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9화 (9/148)

#9

데뷔 혹은 명곡

감미로운 노래가 작업실에 울려 퍼지자, 김세준은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송대준이 이 곡을 만들었을 줄이야.

전국적으로 히트 친 건 물론, 김세준 또한 이 노래에 한동안 빠져 살지 않았던가.

‘기분 묘하네. 이거.’

얼굴도 모르지만, 천재라고 칭송하며 좋아했던 인물이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기분이란.

입안이 썼다.

‘근데 왜 이진아는 이 곡으로 노래를 안 부르고, 스스로 작곡을 하고 있는 거야?’

싱어송라이터의 고집을 접어둘 정도로 이 곡의 퀄리티는 남달랐다.

그 증거로 이진아는 미래에서 송대준이 만든 이 버전으로 노래를 불렀다.

‘무슨 문제가 있나?’

단순히 그녀의 고집이라고 치부하기엔 걸리는 게 많았고, 얼마 후 김세준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게 뭐야?’

노래에 중독성 있는 후렴과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코러스(Chorus)와 브릿지(Bridge).

그가 알고 있던 노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미래에선 세련된 하모니의 조화로 귀를 호강시켰던 코러스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이진아의 감성을 밑바닥 끝까지 올려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브릿지도 억지 감성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잘 나가다가 왜 이래?’

코러스와 브릿지가 죽으니 노래 자체가 확 죽어버렸다.

이진아의 노래보단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아직 미완성인 노래인 거구나.’

슬쩍 이진아를 보니, 표정이 미묘했다.

마치 노래가 좋은 듯싶다가도, 아닌 거 같은 복잡한 표정.

확실히 지금 노래만으론 이진아가 딱 꽂힐만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곡이 완성되고, 이진아가 이 곡에 마음이 뺏겨 활동하는 거겠지.’

작업실을 가득 채웠던 노래가 끝났고, 이진아가 송대준 대신 감상을 물었다.

“어때요? 피디님 곡은?”

송대준도 은근히 그의 평가가 신경 쓰이는지 힐끔힐끔 김세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좋은데요? 아직 미완성이라 성급하게 판단 내리긴 그렇지만요.”

송대준이 순간 움찔했지만, 그의 말이 틀린 건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마워요.”

짧은 감사를 표하는 송대준을 김세준이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만약 송대준이 이 곡을 완성한다면 내 데뷔는 어떻게 될까?’

자신의 가치가 필요 없게 된 상황.

두 번 물을 건 없이 자신의 데뷔는 물거품이 될 게 뻔했다.

‘그러면 송대준이 완성하기 전에 내가 먼저 리메이크한 곡을 들고 온다면?’

그러면 나는 데뷔하겠지만...

송대준의 저 곡이 영영 사라져 버리겠지.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던 저 곡이.

‘그게 맞는 걸까?’

김세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심각해졌지만, 이진아와 송대준은 그런 김세준의 변화도 모른 채 대화에 열중 중이었다.

“저도 피디님 곡이 나쁘진 않거든요? 근데 뭔가 아직 딱 느낌이 안 와요.”

“아직 미완성이라 그런 겁니다. 그리고 이진아씨 곡보단 좋잖아요. 고집 그만 부리세요.”

“고집이 아니라, 진짜 아직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 그래요. 솔직히 피디님도 인정하시잖아요. 아직 부족한 게 있다는 거. 그리고 지금 피디님이 어떻게 수정할지 감도 못 잡고 있다는 거.”

이진아의 말에 송대준은 표정이 굳어졌다.

핵심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반박따위는 할 수 없었다.

송대준도 자신의 곡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금방 수정할 겁니다.”

이를 앙다문 채 말하는 송대준이었고, 이진아는 시선을 돌려 김세준을 쳐다봤다.

“세준씨가 봤을 땐 어떻게 진행해야 할 거 같아요? 저에요? 아니면 피디님이에요? 아니면 뭐 세준씨가 생각해둔 곡이 따로 있어요?”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던 김세준이 흠칫 놀라곤 말을 얼버무렸다.

“아, 저는 두 분 곡 다 괜찮은 거 같은데요? 그런데 일단 나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죠. 부사장님이 찾으시네요.”

핸드폰 액정에 띈 부사장의 연락을 그들에게 보여준 후, 김세준이 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후우. 복잡하네.’

때마침 하동준의 연락이 왔기에,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김세준은 복잡한 머리를 두 손으로 헝클였다.

자신의 데뷔와 송대준의 곡.

뭘 더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모른 채 그는 하동준을 찾아갔다.

***

‘하아.. 뭐가 맞는 걸까?’

일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하동준이 그를 불러 회사와 직원을 소개해 줬지만, 김세준의 머릿속엔 그런 것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회사 직원들과 인사하고, 하동준의 설명에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에도 그는 머릿속으로 ‘연꽃’ 하나만 떠올리고 있었다.

데뷔와 명곡.

어느 한쪽으로도 쉽게 저울추가 기울어지지 않았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

‘욕심 같아선 당연히 내 데뷔를 우선순위로 두고 싶다. 하지만...’

송대준의 곡이 평범한 곡이었다면 김세준도 그의 데뷔를 우선시했을지 몰랐다.

훗날 나중에 발표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지금 송대준이 준비하고 있는 곡은 리메이크곡.

여기서 송대준이 곡을 완성하기도 전에, 김세준이 곡을 만들어 이진아를 설득한다면 송대준의 곡은 평생 세상에 나올 일이 없게 됐다.

그게 김세준이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송대준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곡이 무슨 죄라고...’

멍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김세준이 정신을 차린 건 하동준이 그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세준아. 일단 대충 끝난 거 같은데, 어떻게 같이 저녁 어떠냐?”

