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리메이크(2)
김세준은 아레스 뮤직하고 계약이 끝난 그 날. 김세훈을 만나 술을 곁들였다.
자신에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시종일관 궁금해하던 그였고, 오늘도 어김없이 연락하며 물어보던 자신의 사촌 형이었기에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었다.
“결국 아레스 뮤직에 들어갔네. 축하한다.”
김세훈이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축하를 건넸고, 김세준은 그의 축하를 달갑게 받아들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근데 이제 시작이야. 아직 음반 한 장 못 낸 가순데.”
“뭐. 금방 내겠지. 거기서 널 뭐 평생 썩혀두겠냐?”
아무것도 모르는 김세훈의 말에 김세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음반 한 장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물론 요즘 시대에선 혼자서도 낼 수 있는 게 음반이긴 하다만, 그의 목표는 그런 자기만의 앨범이 아니지 않나.
많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곡.
그런 곡을 내기 위해선 매니지먼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그런 매니지먼트에 속해서도 망하는 가수들이야 길거리에 돌멩이처럼 수두룩하고.
그가 전생에 좋아했던 이드레스가 소규모 매니지먼트에서 성공해 기적이라 불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너 데뷔는 언제 한 대?”
“나도 몰라. 이제 막 계약했는데 뭔 벌써 데뷔를 생각해.”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소리 하네.
“그래도 뭐 언제쯤 하겠다 그런 건 알려줄 거 아니야.”
“아니. 전혀. 아직 들은 거 없어. 나 오늘 계약했어. 형.”
김세준의 강한 부정에 김세훈이 무안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그래도 아레스 뮤직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언젠간 하겠지.”
이번 말에는 김세준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언젠가는 하겠지만, 최대한 빠를수록 좋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이 2015년 10월.
당장 올해에 데뷔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만약에 세준아. 너 노래가 지금 나오는 노래처럼 가게 스피커에서 나오면 되게 신기할 거 같다.”
김세훈이 술집 천장 구석에 있는 스피커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스피커에선 음악 차트에서 상위권에 진입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트이니아 노래 맞나?”
“맞지. 여자아이돌. 난 트이니아 보다는 소꿉친구가 좋더라.”
‘이때가 한창 아이돌이 유행이긴 했지.’
음악 차트 상위권을 아이돌이 휩쓸고 다니던 시대였다.
자연스럽게 김세준이 내년엔 어떤 음악이 유행을 탔는지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랑 비슷하긴 했는데 유독 한 곡이 기억에 남는단 말이지.’
그가 유독 좋아해서 그런 걸까.
정확한 음반 발매 연도가 기억날 정도로 노래 하나가 뇌리에 꽂혀 있다.
이진아의 연꽃.
원곡은 90년대 초에 활동하고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인 배진구의 노래.
그런 배진구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였다.
‘이진아가 아레스 뮤직 소속이지? 내년에 대박 나겠네.’
미래에 대박 날 이진아를 떠올리며 김세준이 부러운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뭐 나도 활동하기만 한다면.’
앞으로 어떤 장르가 유행할지 대략적으로 아는 그다.
활발한 활동만 할 수 있다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금방이리라.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마시자.”
생각에 잠겨 있던 김세준을 김세훈이 불렀고, 둘은 소주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었다.
***
삼일 뒤 김세준은 다시 한번 아레스 뮤직 사옥으로 향했다.
부사장인 하동준을 비롯하여 회사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제안할 게 있다는 연락이었다.
하동준은 김세준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혹자는 하동준이야말로 아레스 뮤직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정도로 회사 내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사람이었다.
조금은 낭만적인 기질이 있는 이해진에 비해 냉철하고 사업가적인 기질이 다분한 자였다.
‘아마, 내가 곡을 더 안썼으면 하동준이 어떻게 해서든 계약을 취소했을 거야.’
그런 남자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김세준은 일주일 동안 급하게 두 곡을 작곡했다.
“나쁘진 않았겠지?”
하동준을 비롯하여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김세준이 떨리는 마음으로 아레스 뮤직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김세준이 안내데스크로 다가가자, 그때와 똑같은 직원이 싱긋 웃으며 그에게 축하를 건넸다.
“말씀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웃으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뵐 텐데 잘 부탁드려요. 부사장님 보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
“부사장님 사무실은 4층이에요. 4층 오른쪽 맨 끝 두 번째 방입니다.”
친절한 말투와 환한 웃음에 김세준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환대에 떨리는 마음이 약간은 진정되는 듯했다.
‘건물 내부도 빨리 외워야겠네.’
앞으론 자신의 집처럼 찾아올 곳이니까.
엘리베이터를 타며 혹시 어제처럼 가수와 마주치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우연은 또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직원처럼 보이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탔을 뿐.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
“그런 거 같은데? 사장님이 푹 빠지셔서 갑자기 계약했다는 사람.”
자신들끼리 소곤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김세준의 귓가엔 뚜렷하게 들렸다.
“뭐, 사장님이 아니라 부사장님도 허락하셨대잖아.”
“곡이 완전 좋대.”
“궁금하다. 얼마나 좋으면 사장님이 갑자기 계약해? 지금 누구는...”
자신의 이야기에 김세준의 얼굴이 슬그머니 돌아갔고, 그의 시선을 읽은 사람들이 흠칫하며 말을 멈췄다.
그리곤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고개를 숙이며 내렸고, 김세준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평판이 나쁘지 않은데?’
두 곡을 작곡한다고 일주일을 꼬박 밤새운 보람이 있구나.
