어왔다.
‘평범한 남자가 사랑하는 방법.’
‘평범한 여자가 사랑하는 방법.’
“이 두 곡... 서로 답가였지?”
답가.
남의 노래에 화답하는 노래.
즉, 곡의 스토리가 한 곡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두 곡이 연결된다는 소리다.
“이거 재밌지 않을까?”
‘연꽃’의 원곡도 사랑 노래이자 이별 노래다.
‘이진아가 여성화자 입장에서, 내가 남성화자 입장에서 부른다면?’
김세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괜찮은데?’
리메이크곡.
그러기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새롭고 참신하지 않나.
‘아직도 종종 화자 되는 명곡을 리메이크 한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시선이 집중될 테고. 거기에 더해 답가라는 컨셉까지 붙인다?’
생각만 해도 재밌다는 듯 김세준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고, 그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진아 누나. 누나 가사 다 썼어요?”
이진아와 알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째.
서로 편하게 말할 정도로 가까워진 뒤였다.
“가사? 아니 왜?”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슬쩍 웃곤 말을 내뱉었다.
“누나, 이러는 거 어때요?”
이어진 그의 설명.
아직 답가라는 컨셉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기.
김세준의 설명을 들은 이진아가 참신하다며 좋아라했고, 나중에 서로 가사를 맞춰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순조롭네. 모든 게.”
일이 척척 진행되어간다.
김세준의 데뷔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그 뒤로부터 다시 한 달이 흘렀고 연말이 가까워졌지만, 김세준은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세션 녹음과 보컬 녹음.
음반제작에 있어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이다.
이 녹음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뒤에 이루어지는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김세준이 자신의 곡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마지막 단계.
믹싱과 마스터링은 그가 손댈 영역이 아니다.
그건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일.
물론 그도 참여할 순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큰 영향을 끼칠 순 없다.
의견 제시 정도일 뿐.
‘일단 녹음부터 확실하게 해야지.’
가야금을 챙겨들고 작업실로 향했고, 그의 첫 녹음을 기념하는 듯 거기엔 송대준 말고도 이해진과 하동준도 함께 있었다.
“오늘은 가야금 녹음이지?”
“네.”
이해진의 질문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세션인 가야금을 녹음하기 위해 작업실을 찾아왔으니까.
“첫 녹음이라고 긴장할 텐데, 너무 긴장하지 말고. 힘 빼고 가볍게 해. 가볍게.”
‘긴장하지 말라고?’
이해진의 조언.
그 조언에 김세준은 고맙지만 작은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생에 기억만 떠올려도 거진 40년을 가야금을 치고 살았던 삶이다.
‘진짜 오래도 쳤구나.’
세삼 떠올리니 아득한 세월.
이렇게 오랫동안 가야금을 옆에 두고 살았을 줄이야.
‘내 삶에서 가야금을 빼면 아무것도 없겠지.’
이젠 김세준 삶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가야금.
그런데 그런 가야금을 뜯는데 긴장하지 말라고?
누가 숨 쉬는 데 긴장을 한단 말인가.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김세준이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녹음이 시작됐다.
‘처음엔 글리산도(Glissando).’
가야금 주법으론 여러 줄 훑기라고 말하는 주법.
나란히 놓여 있던 여러 개의 줄을 한손가락으로 연속해 훑어내는 주법이다.
김세준이 가야금의 현을 훑자 곡의 분위기가 점점 부드러워지며 듣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심어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레몰로(Tremolo).
같은 음을 빠른 속도로 끊어지지 않게 지속시켜주며 곡의 안정감을 유지시켰다.
막힘없이 연주하는 김세준의 모습.
이해진과 하동준은 막힘없이 연주해나가는 김세준의 모습을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첫 녹음이라면 누구나 긴장하고, 어색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첫 녹음이 아니더라도, 내로라하는 가수들도 녹음 자체에 고생하는 일이야 수두룩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 편안한 미소와 함께 녹음해나가는 김세준.
꼴을 보아하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 같았다.
그런 김세준을 보며 하동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녹음이 이렇게 쉬운 거였냐...”
“몰라. 현타 올 거 같네...”
음악 천재라고 불리는 이해진도 고생하는 게 녹음.
하지만 지금 녹음하고 있는 김세준.
그의 모습은 고생하곤 거리가 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