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4화 (4/148)

#4

설득

“술이 지나간 뒤로...”

3분 20초라는 시간이 지나자, 김세준의 노래가 끝났고 쉴 틈 없이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김세준의 목소리와 가야금만 울리던 가게 안에서 그의 무대가 끝나자 찰나의 침묵이 이어졌다.

홀린 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감상하던 손님들이 노래가 끝났다는 걸 느끼자 아쉬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멋진 노래를 불러준 가수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노래 대박!”

“앵콜! 앵콜! 앵콜!”

“한 곡 더! 한 곡 더!”

고양된 표정으로 외치는 그들.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가 마치 유명 가수의 콘서트장에 온 듯했다.

“감사합니다!”

그런 열띤 환호에 김세준이 환한 미소로 화답했고, 부담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가야금은 조율이 오래 걸려서요. 아쉽지만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또한 그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야금 특성상 새로운 곡을 부르려면 새롭게 조율해야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아쉬움을 가득 안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김세준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의 사촌 형인 김세훈이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

“김세준! 진짜 멋있었다! 노래 되게 좋던데!”

“아! 형! 숨 막혀!”

국악 천재라고 불리던 그의 사촌 동생. 김세준의 가야금 실력이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노래도 이렇게 잘하는진 몰랐다.

게다가 무대에서 시종일관 짓던 여유만만한 표정과 실수 한번 없던 무대.

김세훈 그가 봤을 땐 웬만한 가수 뺨치는 실력이었다.

“크크크. 미안. 네가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어. 가야금연주야 알고 있었지만 노래도 미쳤던데?”

“당연하지. 내가 괜히 전향하려는 건 줄 알아? 재능 없었으면 고민하지도 않았어.”

“그래. 새끼야. 너 잘났다. 크크크.”

자랑스러운 듯 쳐다보는 김세훈의 표정을 보자 김세준의 마음이 한술 더 들떴다.

그런 들뜬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했고, 이내 두 눈이 커졌다.

이해진. 그가 어느새 자리를 비웠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엔 새로운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근데 이해진은 어딨어?”

“몰라. 너 노래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가던데?”

“어?”

그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 나갔어?”

“어.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처럼 다급하게 나가던데?”

망했다.

그의 사촌 형의 말에 김세준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분명 마음에 든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스카웃 할 정도로 마음에 든 건 아니었구나.

아쉬운 마음이 자꾸 들어 애꿎은 땅바닥만 발로 차고 있을 때.

김세훈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무언갈 그에게 건넸다.

“받아.”

숙였던 고개를 들어보니 김세훈의 손에 명함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응? 뭐야 이게?”

“축하한다.”

김세훈의 말에 김세준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재빨리 명함을 낚아채곤 확인했다.

아레스 뮤직 사장. 이해진.

명함에 적힌 글자를 보자 김세준의 동공이 커졌다.

“나한테 주고 갔어.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 대. 나중에 꼭 연락 달라는데?”

명함을 고이 두 손에 쥐고선 김세준이 김세훈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왜 장난질이야!”

“그냥 너 한 번 놀렸어. 크크크. 아주 세상이 무너질 거 같은 표정이더라? 역시 넌 어렸을 때부터 놀리는 맛이 있단 말이지.”

“진짜 사촌 형만 아니었으면.”

“뭐, 계급장 떼고 함 뜰까?”

곰 같은 덩치를 자랑하듯 어깨를 펴는 그의 모습에 김세준의 눈이 떨렸다.

싸우면 이길까?

아마 복날 개 패듯 뚜들겨 맞겠지?

취미로 복싱까지 하는 형인데.

“이번 일 때문에 봐주는 거야. 형이 마련해준 자리 덕분이니까.”

짐짓 허세 부르는 김세준의 말에 김세훈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축하해. 명함 줄 정도면 정말 네가 마음에 든 거겠지? 게다가 꼭 연락 달라고 했으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야~ 내 동생 가수 되겠네. 미리 사인 좀 해줘라.”

“가수는 무슨. 아직 몰라. 대표 명함 한 장 받았다고 바로 계약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니라고 들었어.”

“그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냐. 게다가 너 만약에 데뷔까지 하게 되면... 너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한텐 말씀드렸냐?”

김세훈의 낮은 목소리.

그 말에 김세준도 신음을 삼켰다.

***

오픈 마이크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세준은 집으로 돌아왔다.

가게 주인이 다음에도 꼭 해달라며 돈까지 더 얹어줄 정도로.

그가 생각했을 땐 친구 동생에게 용돈 주는 의미도 포함된 거 같긴 했지만.

매트리스에 벌러덩 누운 김세준의 손엔 이해진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전화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건 김세훈이 말했던 것처럼 그의 부모님 때문이었다.

인간문화재이자 자신의 스승님이기도 한 아버지 김창용.

그리고 그가 그런 아버지의 뒤를 잇길 바라는 어머니 박진숙.

이 세상 누구보다 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어떤 반응이실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

전생에서도 그가 느낀 가장 큰 압박 중 하나였다.