하동준이 슬쩍 시계를 보며 제안했지만, 김세준은 손을 내저었다.

평소라면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을 하동준의 제안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이진아씨와 송대준씨와 함께 리메이크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거든요. 바로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응? 진아는 집에 갔을 텐데?”

“...아, 대준씨하고 단둘이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네요. 제각 착각했었나 봅니다.”

“진짜 착각 맞아? 먹기 싫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남자가 구차하게 시리. 빨리 가봐.”

호탕한 웃음과 함께 하동준이 그의 억센 손으로 김세준의 등을 내리쳤다.

쿨한 척 행동하려는 듯했지만 약간의 감정이 담겨 있는 하동준의 손짓에 김세준이 순간 휘청거렸다.

‘오해하고 있나?’

김세준이 봐도 오해할만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해명하는 것도 그의 말처럼 구차해 보였기에 김세준은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업실에 도착하자, 이진아가 집에 갔다는 하동준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송대준 혼자 남아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분위기를 중재해주던 이진아가 없으니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단둘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니 그전에 김세준은 자신이 왜 여길 왔는지도 몰랐다.

아직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도 못했으니까.

‘돌아갈까?’

발걸음을 돌리려고 할 때, 작업실 유리창 너머로 송대준의 모습이 보였다.

“...!”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으며 괴로워하는 송대준의 모습에 김세준의 동공이 커졌다.

작업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고,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들기는 그였다.

이내 처절한 목소리로 큰 고함을 질렀고, 방음으로 인해 작은 소리만 작업실 밖으로 빠져나와 김세준의 귓가에 들렸다.

‘하하... 똑같네 나랑.’

동병상련. 그의 모습에서 김세준은 자신의 모습을 봤다.

작은 자취방에 틀어박히며 영감을 떠올리려 하던 나날들.

자신의 한계에 괴로워하며 스트레스에 찌들어가던 날들.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만드는 게 곡이다.

‘그런 곡을 없애려고 했던 거냐. 세준아...’

양심이 사정없이 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쓰라린 가슴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렇게 한동안 김세준이 작업실 복도에 기대어 서 있었고, 잠시 후 결심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작업실 문을 열었다.

작업실 문이 열리자, 인기척에 송대준이 몸을 돌렸고,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들어왔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어?”

동공이 흔들린 채 송대준이 물었다.

“여긴 왜 왔어요?”

그의 물음에 김세준이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후우. 그 대준씨 곡 있잖아요.”

“네. 제 곡이 왜요?”

김세준이 곡을 언급하자, 송대준이 긴장한 듯 몸을 움츠려들었다.

“그 곡. 코러스랑 브릿지만 바꿔보세요. 딴 것들 말고. 코러스하고 브릿지만. 지금 너무 밋밋한 느낌이에요. 그것만 바꿔도 제가 리메이크할 일은 없을 겁니다.”

“네?”

갑작스러운 김세준의 말에 송대준이 되물었지만, 김세준은 답하지 않고 허리를 크게 숙이며 인사 후 작업실 밖을 빠져나갔다.

‘이 정도 피드백이면 알아서 잘 수정할 거야.’

괜히 더 간섭했다간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을 터.

자신의 피드백으로 그의 고뇌가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했다.

그게 한때 못된 마음을 먹었던 김세준이 지금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송대준에 대한 사과였다.

***

“뭐야. 갑자기.”

김세준이 1분도 안 되어 들어왔다 나가자 송대준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뜬금없이 들어와 뜬금없는 말을 내뱉고 사라진 김세준.

송대준은 김세준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이번 리메이크에 참가하기로 결정된 순간부터.

처음 그의 곡을 들었을 땐, 천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신의 사장인 이해진이 그를 칭찬할 때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으니까.

다만 그런 천재가 갑자기 자신의 작업에 끼어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송대준이 느낀 감정은 불안감이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미완성인 이 곡.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둔 채 지지부진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자신에 희대의 역작이 될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한 걸음이 그렇게 떼어 지지가 않을 줄이야.

덕분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음은 타들어갔고, 초조함만 계속되었다.

불면증에 시달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담배를 하루에 3갑씩 피우던 지난 날들.

그런 날이 지나고 김세준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한 오늘.

천재인 김세준이 참가하면 자신의 곡 따위는 순식간에 묻힐 거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브릿지하고 코러스만 바꾸면 자신이 리메이크할 일은 없을 거라고?”

영문도 없이 내뱉은 그의 말이었지만, 자신을 도와주려고 뱉은 말이라는 건 뻔했다.

“밋밋하다고 했지...”

김세준의 말.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자신의 곡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치졸한 마음에 그를 퉁명스럽게 대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김세준이 말한 코러스와 브릿지 부분을 틀고, 천천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밋밋하다?”

수십 번 들었던 곡이지만, 지금까진 그런 감정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김세준이 말한 후로 왜 갑자기 진짜로 밋밋하게 느껴지는 걸까.

“잠깐만. 그럼 여기에다가 화음을 넣고...”

긴 터널 속에서 빛을 발견한 듯 송대준의 얼굴의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한 번 물꼬 트인 영감의 물길은 멈출 줄 몰랐다. 손을 멈추지 않고 곡을 수정하던 송대준이었고, 그의 작업은 몇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남들은 다 퇴근하고 지난 시간.

홀로 작업실에 남아 있던 송대준이 완성된 곡을 틀은 후,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댔다.

작업실 가득 울려 퍼지는 노래.

노래를 들으면서 송대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신이 며칠을 고뇌했던 문제를 단 한 번만 듣고 파악한 김세준을 생각하면서.

“천재는 진짜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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