김세준은 직원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우려가 물로 씻듯 씻겨져 나갔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동준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하동준이에요.”
‘깜짝이야. 세훈이형인 줄 알았네.’
하동준의 첫인상은 김세준의 사촌 형인 김세훈의 중년 모습이었다.
단단한 몸과 거대한 체구. 우락부락한 팔뚝이 보자마자 김세준을 연상시켰다.
“일단 앉아요. 회사 사람들 소개해주기 전에 제안할 게 있으니까.”
김세훈의 사무실은 이해진과 사뭇 달랐다.
그래도 가수라는 걸 증명했던 앨범과 팬들이 준 선물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책과 서류로만 점철된 곳.
보기만 해도 갑갑하고 삭막한 느낌이었다.
“일단 우리 회사에 들어온 거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저도 곡 들어봤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았어요. 이런 작곡가가 있었구나. 사장님이 운이 좋으신 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이벤트 무대에서 이런 사람을 발견할 줄이야.”
싱긋 웃으며 말하는 하동준의 모습은 그가 소문으로 듣던 모습관 생판 달랐다.
겉모습은 위압적이지만, 친절하고 말투에 배려가 넘쳤다.
“오늘 세준씨에게 제안할 건 세준씨 데뷔하고도 연관이 있어요.”
“...!”
벌써 데뷔를?
이제 계약한 지 삼일 밖에 안됐는데?
이바닥 생리를 잘 모르긴 하지만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김세준을 향해 하동준이 손을 저었다.
“아, 지금 당장 한다는 건 아닙니다. 일이 잘 풀려도 내년에 하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네. 물론입니다.”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인 하동준이 다시 설명했다.
“사실 내년에 이진아라는 친구가 활동할 예정이거든. 누군지는 알 거라고 믿고 이야기하자면 그 친구 피처링으로 너를 집어넣을까 해.”
“피쳐링으로요?”
“어. 피쳐링이라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 원래 신인들은 피쳐링도 잘 못 들어가. 오히려 신인의 곡에 현역 가수들이 피처링 하는 경우가 있지. 팬덤 화력 좀 빌리려고.”
생각해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데 지금 문제가 좀 있어서. 세준이 네가 그 문제만 해결해준다면 피쳐링은 확실히 들어갈 거야. 너는 데뷔 빨리 해서 좋고, 진아나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 해결해서 좋고. 일거양득. 상부상조. 알 먹고 꿩 먹고. 무슨 말인지 알지?”
쏟아붓듯 말하는 스타일이 하동준의 원래 성격인듯했다.
대답도 듣기 전에 장황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김세준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먼저 그 문제가 뭔지 말씀해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 편곡이야. 편곡. 진아가 이번에 곡 하나를 리메이크해서 활동할 거 같은데, 그 편곡이 쉽지가 않나 봐. 대충 이해하겠지? 세준이 네가 그 리메이크 편곡을 맡아 봐. 좋은 결과 나오면 바로 피쳐링 들어가게 되는 거지.”
‘이거 설마 연꽃 말하는 건가?’
내년에 이진아가 발표하는 곡은 ‘연꽃’밖에 없을 거다.
워낙 곡이 흥행해서 다른 곡 발표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김세준의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연꽃이 어떤 인기를 끌었는지 지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이다.
그런 인기를 끌었던 노래의 편곡을 자신이 맡는다는 생각에 흥분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휘몰아치며 올라왔다.
‘물론 편곡은 다르게 해야겠지. 나만의 방식으로.’
미래에 유행했던 곡을 그대로 따라하는 건 표절이나 다름 없는 짓.
그런 짓을 벌이지 않더라도 김세준은 연꽃을 기가 막히게 편곡할 자신이 있었다.
“잘하겠습니다!”
호기롭게 외치는 김세준이 마음에 든 듯 하동준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해진, 아 아니, 사장님 말처럼 담력도 좋네. 그럼 일단 작업실로 가서 진아랑 작곡가 좀 만나서 이야기해보자. 어찌 됐든 곡의 메인은 진아니까 진아가 원하는 분위기랑 컨셉같은 걸 상의해봐야 하니까.”
김세준이 다시 한 번 대답한 후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아레스 뮤직에 작업실이 그를 반겼다.
제법 많은 방으로 이루어진 이 층은 오로지 다 작업실 뿐이었다.
군데군데 비어 있는 곳이 보였고, 어떤 곳은 이미 사람이 들어앉아 부사장이 왔다는 것도 모르고 작업에 열중 중이었다.
“어. 부사장님?”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그중 남녀 한 쌍이 있는 작업실의 문을 두드리자 그들이 놀란 기색으로 둘을 반겼다. 정확히는 하동준만.
“어. 잘 되어가고 있나? 인사해. 여기는 어제 말했던 우리 신인 가수. 김세준. 이쪽은 우리 가수인 이진아랑 우리 회사 소속 프로듀서인 송대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진아의 반응도 환대라고 보긴 어렵지만, 프로듀서인 송대준은 그를 명백히 적대하는 모습이었다.
김세준의 인사에도 고개만 까닥거리며 못마땅한 기색을 한껏 내비치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뭐 딱히 같이 작업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간단히 인사하고, 짧게 이야기라도 해보라고 부른 거야.”
하동준의 말에 이진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송대준은 중얼거리며 혀를 쳤다.
하동준과 이진아는 못 들었는지 태연했지만, 김세준은 똑똑히 들었다.
‘저런 애송이가 뭘 할 줄 알겠냐고?’
명백한 무시. 하지만 김세준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할 줄 알지. 난 이 곡 리메이크 해본 적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