괜한 불효를 저지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불효를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꿈을 접고 싶지 않았다.

살면서 한번쯤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려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부모님의 실망한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단호하신 성격과 불같은 심정이라면 당장 서울로 올라와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집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부딪혀 봐야지.”

단호하신 엄마보단 아버지가 나겠지.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자, 통화음으로 아버지가 낸 곡이 울렸다.

“여보세요? 세준이니?”

“네. 잘 지내시죠?”

무심한 듯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 반기는 목소리가 용기를 심어줬다.

“우리야 잘 지내지. 너는 어떠냐? 요새 바람이 차던데. 서울은 따뜻하냐?”

“네. 서울은 괜찮죠. 거긴 어때요?”

“우리도 괜찮아. 그래 엄마 바꿔줄까?”

김창용의 말에 김세준이 식겁했다.

“아니요! 아버지. 의논 드릴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음.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김창용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김세준의 말에 조심히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아내 박진숙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면 자식도 모르는 자식의 습관까지 알게 될 때가 있었다.

김세준의 경우엔 그 습관이 아버지란 호칭이었다.

평소엔 아빠라고 잘만 부르던 아들이 아버지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땐 항상 자신에게 무언갈 부탁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서울에서 독립해서 살고 싶다고 말할 때도 그랬었지.

김창용의 경험상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박진숙 여사는 늦게 듣는 게 좋았다.

사랑스러운 아내는 자신보다 더 다혈질이니까.

이번엔 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걱정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가진 채 안방을 나온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어. 무슨 일인데? 말해봐라.”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김창용의 목소리에 김세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했다.

자신이 간직했던 꿈.

그리고 그 꿈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더 나아가 자신의 재능을 기획사 사장인 이해진도 인정했다는 것까지도.

30분에 걸쳐 말하는 동안 김창용은 묵묵히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버지.”

“...”

김창용의 침묵. 김세준에게 불안감을 심어줬다.

화내시려나? 아니면 그냥 전화를 끊으시려는 걸까?

제일 최악은 나에게 실망한다는 것.

온갖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 김세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듣고 있다. 그래. 이해진이라. 그 가끔 티비에도 나오는 양반 맞지?”

“네. 맞아요.”

“너가 재능 있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몰랐구나. 열심히 해라.”

“...!”

승낙하는 김창용의 말에 김세준이 스스로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정말요?”

“그래. 너도 나이가 26인데 내가 네 미래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긴 거 아니냐? 그리고 네가 다른 마음 먹고 있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다만 얼마나 하고 싶은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를 몰랐는데, 그렇게 원하고 재능이 있으면 해야지.”

“감...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너희 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잘 말해둘 테니까.”

“네. 부탁드릴게요. 아빠. 사실 엄마한테 말하긴 아직 용기가 안 나네요.”

“잘했다. 네 엄마 성격상 당장 서울 올라가서 너 끌고 내려오자고 날 들들 볶을 거다.”

김창용의 엄살에 김세준이 소리 내어 웃었고, 이내 둘의 전화는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인사말과 함께 끊어졌다.

“후우...”

전화가 끊기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쉰 김세준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무난하게 끝난 이야기.

“괜한 걱정이었나?”

아버지인 김창용의 마인드가 이렇게 열려 있을 줄은 몰랐다.

슬며시 웃음 지었던 그가 침대 옆에 놨던 명함에 시선을 돌렸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

이해진은 자신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평소에도 조용할 일 없는 핸드폰.

지금도 계속해서 회사 단톡방에선 수 없는 메시지가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 그가 원하던 연락은 아직도 잠잠했다.

명함을 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연락 없는 김세준을 떠올린 이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그냥 내가 직접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곧바로 회사로 오고 대책회의를 치루고, 우여곡절 어떻게 마무리하긴 했다.

하지만 덕분에 김세준이란 찬란한 원석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후우. 아쉬운데.”

김세준이란 원석.

다른 회사에서도 보기만 한다면 군침을 흘릴 정도로 휘황찬란한 보석이다.

혹여 그가 다른 회사에서 데뷔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속이 쓰렸다.

“연락처를 받아와서야 했었어. 바보같이. 쯧.”

갑작스럽게 벌어진 회사의 일 때문에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하고 아쉬워할 일.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그의 연주와 노래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했다.

비록 무대를 끝까지 지켜보고 나오진 못했지만, 나오기 직전까지 관객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즉, 관객들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심어주는 무대.

그런 가수가 작은 술집이 아니라 거대한 공연장에서 무대를 이룬다는 상상을 하자 온몸이 짜릿할 정도였다.

“조만간 술집을 다시 찾아가야겠네.”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술집에서 초대한 가수이니 연락처는 알고 있을 터.

일주일이란 시간은 그의 참을성을 모조리 가져간 뒤였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난 이해진이었고, 동시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뜨는 이름 없는 번호.

“...!”

이해진이 스스로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떨리는 마음으로 혹여 전화가 끊어질까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이해진님 번호 맞나요? 저 그때 오픈 마이크에서 노래했던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이해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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